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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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주헌씨의 그림 얘기는 항상 사람 냄새가 난다. 어떤 그림을 얘기할 때도 그속에 표현된 또는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작품속 주인공이든 화가이든 아니면 그 주변사람들이든... 심지어 역사적 상황을 얘기할 때도 인간에 관한 끈끈한 연민과 공감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 책은 그동안 보아왔던 이주헌씨의 다른 책들과는 많이 다르다. 미술사나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놓았던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냥 이 책은 그림들에서 어떤 느낌들을 받았는지 정말로 주관적인 감상들만을 풀어냈다. 그럼에도 나는 그림속 사람들과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의 냄새에 흠뻑 취했다. 책꽂이에 책을 꽂아두고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갈때마다 내 마음이 편안하게 위로받는 느낌....

아마도 예술이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줄 수 있다는걸 이렇게 친절하게 얘기해주는 책도 드물것이다. 무슨 사조니 유파니 신경쓰지 않고, 그림에 마음을 이렇게 푸근히 내맡길 수 있다니...

그림에 대해 어떤 어려운 말도 없고 - 사실 설명조차 별로 없다. - 그냥 그림에서 자신이 받은 느낌을 조근조근 속삭이는데, 마치 그 속삭임이 내 마음속에서 나오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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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11-13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만간 이 책 읽을거예요. ^^

진주 2005-11-1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억~저도 지금 이주헌씨 책 리뷰 올리려고 벼루고 있는뎅!!!
사진 찍는 걸 이토록 두려워 한답니다 ㅡ.ㅜ

바람돌이 2005-11-13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저 야클님 덕분에 이 책 읽은거 아시죠. 이 책 꽤 오랫동안 잡고 있었어요. 정말로 진도가 안나가서가 아니라 아껴읽고 싶어서요. 조만간 빨리 읽으세요. ^^
진주님 / 님의 리뷰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 다른 리뷰의 그림은 사진 안찍고요. 그냥 이 책 홈페이지에서 퍼온거래요. 근데 컴파일보다는 역시 책이 도판 상태가 좋더라구요. ^^
 
불손하고 건방지게 미술 읽기
윤영남 지음 / 시공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선입견이나 전문가의 견해 이런거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느낀대로 예술을 감상하라는 것'이다. 내 마음에 감동이 오면 좋은 작품이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지를 위해 그는 굉장히 유명한 몇명의 화가를 자신의 글에 초대한다. 피카소, 드가, 고갱, 달리가 그들이다. 피카소는 과연 천재인가? 그가 그린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소수인데도 그의 유명세 때문에 기가 죽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건 아닌가? 어찌보면 도발적일 수 있는 이런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그러면서 피카소가 그렇게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건 작품 자체보다는 그의 독보적인 처세술에 힘입은 바가 크지 않을까라는 도발적인 질문,  드가가 여성들을 독립적으로 그리면서 여성의 독립적 인격을 표현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라면, 여성혐오자로서의 드가가 여성을 성적 관음증 대상이나 폄하의 대상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는 주장도 있다는 설을 제시하면서 같은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정 반대의 시선이 있을 수 있음을 얘기한다. 그래서 그는 미술을 보는 사람에게 '주눅들지 말라'고 얘기한다. 다른 사람 소위 전문가의 견해라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얘기다.

이후 그의 글은 위대하다고 알려져 있는 예술가들을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정보의 제공에 만족하지 않고, 시대와 대중들에게  외면받은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면서 그런 이들의 그림에도 얼마나 훌륭한 아름다움이 있는지 와서 보라고 독자를 이끈다. 그러면서 논지는 곧 지나치게 관객들을 무시하고 관객을 왕따시키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현대미술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저자의 주장 '자신의 느낌으로 미술품을 보라. 아름다움을 보라"는 주장은 일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자꾸 작년에 봤던 엄청난 분량의 피카소 전기가 생각났다. 내가 그 책을 보면서 알았던건 피카소의 그림을 하나 하나 보면 특별히 위대하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걸 느낄 수가 없지만(이건 내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가 천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던 사람이고 인간이 볼 수 있는 사물의 온갖 다양한 면들을 늘 새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의 처세술과 더불어 당대에 빛을 볼 수 있었을 뿐이고.... 그는 늘 남들보다 한발짝을 앞서간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그것은 그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곰곰히 보게 만들었다.

미술을 아름다움 하나만을 보기 위해 본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미술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면도 있지만, 사물과 인간 사회를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준다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보고 느끼는 미술도 있지만 생각하는 미술도 있다는 것이다.

뒤샹이 기성품인 변기를 미술전시회에 내놨을 때 누구도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훌륭한 미술품이 될 수 있는건 발상의 전환을 이뤄냈다는데 있을 것이다. 현대문명과 대량생산의 사회에 대한 그의 비판의식을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그의 작품은 훌륭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이 너무나도 당연한 논지를 제시하면서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런 면이다. 전문가집단이 강요하는 선입견을 넘어서서 자신의 눈으로 미술을 보라는 주장은 너무나 당연해보이지만 작품만으로는 볼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온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나 전문가의 안내에 의해 더 풍부해질수 있는 미술감상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이런 면을 모를리야 없겠지만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위해 너무 일방적으로만 나가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이다. 흥분해서 얘기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균형감각을 잃고 있더라는....

사실 이 주제 자체도 다른 미술전문가들에게서도 흔히 이야기되어 지는 것들이다.  식견을 갖춘 제대로 된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좋아하는 유홍준씨나 이주헌씨 같은 경우 이 방면에 전문가지만 관객 자신의 눈을 항상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친절하게 일반 관객이 미술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코치해준다. 제목의 불손하고 건방지다라는 건 좀 더 파격적인 문제제기에 어울리는 제목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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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5-10-2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부안의 내소사가면 사람들이 꼭 꽃창살 앞에서 소근대는데, 지나치던 것을 유심히 본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뭐랄까요. 자기 스스로의 안목으로 차분히 보기보다는 남(유홍준의 해석도 포함)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봅니다.

바람돌이 2005-10-2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그렇죠. 하지만 자기 스스로의 안목이라는 것도 결국 학습에 의한게 아닐까 싶어요. 많이 보고 많이 읽고 생각해야만 하는.... 즉흥적으로 생기는 좋은 감정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잖아요. 그래서 저는 남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또 자신의 안목이 생길테니까요.
 
팜므 파탈 -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
이명옥 지음 / 다빈치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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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팜므파탈 - 세기말 탐미주의와 상징주의 문학과 미술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요부형 여성 이미지를 뜻한다. ...19세기 예술가들의 발명품인 팜므파탈은 대중들 사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그렇다면 세기말 예술가들이 쾌락과 고통, 사랑과 죽음의 주제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 세기말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전통적인 성 가치관이 무너지고 자의식에 눈을 뜬 신여성들이 목청을 높이던 시기다. 여성들은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여성의 육체에 내려진 편견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행동과 주장을 펼쳤다. ... 남성들은 동등한 성의 자유를 주장하고 해방을 부르짖는 여성들에게 두려움과 경계심을 느꼈다.

저자가 내리고 있는 팜므파탈의 정의와 등장배경이다. 저자가 이런 배경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관점을 가지고 있을바에야 책 내용 서술에서도 좀 더 자신있게 자신의 관점을 관철하고, 분석을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책 내용에서는 릴리트편(이 책에서 처음 안 사실인데 최초의 여자는 이브가 아니란다. 아담과 같이 창조된 릴리트란 여자가 있었는데, 아담에게 순종하지 않은 죄로 신의 벌을 받아 악마로 변한 뒤 낙원에서 추방당했단다. 그 이후 그 잘난 순종을 위해 아담의 갈비뼈로 다시 만든 여자가 이브이고.... 근데 이브도 별로 순종적이진 않은 것 같은데... 그러면 신의 뜻대로 안되는 유일한 존재가 여자인가?)에서 약간 저자의 관점이 비치는 정도이고 나머지 내용은 팜므파탈로 선정된 여성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화가들이 그들을 어떻게 그렸나 하는 설명이 이어진다.

선정된 모델들의 이야기도 대부분 여기저기서 들어본 내용이고 그림들에 대한 설명도 그리 특별할게 없다. 여러 사람이 여러 책에서 다룬 내용들이고 이걸 하나로 모아 저자가 새롭게 쓰고자 한다면 저자 자신만의 관점이 책속에 녹아있다면 좋을 텐데, 그저 평이한 소개글에 그친게 못내 아쉽다. 더구나 책 말미에 저렇게 팜므파탈이 등장한 배경을 자신있게 써놓고도, 내용의 전개는 19세기 남성들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 간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판들은 그런대로 괜찮다. 머리 아플 때 하나씩 그냥 들여다보기 좋은책?

보너스 -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


르네 마그리트의 <집합적 발명>1935
인어에 대한 남자들의 성적 환상을 조롱한 그림이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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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5-08-25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 파탈. 요 책은 별로인가 보군요. 문제의식이 재미있네요. 일단 메모해 놓고 관련 책을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히피드림~ 2005-08-25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 초등학교 저학년때 쯤 우연히 길거리에서 보고 어린 마음에 굉장히 신기하게 와닿았던 기억이 나네요. 마그리트의 그림인줄은 오늘 처음 알았어요.^^;; 잘 읽구 갑니다.^^

클리오 2005-08-2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그림 초등학교 때 처음 봤었는데.. 그때는 뭐 누군가 세계의 신기한 일 쯤으로, 저런 인어가 발견되었다는 투로 이야기했었던 듯 한데... ^^ 다들 모르는게 힘이었었지요..

비로그인 2005-08-25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랬습니다..;;

바람돌이 2005-08-27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촌님/문제는 문제의식과 본문 내용이 따로 노는거라고 생각이 됩니다만...그리고 본문의 내용도 이런 관련서적을 완전히 처음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미술에 관한 책이나 그리스 로마신화 단 몇권이라도 읽은 사람에게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새로울게 별로 없다고나 할까?
punk님, 클리오님 /초등학교때 이 그림을 봤었다구요? 대단히 문화적으로 앞서가는 동네였군요. ^^ 저의 초등 시절은 시골구석이어서 이런 문화적 혜택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죠. ^^
비숍님/마그리트의 그림은 항상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재미가 만만찮죠? 그래서 즐거워요.

kleinsusun 2005-08-2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 색깔도 그렇고....그림이 참 슬프게 느껴지네요.
갸녀린 다리도 그렇고.... 왜 이렇게 슬프지...?

바람돌이 2005-08-2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그러고보면 마그리트의 그림은 세상을 향해 조롱하듯 비틀어주는듯 하면서도 묘한 애잔함이 있는것 같기도 해요. 어떤 작품은 거대한 슬픔이 보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이 사람 그림 참 좋습니다. 헤헤~~ ^^
 
흥한민국 - 변화된 미래를 위한 오래된 전통
심광현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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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전 중국 여행을 한적이 있다.(아직은 이게 내 유일한 해외경험이다)
처음 이틀정도는 중국의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질린 날들이었다. 진짜 바다같았던 이화원의 인공호수,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던 만리장성, 그리고 자금성. 그 옛날 조선의 사신이 자금성의 아홉문을 들어서면서 문 하나마다 절을 올리면서 들었을 주눅이 그대로 내게도 전해져 왔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자금성에서 내 속에 어떤 변화가 일었다. 그 때까지 주눅만 들어 바라보다가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대체가 규모만 엄청나지 볼거라고는 늘 거기서 거기인 중국이 시시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나를 경이의 세계로 이끌었던 창덕궁과 여기 저기를 비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그 전핸가에 나는 답사팀에 포함돼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영역까지 창덕궁의 전모를 답사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더랬었다.) 규모가 작은 대신 곳곳에 자연을 끌어들여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여기저기 숨은그림 찾기 하듯 소소한 온갖 이미지들을 숨겨놓은 창덕궁을 보는 재미와 자금성을 보는 재미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그러면서 같이 갔던 친구들과 나눴던 말이 관광한국의 미래가 참 어둡구나 하는 거였다. 중국은 규모로 승부하고 일본은 그들 나름의 아기자기한 독특한 인공적인 미로 승부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동양문화에 문외한인 서양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인데 반해 한국의 미는 주변의 자연을 고려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미다. 이건 그리 단번에 터득되어지는 것이 아닌데 어쩔까나....

그 때 우리가 잡담처럼 나누었던 한국미의 특징을 이 책은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소박미, 자연미 등의 어정쩡한 말로 이름지어져 왔던 한국미의 특성을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다른 자연의 고르지 않은 현상 및 불규칙한 자연 형태의 사물을 묘사할 수 있는 개념이라 하는 프랙탈 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고자 한다.(솔직히 과학에 문외한인 나는 처음 듣는 개념이다)유클리드 기하학이 질서정연한 서구의 근대합리성의 시공간을 상징한다면 프랙탈이라는 개념은 무질서속의 질서로 훨씬 역동적이고 강렬한 질서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하에서 저자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자연의 특징을 살펴보는데 (여기서 프랙탈한 자연의 대표적인 경관으로 드는 것이 정선의 금강전도이다.) 수없이  주름지고 구부러진 한반도의 산수는 그 자체가 다양하고 역동적인 미감을 표현하도록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것의 발현이 바로 흥의 미다. 저자는 우리 나라의 미를 흥의 미, 한의 미, 무심의 미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흔히 한의 미가 우리의 미의 주류인 것처럼 얘기되어진 것은 근대 이후 질곡의 길을 걸었던 우리 역사에 의해서 오해되어진 것이지 실제로는 흥의 미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한의 미와 무심의 미가 보태지는 것이라 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우리의 풍수지리사상, 전통건축, 전통음식, 음악 문학, 미술 모든 분야를 종횡무진 내달린다. 읽다보면 과연 하고 고개가 끄덕여 지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책은 수많은 의문들을 동시에 남긴다. 내 자신이 아직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과연 하나의 개념으로 한국예술의 모든 분야를 정리할 수 있을까? 아니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 나라의 산천이 다양한 것처럼 각 지방마다 각 분야마다 얼마나 다양한 문화의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데 그것이 어느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지어져야 한다는게 오히려 서구 근대합리성의 유산인 것은 아닐까? 실제로 책의 많은 예가 수긍이 가지지만 일부분에서는 지나친 억측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설명이라든가 2002년 붉은 악마에 대한 너무 나아간 평가들, 풍수지리사상에 대한 평가들 같은 것들은 논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지나치게 나아간 면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원래 하나의 개념으로 무언가를 설명하고자 하면 무리수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런 단점을 이 책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듯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우리의 전통을 우리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자는 문제제기의 차원에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 내부의 무수한 예들에 대해서는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그럼에도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 지는건 여기서 그가 얼마나 더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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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5-05-10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다음에 책을 고를 때에 충분한 고려가 될 듯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한"의 정서라기 보다 "흥"의 정서에 더 가깝다는 심증적 감정을 지닌체 살고 있답니다. *^^*

바람돌이 2005-05-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우리 나라의 정서가 흥의 정서에 더 가깝다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다만 이런 식의 지나친 일반화가 또 놓치게 되는 면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거지요.

비로그인 2005-05-1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았습니다^^
 
금빛 기쁨의 기억 - 한국인의 미의식
강영희 지음 / 일빛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왜 품절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사봤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출간된지 오래된 책도 아니고....가끔 다른 서점에서는 구할 수 있는 책들이 알라딘에서는 품절일 때가 있다. 아니 좀 많다. 이유가 뭘까?

표지의 자물쇠가 근사한 책, 책을 펼쳐서 날개부분을 펼치면 '어 이게 뭐야' 저자 소개에 한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한옥의 문을 빼꼼히 나서면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멋있다. 저자 사진으로 어릴 때의 자신의 사진을 내다니...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보면 이 사진을 낸게 단순히 편집상의 문제는 아니었다는게 밝혀진다. 저자는 자신의 미의식의 원천을 어릴적 한옥이었던 외가에서 형성된것으로 파악한다. 그의 한국적인 미적 심상의 원형말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취향이 어떤 것일까를 탐구하는 주제에 아주 걸맞는 사진이다. 저자의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편집자의 생각이었을까 어쨌든 성공적이면서 기발한 생각이다.

책의 시작은 백남준을 예로 들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흔하디 흔한 조금은 식상한 논조로 시작된다. 그러나 글의 전개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건 식민지시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의 미 인식을 논박하는 2부이다. 한국미술사에서 야나기 무네요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한국인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한국적 미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은 거의 그의 손에서 창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의 민족의 이미지, 한과 애상의 미로서의 한국미술의 이미지같은 것 말이다. 물론 학계에서는 이러한 야나기의 미술관을 논박한바가 많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깊게 뿌리박은 관념을 완전히 바꿔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야나기는 일제 식민지시대 한국인에 대해 동정적이었던 일본인, 그리고 한국미술의 가치를 부각시켜 주었던 일본인으로 기억되고 있고 더구나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84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보관(寶冠) 문화훈장까지 받은 사람이다. 

저자는 야나기의 한국미에 대한 인식이 철저한 일본인의 미의식에 기준하여 이루어진것임을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었음을 논리적으로 비판한다.

"흔히 무의식의 미, 무작위의 미, 무기교의 미로 표현되는 야나기의 한국 예술론의 핵심은 일본인의 미의식을 한국인의 미의식에 덮어씌우면서 그것을 미의식에 미달하는 무의식으로 격하시킨 것이다."(본문 63쪽)

"미의식에도 위계질서가 적용되며, 일본인에게는 윗자리의 미의식이, 한국인에게는 아랫자리의 무의식이라는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가 주어진다. ...이같은 미의식의 위계질서는 한국의 미를 '타력의 미'로, 일본의 미를 '자력의 미'로 규정하는 논리를 통해 체계적인 틀거리를 갖춘다. ... 나아가 이들은 위계질서에 의해 서로 다른 위치와 역할을 부여받은 다음 하나의 체계로 통합된다"(본문 67쪽)

결국 야나기의 미의식은 정치적 식민주의의 문화적 변용에 다름아니었음을 설파하며 그가 일본인의 눈으로 파악한 한국미가 결국 허구임을 맹렬히 논파하고 있다. 문화의식에 있어 식민주의의 잔재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한단계 발전하여 이제야 제대로 청산되는 느낌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저자는 그렇다면 한국인의 미의식이란건 뭘까를 3부에서 본격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밖으로 보이는 형(形)이 아니라 그 너머의 상(象)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따라서 형태미를 넘어서는 정신미의 추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모든 논의를 출발한다. 그속에서 흔히 말하는 고졸미가 발휘되며 해학과 신명역시 마찬가지로 파악될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이의 입증을 위해 저자는 박수근과 한국의 각종 미술품들과 민속, 음식, 한국인의 색감, 현대미술까지를 종횡무진 누비며 논의를 전개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2부에서 보였던 만큼의 훌륭한 논리성을 갖추고 있지는 못한 느낌이다. 이걸 느낌이라고 하는건 딱히 뭐라고 반박할 말은 없지만 뭔가 지나치게 강박적이지 않나 하는 혐의이다. 하나의 준거틀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맞춰나가려 애쓰는 모습같은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2부의 글만으로도 한국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의 품절 두글자도 지워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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