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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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야 했다. 삶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 모든 것에. 그런데 무엇을 위해? 그러니까, 더는 척하지 않기 위해,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잊기 위해. 마침내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두 눈의 물기는 말라 있었다. p.159

 

르 클레지오의 책 중 첫번째 읽은 이 책. 아름다운 문장들에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르 클레지오가 이런 작가였다니.. 나는 이제서야 안 것이다. 가정 불화, 책임감없는 아버지. 그렇게 특이하달것 없는 유년시절의 고통을 안겨다주는 다소(?)보편적인 설정이다. 물론 다른 요인들도 에텔이 어른으로 자라나는 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내가 몰입되는 건 나의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되면 척하지 않고,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가..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오히려 더 척해야 하고, 더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중요한 사람이 되는 건.. 글쎄 내 주위의 몇 사람에게만 중요한 사람이면 되는 것 같다. 강해지고 싶은가? 이건 맞는 것 같다. 감정적으로 강해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텔의 말처럼 모든 것을 쉽게 잊고 새출발할 수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르 클레지오 작품의 총망라라고 하는 이 작품을 작가는 한국에서 썼다고 한다. 소설의 첫부분에 허기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그 허기의 경험이 우리네 부모들이 경험했을 법한 것 같아 뼈속 하나하나 느껴가며 읽었다.

이 책은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억척스럽게 유년기를 지나 어른으로 도약하는 에텔의 성장과정을 보며 나의 성장과 비추어 보고 내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과 견주어봤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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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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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를 먹는 것에 비유하자면 이 책을 읽은 것은 거친 음식을 꼭꼭 씹어먹듯 읽었다 함이 맞을 듯하다. 이 소설에 비교하여 다른 소설을 읽은 것들은 마치 소화되기 좋도록 어느 정도 다져져 별로 힘들이지 않고 꿀떡꿀떡 읽었다고 해야할까. 이 소설의 첫만남은 그렇게 서걱서걱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탄력을 받으니 문장의 맛, 리듬이 되살아나 사람들의 대화를 속으로 중얼거리게까지 하였다. 태어나 자라난 고향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 하나는 곧 인물 한 명인 샘이다. 특징적인 인물들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리얼한 삶의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재밌고 아련하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이런 디자인의 시리즈들.. 범생이와 같은 외모에 읽을 구미는 별로 안주지만 하나씩 도전해봐야겠다. 이인성의 소설이 다음으로 눈에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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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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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는 눈에 띄는 세명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총각 사키치가 돌봐주는 조스케, 얼렁뚱땅 관리인 헤이시로가 양자로 삼으려고 하는 꽃미남 유미노스케, 그리고 마사고로의 짱구...  특히 측량이 취미(?)인 유미노스케는 열세살의 나이지만 사건을 해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하지만 똑똑한데 비해 몸은 아직 어린지 밤에는 이불에 실례를 하기도 하는 오줌싸개다. 마흔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자 조카인 유미노스케를 양자로 삼으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관심없는 헤이시로도 금새 아이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짱구는 정말 대단하다. 생김새는 짱구같은 모양인데 기억력이 굉장히 뛰어나 마사고로를 위해 모든 일을 줄줄이 기억한다. 한번 토해내면 경을 읽듯 리듬을 붙여 줄줄줄 읉어내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머릿속에 사건들을 입력할때는 눈알을 도로록 굴리며 기억하는 모습이 재밌다.

 나가야의 세입자들이 자꾸 떠나자 상실에 빠진 사키치에게 조스케가 위안이 된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 그건 책임을 지는 일이다. 책임은 때로 누군가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게 한다.

이 소설은 얼간이 헤이시로가 주인공이지만 어른들의 캐릭터 못지않게 아이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정녕 미래의 희망은 순수한 아이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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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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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헛된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집고 원령이 파고 든다. <흔들리는 바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빈틈을 헤집고 들어간다. 시대를 오늘날로 옮겨 놓고 보았을 때 오히려 에도시대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순수함으로 느껴졌다.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 문제도 없을 순수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안타까움과 더불어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까지 자아내게 된다. 많은 것이 예전과는 다르다고 요즘 것들은 버르장머리 없다고 말하지만 어느 시대에서 보나 현재라는 시간은 과거에 비해 변질되고 타락했다고 생각하기 마련인가보다. 사람들은 진화하고 문화도 바뀐다. 하지만 도덕적이고 무언가 근본이 되는 것들이 늘 그런 형태로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오하쓰의 씩씩함은 이 소설에서도 빛을 발한다. 게다가 고양이 떼쓰, 방울이, 도사까지 등장하니... 햐... 데쓰가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고양이 발 모은 꼴이 되어 책을 읽는 기분이랄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책이 단박에 좋아질 것이다. 아직 두 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에도시대의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 시대를 조금씩 이해해가는 느낌. <미미부쿠로>에서 진기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맛있게 읽고 있는 느낌. 좋구나.

 

"맛난 음식에는 정신을 온전하게 되살리는 힘이 있어요."

정말 그렇구나, 하고 오하쓰는 실감했다. 배가 부르면 상황을 조리 있게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차분해진다. 반면 무언가에 두려워하고 전율하게 되는 마음의 탄력 같은 것은 조금 약해지는 듯하다. p.158

 

"발끝이 하얗죠? 요렇게 생긴 줄무늬 고양이를 '흰 버선을 신은 고양이'라고 해요. 이것도 복을 부르는 표시래요." p.227

 

귀신보다 원령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사람이라고. 불리한 일. 보고 싶지 않은 일, 듣고 싶지 않은 일을 기이한 이야기 속에 묻어 버린다. 그러고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해 거짓말로 버티지. 인간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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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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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베 미유키의 제2막시대라고 나오는 책들이후로 안 읽다가 이 책을 필두로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일단 이 시리즈의 판형과 표지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책이 뭐랄까 손에 딱 붙는다는 느낌.. 여튼 예쁜책이다. 오하쓰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능력을 지녔다. 트루 블러드의 수키가 문득 생각났다. 죽은 혼이 보이는 이 능력으로 친오빠 로쿠조를 도와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커플이 될 모양인 우쿄노스케라는 조금 불투명한 성격으로 그려지는 청년과는 다음 편에서 아마도 잘 될 모양이지. 이 책의 교훈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남에게는 없는 숙명같은 능력으로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고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게 될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받아들이고 그 능력을 잘 연마한다면 자신의 인생이 업그레이드된다는 것이다. 산학에 관심이 있는 우쿄노스케는 그런 면에서 오하쓰가 부러웠을 것이다. 아버지의 그늘밑에서 인정받고자 아버지의 뒤를 따라야 하는.. 그의 인생이 조금은 가엾다. 산학에 대한 소소한 재미를 즐기는 우쿄노스케의 모습이 귀여웠다. 어쩌면 취미로 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소설에서 사령은 마음에 틈이 있는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어낸다. 생각만해도 무서운 일이다. 마음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사령이 들어갈 구석이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다. 슬픈 일이다. 어딘지 서글프다. 밝은 소녀 오하쓰의 활약을 다음편에서도 기대하며 당분간은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p.s: 그런데 '오'자로 시작하는 이름이 너무 많이 나온다. 왜그런거지? 오하쓰, 오센, 오마쓰, 오쿠마, 오유... 열댓명은 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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