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세계사 사계절 1318 교양문고 5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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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하고 나서 ‘1318 교양 문고’라는 딱지를 보고 조금은 움찔 했다. 나이 좀 먹었다고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읽는 건 맞지 않다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너무나 평범한 내용이거나 흥미거리 위주로 되어 있는 책이 아닐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입시를 위한 교과서 역사, 잘 팔릴 것 같은 달콤한 사탕 역사, 재탕 삼탕 반복적으로 같은 말만 하는 무미건조한 역사책들… 주위에 지뢰 같은 역사 책들이 여기 저기에 널려 있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주경철표 역사책은 알차고, 쉽고, 역사에 대한 흥미를 돋구기에 아주 좋다. 1318 교양문고라는 딱지는 없어도 될 만큼 성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구성을 살펴 본다면, 역사의 큰 흐름(고대 문명, 중세, 근대) 속에서 미시사, 풍속사, 무역, 문명, 전쟁사 등의 다양한 주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는 형식을 띠는데 하나 같이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키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은 기존의 ‘교과서’들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간과한 부분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이집트 문명과 문화를 이야기 하면서 피라미드가 최악의 전제정치의 산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인력은 강제 노역이 아니며, 농한기에만 나와서 식량을 지원 받으면서 행한 일종의 ‘영세민 취로 사업’이었다고 한다. 다른 예를 든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영웅적인 면을 벗기고, 병적이고 치사한 면을 보여주고, 테세우스 신화에 담긴 아테네의 독자성을 드러낸다던가, 모짜르트와 사드의 작품에서 프랑스 혁명의 냄새를 맡게 한다, 로빈슨 크루소라는 작품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유럽 중산층의 문명을 반성하고 세계를 정복해 나가는 정신적 사고 실험이었음을 설명하는 등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 중의 또 다른 하나는 각 단락에 도움을 준 참고서들이 책 뒤에 정리 되어 있는데, 사실 잘 살펴 보면 각 단락은 이 책들의 요약본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사생활의 역사’, ‘고양이 대학살’, ‘길가메시 서사시’, ‘총균쇠’ 등 익히 들어본 책부터 외국 원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역사책들의 맛보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나 이것을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저자는 학자로써의 학문적 열의, 배움에 대한 자세가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교수인 저자도 누군가의 연구가 담긴 책들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자기화 하는 노력(당연히 그래야 하는)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맛을 본 자가 맛을 안다고, 청소년들에게 역사의 맛을 보여주려는 저자는 누구보다도 진짜 맛을 알고 그것을 나누어 주려는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역사의 중요성, 역사에 대한 흥미를 다양한 서적들의 액기스를 뽑아내어 대중에게 선사하는 이 책은,
역사 전체, 또는 세부사항을 읽는 데에 필요한 것은 문화라는 사실.
문화로 역사를 읽으면 흐름을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기에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사고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역사가 인류의 축적된 경험이기에 그것을 미래로 향한 인류의 지혜로 담아내려는 학자의 배려와 의지가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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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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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재미, 아름다움만을 보여 줄 것 같은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맛’에는 생소한 ‘맛’이 담겨 있다. 사기꾼, 도박, 불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충동 살인, 강박증. ‘의도하지 않은’ 자살, ‘찝찔한’ 섹스 등 그 주제를 보면 스릴러, 범죄, 성인 소설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동화작가도 이럴 수 있다!’ 라는 것을 거칠게 주장하듯이 짧디 짧은 각 단편들은 매우 흥미로운 전개 방식을 보인다.
잔잔히 시작하여 이리 튀고, 저리 튀다가 마지막에 확 뒤집어 엎어 버리는 식인데, 수많은 매체를 통하여 연마해 온 ‘반전예측 신공’은 한 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분명히 다가올 뒤집힘임을 알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도 뒤집히게 되니 너무나 즐겁다. 그것은 독서가 하나의 놀이로 승화되는 순간의 즐거움이다.
또한 독자에게 머리싸움을 걸듯이 전개되는 스토리는 흡입력 있고, 완결성이 정교하여 이야기의 즐거움, 호기심이 넘치게 한다. 글이 짧을수록 끝맺음이 쉽지가 않은데, 이 10편의 단편들은 놀라운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작가의 뛰어난 글재주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마치 어린이들의 동화를 성인 버전으로 둔갑시킨 것처럼 ‘또 해줘’, ‘다음에 어떻게 되는데?’ 하면서 조르게 된다. 이렇게 만들 수 있는 ‘뛰어난 재미’는 누구라도 자신의 상상 속으로 납치 할 수 있다. 납치범 로알드 달은 그런 자신감을 이 책에서 보여주었다.
‘성인들도 나의 상상 속에서 마음껏 한번 놀아 봐!’.

놀이는 즐겁다. 이야기도 즐겁다. 그러나 약간은 퇴폐적이고, 약간은 잔인하지만, 놓치지 않는 것은 인간이 가진 모습들이란 점이다. 충분한 개연성, 그러나 너무나 극단적인 내기, 살인 뒤의 미소라는 악마성 그러한 극단성은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 아닐까. 동물들은 목숨을 내놓고 영역싸움을 하지 않는다. 재미로 죽이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심리를 꿰뚫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사기는 인간의 기만성의 한 면이다. 저자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간의 본성을 그려냈다. 겉과 속이 다르듯이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폭풍같이 몰아친다. 폭풍 후의 고요함은 엄숙하다. 경험의 기억이 잔존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 소설에서는 고요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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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열흘
존 리드 지음, 서찬석 옮김 / 책갈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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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이 되자"(Nous n'étions rien donc, soyons tout)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오직 두 계급만이…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작년 말 현재 땅부자 상위 5%가 전체 개인소유 토지(5만7218㎢, 173억3390만평)의 82.7%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상위 1%는 51.5%를 차지했다.’라는 기사가 있었다.
그네들의 땅따먹기가 어느덧 이웃의 안방까지 침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본의 침식은 급격했고 파괴적이었다. ‘대지의 저주 받은 자들’은 그래서 세상을 저주하곤 한다. 이 빌어먹을 세상…

또한 많은 이들은 변화를 갈망한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를… 이 땅에 태어나 인간다움을 맛보지 않고서 차마 떠날 수는 없음을…
그래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을 세상에 맞게 변태한 사람, 세상을 인간에 맞게 변화시키려는 사람.

이 책은 후자에 해당되는 사람들과 전자의 사람들과의 치열한 격전의 기록이다.
혁명! 불꽃 같은 투쟁의 현장은 혼란스럽고, 격정적이었고, 정말로 순수했다. 그들의 두 손이 무기였고, 해방의 깃발아래에 선 민중의 박동하는 심장이었다. 쿵쾅, 쿵쾅, 심장들은 죽어가는 혈관에 산소를 불어넣었고, 세포를 움직였다. ‘세계는 근본부터 뒤바뀌리라.’

그대가 잃을 것은 쇠사슬이오. 얻을 것은 온 천하이니…

쿠데타는 쿠데타였다(비주류에 의한 무력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빼앗으려는 기습적인 정치 행동). 볼셰비키(소수파)는 다수의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 75%의 농민들이 아닌 노동자와 일부 군인들에 의해 정부를 뒤엎고, 대중의 지지를 정복해 갔다. 적들은 가득했다. 사업가, 지주, 장교, 정치인, 교사, 학생, 멘세비키, 코사크, 백인단, 야만사단, 융커, 사회혁명당, 두마, 카데츠 등등등. 그러나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라는 ‘골때리는 한국 현대사’와는 질적으로 틀리다. 그들의 혁명은 최소한 혁명적 당위성과 대중의 욕망을 대신할 진정한 의미의 혁명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는 강했다. 잃어버린 쇠사슬로 인해 그들은 세상의 주인이 된 것이다

볼세비키 혁명, 넌 감동이었어.

이 책의 위대한 점은 역사적 장면들을 두 눈과 귀로 지켜보고 듣고 있었다는 점이다. 민중들은 선택해야만 했다. 혁명이냐, 반혁명이냐. 글을 읽어야만 했고, 신문과 포고령, 선전문에 귀를 세워야만 했다. 허위와 진실을 가려내야 할 의지와 판단을 지니기를 요구하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인다웠다. 자신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토론했고, 사유했으며, 행동했다. 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들, 웅성거림, 소란, 동요, 야유와 조롱의 틈에서 흘러나오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연설을 듣고 있으면 이 책의 사실성과 현장성에 독자는 압도 당할 수 밖에 없다.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분명한 것은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새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는 점이다. 혁명은 성공했으나, 피의 태양만 떠올랐다. 소유형태의 변화만으로는 세상이 바뀔 수는 없었다. 더욱 심해지는 압제에 민중은 피를 흘려야 했다. 어떤 법률에 의해서도 구속되지 않는 무제한의 권력에 의해 스탈린에 의해 1000만 농민은 쓰러졌다. 어쩄든 이 책은 혁명 이후를 모른다. 비극적인 결말, 무제한의 폭력지배가 그들 앞에 놓여있다는 숙명을 모르기에 ‘그들의 혁명’에 동정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의 행진’에 따른다.
인터내셔널가를 흥얼거리면서…

하지만 자본주의 타도 없이는 ‘종전’은 불가능 하다는 ‘4월 테제’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우리는 전쟁터를 벗어나야만 한다. 그것이 네가 사는 길이고, 내가 사는 길이지 않은가. 평화, 평등, 민주의 가치가 불변하다면...


<인터내셔널가>
“대지의 저주 받은 자들이여 일어서라/
굶주린 도형수들이여 일어서라/
이성이 그 분화구 안에서 천둥 친다/
이젠 끝이 왔다/
과거를 백지 상태로 만들자/
노예들이여 일어서라, 일어서라/
세계는 근본부터 뒤바뀌리라/
지금은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나 이제 모든 것이 될 터/
이것은 최후의 투쟁이라네/
단결하세 그러면 내일/
인터내셔널이 인류가 될 테니".



< 출처 : http://www.hymn.ru/internationale/index-en.html -인터내셔널가.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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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7-20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책 샀어요. 님만큼 멋진 리뷰는 못쓰겠지만, 저도 읽고 리뷰 쓸래요. 근데 인터내셔널가라는 것도 있군요^^

비로그인 2005-07-20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아아아주 구판으로 가지고 있는데요, 인터내셔널을 들은 기념으로 재독을 할까 싶어지네요. 일단 추천~

라주미힌 2005-07-20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 감사합니다 ^^ 정말 좋은 책을 읽은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5-07-20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구입했는데... 구입만 해놓고 마는...;;;

날개 2005-07-20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넘 멋지군요.. 추천하고 가요~

2005-07-21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신문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
김태수 지음 / 황소자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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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의 미인 몸에 일사(一絲)도 부(附)치 아니한, 순진 나체사인지외다. 그 풍만한 육체미는 고상하고 쾌절재득(快絶再得)키 난(難)한 근세의 진사진이올시다.’ (367p)

무슨 뜻인지는 모호해도 말초신경 자극을 돕기 위한 매체와 관련된 광고임을 알 수가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신문에 난 누드사진 광고 문구는 직설적인 것을 넘어선 투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꼭 보시게’라고…
현대의 광고가 상품의 이미지와 필요하지 않아도 문화의 유행성을 강조하여 소비욕을 은근히 부추기는 것과 사뭇 다르다. 다른 것, 차이에서 느껴지는 호기심은 확실한 광고성을 지닌다.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그래서 이 책은 무지막지한 매혹의 향을 낸다.

광고를 더 훑어보면 빠져든다.

‘천지는 유구무한하여 만길불변이었마는 이내 몸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지라 청춘의 환희를 그 누가 싫다 하겠으며 조로의 비애를 그 누가 좋다 하겠으리요, ‘마력적 회춘법’, ‘허양 남자의 일대쾌보’, ‘경탄적 장춘술’, ‘발광하겠다던 조루 그만 전쾌’. ‘혼자서 속태우든 한을 풀었다’. ‘역방한 여성들이 깜짝 놀래’. ‘늙었다고 단념할 것은 아니다’… (374p)

역시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몰라도 과대 광고임을 바로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유쾌하다. 광고를 어찌 저리도 험하게 낼까. 광고 윤리의 법도는 없나?. 그래도 유가적 가치가 살아있을 법한 조선인데… 음란물 관리규정은?.
이 책에 답은 없다. 하지만 그 시대의 관심과 대중의 욕망을 반추 할 수 있는 자료임을 보여준다. 광고의 속성상 대중의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 꺼리임을 이 책의 저자는 파악하고 있고, 억압의 시대에 섹스산업이 흥한다는 통찰을 일제 시대의 누드 사진 광고에서 찾아 내자는 의도를 드러낸다.
삼천리(잡지)의 ‘접문(키스) 연구’란 글에서는 ‘죽을 때까지도 한 번도 딥 키스를 해보지 못한 조선의 민중들을 위해 각 나라의 키스법을 소개한 것’으로 급격한 도시화와 문자 해독층의 증가, 자유연애 풍조를 엿 볼 수 있다고 한다.

섹스 광고만 있느냐? 아니다 성병약 광고도 있다. 정말 빠져들지 않는가?

‘신성당의 약효력은 유선형 초스피드 비행기 동양’, ‘이 뜻을 모르면 무식자다. 현대는 경쟁시대다. 스피~드 시대다. 유선형 시대다’. (55p)

지금 봐도 난해한 이 모더니즘 카피 문구는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른 유선형 개념을 광고에 접목시킴으로써 병도 빨리 낫는다는 것을 모토로 삼은 것 같다. 어찌나 성병이 심각했는지, 결혼 전에 건강 진단서로 성병의 유무를 확인했으며, 신문 잡지에는 매독, 임질에 대한 발병 원인과 증상, 치료에 관한 기사들이 많이 났다.
1922년 8월 20일자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있으니 ‘인천 부사동 전석현의 처 문이성은 몇해 전부터 매독을 올니어 고통하든 중 인육을 먹으면 낫는다는 말을 듯고… 공동묘지에 파묻은 김귀원이란 녀자의 시체를 파내어…’ 그리고 이규태의 ‘버선발에 양구두’에는 이런 글도 있다. ‘경중에는 사람을 죽여 담을 빼는 자 심히 많았다… 한 의관이 말을 퍼뜨리길 사람의 담이 음창에 좋다 하였다… 거지들이 많았는데 사오 년래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음은 바로 사람의 담이 소용되는 자들이 죽였기 때문이다. 거지들이 없어지자 이제 어린이를 꾀어 담을 떼었다. 그러기에 잃어버린 아이들이 꽤 많아졌다.’

‘성병에 걸리지 않은 30대 내외의 남성은 5할도 되지 않는다’, 또한 ‘어느 병원의 100명중 12명이 성병 환자’라고 하니 성병은 국민병이 되었다.
섹스산업의 발달, 성병의 창궐의 이면에는 일제 강점기 조선에 일본군 주둔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였던 것이다. 조선총독부 경찰국 위생 과장은 ‘조선의 50%가 성병에 걸렸으니 조선도 이제 문명국이 됐다’(51p)라며 헛소리를 늘어 놓았으니 이보다 좋은 역사책은 없을 듯 하다.

이외에도 근대의 조선으로 탈바꿈 하기 위한 과도기적 현상은 극장, 껌, 고무신, 백화점, 과자, 커피, 라디오 방송 등의 광고와 신문기사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커피에 열광했던 궁궐, 강철보다 내구성이 강하다는 고무신, 최초의 극장 시설, 시설에 대한 관객들의 불만과 칭찬, 극장에 들어갈 때에는 우물에 발을 씻고 들어가는 풍경 등은 현대의 풍경과 비교하는 재미를 만끽 할 수 있다. 특히 껌은 대중에게 사용법도 일러주어야 했다. ‘삼키지 말아야 할 별난 식품’ 아닌가. 최초의 껌은 피로 회복, 소화 촉진 등의 ‘기능성 제품’으로 광고 되었다. 라디오 방송에 관한 에피소드 중 ‘꾀꼬리 방송’은 가장 웃기는 대목이었다. 204페이지 참조 하시게…

재미만 있는 책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는 억압과 착취, 동원의 시대 아니었던가. 창씨개명을 독려, 협박하는 기사, 출산 장려(전쟁 동원을 위한), 단발령, 심지어 남자에게 국민복을 여자에게 앗빠빠라는 간단복과 몸빼를 강요하였다. 몸빼는 조선 민중의 억압의 역사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창씨 개명에 관한 단락은 몰랐던 사실도 알려준다. 창씨개명에 대한 당시의 인식은 무지에 바탕을 둔 오해한 찬성과 오해한 반대였다. 창씨란 호주와 가족에 부여되는 가(家)의 명칭으로 기존의 성(姓)을 바꾸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호적에는 기존의 본관을 적게 하였다. 왜냐하면 잘난 일본이 조선인과 일본인의 내재합일을 원하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다. 창씨개명의 본래 의도는 호구 조사를 통한 징병제의 근거자료로 쓰기 위함에 있었다. 어쨋든 조선의 이름은 촌티가 나서 낼름 바꾼 친일파나, 목숨으로 반대한 사람들의 당시 분위기는 극단적이었으나, 해학적인 면도 있었다.

‘태분창위(太糞創衛), 일본말로 읽으면 이누쿠소쿠라에, 개 같은 놈 똥이나 먹어라.(개명의 한 예)’

전쟁이 만든 상흔, 근대화가 내뱉은 파열음은 조선을 강타했다. 그것은 때로는 민중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도 했으나 때로는 강요했다. 그것은 역사에 기록은 되지 않았어도 신문, 잡지, 소설, 논문, 잡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책은 물론 저자가 모두 연구한 자료는 아니다. 수많은 학술 논문과 책들을 스크립하고 정리한 저자의 땀을 응축하여 탄생한 것이다. 미시사, 풍속사를 이렇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순간’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꼭 누리시길….

‘횡폭 적군의 응징은 폭탄으로, 설사 복통의 폭격은 헤루푸로…’(128p)


재미있는 퀴즈 하나
애(愛), 비(碑), 시(媤), 지(地), 의(依), 압부(鴨符), 지(芝)…
이게 뭘까요. 답은 61p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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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7-18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의 쾌락을 맛볼랴는 남녀 중 1인으로 손 들겠습니다.
땡스투 누르고 보관함에 넣어요.^^

라주미힌 2005-07-1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내용이 많답니다 ^^; 즐거운 독서 되시길..

비로그인 2005-07-1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안녕하세요~ 저 책은 우리 남편이 거의 뒤집어지면서 읽은 건데요. 글케 재밌나봐요. 방금 저도 퀴즈 답을 찾아보느라 한번 봤지요. 으헤헤~ 답이 그거군요^^

라주미힌 2005-07-1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사탕님/도 뒤집어지시는게 어떨런지요. 반갑습니당... ^^

panda78 2005-08-10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을밤 긴데 한번 보시요'에서 뒤집어졌어요. ^ㅂ^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근대에 관심이 생겨서 근대 관련 책 몇 권 찾아 읽을까 하는데 추천할만한 책은 없으신지요? ^^

진주 2005-08-2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저요, 저 퀴즈의 답 저도 알아요~ㅎㅎㅎ
 
세계를 뒤흔든 침묵의 봄 세계를 뒤흔든 선언 4
알렉스 맥길리브레이 지음, 이충호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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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과 죽음의 순환은 자연의 순리이기에 봄은 시작이고, 생명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침이면 새들의 아름다운 합창이 울려 퍼지던 마을에 기묘한 정적만이 감돌기 시작한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 나오는 ‘내일을 위한 우화’는 서서히 호러가 된다. 대니 보일의 ‘28일 후’의 한 장면이 스쳐간다. 새들의 침묵. 생명의 잠적. 죽음이 가까이에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서서히 뒷목을 조르지는 않더라도 내 몸으로 스며드는 그것은… 아니 인간의 기만적인 배설물 아닌가. 벌레를 잡겠다고 뿌려댄 살충제가 어디 벌레만 잡겠는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제거 대상이다!

박멸! 지구 끝까지 쫓아 가서라도 자기 임무를 완수하는 터미네이터마냥 인류의 무시무시한 번식력은 식량 증산, 수명 연장을 위한 전투적 행위의 전리품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인류의 밥그릇에 다른 어떤 개체의 숟가락도 들이대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나의 몸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그들을 말살하는 것. 그러기 위하여 완벽한 독극물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완벽한 독극물이란,

1.       곤충에게 큰 독성을 나타낼 것.

2.       효과가 빨라야 한다.

3.       포유류나 식물에게는 영향을 덜 끼칠 것.

4.       불쾌한 냄새를 내지 말아야 하고,

5.       작용범위는 광범위 해야 하며

6.       효과가 오래가고, 화학적 안정성이 뛰어나며

7.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가격이 싸야 한다.

 

이 놀라운 조건들을 만족시키려는 인류의 노력은 로또 당첨보다는 쉬운 일일지라도 백수에, 키 작고, 뚱뚱하고, 직업 없고,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만 하는 남자와 문근영이 결혼하는 것보다는 훨씬 어려운 일이다.(비과학적인 계산 방법에 의한)


무릇 많은 이들의 추억 속 방역차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환상’과 ‘재미’를 주기 위해서 여름이면 동네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묘한 향(?)과 몽환적 분위기를 어찌 피해갈수 있을까. 방방거리며 뒤쫓아 다니던 추억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거짓말을 조금 붙이면, 내가 들이마신 경유와 살충제 혼합물을 재활용하게 된다면 부산을 갈만한 연료와 xx킬라 몇 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정도로는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아직도 멀쩡한 나와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사실 방역차의 살충성은 제로에 가깝다. 아이들을 취하게 하듯, 벌레의 활동성을 저하시키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방역차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싸고, 죽이는 데에는 확실한 성능을 가진 것이 있으니 이름하야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 페스트를 옮기는 벼룩, 이외에도 파리, 나방 등을 죽이니 나름대로 인도적인 화학물질로 각광을 받았다. 전쟁 중에 흰 가루를 뒤집어 쓰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졸업식에서 자주 보여지는 ‘밀가루 뒤집어쓰기’의 유래가 DDT라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신빙성 없음).

 

아무튼 미물의 죽음에는 둔감할지라도 새, 물고기의 떼죽음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중들에게 환경은 중요한 사안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지구상의 먹이사슬은 물론 남 북극에서도 DDT가 검출되는 사태를 맞이하니 환경,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환경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태풍의 눈처럼 그 중심에는 레이첼 카슨이 있었다. 그녀의 책, 그녀의 사상은 생태학이란 개념을 탄생시켰으며, 에코 페미니즘의 원조가 되었다.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의 사상이 담겨있고, 환경운동의 역사도 담겨 있으며, 화학물질로 이득을 보는 자와 그것에 맞서 자연을 지키려는 자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레이첼 카슨의 소극적인 저항에 대한 은밀한 비판도 내비치고, 미국 정부의 이중적인 환경 정책(살충제 수출 장려, 국내 사용의 금지) 또한 비판의 대상으로 올려 놓고 있다. 물론 ‘침묵의 봄’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DDT의 역할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DDT 사용으로 말라리아에 의한 어린이의 사망률을 20%나 줄일 수 있다 하지 않은가. 하지만, 잔류성 오염물질에 의한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지구의 상황 또한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내분비 교란 물질은 남성의 ‘힘’을 약화시키고, 임산부에게서도 검출되는 온갖 화학 물질들은 그대로 태아에까지 전해지고 있으니 지구상에서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기농 채소를 가족에게 먹이려는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 벌레의 건강 또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공존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 통제에 대한 인류의 과학적 맹신을 깨는 전환점이 되었던 ‘침묵의 봄’은 현대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랑으로 대지의 생명을 품은 대지의 여신들처럼 여성의 모성애는 지구를 품에 안을 만한 힘을 보여주었다. 지구의 딸, 생명의 어머니 레이첼 카슨은 인류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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