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체험 상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윤대석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죽음은 삶의 그림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 간다는 말이다. 분리할 수 없는 두 세계를 우리는 늘 분리된 세계로 인식한다. 불연속적 세계관이나 통합된 하나의 눈으로 보면 시간과 공간이 일직선상에 놓여 질 수 없다. 죽음과 어깨동무하고 늘 곁에 두고 함께 걸어가지만 호기심이나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죽음은 그렇게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아침에 헤어지는 가족과의 만남이 마지막일 수 있다. 내일을 맞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세계관과는 다르다. 모든 순간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다. 이 순간을 사랑하고 싶다.

죽어본 사람은 없다. 다만 죽음과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혹은 잠시 죽음의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은 많다. 그 사람들은 특별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체험을 임사체험이라고 한다. 죽음의 경계까지 가본 경험, 거의 죽었다고 판단되었지만 살아난 사람들의 경험, 그것을 임사체험이라 부른다. 명칭이야 어떠하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간혹 들어본 적이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체험>은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었다. 기억될 만한 책이다. 철저하게 저널리즘에 입각한 서술도 마음에 들었고 정확한 취재와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전개도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신비주의 관점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확신을 전해주는 책도 아니고 과학의 시선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책도 아니다.

삶에 대한 애정과 집착만큼이나 죽음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갖고 있다. 왜?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단순히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익숙한 세계인 이 세상과의 이별때문일까. 소유한 것들에 대한 욕심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련일까.

죽음 저편으로 갔던 사람들은 누구도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이쪽으로 보내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영원한 수수께끼고, 영원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 (하) P. 401

정확하지 않지만 다치바나의 이 말이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영원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인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간 축적된 연구 성과에 대한 분석과 직접 취재를 통해 접근하고 있는 이 책은 죽음 이후에 대해 설명한다.

임사체험 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연구자들의 사례를 통해 터널체험과 체외이탈 등 공통적인 경험들을 분석하는 것으로 이 책은 죽음의 세계에 접근하기 시작해서 실제 사례를 통해 임사 체험의 최대 쟁점인 ‘뇌내 현상설’과 ‘현실 체험설’에 대해 모두 점검한다.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서술되는 저자의 주장은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주관적이진 않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논거들 속에는 항상 반론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런면에서 다치바나의 방법은 신뢰할 만하다. 어느 쪽에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과학이든 아니든 기준도 관점도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은 마지막 장에서 말하고 있듯이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삶의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을 찾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질 것인가는 물론 각자의 몫이다. 죽음 이후에 대한 논쟁을 하든, 종교를 갖든 버리든 상관없이 결국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로 귀결된다. 죽음을 맞는 태도와 죽음 이후에 대한 자세도 삶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삶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죽음이야말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김열규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와 최준식의 <죽음, 또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이나 죽음 자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보다 생에 대해 환멸을 느끼거나 삶의 목적과 방향이 모호한 나같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림자처럼 늘 우리 몸에 드리워져 있는 죽음을 두려워말자.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내 삶의 주인이 되려는 노력이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결국 죽음도 ‘지금-여기’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착된다. 이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에 충실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말을 되새겨본다.

‘네가 죽음을 무서워하고 있는 동안은 죽음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진짜로 죽음이 다가왔을 때는, 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너와 죽음이 만나는 일은 없다. 죽음에 대해 고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하) P. 404


061225-142(상), 061227-143(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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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2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한 해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인지 댓글도 썼다 지웠다 했답니다.
마음이 심란해지는 책이네요.

sceptic 2006-12-2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이란 늘 그런 느낌이지만 다른 태도와 방법도 필요하지 않은가 싶어요. 저물어 가는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시길...
 
개념어 사전
남경태 지음 / 들녘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개념이 없다. 군대나 사회에서 개념이 없다는 말은 욕이다. 어떤 일의 순서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헤매거나 엉뚱한 짓거리를 일삼는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보통 ‘개념 없는 놈’이라고 욕을 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런 개념은 일반성, 정상성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진짜 개념이 없는 것인가는 따져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일반적인 잣대로 말하자면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에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 논리학에 따르면 개념이란 ‘한 무리의 개개(個個)의 것에서 공통적인 성질을 빼내어 새로 만든 관념(觀念).’이라고 정의한다. 언어의 추상성이 바탕이 된 공통 분모가 개념이다. 그러나 국어 사전의 정의는 좀 다르다.

개념 [槪念]
[명사]
1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2 <사회> 사회 과학 분야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 예를 들어 사람들이 많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때,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된다.
3 <철학>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하여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 언어로 표현되며, 일반적으로 판단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나 판단을 성립시키기도 한다.


‘종횡무진’시리즈로 잘 알려진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은 과연 진짜 ‘개념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에는 상식도 정보도 없다. 다만 저자가 나름대로 공부하고 이해하고 정리한 개념들이 넘쳐난다. ‘사전’이라는 제목을 붙이기 위험할 정도로 ‘주관적’인 시각과 접근 방법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책에 대한 판단과 감상도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장정일의 <공부>를 통해 우리 모두가 각자 이런 ‘개념어 사전’ 한 권씩을 만들 수 있다면 제대로 공부했다고 할 수 있다. 힘들겠지만 나만의 ‘개념어 사전’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만드는 책이다.

국어 사전적 의미로 보면 이 책은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한 지식’과 ‘사회 과학 분야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만 애써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 멋대로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개념어 사전’이 이 책의 원제목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다. 주관과 객관에 대해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 기준은 모호하며 이해 방식과 설명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면 이 책이 주관적이라는 데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세상에 넘쳐나는 사전과 인터넷 정보들을 놔두고 누가 이런 종류의 개념어 사전을 찾아 볼 것인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인문학 용어에 대한 개괄적인 접근과 이해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나처럼 잡다한 지식들로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개념이 없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남경태는 스스로 편향적이며 주관적인 용어 정리라고 말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다 걸러서 본다. 거름장치는 독자들의 몫이다. 둘째, 감수성 위주의 문학작품이나 실용적 독서에 뭔가 염증을 느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인문학은 사람과 관련된 학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와 그 사람들이 걸어온 역사 그리고 그들의 생각인 철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의 독자로 적합하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주관적 용어 정리에 거부감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또 하나의 <개념어 사전>을 기대해 본다. 이런 생산적(?) 논쟁과 모호했던 개념들에 대한 관심과 정의는 사람들의 인식 틀을 확고하게 해 줄 수 있으며 사고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다. 하나의 대상과 현상에 대한 모호했던 관념들을 확인하고 스스로 재정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 바탕 위에서 한 사람의 세계관이 확립되고 수정되며 발전하고 개선된다. 그 개념들이 어떠한 것이든 그래서 우리에겐 끊임없는 정진 자세가 요구된다. 우리가 아니라 나에게만 해당되는 건가?

과학 용어처럼 분명하고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원랙 복합적인 의미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인문학 용어에 대해 저자는 “개념의 의미를 사전적으로 정의하는 대신 그 이미지를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밝히고 있다. 하나의 분명한 지식과 확고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독자들은 가라. 하나의 용어와 개념이 탄생하기까지의 복잡하고 역사적인 배경들과 그 주변적 지식들을 통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오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모호했던 경계와 이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무지를 확인하고 보다 적극적고 능동적인 인문학 공부를 위해 꼭 한 번쯤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어쨌든 사전인데 이렇게 성의 없는 제본과 표지는 들녘이 반성해야겠다. 시집도 아니고 얇은 겉표지는 두 번 이상 뒤적이면 본책과 분리되고 찢어지거나 더러워져 검은 속 표지의 제목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된다.


061216-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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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으로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리뷰를 읽어보니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짱꿀라 2006-12-1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 읽어보니 금방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놓고 읽지를 못해서.....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마늘빵 2006-12-1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전문가들 평이 별로더라구요. 너무 주관적이고 맞지 않는 해석이 많다구. 저도 살까 하다가 말았어요. 출판사서 너무 띄우는거 같던데.

sceptic 2006-12-17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santaclausly님 즐거운 책읽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프락사스님 개인적으로 전 전문가들을 믿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전문가들이 이 책을 제대로 평가할 리 없다고 봅니다. 출판사도 먹고 살아야죠. 그렇다고 제가 들녘에서 받아먹은건 없습니다.

비로그인 2006-12-18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을때 전문가들의 평을 들여다보게 되겠죠.
때로는 자기와 생각이 비슷할 수도 있고 아님 다를 수도 있고..
중요한건 책을 읽고 난 후 본인의 느낌일거에요.
님이 쓰신 리뷰는 님 만의 분위기가 있어요.

sceptic 2006-12-1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독서라는 행위가 1차적으로 극히 주관적이라고 생각해서 2차적으로 객관적, 사회적 의미를 찾거나 효용을 따지거나 하니까요. 지멋대로 책읽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marine 2007-01-0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 말이 옳은지 제가 직접 읽어 보고 싶네요 ^^
종횡무진 시리즈를 재밌게 읽어서 저자에게 호감이 갑니다

sceptic 2007-01-0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만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평갑니다...괜찮던데요...^^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헤르만 헤세의 이름을 보자 책갈피에 꽂아둔 오래된 사진처럼 아련했다. 누구나 한 번 쯤 그랬겠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지독한 열병을 앓았던 시절에 나는 헤세와 마주했다. 특히 <수레바퀴 밑에서>와 <知와 사랑>에 대한 기억은 사춘기 시절의 다른 이름이다. 골드문트와 나르치스의 우정과 방황은 며칠 동안 잠 못 이루는 밤을 만들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순수했던 시절의 흑백 사진처럼 선명하다.

1877년에 태어나 1962년 죽은 헤르만 헤세는 사후에 그의 문학적 평가가 어떠하든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작가임에 틀림없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은 책과 관련된 글들을 모아놓은 수상집이다. 잡지와 신문에 발표됐든 글이나 전집류에 포함된 글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 책에 처음 소개된 글들도 있다. 책을 주제로 독서와 문학 전반에 관한 단상들이 솔직하고 편안하게 전개된다. 짧은 글들을 모아 놓았지만 책의 내용과 흐름은 ‘독서’라는 맥락으로 연결된다.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넘쳐나지만 주로 100년쯤 전에 쓰여진 헤세의 글들은 시대와 상관없이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왜 책을 읽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한 문장을 읽고 한참 생각했다. 나는 독서라는 행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나름의 기준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 반성은 때때로 필요하다. 인쇄술과 대량 출판이 이루어지면서 지식의 대중화의 선봉에 섰던 책을 헤세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스스로 만든 세계 문학 전집의 목록과 작품에 대한 간단한 인상 비평 등은 지금 우리 시대의 책읽기에 대한 반성의 잣대가 된다. 지금 그 목록이 유효하다는 말이 아니라 책의 효용을 따지기 이전에 독서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궁극적인 삶에 대한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취미삼아 읽는 독서에 대해 헤세는 “불량독자들이 시나 소설에 끼치는 부당함은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잘못된 독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부당하다. 무가치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자신에게 하등 중요하지도 않고 그린 금방 잊어버릴 게 뻔한 일에 시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며, 일절 도움도 안 되고 소화해내지도 못할 온갖 글들로 뇌를 혹사하는 짓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문학을 위주로 한 독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른 면에서 아쉬운 점도 많다.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절대로 소설을 읽지 않는 독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헤세와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만 일반적인 문학 독자들을 위한 충고와 성찰을 위해서 이 책은 시원한 냉수와 같다. 문장의 곳곳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비판과 충고들은 지적 우월감과는 다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철지난 노래처럼 들리는 부분도 많고 지금 상황에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들도 많다. 하지만 독서에 대한 기본 자세와 독자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종이로 된 책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는 말들과 문학의 종언을 고하는 조사들이 난무하는 시대지만 문학이든 아니든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 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독서에 무슨 기술이 있겠는가? 책을 밥벌이의 수단이나 실용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유혹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없다. 다만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독서의 태도와 방법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뿐이다. 헤세는 이 책에서 독서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넘어서는 단상들을 제공한다. 각자 독서의 방법과 자세에 따라 한 마디쯤 새겨둘 말이 있다면 이 책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작가의 짧은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팔아먹기 위한 편집 능력과 상술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허접하지 않다. 독서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 쯤 점검이 필요한 분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바닥에 아무리 멋진 카펫이 깔려 있고 호화로운 벽지와 명화가 온 벽을 뒤덮고 있다 한들, 책이 없다면 가난한 집이다. 또한 책을 알고 소유하고 아끼는 사람만이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다. - P. 183


06121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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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11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을 보셨군요. 저도 이 책을 읽었답니다. 많은 정보를 얻게 한 책이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한주 되시기를......

드팀전 2006-12-11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주에도 수 십에서 수백권이 나오는 책들 중에 무가치한 책들-저자에게는 가치가 있을지몰라도-이 다수지요. 무조건 책읽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개 좋은 책을 보지도, 많은 시간을 독서에 쓰지도 않는 모습을 봅니다.가끔 직장에서 동료들이 들고 다니는 책을 보면 ^^ ... 쉽게 맛을 내는 조미료에 익숙한 사람들처럼 전부 말랑 말랑한 책들만 봅니다.무언가 고민거리를 던지는 책들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에 다들 눈을 돌려버리는 듯 합니다.그리고 가만 있으면 다행인데 가끔 제가 이상한 책을 한 권 들고 다니면 '이런거 왜봐..취향 독특하네.그런건 대학교때나 한번 보는거 아니야?'라는 식입니다.젊은 세대일 수록 더 하더군요....책을 통한 의식의 성장이나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안타깝지만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요.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sceptic 2006-12-1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taclausly

santaclausly님도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드팀전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독서 취향을 쉽게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독서의 효용에 대한 이해와 독서의 목적도 다르니까요. 안타깝긴 하지만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을 넓혀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식의 성장이나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독서를 위해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marine 2007-01-0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소 지루한 원론적인 책이 아닐까 싶었는데 리뷰를 보니 읽고 싶어집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sceptic 2007-01-0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고 간단한 에세입니다...^^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는 1992년에 유고로 출간되었다. 빛바랜 누런 책표지는 책꽂이 한 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세월을 감내하고 있다. 그 시절이 생각나면 가끔 꺼내 뒤적여 보는 책이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쓴 김현의 일기 형식의 글을 책으로 출간했다. 책날개에 어딘가를 응시하는 선생의 표정이 여유롭다. 48세의 나이로 작고한 선생의 글을 좋아했다.

장정일의 <공부>는 그가 펴냈던 <독서일기> 7권에 해당한다. <공부>라는 제목과 주제별로 묶인 제목들은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가당찮은 제목은 씁쓸하기만 하다. 인문학이 고사 위기라는 이야기가 심각하게 대두되었고, 인문학 교수들이 위기 선언을 할만큼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풍토가 척박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책 한권으로 부활이 가능한가? 그렇다 치더라도 부활 프로젝트와 거리가 멀고 그저 개인의 내면적 고백과 ‘공부’ 과정일 뿐이다. 상업적인 냄새가 나는 수식어와 선정적인 제목에 알러지 반응이 있는 나로서는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냥 <독서일기 7>이면 어떤가? 물론 이전의 책과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면 그 특성을 책의 내용과 편집에서 살리면 그뿐이다.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심히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장정일에 대한 개인적인 호의와는 무관하게 책 한 권이 주는 느낌은 각양각색이겠지만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기분 나쁘다.

한겨레의 고명섭 기자가 쓴 <지식의 발견>이 이 책과 유사하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대표적인 저작을 중심으로 작가들의 상이한 관점을 비교하고 하나의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작년에 읽은 책 중에서 기억에 남는 좋은 책이다. 이 책도 유사한방식과 관점을 지니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데 비해 이 책은 보다 주관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보다 친근하며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설득력은 떨어지고 핵심이 없이 책 내용의 요약과 설명으로 그치는 경우도 있다.

책 한 권 전체가 유기적인 관계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고 그간의 독서이력에 대한 정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장정일의 내밀한 감성도 느낄 수 있고 역사와 사회에 대한 견해도 엿볼 수 있으며 정치와 세상에 대한 의견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다. 책의 본문에서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는 하이데거의 존재자를 설명하지만 실천으로 육화되지 못하고 인식에 대한 방편으로 그친다. 예를 들어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노당을 찍지 못했다는 고백은 실소를 자아낸다.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경험과 고백들은 그가 인식한 세상과 책의 내용과 뒤섞이지 못하고 행간에서 불협화음을 이룬다. 나만의 느낌일까?

이 책의 목적이 인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에 호소하는 것이라면 반쯤 성공했고, 반쯤 실패한 것으로 본다. 얼 쇼리스의 책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최근 출간된 그의 책은 미국에서 노숙인에게 삶의 희망과 메시지를 전하고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을 전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실천가의 책이기 때문에 관심이 간다. 인문학 자체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우리들 삶과 연결된 생생한 경험담이나 실천적 모습들이 더 필요하다. 그냥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공허한 울림으로 그치고 만다.

역사와 철학을 통해 세상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대학에서 보다 철저하게 인문학적 자연과학적 교양을 섭렵할 수 있도록 하고 고교 과정에서도 테크닉 위주의 논술이 아니라 비판적인 안목과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만 수행할 수 있는 논술 문항의 개발도 필요하다. 공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과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한 목적과 의도로 책 제목을 정했으리라는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감동적인 책을 만났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조금 아쉽다.

<나비와 전사>에서 고미숙이 절규했던 것처럼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방법과 과정들을 소개하는 책과 프로그램들이 보다 많이 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제도권 교육에서부터 평생 교육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공부하기엔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거나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목마르게 기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공부는 학생이나 하는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할 수 없지만 ‘철학아카데미’나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다양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문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어쨌든 장정일의 <공부>를 읽고 다같이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중학교 중퇴라는 객관적 학력과 무관하게 내공을 연마하며 공부하는 그의 태도에는 늘 부러움과 응원의 감정이 깔려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만난 그가 통렬하게 비판하는 시인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김수영의 시를 인용하며 글을 쓰지 말고 시와 시인에 대한 독설을 멈추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

생각나는 대로 떠드는 이런 종류의 리뷰도 장정일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함께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는 독자의 애정 어린 투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장정일도 나도 열심히 공부하는 일만 남았다. 여전히,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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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2006-12-0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문> 장정일이 2002년 대선 때 이회창을 찍었다는 말이 '공부' 몇 페이지에 나오나요???

           아무리 봐도 없던데...?

           님의 오독이거나 아님 상상?

 

 


sceptic 2006-12-0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한글 미해득? 잘 찾아보세요. 안가르쳐 드립니다. 분명히 나오니까 다시 읽어보세요. 별 쓰잘데 없는 내용을 가지고...오독이나 상상? 우습네요. 논쟁거리가 될만한 얘기를 하세요...

다시 읽고 못 찾았다면 정중하게 요구하시죠. 그러면 정확한 페이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햄릿 2006-12-0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하지 않은 말을 지어내서 한다면 충분히 논쟁거리가 되죠.
제가 아무리 정중하게 부탁해도 님은 페이지를 적시하지 못할 겁니다.
장정일을 한권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장정일이 이모씨를 찍었으리란 상상은 하지 못할 텐데...

sceptic 2006-12-0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중하게 말씀하시니 저도 예의를 갖춰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햄릿님은 <공부>를 읽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페이지를 적시하지 못할거라는 확신을 하시는지...책이 집에 있습니다. 오늘을 넘기지 않고 정확한 페이지와 장정일의 글을 그대로 올려 놓겠습니다. 장정일의 성향을 아는지라 저도 놀랐습니다. 장정일을 제대로 한 권이라도 읽은사람이라면 누구도 좀 놀라겠지만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은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햄릿님이 기분나쁜신게

1. 책에 없는 말을 제가 올려놨다고 생각하시는건지,
2. 장정일이 이회창을 찍은건지,
3. 책에 대한 부정적 리뷰인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소모적인 논쟁은 이쯤에서 접어주시죠.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sceptic 2006-12-05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 191페이지, 197페이지, 260페이지 참조.

2002년 대선에서 장정일이 이회창을 찍었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이에 햄릿님(장정일님으로 추정되나 어떤 분인지 알수 없어 궁금함)께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리뷰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1. '부서진 손잡이'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개혁과 민주를 미끼로, 개혁과 민주를 열망하는 대중의 표를 도둑질해 가는, 제도 정당이다! 부르주아 정당이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표를 찍는 나의 어리석은 투표양식이다! - 본문 191페이지

2. 이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앞으론 반드시 고려하겠다. - 197페이지

3. 탄핵 정국 속에서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필자는 민주노동당을 찍지 못했다. - 260페이지

1번 내용으로 미루어 2002 대선에서 이회창이나 노무현을 찍었을 거라는 암시를 제가 '노무현'이 아닌 '이회창'으로 표현한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러나 3번 내용에서 보듯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민노당을 찍지 못했다는 장정일의 글을 보고 자연스럽게 '부르주아 정당'인 한나라당과 연결시킨 것은 저의 오독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제 변명입니다.

직접 표현하지 않은 부분을 리뷰에 올린 것은 저자에게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풋내기 시인이었던 시절부터 애정을 가지고 읽어왔던 장정일의 글들과 내가 미루어 짐작했던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실망감의 표현이었습니다. 민노당스러운(?) 작가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불평으로 쓴 글입니다. 민노당이 아닌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은 당명만 다를 뿐이라는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장정일씨.

햄릿 2006-12-05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 우리당도 부르주아 당이죠...
장정일의 글을 좋아하는 애독자일 뿐입니다.^^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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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 老子 第25章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때때로 삶이 답답하고 그 해답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무엇이 목표인지도 모른채 달리다가 어느날 문득 아득해지는 그 느낌에 대한 해결 방법은 없다. 먼저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그것이 삶이라고. 아무도 누구도 그 해답을 줄 수 없기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그게 삶이다라는 무책임한 말을 던져 놓고 떠나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많은 동양 고전들이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인간이 관계맺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들을 전해 들을 수 있는 귀는 자신에게 있다. 켜켜이 먼지 앉은 수천년 전 성현의 말씀을 육화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방식과 자세에 따라 달라진다.

이십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내신 신영복선생님의 글은 어쩌면 그것이 올가미가 된다. 개인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읽게 된다. 그것은 옥살이 한 사람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시간들에 대한 숙연함이다.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에 걸쳐 방대한 동양고전을 500페이지 책 한권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기 시작했다. 서론 부분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화두는 '關係論'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하여 사람과 사물, 자연,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가 이 책의 내용을 풀어가는 실마리가 된다.

周公曰 鳴呼 君子 所其無逸 군자는 무일(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서경에서 단 한 편을 고른것이 바로 이 周書의 '無逸'편이다. 깨어있는 자는 결코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알을 깨고 나오는 자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날개를 얻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는 각 고전 전체의 내용을 전부 읽고 해석을 달고 뜻을 풀이하는 주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관계론'이라는 화두를 통해 각 고전들이 전하고 있는 의미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신영복선생님의 말대로 각 고전이 태어난 시대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배경과 사상사를 무시한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 있게 한다는 의미로 읽히는 無逸을 내 생활의 반성으로 읽어도 좋겠지만.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평소 개인의 변화와 노력으로 이 사회가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의 이 말에 무릎을 치며 공감한 것도 바로 사회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관점의 탁월함때문이다. 무심코 던지는 이 질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으며 지금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이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내 안의 변화로부터 오다는 믿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의 변화를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은 좀처럼 풀기 어렵다. 알고 있더라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論語에서 말하고 있는것처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知는 知人이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과 인간에 대한 앎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말은 바로 공자의 말은 인간 관계에 대한 변하지 않는 진리로 여겨진다. 평소 나도 즐겨사용하는 말이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얼마나 당연한 말인가.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기업을 하는 사람이나 평소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지켜지기만 한다면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실천 방법이다. 하지만 쉬울수록 더 지키기 어려운 것이야 말해 무엇하랴마는.

목표의 올바름을 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盡善盡美라 합니다. - 周易

觀於海者難爲水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한다 - 孟子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들에 공감하고 감탄하며 부끄러워하다가 끄덕이다가 한숨 쉬다가를 반복하는 일은 드물다. 그것이 만화책이나 소설책이 아닐 경우는 더욱 그렇다. 신년벽두에 참 좋은 책을 만나 새해를 즐겁게 시작한다. 내가 서 있는 이 사회와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도 내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인식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많은 방법들과 만났다. 또 생에 대한 또다른 시선과 사유방식을 경험하며 이 책을 놓는다. 조금 더 깊이있는 독서와 사유를 통해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해야 겠다. 노자의 좋은 구절 하나를 마지막으로 떠올린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다 - 老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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