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안 열릴 것 같았던 '경기도 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우수콘텐츠 등 경기도에서 공모한 곳에 도전한 것이 이번까지 세 번째. 

출판사에서 도전해보자고 했을 때 그 무시무시한 경쟁률과 쟁쟁한 경쟁자들 때문에 반신반의했어요. 

제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선정되었다는 발표를 듣고 저도 모르게 꺅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것도 도서관에서. 



전체 171개 출판사 경쟁에서 제가 도전한 인문고전은 63개였습니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네요. 



이번 경험을 통해서 작가로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게 가장 큰 소득이죠. 

사실은 상금이 더.....쉿!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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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1-23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게 있었구나.
잘된 일이다. 축하한다.
상금이 짱짱한가 보구나.
서울에 있으면 한 턱 쏘라고 했을 텐데...ㅠ

승주나무 2017-11-24 11:16   좋아요 0 | URL
누나~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제주에 사니까 참 만나기 어렵네요.
고마워요^^

순오기 2017-11-24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아~오랜만의 댓글에 놀러왔는데, 이런 경사가 있군요. 정말 축하합니다!!♥

승주나무 2017-11-24 11:17   좋아요 0 | URL
앗~! 순오기님^^ 고맙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쓸게요~

비연 2017-11-24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요!

승주나무 2017-11-24 11:17   좋아요 1 | URL
와~! 고맙습니다. 비연 님^^ 잘 지내시죠?

비연 2017-11-25 14:28   좋아요 0 | URL
넘 반가와요^^ 전 뭐 그럭저럭요 ㅎㅎ

thkang1001 2022-07-2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경기도 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계속 발전하는 승주나무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알라딘 승주나무. 참 가슴 떨리는 닉이었는데 그 가슴은 어디로 간 것인지. 

한 4년 정도 공부방을 하다가 전업작가로 돌아왔어요. 

4년 동안 책은 읽었지만 산소호흡기처럼 초단위 분단위로 읽었어요. 

살려고 읽었기에 쓰지는 못했고요. 

새 책을 쓰고 염치없이 고향집에 들어와 방소지를 하고 있습니다. 


책만 쓰는 전업작가는 아니고요. 

여기 저기 영업 다니면서 강의 따고 그 강의로 생계 유지하고, 

나머지는 책 쓰고 있습니다. 

다행히 출판사 컨택이 돼서 4년만에 두 번째 책을 안게 되었고요. 


앞으로 계간지처럼 낼지도 몰라요. 

책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반가워요~~


앞으로는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글 남길게요. 

알라딘을 어떻게 내 생활 안으로 담을지 4년동안 고민을 못 풀었었어요. 


제주에 온지는 만2년쯤 되었어요. 언제나 그리웠던 고향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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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1-23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안 변했네.
누가 널 애아빠라고 하겠니?ㅋㅋ
잘 지내는 것 같아 보기 좋다.
서울 올라 올 일 없나? 보구싶네.ㅎ

승주나무 2017-11-24 11:18   좋아요 0 | URL
하나도 안 변했나요? 아이들 사이에서 둘러싸여서 그런 것도 같고,
이런 저런 고민들에 둘러싸여서 그런 것도 같아요.
시간이 나를 침입할 틈이 있을까요? ㅎㅎ

순오기 2017-11-24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책은 판형이 작아서 아쉬웠는데... 이 책은 일반 책 사이즈겠지요?^^
두 아드님도 많이 컷죠?? 승주나무님 늘 웃는 얼굴 보여주셨는데...고향바닷가에서 좀 굳으셨네요.ㅋㅋ

승주나무 2017-11-24 11:19   좋아요 0 | URL
네 이번에는 일반 사이즈입니다. 인문학을 내용적으로 접근해서 자녀와의 소통과 부모의 자기 공부에 도움이 되고자 했습니다. 바람이 저를 굳게 했어요^^
 
서유기 1 - 돌 원숭이 손오공 문지 푸른 문학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김종민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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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자랑스러운 책 읽기는 은하영웅전설 완독과 서유기 완독이다. 

은하영웅전설은 스무 살 때 절친의 매우 강력한 권유가 있은 지 20년만에 읽은 책이었고, 

영화가 개봉된다니 반갑다. 양웬리의 캐릭터 이외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은 책이다. 

일본 만화책 <쿠니미츠의 政>처럼 보여주려는 주제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편협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유기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즐독하는 한 젊은 작가가 극력 추천해서 읽게 되었다. 

내 가벼운 귀는 독서에 도움이 된다. 

서유기 10권은 내 인생책이 되었다. 

수백년 동안 집단창작했던 오래된 이야기를 괴테 같은 괴력의 작가 오승은이 독창적으로 재창조했고, 

삼장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여러 텍스트와의 전쟁에서 정본으로 살아남았다는 점과, 

예전에 읽으려고 했던 이탁오가 깊이 관여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탁오의 책을 자꾸 미뤄뒀는데 <서유기>를 읽고 나서 읽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분서>는 1권만 사뒀는데 이제 2권도 구해서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그렇게도 비난했던 작품과 극작 기법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이보다 통쾌하게 걷어찬 오승은 서유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고향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손오공을 위시한 진보적이고 건강한 민중이 툭하면 여래부처와 관세음보살을 소환해 문제를 해결하고 멈출 수 없는 독설과 조롱은 도무지 성역이 없다. 불교철학과 도교철학의 본의가 건강한 민중성과 환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작품 중 서유기보다 강력한 것은 못 보았다. 그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정치와 역사를 끌고 왔던 독서인층과 기득권, 권력자들을 삼장-국왕-관리-각종 기득권층 덩어리로 묶어 '위대한 서천행'에서 나름대로의 구실을 인정하고 있기에 서유기는 당대의 모든 계급과 주체를 망라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조리 성장한다. 


서유기가 다른 성장소설에 비해 매우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는 부분은 '모든 것의 성장'을 그려낸다는 점이다. "도가 한 자 커지면 마는 열 자 커진다"는 서유기 퀘스트의 작동 원리는 요괴도 성장하고 문제도 성장한다는 점을 아주 잘 표현했다. 우리가 읽은 대부분의 성장소설은 주인공만 성장하거나 일부분만 성장하는 데 비해, 서유기는 악도 성장한다. 점점 고도의 스테이지로 옮기며 투쟁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전자오락 게임을 연상시킨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서유기의 플롯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의 여러 작품들은 서유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지적인 토양이 서유기를 철저히 배격하는 방식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서유기가 나의 인생독서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제까지의 독서흐름에서 잡히지 않았던 매우 넓고 역동적인 공간에 나는 드디어 로그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유기는 그 공간의 인증키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일단 서유기와 인사는 했으니 앞으로 죽을 때까지 지지고 볶고 우려먹고 해야겠다. 



"젊으신 도련님이라 세상일에 철이 덜 드셨군! 도둑질하는 놈이 밝은 대낮에 손대는 것을 어디서 보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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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 입문 컨티뉴엄 리더스 가이드
J. 토마스 쿡 지음, 김익현 옮김 / 서광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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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읽기에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한 것은 신의 한 수! 질문을 제시하고 글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신의 두 수! 에티카가 더 선명하게 이해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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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7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17-02-27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책에 아무도 댓글을 안 달아서요~~ 종종 출몰할게요^^

여울 2017-03-0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좋아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ㅎㅎ 자주 뵜으면 싶어요
 

그리스신화를 보면 사람은 원래 남녀가 자웅동체였다고 한다. 사람이 강력한 힘으로 신에게 도전하자 제우스가 진노해 벼락으로 내리치니 사람은 둘로 갈라져 버렸다. 남과 여로 나눠져서 반쪽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이날 이후로 사람은 자신의 나머지 반쪽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헤매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미완성이라는 사고가 깔려 있다. 동양의 고대에도 태극(太極)에서 음양이 나뉘었다고 말한다. 동양 고대인이 생각한 사람의 운명은 서양 사람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나머지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반쪽이 만나는 식이다. "0은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만물을 낳는다"노자의 <도덕경>의 말처럼 음과 양이 결합해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방식이다. 이 두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짝이 없을 때는 짝을 찾고(서양), 짝을 찾고 나면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 (동양) 


나는 이 두 이야기가 결합된 방식이 인생을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자신의 나머지를 찾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의 연속이다. 오랜 방황을 통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두 아이를 낳은 평범한 이야기에서도 동서양 고대의 사고가 녹아 있다. 문제는 이야기가 무한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아이의 세계 속에서 부모의 반쪽을 찾고, 아이 역시 자신의 반쪽을 부모에게서 찾는 작업을 계속 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는 자기 속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낳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자로 표현해 보자. 아이는 '人'이고 부모는 '亻'이다 '亻'은 사람인 변(邊)이다. 부모는 아이 옆에서 아이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부모가 도우미 역할을 온전히 하고,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자기를 발견하는 일을 잘 해내면 드디어 '化'(화)라는 글자가 된다. 化는 왼쪽과 오른쪽에 사람이 대칭이 되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사람의 죽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바뀌다'는 뜻을 나타낸다. 부모와 아이가 온전히 결합되고 나면 부모는 이전의 부모가 아니고, 아이 역시 이전의 아이가 아니다. 


化가 되기 위해서 부모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좋은 변화만 열거해 본다. 부모(亻)는 아이에게 애정과 '타인'과의 관계를 가르쳐 인(仁)을 만들 수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놓이려면 자신의 반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상대방을 초대해야 한다. 자기중시으로 꽉 차 있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공감할 능력을 가르쳐주려면 亻의 역할이 필요하다. 亻는 아이의 부모이지만, 아이에게는 최초의 '타인'이다. '他'(타)를 가르쳐주는 것도 역시 부모다. 


동양사람이 생각하기에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고해(苦海)라고 부르기도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움직이는 순간 길흉화복과 삶의 번거로움이 생긴다. 아이는 부모에 비해서 훨씬 활동적이고 많이 움직이며, 감정 역시 역동적이기에 부모보다 훨씬 많이 지치고 상처를 받는다. 부모는 아이가 기대 쉴 수 있는 나무가 되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休'(쉴 휴)를 준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집착하면 '쉼'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어쩌면 '쉼'일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품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태어나서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사회활동을 하고, 심지어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 사회가 시작된다. 부모는 아이의 반(半) 사회이다. 아이가 자신의 '짝'을 찾을 수 있도록 부모는 '伴'(짝 반)이 되어 주어야 한다. 반(半)은 단순한 절반을 의미하지만, '伴'은 '좋은 반쪽'을 의미한다. 부모라고 당장 아이의 좋은 반쪽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의 좋은 반쪽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일 뿐이다.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몸을 구부려 있다가 태어나는 순간 몸을 펼친다. 하지만 감정은 계속 구부린 상태가 된다. 부모와 대화하거나 놀거나 생활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伸'(펼 신)의 상태로 된다. 자벌레는 멀리 가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구부린다. 몸을 펼친다는 것은 고통이 따를 뿐만 아니라 두려운 일이다. 조금씩 연습하다가 펼쳐낼 때까지는 수만번의 연습과 시행착오를 한다. 부모는 아이가 틀리거나 실수하는 순간을 함께 하며 온전히 펼칠 수 있도록 지켜주고 도와줘야 한다. 


부모의 품에 있던 아이가 품 밖으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에 앉게 된다. 꾀꼬리가 꾀꼴 꾀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까닭은 자신이 머물 자리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자신의 둥지를 찾기 위해 꾀꼬리는 수만번의 날갯짓과 헤아릴 수 없는 위험을 극복하고 일어서야 한다. 부모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으려면 또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부모(亻)가 아이를 서게(立) 만들면 아이는 자신의 '位'(자리 위)에 머물 수 있다. 자신의 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한자의 세계는 너무 많고 쓸 자리는 부족하니 이쯤에서 줄일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부모가  '亻'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지만  '亻'이란 사실 '人'을 옆으로 밀고 모양을 구부린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서 제 자리를 잡은 것이 '亻'이다. 이렇게 제 자리를 찾는 부모는 극히 드물다. '亻'을 고집하다가 '人'을 잊어버린 부모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人'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부모도 있다. 내가 아이와 책 놀이를 하다가 부모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이기도 하다. 나도 아이 두 명을 키우고 있는 부모이기에 매일 헷갈리는 일이다. 헷갈리고 실수하고 그르치면서 후회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이것 역시 부모가 아이를 완성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사실은 며칠 전에야 깨달았다. 한자에는 왼쪽을 나타내는 左도 '돕다'는 의미이며, 오른쪽을 나타내는 右도 돕다는 의미이다. 부모는 아이의 왼쪽에서 도와주기에 佐(좌)하는 사람이고, 오른쪽에서 도와주기에 佑(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잠시 물러나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기에 '何'(어찌 하)하는 사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소개한 글자 중에서 '何'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자의 말을 덧붙인다. 


"어쩌면 좋지(如之何) 어쩌면 좋지(如之何) 하고 발을 동동 구르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이 사람을 도저히 어찌 해야 할지 끝내 알지 못하겠다."(논어 위령공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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