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활동이 자선 사업이 아닌 한, 이른바 수익성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기획 단계에서부터 과연 주요 독자층을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과연 몇 권이나 팔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초판 1쇄의 부수를 정하는 일에서부터 그런 고민이 무척 중요하다.
주식 투자에서도, 매수를 고려하고 있는 특정 종목의 가격이 과연 얼마나 상승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손절매 가격대, 매도 가격대, 목표 가격 같은 것을 어느 정도는 미리 설정해 놓고 시작해야 그나마 손실을 줄이고 수익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투자의 귀재라는 사람들도 특정 종목이나 종합 지수 등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니 말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출판 역시 마찬가지여서, 과연 지금 출간하고자 하는 책이 얼마나 팔릴 것인지, 그것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감히 어느 누가 이 책을 읽지 않으랴'는 태도로 책을 출간하는 경우야 없겠지만, 어느 정도 매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출간한 책의 매출이 주식 용어를 빌려서, 그야말로 반토막이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와는 반대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홍보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은 책이 이른바 대박을 안겨주거나 꾸준한 효자 '상품'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주식 투자에 빗대어 말한다면, 이른바 재료와 수급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특정 종목의 가격 상승을 이끌만한 호재가 아무리 줄지어 뜬다고 해도, 그 종목을 누군가가 매수하지 않으면 상승을 기대하기 힘들다. 더 나아가, 특정 종목 그러니까 특정 상장 기업의 영업 실적과 성장 잠재력이 아무리 좋아도, 투자자들로부터 외면 받는다면 주가는 늘 그 자리가 그 자리인 꼴이 되기 마련이다. 물론 기업의 이른바 내재 가치가 우량하면 그에 따라 투자자들이 몰리고 주가도 상승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주식 시장은 어디까지나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장 기업 대부분은 주식 담당자를 두고 있으며, 주가 관리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사실, 내재 가치 또는 실적에 합당한 주가를 유지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도서 '시장'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여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 정도 대접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책이 정작 '시장'에서는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기획 단계부터 모종의 판단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책의 내재 가치에 몰두한 나머지, 수급 그러니까 이 책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투자자, 아니 독자들의 관심과 주의를 끌 수 있을 것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경우인지도 모른다.
물론 주식 투자에도 장기 투자자와 단기 급등에 따른 이익 실현을 노리는 투자자가 있듯이, 도서 시장 또는 그냥 책에도 그 내재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확신에 기초하여 중장기적인 꾸준한 상승을 꾀할 경우가 있는가 하면, 내재 가치야 어떻든지 시류를 잘 타서 짧은 시간 안에 '쇼부'를 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를 반드시 나쁘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초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 이른바 단타족들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지만, 어차피 돈 벌어보겠다고 하는 주식 투자인 이상 개인의 투자 패턴에 대해서 무어라 왈가왈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주식 시장과 도서 시장의 갈림길이 시작된다 하겠다. 요컨대, 출판은 '어차피 돈 벌어보겠다고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어차피 돈 벌어보겠다고' 한다면 출판은 그리 매력적인 돈벌이 수단이 되지 못한다. 주식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는 투자자를 만나기가 드문 것처럼, 도시 시장에서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책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주식 투자에서야 손절매 원칙을 지키는 등,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시행하면 손실액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도 있다지만, 일단 인쇄되어 독자들의 눈길과 손길을 기다리는 책은 사정이 다르다.
사실 우리 나라 주식 시장이 기업의 내재 가치나 실적과는 따로 가는 경우가 많은 까닭들 중의 하나를, 이른바 기업의 투명성 또는 우리 나라 경제 전반의 투명성의 결여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기업 회계 자료의 투명성을 비롯해서, 정부 당국의 경제 정책 운용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결여되어 있으니, 투자자들은 내재 가치나 실적보다는 당장의 수급 상황과 루머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도서 시장에 견준다면, 결국 '객관적이고 투명하며, 신뢰할 수 있는' 서평 내지는 도서 정보의 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더 나아간다면, 그런 서평 내지는 도서 정보가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매체 또는 수단 자체가 부족하다는 말도 할 수 있다. 일간지의 도서 섹션이나 잡지의 서평 코너 이외에, 비교적 전문적인 서평을 접할 수 있는 매체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각 출판사들이 자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비교적 자세한 도서 소개를 하고 있지만(몇몇 출판사들은 그런 측면에서 무척 효과적으로 홈페이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판사의 자체 홍보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서평, 소개 및 서평과 소개를 전하는 매체의 부족이 결국 투자자(독자)로 하여금, '당장의 수급 상황(베스트셀러 목록)과 루머'에 의지하여 종목(도서)을 선택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출처-http://www.kungr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