게임의 심리학 가위바위보 - 일상 속 갈등과 딜레마를 해결하는
렌 피셔 지음, 박인균 옮김, 황상민 감수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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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섬 게임만 아니라면 서로 협력하는 해결책만 찾을 수 있다면, 언제나 쌍방이 승리하는 게임으로 전환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나 '공유지의 비극'등의 개념은 우리가 서로 협력할 때는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이기심의 덫에 빠져 협력을 포기하고 상대를 속이거나, 양측이 모두 서로를 속일 때 발생하는 딜레마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 대한 개념을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겪는 갈등과 딜레마 상황으로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즉, 가족이나 직장생활, 기타 여러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형성되는 개인이나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갈등 상황들을 게임 이론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또한 게임이론을 통해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대면하는 사회적 딜레마의 덫을 일곱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갈등 속에서 발생하는 '죄수의 딜레마', 집단 내 여러 쌍의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공유지의 비극', 사람들이 공동체의 자원에 기여하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할 때 발생하는 '무임승차', 벼랑 끝 협상으로 표현되는 '치킨 게임', 나머지를 위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아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지원자의 딜레마', 각자가 원하는 것을 따로 하는 것보다는 서로 함께 하려고 했을 때 발생하곤 하는 '성 대결', 그리고 집단 구성원이 서로 협력하면 보상이 큰 모험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협력을 깨고 단독으로 행동하면 보상이 작지만 성공이 확실한 경우를 말하는 '사슴 사냥', 이상의 일곱가지 상태를 딜레마의 상황으로 파악하고 먼저는 이러한 덫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우리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뢰와 협력', 저자가 앞에서 언급한 일곱가지 딜레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 말하는 해결책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형성하고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말인데,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이행 합의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나 상대방이 배반을 생각하지 않고 나를 믿어도 된다는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자발적 이행 전략의 전형이 바로 책의 제목으로 쓰인 '가위, 바위, 보' 게임으로, 저자는 자연계에 분포하는 절묘한 3의 균형에 대해서 살피고, 그 안에 담긴 자발적 이행 전략에 의한 균형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의식적으로 협력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각각의 딜레마 상황에서 상대편으로부터 신뢰와 협력을 얻어내고, 또한 그러한 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저자는 신뢰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실제로 상대방에게 우리가 한 약속이 믿을 만한 약속임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러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필요한 전략으로 '변심할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을 만들'거나 '빠져나갈 구멍을 계획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을 통해 상대편이 신뢰할 만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대편이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하는 협력 유지를 위한 게임의 법칙으로는 영혼이 없는 가상세계에서는 상대편이 협력할 때는 협력을 유지하고 배반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가하는 '맞받아치기 전략' 이지만, 실생활에서 우리의 행동방식과 좀더 가깝고 또한 전략적으로 맞받아치기 전략보다 우세한 '이기면 머물고 지면 움직이라 Win-Stay, Lose-Shift' 전략이라고 합니다. '이기면 머물고 지면 움직이라'는 전략과 '맞받아치기 전략'의 중요한 차이점은 이전 상황에서 서로가 배반으로 손해를 보았다면 대립을 유지하기 보다는 다시 협력을 제안하여 상대의 협력을 얻어낸다면 다시 협력을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전략 외에 저자가 소개하는 협력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게임을 바꾸는 방법으로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 것과 양자 게임이론의 적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우리가 실생활에서 대하게 되는 여러 갈등 상황에 대한 근본원인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저자가 소개한 '일상생활에서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유용한 열 가지 비법' 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기면 머물고 지면 움직이라. 

 2. 다른 참가자를 영입하라. 

 3. 일종의 상호 협력 관계를 형성하라. 

 4. 협력에서 이탈할 경우 손실을 입도록 미래의 선택권을 제한하라. 

 5. 신뢰를 주라. 

 6. 손해보지 않고 혼자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라. 

 7. 추가 보상을 제공하여 협력적 제휴를 구축하고 유지하라. 

 8. 일곱가지 치명적인 딜레마를 알고, 여러 참가자의 이득과 비용을 재구성하여 딜레마가 사라지게 노력하라. 

 9. 재화, 책임, 일자리, 불이익까지 분배하여 불만이 없게 하라. 

 10. 큰 집단을 더 작은 집단으로 나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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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
에릭 J. 카셀 지음, 강신익 옮김 / 들녘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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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의료의 비인간화', 실제로 의료의 본질이 질병을 앓는 환자와 그 질병에 대한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의료인과의 인간관계에서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기에 의료의 비인간화라는 말에서 미묘한 모순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과정이 비인간화 되어간다는 것이 이리 모순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 현대의학이 발전할수록 그러한 염려는 더 커가는 듯 합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환자에게서 질병과 병원체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여 취급하고, 결국 각각의 질병을 포커스 삼아 해당 질환의 원인과 병리, 그리고 임상증상과 진행과정, 치료와 향후의 결과나 합병증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축적하는데 성공한 현대의학은 많은 질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초래된 필연적인 문제가 곧 '의료의 비인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삶과 환경, 인격 등은 철저히 무시되고 환자가 지닌 질병에 대한 것만이 의료인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버린 결과,  결국 고유한 특성을 지닌 한 개체로서의 환자의 정체성은 무시되어버리고, 물질론적인 관점에서 분해되고 해석된 육체와 질병만이 관심의 대상으로 남겨집니다. 그리고 의사도 간호사도 또한 여러 의료인들은 환자 자신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질병이 우선적인 관심사일 뿐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병원에서는 환자의 눈물과 아픔, 두려움과 분노, 좌절감과 고립감 등은 무시해도 좋을 부수적인 것들도 취급되기 일쑤입니다. 환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고통받는 그 환자가 감정을 지닌 한 인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현대의학은 너무 멀어졌고, 지금도 질병과 그 질병을 찾아내기 위하 테크놀러지, 질병을 박멸하기 위한 치료법에 이르기까지 현대의학의 주된 관심사와 노력들은 그러한 간극을 더 넓히는 쪽으로 내달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통의 본질과 의학의 목적'이라는 책의 부제와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은 이러한 의료의 비인간화에 대한 우려의 눈길을 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근원적인 의료의 본질과 환자-의사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간단히 표현하면 현대 의학이 중시하는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의료행위가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풀려고 하는 문제를 제시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임상의사들은 특정한 환자는 특정한 환경에서 특별한 시간에 치료하며, 따라서 그들은 그 개인과 시간에 대한 개별적 정보를 필요로 한다는, 잘 알려진 사실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지만, 결국 질병으로 인한 고통의 중심점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환자가 있고,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단순히 육체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자체에게 가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고, 또한 그러한 이해를 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그 의사가 대하는 환자의 병의 진행에까지 지대한 영향이 미친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객관성과 과학적인 관찰, 물질론적인 관점에서 의사들이 환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그 환자의 질병상태와 신체적 기능 이상에만 간심을 가짐으로써 결국을 환자를 소외시켜버리는 것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현대의학이 잃어가고 있는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 감정을 가지고, 고통과 절망, 자기 자신과의 갈등 및 고통에 따르는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환자를 본래의 위치로 복구시켜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주장을 담은 이책은, 실질적으로는 의료현장에 서있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종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스스로 지나온 길을 반추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또한 자신들이 대하고 있는 질병과 환자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의료행위의 본질에 대해서,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했던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 한권의 책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겟지만, 이 책이 많은 의료인들에게 읽혀서, 병원에 가면 가슴이 따뜻한 의사, 환자의 눈빛을 이해해주는 간호사, 그리고 고통 당하는 환자의 손을 따뜻하게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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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유혹 - 가장 과학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욕망
데이비드 슬론 윌슨 지음, 김영희 외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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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이제는 일반인들도 대강의 내용을 알고 있는 빅뱅이론에 입각한 설명을 하거나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말한다면 아마도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들의 첨예한 대립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과학의 입장에서는 빅뱅과 진화론에 힘을 실어주겠지만, 분명 종교적인 입장에 선 사람들은 신에 의해 창조된 세상과 생명에 대한 신념을 포기할려고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창조의 틀안에서 진화론을 수용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겠고, 창조론과 진화론을 서로 다른 영역에 국한시켜 서로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두 신념 모두를 편리하게 사용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대세는 진화론과 창조론, 과학과 종교의 냉랭한 대립이지 않을까 합니다. 

 다윈 이후에 등장한 진화론은 분명 사람들에게 눈앞에 존재하는 세상을 이해하고 알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물들이 지금의 특징을 지니게 된 이유들, 여러 자연재해를 비롯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 이유들에 대해서 보다 실제적인 대답을 해 주었고, 그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고유한 특성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도 제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에 취해, 어느 순간부터인가 진화론이라는 도식속에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는 자만이 나타나면서 기존의 진화론이 가지는 장점이 경직된 이론이 되고 부족한 부분을 메꾸지 못하면서 이런 저런 부족한 면들이 부각되기도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는 기존의 생명탄생 과정에서 현재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단선적으로 그 틀을 완성하여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심이 결국은 수많은 연결부분이 아직까지 화석이나 다른 어떤 증거로 증명되지 못한, 빠진 고리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지고, 한편으로는 현재까지 진화하지 못하고 살아남아 있는 원시생물들의 존재에 대한 힐난도 있습니다. 또한 지적설계론을 내세운 종교의 반격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이 세상을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보편적인 원리라기 보다는 단순히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하나의 뛰어난 이론적인 가설에 불가할 뿐인 것일까요...... 아마도 여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세상의 실체를 이해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원리로서 진화론의 매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어떤 존재의 의미나 특징을,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신에 의지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종교적인 입장도 아니고, 눈앞의 실체를 부분으로 분해하여 설명한 뒤 그 모든 것의 합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과학적인 관점도 아닌, 그 존재가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을 부여받아서 선택받고 살아남았다는 제3의 사고방식을 열어주었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한 자연선택의 관점을 단순히 생물의 진화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구조, 종교 등으로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즉 기존의 진화론자들의 단순히 생명체에 국한된 진화론의 적용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고, 진화론이 생물학에만 적용되는 이론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보편적으로 적용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부분이 저자가 말하는 진화론이 지닌 깊은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화론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이론일 뿐이거나, 과학자들만이 그들의 실험실 안에서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머리를 싸매고 이해하려고 하는 과학이론일 뿐이거나, 종교와 신을 내몰고 유물론적인 사상을 세상에 뿌리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매력적인 사고 방식으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책의 두께만큼이나 다양한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시작되어 지금의 과학 교과서나 잡지에 실린 생물학적인 내용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진화론이 사람과 생명체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간단명료한 설명을 들려줄 수 있는, 또한 생물학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정치학, 종교와 기타 인문학적인 사고들을 통합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우리 일상의 많은 것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안목과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 매력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 방식은 열심이 연구하고 책을 읽고 실험실에서 날을 새워야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조금만 주의하여 살피고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들이라는 사실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세상을 이해하는 매력적인 사고방식으로서의 진화론..... 마음을 열고 저자의 주장에 귀기울여 볼만한 유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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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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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찾다가 '너무 지루하다' 며 이 책에 별점 두개를 준 분의 글이 눈에 띄였습니다. '너무 지루하다.' 상당히 수긍이 가는 평가입니다. 단 한가지 단서를 먼저 달아준다면 말입니다. 추리소설이나 판타지 소설 보다는 좀더 실용적인 내용들을 더 좋아하는 성향인 연유로 마지막의 결말을 기대하며 차분히 읽어나가기 보다는 읽으면서 무언가 내용에 서로 연결되는 실마리가 있는 책들에 익숙해진 이유가 크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1권을 마치고 2권 중간정도까지 읽으면서는, 도대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건지 모르겠고, 주인공을 따라 암호를 푸는 듯이 또는 목적없이 좌충우돌하며 실타래가 꼬이듯이 혼란스럽게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읽는 내내 그냥 덮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시시때때로 의식의 표면에 새기곤 하였습니다. 분명 앞에 언급한 분의 평가처럼 '지루해서였겠지요.....'  작가의 다양하고 기발한 상상력에서 나오는 여러 등장인물과 지명,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분명 전체적인 윤곽이 그려지고 이해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하는 대목까지 이 책은 분명 상당히 따분하고 지루한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내용을 다시금 음미할 수 있는 지금, 이 책을 '너무 지루했다'고만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면모가 이 속에 숨겨져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대부인 단첼로트 대부가 죽고나서, 자신과 단첼로트 대부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감동시킨 글을 가지고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떠나는 과정과 부흐하임에서 그 글로 인해서 위험인물로 찍히고 결국은 지하묘지로까지 추방되는 과정과 지하에서 겪는 여러가지 모험과 위험과 고통 등은 결국 주인공이 그림자 제왕 (호문콜로스)를 만나 그 글의 작가에게 발생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고, 부흐하임의 권력분포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기까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와 같은 사건들과 이야기들의 연속일 뿐이지만, 그 이후로는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오름'을 느끼게 만드는 숨가쁘게 진행되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조금더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독자라면 처음부터 펼쳐지는 작가의 상상의 세계에 푹빠질 수도 있겠고, 좀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독자라면 내내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못마땅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장까지 읽어낼 만한 여유와 인내만 가지고 있다면 작가가 선사하는 반전과 희열 속에서 '오름'의 한줄기 빛을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루해서 마지막까지 읽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한가지 단서입니다.

 작가의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책들이 도시인 지상의 부흐하임, 그리고 도시의 밑에 지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야기보다 더 깊고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지하묘지, 그 지하묘지를 휘젓고 다니는 책사냥꾼들, 그림자 제왕과 갖가지 괴물들과 생물체들, 한 작가의 책을 평생 읽고 외워내는 외눈박이 부흐링 족, 살아있는 책이나 거인족, 그리고 지하세계의 여러 기묘한 장소나 장치들은 책을 다읽고 나서, 다시금 음미하게 되는 지금에야 더 깊은 맛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낯설고 기묘했던 것들과 존재들이 책장을 덮고 난 지금 이리 더 친숙하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책읽는 사람들에게 흥미롭고 관심이 가는 것은 '오름'에 대한 것일 듯 합니다. 저자가 이 책속에서 말하는 '오름'이란 것이 책을 쓰는 이들이나 그 책을 읽는 이들이나 책을 통해서 찾고자 또는 얻고자 하는 그 무엇이 될 테니 말입니다. '당신에게 '오름'을 선사한 책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이해하고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또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도 '오름'을 선사해 주는 책을 찾아 나선 많은 책읽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책읽기 속에 담긴 선명한 판타지를 하나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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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 초개체 생태학
위르겐 타우츠 지음, 헬가 R. 하일만 사진, 최재천 감수, 유영미 옮김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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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번식을 한 개체군으로 개미들을 꼽는 텔리비젼 프로그램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고는 하지만, 무서운 번식력으로 세상의 곳곳에 뿌리를 내린 개미들은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보다 세상의 더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고, 그러한 개미들의 성공을 집단을 이루어 사회생활을 하는 개미들의 특성에서 찾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개미들과 더불어 우리에게 집단생활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개체군으로 꿀벌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개체로서의 존재는 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그들이 군락을 이루어 한 사회를 건설하고 유기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그 사회를 유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이는 집단지능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초개체라는 개념으로 그러한 집단들의 특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꿀벌이나 개미는 각각 별개의 생명을 지닌 개체이지만, 하나의 집단을 통틀어 보았을때는 언제나 그 집단 군락 전체가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한다는 개념입니다. 실제로 개미나 꿀벌의 사회생활을 살펴보면 전체 군락으로서의 집단이 각각의 개체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훨씬 더 복잡하고 경이로운 성취를 이루어내고 있음을 알수 있고, 아마도 그러한 성공적인 초개체로서의 발전 -또는 진화-이 지금이 개미나 꿀벌 왕국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꿀벌의 초개체로서의 특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획기적으로 꿀벌군락을 척추동물을 뛰어넘어 포유동물의 특성까지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생각한다면 포유동물과 꿀벌집단을 연결시킬 수 없지만, 저자는 세밀한 관찰과 연구 결과들을 통해 서로 비슷한 점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포유동물의 번식률이 극단적으로 낮듯이, 꿀벌집단의 번식률도 매우 낮다는 점, 포유동물의 암컷이 자손을 양육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젖을 분비하듯이, 암컷인 일벌도 로열젤리(왕유)를 분비한다는 점, 포유동물이 자궁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자손에게 최적의 양육환경을 제공하듯이 꿀벌도 벌집이라는 사회적 자궁을 통해서 유충을 안전하게 양육한다는 점, 포유동물의 체온이 섭씨36도이듯이 꿀벌 유충의 체온은 섭씨35도로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 그리고 포유동물이 큰 두뇌로 척추동물 중 가장 뛰어난 학습능력과 인지능력을 지니게 된 것처럼 꿀벌의 학습능력과 인지능력이 단순한 척추동물을 뛰어 넘는 정도라는 점 등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면적 유사점보다 더 중요한 점으로, 환경에 최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어떻게 기능 하는지' 에 대한 공통적인 특성을 들고 있는데, 능동적인 비축경제 활동과 안전한 생활 공간의 조성 및 환경을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 변덕스러운 주변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자손을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포유동물로 간주될 만한 꿀벌집단에 대한 경이로움이나 초개체로서의 특징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이 보여주는 꿀벌들의 삶 자체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들은 읽는 이로 수많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개개 꿀벌의 진화를 통한 여왕벌을 중심으로 한 초개체로서 탄생과정, 꽃과 꿀벌간의 공존을 위한 생존전략과 상호작용, 꿀벌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춤)와 꽃을 찾아나서는 꿀벌의 시각과 후각의 역할 및 학습능력, 짝짓기와 새로운 개체-일벌, 수벌, 여왕벌-의 탄생과 분봉과정, 벌집의 구조가 담고 있는 다양한 기능적인 의미, 분업화된 다양한 꿀벌들의 직업과 나이에 따른 직업의 변화 및 유연성, 유충의 부화를 위해 정밀하게 유충방이 난방되고 온도에 따른 양육환경의 차이에 의해 나타나는 꿀벌들의 수명이나 학습능력의 차이, 꿀벌이 서로 협동하는 이유에 대한 유전학적인 고찰, 그리고 질병이나 온도변화, 저장꿀의 많고 적음 등 여러 변화에 꿀벌집단이 대응하는 방식 등에 대한 이야기들은 개개의 꿀벌을 넘어서 훨씬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유지되는 꿀벌집단의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게 합니다.  

 초개체로서의 꿀벌집단에 대한 이해는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흥미로왔고, 또한 주변을 살피는 시야를 많이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개개의 꿀벌이 모여서 이룬 집단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 개개인이 한 생명체로서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생물학적인 과정을 거치는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그 너머의 우리 주변의 환경들도 결국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나름대로의 균형과 조화을 통해 하나의 지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개념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새로운 이해도 생겼으니 말입니다..... 꿀벌세계에 대한 여행만으로도 즐거웠던 시간이었고, 그에 덤으로 세상을 좀더 넓게 보고 생각할 만한 지혜 한조각도 얻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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