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 선정 [04/11/09]
 
다양성 뿌리내려 문학적 지평 넓혀
개성 강한 수작들로 심사에 난항
9개작 추천… 장평부진 아쉬워
최종 수상작 이달 하순 발표

“우리 문학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소설의 시각과 방법론, 소설을 통해 지향하는 바가 한층 다양해졌다.”

제37회 한국일보문학상 예심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동식, 김형중,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씨는 8일 저녁 한국일보사 12층 송현클럽에서 열린 후보작 심사에서 한국문학이 다양성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했다는데 입을 모았다. 후보작 선정은 이 다채로움을 확인하고 그 성취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작업이었다.

● 심사경과 및 결과

심사는 2003년 10월부터 2004년 9월까지 국내 20개 계간ㆍ월간 문예지에 발표된 중ㆍ단편 소설과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장편소설, 같은 기간 출간된 소설집에 수록된 2002년 10월 이후 작품이 대상이었다.

심사는 3시간 가까이 난항했다. 당초 5편 내외를 염두에 두고 논의를 시작한 위원들은 가까스로 9편으로 심사를 매듭지었고,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도 몇몇 작가와 작품들을 거론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선정된 작가와 작품은 강영숙의‘태국풍의 상아색 샌들’김경욱의‘장국영이 죽었다고?’김연수의‘거짓된 마음의 역사’김영하의‘은하철도999’박민규의‘카스테라’윤대녕의‘고래등’정지아의‘미스터존’천운영의‘명랑’한강의‘채식주의자’.

위원들은 “올해는 눈에 띄는 장편소설이 없었다”는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했고, 문학의 짧아진 순환주기를 감안할 때 예심에 아깝게 탈락한 새로운 작가들이 향후 2, 3년 내에 문단의 주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최종심 결과는 이 달 하순께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 후보작에 대하여

강영숙의 ‘태국풍의 상아색 샌들’은 작가 특유의 다국적(혹은 무국적) 감수성이 돋보인 작품으로 평가됐다. 가부장적 가족질서로부터 이탈을 추구하던 여러 여성작가들과 달리 애초부터 전통질서 바깥에서 소설을 썼던 작가의 낯선 감성은 한국적 리얼리즘의 껍질을 깨는 시도로 주목됐다.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는 초기 습작의 테두리를 벗어난 듯한 작가의 기운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꼽혔다. 즉, 그가 즐겨 구사한 대중문화적 코드가 장식, 소품 혹은 배경의 의미를 넘어 세계와 세대 속에 존재하는 주체의 위치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 호감을 샀다.

김연수는 소설 속에 역사를 담는 방식을 통해 드문 문학적 성취를 거둔 작가로 평가됐다.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허구적 텍스트와 역사적 사실의 결합이라는, 소설적 세계인식의 문제를 돋보이는 방식으로 제시한 작품으로, ‘부능쒀’와 질긴 저울질 끝에 본상 후보작으로 뽑혔다.

최근 여러 문학상을 통해 집중 조명을 받은 바 있는 김영하는 이번 심사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무겁던, 그래서 ‘고통의 문학’이라고까지 명명됐던 한국문학의 주류에 ‘즐거움의 코드’를 얹었다는 점, 그 도정에 ‘은하철도 999’가 빛난다는 평가였다.

박민규는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소설의 영역을 넓히는 작가로 심사 위원들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카스테라’는 인터넷 문법을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과 하위문화적 감수성을 통해 전통적 소설 장르 개념을 뒤집으려는 듯한 작가의 ‘창작론’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예심을 통과한 작가 가운데 최고령인 윤대녕은 근작 ‘고래등’에서 변화의 긍정적 시도에 성공했다. 초기작 ‘은어낚시통신’에서 보였던 ‘존재의 시원 회귀’ ‘자기애’를 넘나드는 긴 모색기를 거쳐 존재론적 의미 너머의 운명과 사랑으로 작가의 눈이 확장되고 깊어졌다는 평가다.

정지아의 경우 자기세대에 대한 끈덕진 책임의식과 문학적 형상화 노력이 주목됐다. ‘미스터 존’은 운동권 후일담 소설들이 주춤대던 대책 없는 낭만화나 경험에의 함몰, 방향을 잃고 떠도는 식의 부정적 경향을 극복하고 윤리적 부채의식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멍게 뒷맛’으로 지난해 본상 최종심까지 올랐던 천운영은 ‘명랑’으로 다시 본선에 올랐다. 체험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고, 체험의 부재를 체험의 생산을 통해 극복해 온 작가의 이번 작품은 체험적 글쓰기의 영역이 환상성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남겼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여성작가로서의 색깔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라는 평가. 낡은 관습과 남성성을 상징하는 고기(육식성)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등장인물을 통해 치열한 작가적 문제의식을 극단으로까지 밀어올리는 뚝심이 돋보였다는 분석이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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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 쓰러지기 1주일 전 녹음 테이프 공개 [04/11/09]
 
"미당·릴케는 역사를 뛰어넘은 시인"

넉 달째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시인 김춘수(82.사진)씨가 쓰러지기 꼭 일주일 전인 7월 28일 후배 시인들과 점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가 녹음된 테이프가 공개됐다. 경기도 남양주의 한 음식점에서 녹음된 테이프는 약 60분 분량. 부인과 사별(1999년)한 뒤 쓸쓸해 하던 김씨는 2~3년 전부터 서정춘.조영서.노향림 시인 등과 일주일에 한차례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하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왔다.

이날도 그런 모임 중 하나였으며, 테이프는 대화가 무르익자 김씨의 제자 시인 류기봉(39)씨가 녹음한 것이다. 반주를 겸해서인지 대화는 시와 예술, 역사.현실.건강 등 여러 주제들을 자유롭게 오갔다. 그러나 문학이 주제였을 때는 김씨가 주로 말하고 후배들이 묻곤 하는 문답식으로 이어졌다.

대화 중간부터 녹음된 테이프의 첫 부분. 김씨는 "미당이 '마흔 다섯은/귀신이 와 서는 것이/보이는 나이'라는 시('마흔다섯')도 썼듯이 시인은 보이지 않는 세계, 자신의 내면을 보는 사람"이라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당의 시에 나오는 귀신은 결국은 내면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릴케나 미당이나 내면 세계를 들여다 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그러나 "지용 같은 시인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역사의 눈이 미래를 보려고 한다면 시의 눈은 과거, 이미 끝난 세계를 바라본다"고 말했다. '끝난 세계'란 인간에 주어진 운명, 이승에 나의 의지로 온 것이 아니듯이 저승에 가는 것도 나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또 2000년 전 예수의 세계와 지금 세계를 비교할 때 전혀 달라지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의미한다고 김 시인은 설명했다.

그는 "때문에 진짜 시인은 역사를 무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릴케 같은 시인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의 혼란 속에 살면서도 전쟁 얘기, 사회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씨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요즘의 '현실'로 흘러갔다. "요즘 진보.보수를 말하는데 의식의 진보가 편리함을 가져다 줄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인간성이 바뀌지는 않는 것이고, 때문에 시적인 입장에서 보면 지금 한국의 진보주의는 어린아이들 같은 소리"라는 것이다.

화제가 건강으로 넘어가자 김씨는 "(암으로 숨진)아내가 나중에는 음식도 못먹더라. 그 때 차라리 병원치료를 포기하고 독한 약을 쓰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녹음 테이프 끝부분 흥이 오른 김씨는 월간 문예지 '현대시학' 8월호에 실린 자신의 시 '2004년 7월 2일의 備忘(비망)'을 암송하기도 했다.

한편 김 시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과 한국전쟁 전후 교편을 잡았던 마산에서는 '김춘수 문학관'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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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만의 고3생활 보람찼죠”  [04/11/09]
 
“30년 만에 다시 입은 교복이 어색했지만 대학에 합격하고 나니, 가장(家長)과 기업 대표로서 면목이 서는 것 같습니다.”

지난달 27일 인하대 수시모집에 합격해 8일 예비대학 학생증을 받은 서울 삼육고 3학년 김태웅씨(사진·46·동양문고 대표)는 “처음에는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고 3인 아들과 함께 학교에 가는 것이 쑥스러웠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공부한 것이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올 초 자신이 2학년 때 중퇴한 모교인 삼육고교 3학년에 복학한 김씨는 “생활이 어려워 배움을 중단해야 했던 아쉬움이 늘 있었다”며 “단순히 학력을 취득한다는 차원을 넘어 기업을 이끄는 대표가 변화의 시대에 낙오되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서 공부를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어학교재 전문출판사 사장인 그는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회사 일을 챙기느라 하루평균 2∼3시간 정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시험기간에는 일주일씩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이 같은 노력으로 그는 1학기 중간, 기말 고사에서 전 과목 평균 96.03점으로 문과 전체 1등을 차지했다. 2학기 성적도 전교 1, 2위를 다툴 정도로 우수하다.

경남 합천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신문배달, 껌팔이, 구두닦이 등을 하면서 고학을 하다 결국 고 2때 중퇴해야 했다.

김씨는 “비록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경영학을 열심히 공부해 회사를 미국의 랜덤하우스, 프랑스의 갈리마르출판사와 같은 국제규모의 어학전문출판사로 키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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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스승에게 길을 묻다  [04/11/09]
 
아이들 손에는 책 대신 핸드폰이 있습니다"
"책은 자연스럽게 人生문제를 푸는 비밀 열쇠죠"

박맹호(朴孟浩·70) 민음사 대표와 이갑수(李甲洙·45) 궁리 출판사 대표는 각별한 사제지간이다. 이 대표는 박 대표가 창간한 ‘세계의 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박 대표의 권유로 민음사에 입사해 편집장과 사이언스북스 대표를 지내는 등 약 8년간 출판을 배웠다. 인문학 대중화에 기여한 국내 대표적 단행본 출판인으로 꼽히는 박 대표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966년 민음사를 창립했다. 76년 문학계간지 ‘세계의 문학’ 창간과 함께 제정한 ‘오늘의 작가상’을 통해 한수산 박영한 이문열 조성기 등 수상자들을 배출했다. 1985년 대통령표창, 1990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서울대 식물학과를 나온 이 대표는 짧지 않은 방황 끝에 서른이 넘어 ‘천직’인 출판계에 입문했으며, 1998년 창립한 궁리출판 대표로 있다.

▲이갑수=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말 중에서 무게 있는 것들이 침전돼 책으로 남습니다. 평생 책을 만들어오면서 책은 무엇이었습니까?

▲박맹호=나에게 책은 천재들을 만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었습니다. 가령 김수영과 니체를 만나는 것, 베토벤의 생애에 젖어 보는 것, 철학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 이 모두가 책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인생의 교사들을 누구나 손쉽게 만나는 것, 그게 바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우리 사회는 평생교육을 부르짖고 있습니다만, 출판의 교육적 기능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식이나 교양의 전수가 칠판 앞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출판사도 진리를 전파하는 교육기구라 할 수 있겠는데요.

▲박=물론입니다. 학교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지만 책을 통한 배움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우리는 책에서 인생의 다양한 좌절과 성취와 깨달음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자극을 받습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 과외에 치중하는 것을 봅니다만, 사람이 성숙해지는 것은 책을 만났을 때부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대부분 사람들이 학교를 떠나면 공부는 끝이라고 치부합니다. 학창 시절 교과서 읽기가 독서의 전부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책을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박=책에는 어느 순간 전율로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책에 다가가야 할지 그 방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책은 쉽고 재미있는 것부터, 예를 들면 대중소설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책을 읽어라 읽어라 너무 강요하다 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어린이들에게는 만화나 애니메이션같이 쉬운 것부터 시작해 사물의 본질을 터득해 나가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이=고려대 이남호 교수가 쓴 ‘박맹호론’을 보니 “민음사는 우리 사회의 결여된 부분으로 촉수를 지속적으로 뻗어나감으로써 새로운 출판시장을 개척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박=개척했다는 것은 좀 과분한 표현이고요. 출판이란 사회의 모든 현상을 체계화하고 에너지화하는 겁니다. 사물은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므로 항상 새롭게 접근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따라서 출판 기획의 대상이란 거의 무궁무진하다고 하겠습니다.

▲이=출판의 어려운 상황을 정면 돌파하면서 새 국면을 전개해 왔고,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해 기민하게 대응한다는 세간의 평도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한 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박=초창기에는 돈은 안 되고 빚만 쌓이면서 집사람이 쓰러지기도 했지요.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저 나름대로 개안을 했다고 할까, 터득한 게 있습니다. 이왕 돈을 쓰려면 손해를 보더라도 제대로 좀 하자, 가치 있는 일을 하자, 내가 좋아하되 남들은 잘 안 하는 것을 하자고요. 그래서 제일 안 팔리는 시집·문학평론·창작물을 출판하기 시작했고, 독자들이 손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가격도 대폭 내리고, 신인들도 과감히 발굴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획들이 젊은 세대의 욕구와 감각에 맞았고 시대의 흐름에도 부응했던 것이겠지요.

▲이=어느 대담에서 하신 말씀을 보니 책은 폭풍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국 출판의 자생력을 강조한 말씀이겠지요.

▲박=물론 그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처럼 격변의 세기를 산 민족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10년 단위로 전쟁과 혁명을 겪었고, 이데올로기의 급격한 변화도 경험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존해 왔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긴 하지만 꺾이지 않는 갈대처럼, 험난한 순간들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견뎌낸 책들만이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우리 출판도 한글 독자만을 상대로 하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것입니다. 세계를 무대로 시각은 높이고 시야는 넓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박=차근차근 단계적으로 해야 하겠지만 우리 아동도서 시장이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우리 아동출판은 10년 만에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디자인·장정·일러스트 등 모든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입니다.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주빈국으로 초청받을 정도입니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보다 더 우리말을 잘 구사하는 외국인들을 양성해 세계를 향한 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외국인에게도 우리 책의 내용과 감동을 전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이=내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에 관해 이를 근심스럽게 보는 시각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년 행사와 관련해서 우리 출판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박=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출판을 어떻게 세계에 보여줄 것인가입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기회입니다. 출판계가 대승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우리의 역량과 참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세로쓰기를 하는 일본책들과는 달리 우리 책들은 가로쓰기여서 장점이 많습니다. 우리 책의 외형, 작품화된 모양을 보여주는 데 우리 단행본 출판의 주역들이 적극 나서 주기를 바랍니다.

▲이=최근 들어 출판 불황, 특히 교양서 시장이 최악의 상황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박=젊은이들을 보면 그들에게서 깜짝 놀랄 만한 재능을 발견합니다. 각자 타고난 재능이지요. 책은 그릇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손이 가지 않습니다. 예술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인터넷이 할 수 없는 것을 만드는 것, 활자매체가 할 수 있는 예술품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출판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개인이 자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잘 노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책을 읽는 것처럼 잘 노는 것도 없을 텐데요. 저만 하더라도 어릴 적부터 수불석권(手不釋卷)해라, 즉 손에서 잠시도 책을 놓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습니다. 해서 늘 장식으로라도 외출할 때에는 책을 들고 다녔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손에는 책 대신 핸드폰이 있습니다.

▲박=노는 시간은 자기 충전의 시간, 지적으로 재무장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모니터를 통해 보고 읽는 것은 오래 남지 않습니다. 책은 자연스럽게 인생의 문제를 푸는 비밀 열쇠입니다. 당장 한 권의 책이라도 읽어 보면 우리 아이들도 이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의무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래로 가는 왕도(王道)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책과 가까이 지내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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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출판가쟁점] '조폭'들은 출판계를 떠나라 (기획회의, 2004.10.)


'조폭'들은 출판계를 떠나라!

지난 호 이 지면에서 소개했던 {편집자 분투기}를 소개하는 어느 일간지의 기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말문을 열고 있었다. "출판 불황 속에서도 새로 독립 출판사를 차리는 편집자들은 늘어만 간다. 주먹구구식 영업 형태가 사라지고 유통이 현대화되면서 합리적인 사고와 풍부한 경험으로 전문성을 확보한 편집자들의 운신 폭이 커진 것이다." 좋은 책을 소개하기 위해 나름대로 배경을 셜명하려는 기자의 선의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선 '출판 불황 속에서도 새로 독립 출판사를 차리는 편집자'들이 늘어가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사고와 풍부한 경험으로 전문성을 확보한 편집자'들의 운신 폭이 커졌기 때문이 아니다. 정말로 그런 편집자들의 운신 폭이 커졌다면 그들은 '경영의 부담'까지를 안는 모험을 하면서 굳이 '독립'을 할 필요가 없다. 편집의 전문성만으로는 '운신의 폭'이 작기 때문이라고 거꾸로 말하는 것이 옳다. 물론 나는 이런 편집자들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는 편이다. 그것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에디터십을 펼칠 수 없다면, 시장에 맨몸으로 부딪쳐서 그게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차라리 순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주먹구구식 영업 형태가 사라지고 유통이 현대화되기"를 기대하느니 차라리 고목나무에 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이 낫다는 비관적인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요컨대 "유통 개선이 이루어지거나 아예 출판물이 확실히 공공재로 유통될 수 있는 조건에서라면 아마 좋은 편집자는 좋은 출판 경영자일 수도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으며, 이런 조건에서라면 좋은 편집자와 좋은 출판 경영자는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날, 나는 '합리적인 사고와 전문성'을 갖추고 꽤 의미있는 책을 내고 있는 어느 독립 출판인이 어디에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사면초가'의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하는 것을 밤새도록 들었다. 그 핵심에는 조폭을 뺨치는 유통의 횡포가 있었다. 출판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뻔히 아는 그렇고 그런 얘기지만, 병은 소문을 내야 한다니 좀 지겹더라도 되풀이해 보자.

대략의 주뮨량과 주문 추세를 보면 결재일에 수금할 액수를 대략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예측은 무의미한 것이기 십상이다. '장기 재고'도 아니고 '현재 멀쩡하게 잘 나가고 있는' 책을 결재일을 며칠 앞두고는 반품해 버리는 것으로 결재 금액을 깎아 버리고는, 하루이틀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주문을 하는 편법적인 재고 조절이 자행된다는 것이다. 매출에 상응하는 만큼의 정당한 수금을 못하는 것도 억울한 판국에, 출판사가 부담하는 반품 비용은 둘째치고라도 멀쩡한 책이 망가지게 되는 데다가 일시 품절로 인한 잠재적인 손해까지 덤으로 발생하는 기막힌 상황인 것이다. 아예 굶어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는 이런 폭력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판국에 도대체 누가 "주먹구구식 영업 형태가 사라지고 유통이 현대화되었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유포하고 있는가.
수금을 하러 가면, 같은 사무실의 한 쪽에선 어음을 발행하고 다른 한 쪽에선 그 어음을 할인해 주더라는 (최소한 눈으로 뻔히 보이지는 않도록 서로 다른 공간을 이용하는 최소한의 '염치'조차 상실한) 그야말로 전설 같은 '칼만 안 든 강도짓'도 여전하다니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유통이 합리화되었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식상한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까닭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흔해빠진 개탄을 다시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안 팔린 물건은 고스란히 반품을 할 수 있으니 도무지 '판매상의 위험 부담'이라는 것을 하나도 감당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덤으로 어음 할인을 통해 가외 수입까지 짭짤하게 챙기는 한편으로 편법적인 재고 조절을 통해 소매상으로 팔려 나간 만큼도 결재를 해 주지 않는 횡포를 서슴지 않는 유통업자들이 도대체 왜 줄줄이 부도를 내고 나가 떨어지는가이다. 도대체 이런 식으로 벌어들인 돈은 다 어디로 가는가 말이다. 이 문제를 생각하다가 나는 무서운 사실 한 가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유통 합리화'에 대한 논의는, 거칠게 말하자면 출판업의 숙원인 반면에 유통업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식의 구도로 전개되어 왔지만, 이것조차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소·영세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든 '악'의 근원으로 보이는 도매상들조차도 어쩌면 '마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도매상들이 영세 출판사들로부터 이렇게저렇게 '갈취'한 돈이 결국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출판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는 공연한 것이 아니다. 조폭적인 출판 유통의 고질병을 낳는 '주범'은 실속은 없이 덩치만 키운 일부 출판사들이지 그들에게 발목을 잡혀 끌려다니다가 결국 주저 앉아 버리게 될 유통업자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공범' 행위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지만,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언제나 '하수인'들이지 '두목'이 아니라는 조폭 세계의 법칙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조폭적 행태를 중시시키려 한다면, '두목'은 건드리지도 못하면서 '하수인'만 닥달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조폭 두목'에 지나지 않는 자들이 문화 산업을 합네 하며 '출판인'이랍시고 명함을 내밀고 거들먹거리며 입에 발린 소리로 '유통 합리화'를 오히려 앞장서서 떠들고 다니는 꼬락서니를 그대로 두고서는 독립 출판인들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질 뿐이다. 아니 이미 더 이상 좁아질 여지도 없는 고사(枯死) 직전의 상태라고, 이대로는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그저 얼마나 더 버티는가의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그리고 조폭들의 틈바구니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독립 출판인들, 책을 책스럽게 만드는 일 말고는 다른 삶의 보람이 없다는 그 순해빠진 '편집자'들에게, 제발이지 '책의 완성도'에 희망을 걸며 열심히 하노라면 형편이 좀 나아질 수도 있으리라는 가련한 자기 최면에서 한시바삐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기를 권한다. 선택은 둘 중의 하나뿐이다. 서서히 앉아서 고사해갈 것인가 아니면 이 바닥에서 조폭들이 더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을 것인가. 특히나 마음으로 공감은 하면서도 누군가가 나서서 해 주기만을 바라는 이들에게 결코 '무임승차'의 자리는 없으리라는 처연한 진리도 아울러 전한다. 덧붙여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당장의 '밥벌이'를 포기하지 못해 자기 고발의 용기를 망설이는 편집자들이 있다면, 언젠가 당신이 그 자리에서 밀려나 결국 '배운 도둑질'이라고 '창업' 말고는 다른 길이 없을 때를 생각한다면 오늘의 알량한 밥그릇을 위해 내일의 자기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어리석은 짓을 할 참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싶다.

모든 출판사는 실제로 팔린 만큼만 정확히 계산해서 가져 가라. 그렇게 해서는 유지가 안 되는 출판사라면 더이상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민폐 끼치지 말고 사업을 정리하라. 시장 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해서 다른 출판인들이 애써 만든 책의 판매 대금을 중간에서 가로채 가면서까지 용케 살아남아 본들 당신들은 '조폭'이지 더이상 '출판인'이 아니다. 

똥개(ddonggae)  날짜 2004년 11월 09일 0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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