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의 귀환 -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김태권 지음, 우석훈 / 돌베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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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말했다. "인간들은 이미 길들여진 것만 알아요. 그들은 무엇을 알 시간이 없어요.”

밥벌이에 길들여진 인간은 세상을 알 시간이 없다. 욕망은 커져만 가는데 세상에 침식되어 좁아져만 가는 영역에서 만족감을 찾으려니 삶이 고통이 된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한때는 휘청거렸지만, 경제의 장밋빛 전망이 꽃망울을 틔우니까 이전으로 돌아갈 태세다.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오르고, 해고의 자유를 만끽하며 기업들은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고 빼앗고 있다. 땅을 가진 자의 권리는 땅을 빌린 자들의 생에 대한 권리마저도 가져가버린다.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상의 테러에 익숙해지는 것만이 서민적 삶의 덕목이던가.
생태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던 인간세계도 상위 몇 퍼센트의 인간들에 의해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수치를 통해 알 수 있다. 포식자에 의해서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출산율 저하가 아닐까? 남의 먹잇감으로 살아가게 둘 수 없다. 아니 나조차 버틸 수 없는 이 세상에 어찌 자식에게 이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까.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없는 계급의 인간들은 스스로 개체수를 줄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체제의 종말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이론에 따르면 포식자들도 줄어들겠지만, 세계화라는 페러다임을 만들어 놓고 전 세계의 약자들을 먹어 치우고 있으니 당분간은 지속되겠지만…… 너희들의 종말도 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인간의 삶에 비해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다. 일단은 살고 볼 일이 아닌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보자는 것. 우리의 한 발작이 다음 세대의 한 발작을 덜 수 있지는 않을까. 자본의 욕망은 모두의 욕망으로 치환된 지는 오래지만, 그 욕망에 백태클이라도 걸어야 하는 게 우리가 지닌 책임이 아닌가 한다. 욕망의 질을 바꾸던 체제의 상식을 바꾸든 진보는 필연적 운명에 앞서야 한다. 세상을 이해하고 고민하는 방식에 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는 대화를 이어가게끔 하는 친절함과 낮은 시선이 있다. 그것을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어떠한가. 우리의 고민은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정치가 되어 힘이 되었으면 한다.

어린 왕자가 비정규직 왕자로 귀환하였다. 여우와 뱀이 스승이었고, 우주의 여러 별을 돌며 많은 것에 귀를 기울이며 성장하였던 왕자가 다시 우주를 떠돈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어린 왕자의 오마주가 되어도 어색하지가 않다. 너무 흔해져 버렸어. 세상은 흔해 빠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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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17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리뷰 올려야징~~~ㅎㅎ

Arch 2009-08-1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얼마나 오랜만의 리뷰인가요! 라주미힌님^^
오마주라기보다는 자화상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런게 머큐리님이랑 전 라빠? ^^

머큐리 2009-08-17 20:35   좋아요 0 | URL
라빠? 나빠? ㅋㅋㅋ 난 라빠닷!!! (왠지 좀 챙피하다...흠)

라주미힌 2009-08-17 23:41   좋아요 0 | URL
헐 부끄럽습니당.. ㅋㅋㅋㅋㅋ
그럼 전 아빠? ㅡ..ㅡ; 머빠?;;;

웽스북스 2009-08-17 23:42   좋아요 0 | URL
웬빠 아니었습니까? ㅋㅋㅋㅋ
이책 괜찮구나. 김태권 좋아요 ㅋㅋㅋㅋ
 
간판스타 - 이희재 단편집
이희재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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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축축한 골목길에도 밥 하는 냄새는 멈추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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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품절


소설가의 문체는 적당히 아름다워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적당히 지저분해야 한다. 그것이 '산문적 일상'을 묘사/기술하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즉 소설가가 자신의 얼굴, 필체, 문체를 갖는 건 바람직하며, 동시에 좋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긴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문체 여서는 안 되다. (<내겐 너무 예쁜 당신>이란 프랑스 영화의 문제의식이기도 한데 '너무 아름다운 여자'는 아내로서 적합하지 않다. 결혼생활은 '산문적'이기 때문이다.)-82쪽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는 폭투처럼 컨트롤이 안 되는 요구다. 근본적인 변화라는 건 아무도 정의/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와일드'하며 '정의'를 닮았다. 단 그것이 '근본주의'에 붙들리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폭투로서의 정의'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혹은 위엄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야 한다. -110쪽

우리는 그릇된 '폭력적분출'과 진정한 '혁명적 돌파'라는 기적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미리 가질 수 없습니다. 기적은 오직 이전의 실패의 반복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폭력이 혁명적인 저잋 행동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인 것이죠. 만약 혁명에서 이러한 과잉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혁명 없이 혁명을 얻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폭력이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혁명적 폭력', 곧 진정한 해방적 행위로서의 폭력이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341쪽

반세계화 운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명한 듯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태클을 걸어야 합니다. 즉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적인 사적 소유 없이는 존립할 수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우리는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343쪽

우리가 정작더 무서워할 만한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관심'이고 어짊'이다.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다). 우리의 울부짖음을 불쌍히 여겨 설혹 한천사가 우리를 껴안아준다고 해도 문제는 우리가 그걸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
사랑이란 '연약한' 우리가 견뎌내기에는 너무 강한 정념이기 때문이다.'
.....
그건 '진리'나 '복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맨정신으로 대문자 '진리'를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진리'를 견딜 수 있을까? (살아남는 일은 많은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공연히 있겠는가)
......
'공포와 전율'을 느끼지 않으면서, 그래서 기절하지 않으면서, 그 숨 막힐 듯한 '믿음'에 질식사하지 않으면서, 정말로 견딜 수 있는 것인지? 해서, 밥 먹듯이 기도하는 사람들을 나는신뢰하지 않는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일상이거나 비즈니스일 것이다) 왜냐고?

"내 울부짖은들 천사의 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설혹 한 천사가 있어 갑자기 나를 가슴에 껴안는다 해도,
그 강한 존재로 말미암아 나는 스러지고 말리라. " 릴케 -403쪽

나는 책들의 성좌, 문학과 사상의 '지도를' 작성하는 데 취미가 있다. -414쪽

인문은 '사람의 무늬'란 뜻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인문학의 책임은 우리가 '무늬만 사람'인 이들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나 할 거 없이 기본적으로 많이 읽어야 하며,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중요하다.
.......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는 시를 '영혼의 끼니'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러한 끼니로 '비만한' 영혼들을 좋아한다. -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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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7-13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도 리뷰 쓰리가 엄두가 안나는 1인...ㅎㅎ

라주미힌 2009-07-13 10:55   좋아요 0 | URL
밑줄긋기로 때워야죠 뭐. ㅋㅋㅋ
 
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대중 앞에 드러낸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알몸. 난 사람은 다르긴 다르네.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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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7-08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사람이 다르다는 말에 ....동감...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혹자는 뻔한 이야기와 대안 없는 현상만을 말하는 가벼운 책이라 한다.

글쎄. 뻔한 이야기조차 가명을 써야 말할 수 있고, 하고자 했던 말을 거르고 걸러야 하는 현실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놓는 책이 이전에 있었던가? 풍문으로 돌던 이야기들을 확인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더라도, 당사자들의 말이 담겨 있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 화자가 누구냐라는 부분은 중요하다. 제 3자에게서는 행동과 용기, 그리고 자기파괴적 고뇌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할 수 없었던, 가질 수 없었기에 그래서 점유할 수 있었던 도덕적 우월성만 장착하고 있다면 누구나 무엇이든지 베어 넘길 수 있다, 단지 그 검의 위력만을 믿고 베어버리는 행위는 위력이 반감이 되며 경솔할 뿐이다. 좋은 요리를 만들려면 칼질부터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들, 당사자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그리고 비판 또는 비난의 칼을 먼저 꺼내기 보다는 우리가 안고 있는 현상을 면밀하게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법을 둘러싼 우리 모두의 얼굴을 한 사람들의 참여가 돋보인다. 일단 입체적이다. 각자의 역할과 이해의 꼭지점을 선으로 연결하여 완성되는 모형은 ‘신성가족’의 실체를 그려낸다.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을 움직이는 원리가 좀 더 견고하고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임을 말한다. 시스템에서 해결을 찾기에는 너무나 근원적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권력과 관계의 모순은 치밀하게 엮여있다. 너무나 비슷한 그러나 그 크기는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신성 가족’이 사는 담벼락에 틈이 있을까.

저자는 ‘희망적이게도’ 틈이 있음을 말한다. 툭툭 터져 나오는 비리 사건이나 로비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법조인으로써의 양심이 아직은 식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나온 틈인 셈이다. 그 틈에 뿌리를 내려 거대한 균열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외부에서의 채찍질도 중요하고, 내부에서의 자발적 변화 또한 강력한 요구가 되어야 한다. 제도는 단지 제도적인 모순만을 양산하지 않은가. 오히려 합법적이고 그들의 일탈에 거름을 내리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이 시대의 희망 찾기는 바로 틈을 찾아내고 균열을 키워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 책은 ‘법률사무소 김앤장’(임종인, 장화식) 처럼 수 많은 감시자와 참여자를 만들어 낼 힘을 가졌다. 물론,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것도 우리의 숙제이다. 하지만 너무 쉽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약은 약사에게, 법은 법률가에게…  

이 책에서 얻는 중요한 진실은 신성가족은 소통의 부재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특권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쌓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대중과의 ‘거리두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알아 들을 수 없게.. 그리고 다가올 수 없는 후광을 쥐어짜내고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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