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41 | 4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서 나는 김연수가 말하는 사랑에 대해 음미했다. 음 그래, 사랑은 그런 것이야. 이건 좀 아닌것 같은데.. 소설가는 정말 좋겠다. 자신의 책안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정의내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이제 어린 사람들의 몫이다. 이제 적당히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격정은 그들에게는 매우 소모적인 일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그의 정체성까지 요구하는 사랑은 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내 자신의 삶을 살아줄 수 없듯이 나 또한 그의 삶을 살아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작가는 '사랑' 이라는 어쩌면 가장 식상한 주제에 대해 말하면서 그 식상함을 감추기 위해 낯선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할 때나 글을 쓸때 자주 쓰는 단어, 문장들을 발견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공통점이 되고 그 공통점이 특성이 되고 성격이 되고 하는 것들을 요즘 발견한다. 나는 계속해서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있다.

 

여성 포탈 사이트의 이름을 패러디한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그가 <7번국도>에 이어서 두번째로 팬에게 주는 특별선물이라고 한다. <7번국도>도 읽어보아야 겠다.

 

'사랑'에 대해 논한 읽고 싶은 꺼리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이성복

<사랑, 그 환상의 물매>, 김영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표지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이다.
정말 이 표정, 비밀을 한가득 가진 듯한 매혹하는 듯한 아니면 매혹당하는 듯한 이 표정은 어떤 상황에서
이 그림을 그렸을까하는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 그림을 보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연결시켜 정말 멋진 소설 한편을 써냈다.
베르메르의 그림들은 거의가 일상풍경이다. 우유를 따르는 소녀, 피아노를 치는 뒷모습, 창가에 서서
허공을 응시하는 하늘빛을 만지려는 여인은 하나같이 평범한 일상이지만 알수 없는 묘한 분위기와
비밀스러움을 풍기는 것들이다.

소설의 절정부분에서 이 진주귀고리 소녀를 그리는 부분이 나오는데 소설속에서는 그리트라는 이름을 가진 하녀 아이를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편의 글이 탄탄하게 구성되기 위해 필요한 등장인물과 스토리와 상징물들을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스토리는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낯익은 것이었는데 문장문장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장면이 상상되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확인한 것들,
그리트는 하녀이지만 다른 하녀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대 저택의 남자 주인은 항상 하녀를 먼저 사랑하게 된다.
하녀와 남자 주인간에는 그 남자의 안주인이 항상 버티고 있게 마련이다.
물론 큰 마님은 사위와 이 하녀의 관계를 눈치챈다.
자제들중의 한명이 그 하녀를 굉장히 미워해서 죄를 뒤집어 씌우게 한다.
그 하녀를 좋아하는 평범한 멋진 범인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시장에 고기를 사러 저택의 자제와 나갔는데 우연히 자신의 동생을 보게 되고 그 동생을 못 본 척한다.
남자 주인과 하녀 사이에 또 다른 신분 높은 남자가 있다.
진주 귀고리가 주는 상징.
그리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의미하는 것.


정말 정형화된(?) 안정된 구성이다. 하지만 베르메르의 그림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며 소설을 읽어가는 맛이 대단하다. 영화를 꼭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단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폴오스터는 늘 주인공이 극한 상황
도저히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도록 놔둔다.
비행기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대학교수 짐머도 그가 단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무성영화시대의 한 배우인 헥터만에 대해 집착하게 되고
그를 위한 연구서까지 쓰도록 하는데..
주인공의 독백처럼 그는 단지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현실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정은 폴 오스터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발견된다.
달의 궁전에서 극한의 굶기 상황이라든가, 우연의 음악에서 정말 이성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벽을 쌓아야만 하는
행동들이 그렇다.


그의 소설들에서는 하나같이 주인공이 집요함의 고수이다.
헥터만에 관한 연구를 위해 짐머가 보여주는 행동들이 그렇다.
그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수집하는데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
(사실 소설에서는 그렇게 광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데 정상적인 현실에서
보았을때 그렇다는 말이다.) 몇개월을 외부와의 일체의 접촉없이 그에 관한
책을 쓰는데 보낸다. 공공도서관에 그의 자료를 찾기 위해 나갔던 두번만 제외하고는
그는 하나의 것에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그 근원을 캐나간다.
나는 이 부분에서 늘 궁금한것이 있다. 소위 사회인으로써 관계라는 것이 있다.
나 의외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폴 오스터는 너무나 잘 배제시킨다.
그게 미국이라는 특성때문일까. 그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지독하게 개인주의적이어서
일까. 그냥 허구적인 상상력의 소산인가. 그 지독한 개인주의가 가끔은 부럽다.


과연 폴 오스터는 하나의 소설을 씀에 있어 기초가 탄탄하고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
인듯하다. 헥터만의 영화중 하나를 묘사하는데 마치 내가 하나의 영화를 보고있는 것
같다. 사실 그 (존재하지 않는)영화를 보는 유일한 사람은 오스터이지만
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어주는 사람도 오스터이다.
완벽한 시나리오 대본을 보는 것 처럼 그가 읽어주는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현실인지 짐머의 현실인지 헥터만의 현실인지.. 혹은 각각에 대응하는
허구인지 헤깔린다.


어떤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의 내용이 빛을 발하고 기억되는 것들이 있는 반면
폴 오스터의 소설들처럼 개개의 소설들보다 그것들이 하나로 뭉뚱그려져서
소설가의 특성을 점점 강하게 만드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그것이 그의 저력인것 같다. 비슷하고 반복되는 주제일것 같지만 각각이 너무나 독특해서
자꾸 중독되는..

정말 갈때 까지 가보고 싶게 만드는 그의 소설들은 참으로 재미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rine 2004-11-25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오스터 소설이 특징은 주인공 스스로가 극한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는 거죠 제일 대표적인 경우가 극단적인 굶기입니다 달의 궁전이나 뉴욕 3부작 등에서 주인공들이 어떻게 극한 상황을 버텨 나가는지 잘 그려져 있습니다 오스터 소설은 대부분 재밌는데 혹시 "공중 곡예사" 읽어 보셨어요? 이 책은 전형적인 재밌는 이야기책입니다 아주 재밌게 보실 거예요 추천합니다

스파피필름 2004-11-25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중 곡예사는 아직 못 읽었어요.. 읽어봐야겠네요. 기대됩니다.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41 | 4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