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의 세계 -상 - 우리는 어떻게 세계와 소통했는가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시황은 현재를 비판하기 위해 과거를 이용한 자들을 처형했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자들의 구호 중 하나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것이었다. 지배자들은 권력과 ‘자신들만의 역사’로 늘 자신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자신과 선조들의 업적들을 나열하였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며, 현재와의 연속성을 설명하는 최고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일본서기>가 한반도의 종속성을 내세운 지배의식을 구조화 시켜왔듯이 조작과 은폐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늘 발견할 수 있는 흔한 현상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식민사관의 잔재는 그 중 하나이며, 우리의 역사를 황폐화 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역사의 의미는 현재에 있지 과거에 있지 않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미래를 위한 우리의 인식의 재발견이며, 미래를 향한 준비된 과정일 것이다. 한반도(이 책에서 말하는 ‘한민족’) 문명교류의 역사를 되짚어 본 이 책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서양에 의해 규정된 오류를 수정하고, 한국 속에서 발견한 세계성이 가진 힘과 문명의 융합과 변이, 창발 과정, 그것의 영향과 결과를 담았다.



저자에 의하면 선사시대 때부터 조선까지 우리의 조상은 이슬람, 로마, 동남아, 아메리카 모든 대륙의 문명과 문화를 진취적이고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열린 사회였다고 한다. 벼, 청동기, 금속활자, 고인돌, 무역, 작물, 조각상에서 나타나는 이국적인 인물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이 책의 모양새를 언뜻 보면 연대순과 풍부한 도판이 국사 교과서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쉬운 설명과 내용들이 신문에 실렸던 글답게 대중적이다. 게다가 저자의 ‘입담’이 적잖은 즐거움을 준다.

‘수나라는 건국 초부터 분별없이 고구려를 적대시했지만, 600여 년의 경륜을 쌓은 고구려 앞에서는 한낱 애송이의 허장성세에 불과했다.’, ‘고구려는 중국에 귀속 될 수 밖에 없다는 단세포적인 논리다.’, ‘우리 겨레에 대한 야멸찬 멸시이다.’

동북공정이 한참 사회적 이슈였을 때 정수일 교수의 격앙된 논조가 느껴진다.



신문에 실리는 글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시사성이 개입된 고구려, 발해사를 다루는 부분은 이 책 전체의 흐름에 적당하지 않다. 민족주의로 범벅이 된 텍스트와 고구려사 왜곡, 영토상의 제약조건에 의한 불안과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논리가 심하게 거슬린다.

이 책의 곳곳에 드러나는 민족주의는 이 책이 말하고 싶어하는 ‘세계성’과 심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세계성이란 무엇일까?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말하는 것인가? 고선지, 장보고 같이 국제적으로 자취를 남긴 인물들이 세계인인가? 동서양, 국가간의 문물 교류? 물론 이 책에서 밝히는 세계성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의 공유, 타국-타인-타문화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는데, 그것의 밑바탕은 얼마나 열린 사회인가, 대중의 인식과 자세는 얼마나 열려있는가에 있다.



민족주의 역사관은 영토와 국가의 위상에 대한 집착이자 역사에 대한 심각한 오독 행위이다. 저자는 ’어디서 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254p 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의 세계 최초’, ‘우리의 세계 최고’, ‘우리의 가장 우수한’처럼 우리의 위상을 강조한다. 또한 ’순결성과 정조관념이 유달리 강한 고려여인들에게 원나라에 끌려가는 공녀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순제의 정비가 된 기황후처럼 일세를 풍미한 여걸도 있었다.’ 130p

원나라에 끌려가 순결성, 민족의 혈통성을 잃는 여인들에 대한 치욕은 그곳의 지배계층이 되면서부터 겨레의 위상을 날리는 ‘여걸’이 된다. 20세기 민족주의로 바라본 저자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것은 복잡한 계산 방식이다. 불리한 것, 가령 사대주의에 의한 문물의 수용은 국제정치에 현명하게 따르는 것이고, 우리의 것들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의 뛰어남에 있다는 공식.



이 책의 내용 중에는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의 국보가 될 정도로 우리는 우수한 도자기 기술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일본의 기술의 후진성에 대한 멸시가 깔려 있다. 우리의 우월함과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타’의 열등함을 강조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보면서 느끼는 ‘우월감’은 그들 국가의 ‘열등함’에 있듯이 말이다. 민족의 우월성과 독자성을 늘 강조하고, 영웅-지배계층의 신화적 해석을 통하여 ‘겨레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요소로 이용하고 있으면서 과연 ‘세계’를 ‘제대로’ 말할 수 있는가?



이 문장을 다르게 생각해본다.

‘우리가 굳이 한핏줄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대로 포용성과 융합성이 남달리 강한 한민족의 용광로 속에서 귀화인들을 용해시켜 적어도 생활문화나 의식구조에서는 동질성을 확보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다민족화를 방치한 나머지 전근대적 민족갈등을 빚고 있는 사정을 감안할 때, 우리는 우리 겨레의 역사에 자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58p

이 글을 한 단어로 함축하면 ‘획일화’이다. 의식 구조, 가치관, 소양과 행동 양식들을 철저하게 뜯어 고쳐서 그 문화에 ‘용해’되지 않으면 들어 올 수 없는 ‘철저하게 닫힌 사회’라고 해석을 하면 비약일까?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갖기 무척이나 어려운 것을 보면, 이것도 ‘전통’일 수도 있겠다. 한마디로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면 이미 ‘한국인’이다.



국가와 영토에 닫혀있으면 세계를 말할 수 없고, 민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에 묶여 있는 개인은 세계인이 될 수 없다. 국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만을 그것이 세계성으로 포장하는 것은 ‘우승열패의 신화’의 연장선일 뿐이다.



내가 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과거에 보여주었던 겨레의 위상과 긍지의 회복’이 아닌 ‘미래를 위한 과거의 문명교류를 통하여 성찰할 수 있는 세계성’이었다. 반은 발견했고, 반은 버렸다. 그리고 교류란 상호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주체’가 핵심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주체성과 정체성을 계속 강조함으로써 그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다시 쓰여진다면 ‘관계’가 중심이 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한국 속의 세계란, 겨레의 위상을 되찾는 일대의 역사다.’ 247p

그래서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다. 이데올로기의 학습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nda78 2006-02-05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뭐라 그러셨더라.... 어휘력의 부족이요? 흥!
얼른 추천하고 갑니다.

승주나무 2006-02-0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저도 어제 그 말 들었어요.. 흥흥!
밤잠을 괴롭히던 님의 고뇌에 찬사를 보냅니다^^

마늘빵 2006-02-0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엄살은 고수들이 부리는거에요.

라주미힌 2006-02-05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시간동안 쓴거에요.ㅠㅠ 남들은 휙휙 잘 쓰던데...
(공짜로 받은 책.. 악평 써서 쬐끔 미안하네요 ㅎㅎㅎ)

ps. 개인적인 느낌이므로 평가가 공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ㅎㅎ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라서, 무슨 이야기를 썼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기쁘고, 다행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독자라서,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쁘고, 다행이라니
기쁘고 다행입니다.

번역, 그것은 그녀가 세상을 불신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배운 옹알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잿빛 도시의 풍경에 낯빛도 변해가는 세상을 그려내는 것은 쉽고도 어렵다. 선과 면, 형과 색이 불분명한 것들을 뚫어지게 봐야만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기억 깊숙한 곳에서 발견해야만 하는 불쾌함을 건져내는 작업이기도 하니까.


기억의 그늘 속에 자리잡은 아슬아슬한 쓰라림과 웃을 수 밖에 없는 웃지 못할 상황들. 아비의 초상, 개인의 고독한 자아 찾기는 단편 곳곳에서 비춰진다. 군중, 다세대 주택, 북적거리는 지하철, 편의점 등에서 일상은 필연처럼 찾아오는 늘 그것들이지만, 우연처럼 부대끼는 사소함에 현대인은 늘 소심한 움츠림으로 바짝 긴장한다.

노크하지 않는 집에서 보여지는 은밀한 공포감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삶을 직면했을 때 '누구세요?'라고 물을 수 밖에 없는 익명성에 있다. 묻혀버린 삶, 자와 타의 흐릿한 경계를 두고 너무나 닮아져 버린 삶에 대한 불신, A를 A라 말하지 못하는 나에게 뻗어져 나온 뿌리인 셈이다. 


유난히 나는을 말하는 이야기들은 나는을 밝히지 않는다.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듯이 스쳐가는 시베리아의 찬 공기처럼 감각적인 잔상만을 남길 뿐이다. 편의점의 푸른 조끼를 입은 청년이 손님, 죄송하지만, 삼다수나 디스는 어느 분이나 사가시는데요라는 답변처럼 질문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간만에 만난 동창생의 뒷모습에서 낯선 이별을 경험하듯, 수족관의 물고기가 인간을 바라보듯 하지만, 수 많은 인연과 번민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 일까

그녀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타인에게 요약되는 방식이 싫다.
차라리 요약되지 않는 것이 나을런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붙잡고 터럭 같은 모든 것들을 주절거리고, 털어내고, 살을 부비고 싶은 이야기들...

한 개인의 깊은 호흡 같은 일기를 들쳐본 느낌,

야광 반바지를 입고 세계를 뛰어 다니는 시시하고 초라한 아비에게 썬글라스 씌워줄 수 있는 김애란식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편안함과 상큼함을 한 입 베어 물게 한다.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 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안녕하시고, 


이 책은 제가 당신에게 매우 딱딱한 얼굴로 보내는 첫 미소입니다.
언제고, 곧 다시 봅시다. (작가의 말 중에서)

언제고, 다시 봅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6-01-2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들 많이 보네요. 저도 보고 싶은데. 험.

라주미힌 2006-01-29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 ㅎㅎㅎ

stella.K 2006-01-3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읽으셨군요. 책선물 받았으면 빨리 빨리 읽어서 일케 리뷰도 올리고 해야하는데 저는 게을러서 클났습니다.ㅜ.ㅜ

라주미힌 2006-01-30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숙제 밀린 거 얼렁 끝내야하는뎅 ㅎㅎㅎ... yes24에서 받은것 rg에서 받은것..
욕심만 내고 흐흐...
억지로 읽으면 노동이에용 ^^; 즐기세용.. (제가 못하는거 남들한테는 권장 ㅎㅎ)
 
두 친구 이야기 카르페디엠 19
안케 드브리스 지음, 박정화 옮김 / 양철북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를 아끼면 자식 교육에 문제가 있다라는 옛말이 있지만,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교육은 교육적인 방법을 벗어난 것 까지 포용해서는 안 된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은 아동의 신체적인 피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해를 입힌다는 데에 있다. 치유는 가해 이상의 노력을 필요로 하고, 어쩌면 영원히 남게 될 수도 있는 치명적인 상흔으로 발전할 수 도 있다. 게다가 폭력은 폭력을 학습시키는 효과까지 있다 하지 않은가. 폭력의 전염성을 막는 것은 오로지 폭력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아동학대가 신체적 가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2004년 아동학대의 유형의 36%가 방임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회가 가정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회적 무관심이 사회적 빈곤을 방치함으로써 아이들에게까지 폭력적으로 그 힘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의 문제는 가정의 문제만일 수 없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그 사회의 건전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시스템 마련이 얼마나 시급하고도 절실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이 책의 주인공 유디트는 심각한 아동 학대를 당하는 작고 여린 아이이다. 주위에서 조금의 관심과 적극성을 보였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쉬울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남의 일이기에 보호를 받지 못했고, 자주 몸이 아픈 아이라는 외부의 시선은 철저한 이방인으로 다가선다.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지 못한 아이의 피폐한 정신과 육체는 안타깝고도 공포스럽다.


 

유디트의 친구 미하엘의 존재는 얼마나 감사한가. 같은 또래 아이의 관심과 애정이 보여줄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이 얼마나 컸던가. 유디트가 마지막에 헤이그로 향할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을 미하엘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이 책의 속삭임은 어른들에게 잔잔한 울림이 되어 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사춘 2006-01-17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어무이도 엄청 후회하셨어요. 자기가 맞고 커서 날 많이 팬 거라고. 어무이 화풀이 대상이었던 산사춘 올림...

라주미힌 2006-01-17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깊은 분이시군용...
 
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의(definition)를 내리는 자가 정의(justice)롭지 못할 경우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대상에 대한 왜곡은 진실을 가리는 것을 넘어 존재를 부정하고, 황폐화 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파괴적인 범죄 행위이다. 힘의 불균형이 클수록 이러한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가령, 미국에 의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라던지, 인혁당 사건이라던지, 십자군 전쟁 같은 역사는 늘 그것을 기억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되새김질 한다.


 


역사의 기억과 개인의 추억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진실의 부정합이 가져오는 혼돈과 좌절을 맛 볼 것 같다. 그것이 아닌데 하면서도 받아들여 하는 억울함, 진실은 어쩌면 약자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명예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는 전혀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천 몇 년 몇 월 며칠.


부시 왈  악의 축을 발표하겠습니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북한, 수단 .


불량국가 1순위로 지목된 이란에 붙은 각종 수식어들은 불량배 미국이 마음대로 정한 것이었다. 500년 전의 최초의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는 이란 남성들은 앉아서 소변을 보고, 이슬람력을 쓰고, 아라비아 숫자와 그들만의 숫자를 함께 쓰는 시간이 정지한 듯한 이란에 대한 시각은 낡고 부패한 폭력적인 국가’에 머물러. 동서문명의 용광로 역할을 했던 찬란한 역사를 두고서도, 23년째 교역이 봉쇄당하여 경제난을 겪는 이란을 대표하는 이러한 이미지는 그다지 공정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이란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전쟁과 혁명이라는 혼란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내려는 끈끈한 생의 의지를 가진 자들이 사는 지구상의 한 국가일 뿐인데 어찌 그런 무책임한 편견이 그들을 정의 내렸을까.


 


페르시아는 문화와 역사의 중심으로 이란인들의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시공간적 자존심의 뿌리이다. 마치 한국인들이 반만년 역사에 커다란 긍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제목인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의 수도라는 그리스어인데, 아마도 이 책에 서려 있는 것은 이란을 대표하는 그 무엇을 간절히 말하고 싶어하는 욕망일 것이다. 그리고 빨간 원색의 표지의 한 가운데 창으로 검은 차도르를 입고 있는 여자애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들어야만 하는 진실의 한 부분일 것이다.


 


 


이란의 감성을 보여주는 타룩(이란식 농담)의 한 대목


 

누군가의 초대를 받은 당신(여자여야 한다)이 서두르다 그만 꽃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면 이렇게 말하는 게 원칙이다. “죄송합니다. 그만 꽃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초대한 사람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괜찮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장미보다 아름다운 걸요.”

동승할 여인이 먼저 차에 오를 경우 여인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등을 보이게 돼 죄송합니다.” 세련된 당신이라면 이 정도는 대답해야 한다. “장미에게 어디 앞뒤가 있던가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릴케 현상 2006-01-0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은 안 나왔나요^^

라주미힌 2006-01-08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올때가 된 것 같은데... 작업이 오래 걸리나 보네용..

로드무비 2006-01-1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것 같네요.^^

2006-01-11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대담 시리즈 1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혼란이란 논증이나 추론이 하나의 경험 세계로부터 다른 경험 세계로 전달될 경우에 일어나는 실수들 중에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다     <프란시스 베이컨>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란스럽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낸 정보와 지식을 무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단편화 되고 있는 지식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들의 범람은 오히려 몰이해와 편견을 낳는다. 자신의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무지를 드러내고야 만다. 인간과 자연, 현상과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입체적이고 총체적 접근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한 맹신과 자기기만 뿐이다.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애써 만들어 놓은 학문의 경계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 학문의 구획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그때그때 편의대로 만든 것일 뿐이다. 진리는 때로 직선으로 또 때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학문의 경계를 관통하거나 넘나드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앉아 진리의 한 부분만을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다. <통섭의 서문 중에서>


 


여기 도정일, 최재천 두 교수의 대담은 몽매한 전문가 의식을 벗어나려는 대담(bold)한 대담(conversation)을 시도하고 있다. 지식의 대통합, 통섭은 아닐지라도 소통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점이 무척이나 대단하고 소중한 일임을 잘 알 수 있었다. 인문학자와 생물학자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식의 확장, 내 안의 울타리를 걷어들여야 한다는 당위적 책임감이 든다. 어쩌면 일종의 의무 일수도 있다.


 


그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경계가 굳건할수록 우리는 그 구속력에 노예가 되어 혼란과 치열한 경쟁으로 서로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도정일 교수가 말하는 인문학적 소양,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우리는 선택 조건이 아닌, 필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두터운 세계는 바로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여 다양성, 다수성, 다원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로가 존중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같은 맥락이면서 합일점이라고 볼 수 있는 최재천 교수의 공생하는 인간, 공존하는 세계에 대한 생물학적 성찰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번식하면서 진화의 최고점에 서 있다라고 착각을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을 것이다. 서로는 서로에 대한 책임을 갖는 자라는 책임 윤리가 아쉬운 요즘에 대담은 우리의 현실에 꼭 필요한 담론이 될 것이다.


 


2005년을 현란하게 장식했던 생명 복제와 비양심적인 학자가 만들어낸 사회적 논란으로 얻은 것은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보다 근본적이고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시의 적절하게 출판된 이 책은 인문학적 상상과 열린 감각, 과학적 접근 방식과 보편성, 이 둘의 절묘한 만남으로 1+1 = ? 이란 공식을 남기기에 충분한 질문과 해답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1-02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했어요. 무진장 기대하고 있어요..;;

라주미힌 2006-01-0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당 ^^
이 책의 하이라이트를 빼먹었넹.. 맨 뒤에 보면 논쟁의 주제를 찾아보기 형식으로 정리해 놨는데, 보면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는걸 실감하게 되더라구욤..

승주나무 2006-01-03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내 눈길이 가는 곳에 라주미힌 님이 밟히는 군요. 저도 곧 뱉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