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라이프
이케자와 나쓰키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7년 12월
절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진리다. 부분적인 진리는 누구나 한 번쯤 손에 쥔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손에 쥐어진 부분적인 진리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뭘 할지를 결정한다. 하지만 나 같은 인간은 전체적인 진리를 손에 쥔 후 세상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더 오래 걸리고, 더 오래 비틀거린다.-35쪽

일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게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정반대다.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여지는 삶은 쾌감과도 같다. 어쩌면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표현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농부들은 같은 동작을 몇 시간씩 되풀이하면서 밭을 간다. 양떼는 양몰이개가 이끄는 대로 달린다. 양몰이개는 양떼가 너무 흩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동시에 여우와 승냥이를 경계해야 한다. 공장 직공들은 똑같은 물건을 하루에 100개씩, 200개씩 만들어야 한다. 이 지루한 작업들이 몸에 익숙해지면 말 그대로 자랑거리가 된다. 예를 들어 칸나가 날마다 땀을 흘리는 평균대, 마루운동, 이단 평행봉, 뜀틀 같은 것들이다.-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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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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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말하는데,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경이를 맛보지 않고 죽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p.132)

 

아흔살을 맞이하는 노인 '서글픈 언덕'은 비로소 사랑의 고통을, 사랑의 경이를 경험하게 된다. 이 주인공이 열일곱의 소년이었다면 마흔 다섯의 중년이었다면 그가 겪게 되는 고통도 경험도 한낯 가벼운 에피소드라고 넘겼을지 모른다. 이 소설은 결국 인생의 종착역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인간이 경험하고 또 경험하고 또 경험해도 아직도 경험할 것이 남아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흔의 노인이 사랑의 고통에 무너지고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씩 씻지도 않고 질투와 분노의 화신이 된다고 생각해보라. 이건 치매임에 분명하다고 웃어넘길 일이다. 하지만 '서글픈 언덕'은 진지했다. 죽는 순간까지 진지하게 자신이 겪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충실했다. 늙음 앞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생애 처음으로 사랑이란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사랑은 상호적이어야 하는가? 사랑은 기브 앤 테이크여야 하는가? 이 둘의 사랑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관심 밖의 작가였는데 이 작가의 작품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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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밀리건 -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
다니엘 키스 지음, 박현주 옮김 / 황금부엉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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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처럼 '나는 생각함으로써 존재한다'고 믿고 있지만, 우리는 가끔 내 자신이 낯설어질때가 있다. 자아가 일관적이고 연속적이라는 믿음이 깨어진다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가. 아니 그래도 물리적으로 내 몸은 존재함으로 나라고는 할 수 있는가. 빌리 밀리건. 이 사람은 24개의 인격이 하나의 몸속에 존재한다. 내 안에 여러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사실 보통 사람의 경우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중인격자와 보통 사람을 구분짓게 하는 것은 각각의 인격들이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는가 아닌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령 다중인격자의 경우에는 개별의 인격체들이 서로의 기억을 함께하지 못해 시간을 빼앗긴다고 느끼고 잠을 자고 일어나보면 전혀 엉뚱한 곳에 와 있는 것이다. 다중인격자의 치료는 이 책에서 나온 것처럼 핵심인격을 중심으로 하나의 인격으로 융합하는 것이라고 한다. 각각의 인격들은 전혀 다른 생리적 특성을 갖는다. 힘의 정도, IQ, 재능, 판단능력까지 별개의 사람같은 것이다. 소설은 실화를 다루고 있고 다중인격자가 된 원인이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라는 것 외에 과학적으로 다중인격자가 왜 되는지에 대한 원인은 나와있지 않다. 또 현재 밀리건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나와 있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중이라고 놀리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관적이고 연속된 자아를 잘 조절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좀더 과학적으로 다중인격자에 대해 다룬 책들을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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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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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6월의 중순.. 1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노라면 내가 좋아하는 5,6월이 이렇게 지나가고 곧 올 한해도 금방 지나가겠지 하는 묘한 감정이 들곤 한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은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사두고 앞부분만 여러번 읽다가 결국 못읽었다. 그런데 이 책.. 며칠동안 읽어나가다가 오늘에야 끝냈다. 인생 내내 전혀 감을 잡지 못하다가(?) 나이 육십이 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제목은 sense of a endling 이지만 이 사람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 하하. 묘한 아이러니 같은 이 책의 제목과 내용이 남일 같지 않은 걸 보면 누구나 짐작만으로 적절한 판단을 하고 대인관계를 이어나가고 이 소설의 주인공 토니처럼 평균치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베로니카는 누가보아도 명확한 인생을 살아나갔을까. 베로니카의 한창때가 그려지진 않았지만 그녀 역시도 어디선가 서투른 짐작으로 살아갔을 것 같다.

어쩐지.. 회한이란 감정이 몰려올법한 소설인데 나는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 짧은 소설이지만 정말로 맨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간의 의미를 추적해나가다 보면 정말로 '감'이 '어떤 명확한 것', 이를테면 증거 같은 것으로 바뀌어 인생의 행로가 뚜렷해지는 희열을 맛볼 수 있을까. 아.아. 명쾌한 삶이란 이리도 요원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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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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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친구가 결혼을 갓 하고서 내게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남편과 하나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내가 아닌 남과 하나인 것 같은 기분이 어떤 것일까. 나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데,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기분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잔잔히 젊은 부부의 일상을 그린다. 가난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 부부. 그 부부는 세상의 잣대가 아닌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둘로 존재하지만 생각은 하나인 이 부부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역시 소세키의 문체는 잔잔하고 애틋하다. 도저히 여러페이지를 한번에 읽어나갈 수 없게 느리게 읽어내게 만든다. 그런데 이 젊은 부부의 사랑의 내막은 내가 상상치도 못하게 불륜이었다. 뭔가 이상적이고 고고한 이상향에 있다가 세속의 문제로 추락한 느낌을 가지고 책의 후반을 읽어나갔다.

세상에서는 아직 용납되지 않는 이 문제 앞에서 주인공은 갈등하고 힘들어한다. 결국 그가 귀의하기로 한것은 종교. 깨달음을 구하러 마음을 쉬러 찾아들어간 곳에서 그는 과연 답을 구할 수 있었을까.

앞 부분의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인지 뒷부분의 한 인간으로서의 갈등을 그려내는 부분은 기억속에 별로 남지 않았다. 모든 것에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동시에 존재하듯, 사랑과 죄책감도 동시에 존재한다. 영원히 행복하거나 영원히 불행할 수 만은 없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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