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사막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의 삼각구도는 마리아 크로스라는 여인과 이 한 여자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아버지는 의학박사, 성인군자라 지칭되는 평범한 가정의 남자이지만 가정생활의 권태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여자를 엿보게 된다. 자신에게는 조금도 관심없는 한참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중년 남자의 질풍노도(?)의 마음이.. 마른 세수를 습관적으로 하는 모습으로 다소 귀엽게 표현된다. 그의 아들 레몽은 마리아라는 여자에 의해 드디어 내면의 남성성이 드러난다. 김춘수의 시처럼 그대 이름을 불러주었을 뿐인데를 전차에서 눈길 한번 주었을 뿐인데로 바꾸면 된다. 쉽게 정복되지 않는 마리아는 레몽이 삼십대 중반의 중년이 될 때까지 복수의 대상으로서 첫 사랑의 기억으로서 레몽의 사랑의 역사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사랑은 이 세 사람의 내부에 격동의 폭풍을, 정염의 화신을 불러온다. 이런 과정들이 재밌게 표현되어 있다. 줄거리로만 따지면 그리 새로울 것 없는 통속소설인데 역시나 이것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한다.

 소설의 말미에 일흔살이 된 박사는 한 남자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보호막인데 남자들을 수많은 유혹으로 부터 지켜준다고 하면서 말이다. 결혼에 관심없는 레몽에게 혼자 살아서는 안된다는 조언까지 한다. 이 소설은 지극히 남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게 맞는 것 같다. 마리아라는 신비스러운 존재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고 아내나 어머니의 의미를 남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남자가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사실은 궁금했다. 책소개에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일평생 인간 본연의 내적 갈등과 고통의 문제를 연구했다고 한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마리아는 정말 누구와도 같지 않은, 희한한 여자예요. 그래서 내가 집을 떠나 있을 때면, 어처구니없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답니다. 종일 꿈만 꾸고, 묘지 아니면 외출도 안 하고.... 혹시 그게 다 독서의 영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네, 책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p.131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존시킨다. 그들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그래서 죽음은 사랑을 썩지 않게 보존하는 소금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로 사랑을 분해시키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삶이다.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리나 강의 다리 대산세계문학총서 39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장바구니담기


절망적인 사람들은 침착해 보이려고 하고 아니 거의 무관심한 체하려고 무척 애를 쓴다. 어떤 미신적인 합의에 의하여, 그리고 책에는 전혀 쓰여 있지는 않지만 예로부터 존재해온 수호자의 권위와 사물의 조리에 대한 신성한 법칙에 따라, 그들은 제각기 힘을 다하여 그 순간만큼은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재앙 앞에서 적으로 겉으로나마 걱정과 공포를 감추고, 아무 관계 없는 다른 일들을 가벼운 톤으로 얘기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11쪽

그렇게 하늘과 강과 산 사이 카사바에서 대를 이어간 세대는 혼탁한 물결이 휩쓸고 간 것에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 태도를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삶은 끊임없이 닳고 소모되지만 그러면서도 역시 지속되고 '마치 드리나 위의 다리처럼' 단단하게 서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카사바의 무의식적인 철학이 그들에게 스며든 것이었다.-117쪽

이렇게 밤은 지나갔고 그와 더불어 위험과 고생으로 가득 찼지만 명백하고,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충실한 인생도 지나갔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오고 그렇게 이어져내려온 본능으로 그들은 그런 것들 속에서 자신을 잊고 인생을 순간적인 감상들과 직접적인 필요들로 나누어버렸다. 왜냐하면 이렇게 살아야만, 매 순간을 따로 떼어놓고 앞뒤도 보지 않고 살아야만, 견딜 수 있고 좀더 나은 앞날을 바라보며 계속 그런 삶을 지켜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44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렇다고 진실을 알고 싶지 않다는 건 아냐.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런 건 그냥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인 데다 벌써 깊이 묻어 버린 거니까."

 사라는 얇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는 건 분명히 위험한 일이야."

"위험하다고, 어떻게?"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사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만은 기억해 두는 게 좋아. 역사는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p.52

 

그의 이름처럼 색채도 없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쓰쿠루의 삶에 사건이 일어난다. 겉으로 보았을 때 사건의 수준은 너무나 미미하다. 한때 친했던 친구들이 동시에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이유를 모른다. 그 사건으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 정도로 힘들어하지만 쓰쿠루는 그렇게 그 사건을 묻어버린채 십육년을 살아간다. 한참이 지난 후에 만난 사라라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이야기다. 그 친구들을 만나는 과정을 바로 순례라고 한 것이다.

우리 일생에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겉으로 보았을 때 경미한 사건이 돌덩이같은 충격이 되어 그 이후의 삶을 흔들어놓기도 한다. 그런 소소한 사건들의 의미와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삶이 어떤 영향을 받고 변화해가는지에 대한 소설이다. 사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대다수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시로는 왜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했을까. 심지어 죽음의 원인조차 이해할수 없을 때도 있다. 시로는 왜 교살당했는가와 같은..

중요한 것은 그 사건들이 나의 인생의 역사를, 궤적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라의 말처럼 역사를 지울수는 없다. 설령 그것으로 인해 나의 삶에 어떤 변화를 끼치지 못했을지라도. 색채가 없는 인생은 없다. 다만 그 빛깔을 빨리 찾느냐 조금 더디게 오느냐,일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 / 뿔(웅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세상은 돈다. 우리는 휘청거리며 계속 나아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p.589)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맞물려 돌아간다. 처음에는 코리건의 수도사같은 삶이 흥미로워 이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끊기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알고보니 여러명의 이야기가 서술되면서 우연히도 서로 스치게 되는 내용이었다. 인종도 삶의 배경도 상처도 제각각이지만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누군가의 상처는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치명적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상처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상태에서 우연히 세계무역센터 사이를 무모하게 걷는 남자를 바라보게 된다. 그저 그렇게 하는 행위가 의미 있다는 것,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나는 그 이전의 나가 아닌 다른 내가 되는 것.. 그렇게 삶은 돌고, 삶이 무료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나이를 먹어간다. 글쎄다.. 세월을 보내는 것이 곧 삶의 내공으로 연결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모든 사람이 꽃이고, 위대하고, 소중하다는 마음이 들어 타인의 몸짓, 말소리, 눈의 표정 하나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소중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읽는 소설 마다 너무 재미있다. 역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려는데 오늘 오후부터 급격히 추워져서 조만간 얼음이 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매년 10월에는 독서열이 불타오른다. 연말이 머지 않았으니 할당량을 채우듯 독서에 가열차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별 기대없이 잡은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읽다가 2시에 잤는데 다음날 어찌나 졸리던지.. 이젠 2시에 자면 다음날 지장받는 나이가 된 것이다. 흑;;

에벌린이란 중년의 위기를 맞은 여인이 요양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니니라는 친구(나이차이는 물론 많이 난다.)에게 스레굿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제목처럼 루스와 이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사람들은 요즘 말로 힐링이란 것을 하게 된다. 하도 여기저기서 힐링힐링 하니 나에게는 거부감이 조금 들기도 하는 그 힐링..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지 가을이라 그런지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요리 이야기가 나오는 이야기는 언제나 좋다. 작은 흑인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이며,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지만 서로 의지하며 극복하는 이야기들도 좋다. 아마, 한 여름에 읽었다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다. 덜 익은 토마토를 튀기면 어떤 맛이 날까. 정말로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