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Art Travel 1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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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서구 회화에 비하여 러시아 미술은 아무래도 우리에게 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얘기되고 있는 러시아 화가들도 이름을 들어본 경우는 샤갈, 칸딘스키, 말레비치 같은 20세기의 현대화가들을 제외한다면 일랴 레핀 정도가 유일하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림들을 보면서 갖게 되는 느낌은 많이 봐온 서유럽의 화가나 그림들보다 오히려 러시아의 미술이 더 친숙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처음보는 그림이고 처음 듣는 얘기인데도 불구하고 그림들이 주는 느낌은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그것은 이주헌씨가 얘기하는대로 러시아 회화의 특징이 문학성이 아주 강하다는 것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서구에 비해서는 동양적인 특징을 많이 내포하고 있는 러시아의 지리적 특징때문인지....
구체적인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처음 본 러시아의 미술작품들이 오히려 많이 봐온 서구의 작품들보다 훨씬 더 공감의폭이 깊었다는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 책은 크게 두부문으로 나뉜다.
첫번째는 러시아의 트리티야코프 미술관과 러시아 미술관을 중심으로 러시아 미술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는 장으로 이 책의 중심이다.
두번째는 에르미타슈 박물관과 푸슈킨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서유럽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러시아 미술이 서양미술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보기 위한 장이다.
하지만 두번째 부분은 주로 소장품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쳐 본래의 집필의도에 충실했는지는 좀 의문이 든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첫번째 부분을 좀 더 보강하여 한권으로 완성하는 것이 훨씬 더 알찬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러시아 역시 기독교 국가로서 기독교회화를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종교의 중심으로서 예수의 형상화 역시....
그런데 다른 유럽의 예수의 이미지와 러시아의 그것이 가장 확실학 달라지는 지점은
'인자(人子)로서의 예수 상'을 꼽을 수 있다.
19세기 러시아 화가들이 그린 이 예수상은 만인의 구세주로서 그가 지닌 희생과 관용의 이미지뿐 아니라 비애와 고뇌, 고독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 보인다. 특히 19세기 러시아 역사가 혁명을 앞두고 엄청나게 고동친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 예수 상에서 우리는 당대 민중의 염원과 간구, 아픔 같은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25쪽)

현실과 동떨어진 예수가 아니라 러시아 미술에 나타나는 예수는
구세주로서의 광휘를 발휘하지 않는다.
그는 러시아 민중속으로 걸어오며 그들속에 묻혀 그들과 함께 하며
때로는 분노하고 고독해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나에게는 이러한 러시아의 예수상이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다.
진정한 구세주란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도상을 러시아 미술에서 발견했다.

무엇보다 관심있게 본 분야는 러시아 역사화이다.
러시아 회화는 문학적 특성이 강하단다.
그래서인지 러시아 역사화들을 보는 것은 한편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주인공에서 주변인물까지 그 풍부한 표정과 개성이 눈을 사로잡는다.
그림속 인물들이 지금이라도 살아나와 내 손을 잡을 듯 풍부한 묘사가 인상적이고
또한 극적인 순간을 절묘하게 캐치해낸 장면 선택은 지금 그 사건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듯 생생하다.
그럼으로써 이 역사화들은 단지 과거의 사건을 재현해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이미지로서의 회화란 러시아 미술에 걸맞는 표현일 것이다.

서유럽에서 인상파가 도래해 신흥 부르조아지의 구미를 맞추고 있을때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의 현실을 비판하고 사회변혁을 열망하는 그림들을 생산해냈다.
서유럽 역시 그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에서는 보다 더 본격적이고 더 미술과 현실이 밀착되어 나타났다.
당대의 현실을 보다 더 정확하게 직시한 점.
이것이 오히려 지금에 와서도 보편적인 공감을 오래도록 갖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게 아닐까?

이런 흐름과는 별개로 러시아 미술은 유난히 많은 예술가들의 초상을 제작한 나라이기도 하다.
왕후장상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초상이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나라
그런 나라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보는 것도 그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러시아의 양대 문호이기도 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화는 두 사람의 극단적으로 달랐던 삶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을만큼 다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일랴 레핀이 그린 만년의 톨스토이는 세속의 경계를 초월한 듯한 초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바시리 페로프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세속의 고통을 결코 잊을 수없는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의 모습이 더 맘에 들지는 아마도 보는 사람의 마음일듯....
솔직히 나의 경우 문학작품 역시 도스토예프스키가 훨씬 맘에 들었고 초상화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음악가인 무소르그스키와 루빈스타인의 형형한 눈빛을 만나는 것도 즐거움이다.

늘 이주헌씨의 글을 보면 참으로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태껏 만날 수 없었던 러시아 미술을 안내한느데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떠나는 러시아 미술여행은 즐거움이 가득하다.
의외로 우리의 정서와 많이 닿아있는 그래서 공감의 폭이 다른 서구미술보다는 훨씬 큰 나라.
풍경화조차도 우리와는 참 다른 풍경이지만 오히려 아련한 그리움을 낳게 한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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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2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읽을 거리는 주시는 바람돌이님, 감사하요.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고요.
이 책 바로 주문 들어갑니다.

바람돌이 2007-01-21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감사합니다. ㅎㅎㅎ 근데 읽으시기 전에 제가 저자인 이주헌씨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은 감안하셔야 할 듯합니다. 전작주의에 별로 관심없는 제가 유일하게 어린이용 도서를 제외하고는 다 사서 모으는 작가가 바로 이주헌씨거든요. ^^
 
영화, 미술의 언어를 꿈꾸다 - 영화 속 서양미술사, 르네상스 미술부터 팝아트까지
한창호 지음 / 돌베개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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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딱 반만 이해했다고 할까?
이야기의 소재는 제목이 시사하듯 영화와 미술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영화가 미술을 어떻게 차용하는가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여기 나오는 대부분의 영화들을 못봤다는거다.
어진간한 영화광이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본다 하더라도 그 영화들을 참고 견디며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대충 이름만 알거나 한 편쯤 본 영화감독들이
파졸리니, 타르코프스키, 펠리니, 피터 그리너웨이, 팀 버튼, 데이비드 린치, 고다르, 안토니오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에릭 로메로, 마틴 스코시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그래도  반쯤은 이름은 들어봤네...
저 중에 한 편이라도 영화를 본 감독은 7명이다. (우와 생각보다 많다.)

근데 이 책에 나오는 영화는 하나도 본게 없다. ㅠ.ㅠ
봤던 다른 영화들의 그 지겨움과 난해함을 생각한다면 별로 보고 싶은 생각도 안든다.
(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3번이나 봤지만 볼 때마다 부분 부분마다 잤기 때문에 도대체 본건지 안본건지 알수가 없다.)

그럼에도 책은 꽤 재밌다.
심지어 이 책을 보고 나면 이 영화들도 좀 다른 시각으로 꽤 재밌게 볼수도 있지 않을가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대해서도 미술에 대해서도 어렵게 얘기하지 않는다.
영화나 미술이나 그들이 내거는 주제의 심각함에 비해서 쉽게 쉽게 설명하는게 이 책의 강점이라고나 할까?
그의 미술에 대한 핵심적인 말들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눈에 보이는듯하다.

안토니오니의 <태양은 외로워>는 키리코의 그림속 풍경과 닮았단다.
풍경을 정물처럼 정지된 상태로 그려 기묘한 고독과 외로움을 전달하던 키리코의 그림속 풍경은 그대로 안토니오니의 영화속 풍경이 된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없는 삭막한 풍경들의 연속인 영화의 라스트 신은 그 의미가 이해되어진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을 다시 본다면 이번에는 졸지 않고 영화를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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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9-2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는 그냥 맘 편하게...1박 2일로 본다는 생각으로 보시면
나름대로 재미있답니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하고 요리사 도둑.......둘 다요..^^

바람돌이 2006-09-2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1박2일요? 그런 마음으로 보면 괜찮을수도 있겠군요. ^^ 요리사 도둑.... 은 그래도 뭔가 알것같기도 하고 했는지 그래도 잠은 안왔는데 영국식 정원은 정말 졸려 죽겠던데요. 저는 1박 2일이 아니라 한 3박 4일은 돼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ㅎ
 
노성두 이주헌의 명화읽기 - 조토에서 마그리트까지 교양으로 읽는 세계명화
노성두.이주헌 지음 / 한길아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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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만치 않은 내공의 두 사람이 만났다.
서양미술에 대한 대중적인 글쓰기에서 탁월한 내공을 자랑하는 노성두, 이주헌씨가 바로 그들.
이들의 글은 탁월한 미술사적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잰체하지 않고 쉽게 쉽게 독자에게 속삭인다는 것이다.
요 앞에 읽었던 이주헌씨의 생각하는 그림들 시리즈가 저자 자신의 주관적인 그림선정이 강한 감상이었다면 이 책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흔히 평가되어 지는 그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시대별 사조별 대표작이라고나 할까?

13세기 르네상스의 여명에서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시대별 대표적인 화가와 작품들이 총망라되어있다.
다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정도는 한 번씩 본 그림들인지라 일단 친숙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고흐 고갱 등등 유명인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이런 그림들을 볼 때 위험한 건 그 명성에 주눅들기 쉽다는것.
따라서 별로 좋은지도 모르겠는데 꼭 좋다고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화가와 그림들에 대해 두 명의 저자는 맛깔스럽게 얘기들을 풀어놓는다.
그림이나 사조의 시대적 배경, 화가의 이야기 등등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주역이 아니라 다만 조연일 뿐...
진짜 주연은 오롯이 그림의 감상이다.
위의 내용들은 오로지 그림을 보다 잘 감상하기 위한 배경이라고나 할까
화가나 그림의 명성에 주눅들지 않고 감상자가 그림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어떤 것들이 그림을 그토록 아름답게 만드는지...
이 친절한 두 사람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명화라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이들을 따라가다 보면 서양 미술사와 그림의 감상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수도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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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6-2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이 시대별로 나눠 쓴건가요? 아니면 작품별로? 이주헌씨 책은 여러권 봤는데 노성두씨 글은 아직 접해 보지 않아서....

바람돌이 2006-06-28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t세기에서 15세기는 노성두씨가 썼고요. 이후는 이주헌씨가 썼는데 간간이 두 사람의 글이 화가에 따라서 섞여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주헌씨의 글을 더 좋아하는데 노성두씨의 글 역시 좋습니다. 옛적에 문명속으로 뛰어든 그리스 신들이란 노성두씨의 책을 봤었는데 그 책도 재밌게 읽었었어요.
 
인생이 그림 같다 - 미술에 홀린, 손철주 미셀러니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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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떠들게 있으면 더 뜨들어라 하는 주의입니다. 창피당하면 어떻습니까. 연습이 천재를 만드는 거나 무쇠가 두들겨맞고 단련되는거나 같은 발버둥 아닙니까. 수업료 안내고 익히려 드는 게 도둑놈 심보지, 클 놈치고 좌충우돌 안 하는거 봤습니까. 그림도 마찬가집니다. 보이는대로 한 마디식 지껄이고 쥐꼬리만한 지식이라도 갖다 붙여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그러면서 눈이 트이는 겁니다.(7페이지)

미술이라고 하면 주눅부터 드는 사람에게 저자는 참 시원하게도 주눅들지 말라고 첫마디를 내질러준다.
그러면서 한국미술과 서양미술, 미술평론가 동서양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참 부지런히도 종횡무진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의 이야기 보따리는 소재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풀어놓는 주제도 내용도 다 참 부지런하다.
칼럼형식의 글들인지라 뭔가 일관된 주제하에 일목요연하게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시종일관 강조하는게 있다.
바로 어려워말것. 자기가 느끼는대로 느낄 것, 그리고 그 느낌을 이야기하는데 부끄러워 말 것.
독자가 오역을 한다고 항의할 미술가는 없으니....

그래도 뭔가를 느끼려면 부지런히 잡다하다고 느껴지더라도 이것 저것 읽고 알아나가는게 또 그림을 보는 방법이란다. 
관련된 신변 에피소드라도 하나 알면 다시 보이는게 그림이고 그러면 못보던게 보인다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은 아주 잘 쓰여진 책이다.
온갖 장르의 미술을 넘나들면서 그는 미술의 세계로 독자와 여행을 한다.
마치 미술과에서 아주 친절한 큐레이터와 동행하는 기분이랄까
그림에 대한 에피소드나 그림이야기도 탁월하지만 그 그림을 넘어선 사람이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 하나 놓칠 것 없는 명강사라고나 할까?

가끔은 그런 자의식이 강해서인지 느닷없이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가 툭툭 튀어나와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뭐 그쯤은 그의 친절함에 비하면 참아줄만하다.
책을 덮을때쯤이면 그를 따라 나도 미술관에서 황당하면 황당한대로 창피하면 창피한대로 한 번 떠들어볼까 싶은 생각도 새록 새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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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림 같다 - 미술에 홀린, 손철주 미셀러니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절판


풍속화는 삶의 풍경을 그린다. 아니, 풍경이 된 삶을 그린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바라보는 삶이다. 감상용 삶을 풍속화는 그린다. 누구에게나 삶은 절실한 고통과 짜릿한 쾌감이 동반하는 사이다 그러나 삶이 풍경화될 때, 그 삶은 애환을 지워버리는 객체가 된다. 풍경 속의 삶이 개인의 삶의 거죽을 뚫고 들어오기가 지난하다. 실감하는 풍속화가 드물다. 풍속화는 풍경으로서의 삶을 그리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삶의 피돌기를 자극함으로써 생명을 얻는 것이다. -39쪽

조선의 초상화는 꾸미지 않는다. 오로지 맨얼굴 맨정신이 초상화의 목표다. 신분을 과시하고 자기현시적인 중국 초상화나 바림기법에 의지해 회화적 효과를 드러내는 일본 초상화와 다른 점이 거기에 있다. 겉을 보되 속을 꿰뚫는 조선 초상화가의 관찰력은 그들이 갈고 닦은 붓의 기량과 오차가 없다. 오로지 정신의 전달에 매달리는 장인 의식은 형식이 내용을 장악하는 귀한 작례를 펼쳐 보였다. 성형 수술 하지 않는 얼굴, 그것이 피카소와 조선초상화가의 차이다.-62쪽

멋을 아는 소인묵객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것은 무릎연적이다. 수식이나 분단장 하나 없이 그저 옴팡지게 솟은 언덕모양으로 생긴 연적이다. 이 연적이 왜 사내 맘을 사로잡는가.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종갓집 며느리의 심덕을 닮았다면 무릎 연적은 규중 새악시의 부끄러운 무릎을 모방했다. 그러나 젖가슴이라 부르기 차마 민망하여 무릎으로 둘러댔을 뿐, 자태는 여축 없는 여인의 봉긋한 그것이다. 밑구린 옛 시인 하나가 이름을 숨기고 쓴 무릎연적에 대한 시에 사내의 심중이 고스란하다.

어느해 선녀가 한쪽 젖가슴을 잃었는데(天女何年一乳亡)
어쩌다 오늘 문방구점에 떨어졌네(今日遇然落文房)
나이어린 서생들이 손 다투어 어루만지니(少年書生爭手撫)
부끄러움 참지 못해 눈물만 주루룩(不勝羞愧淚滂滂)-117-118쪽

고갱의 작품 중에 <눈덮인 퐁타벤>이란게 있습니다. 경매에 출품됐는데, 무식한 경매인이 위 아래를 모르고 옆으로 든 채 값을 불러나갔다는군요. 아무래도 이상하기에 그 작품 제목이 뭐냐고 누가 물었대요. 그랬더니 경매인이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답했답니다. 옆으로 보니 폭포처럼 생겼던 거죠. 잘도 끌어다 붙였지만, 값은 겨우 7프랑에 낙찰됐답니다.

******** 칸딘스키는 옆으로 놓인 자기 그림을 잘 못봐서 추상회화를 열었다지만 저 경매인은 그림값을 확 낮춰버렸군! 근데 그림이 제대로 놓여있었어도 고갱이 당시 화단에서 받던 대접을 생각하면 저 이상 받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저 경매인 나름대로 순발력은 있구만....생각하기에 따라선 나름의 멋도....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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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6-05-19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철주의 글이군요. 그 양반 참 글발이 끝내 주던데...

바람돌이 2006-05-20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 정말 글발 끝내주더군요. 특히 앞 머리말이요.
이 책 아직 보는 중인데 중간 중간 필요한 부분 메모하는 식으로 그냥 적는 글입니다. ^^

비로그인 2006-05-2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이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좋은문구가 많죠.

바람돌이 2006-05-24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 안녕하세요.
이 분이 글을 참 잘쓴다는게 느껴지는데가 참 많더라구요. 그냥 하는 말 같은데 묘하게 설득력을 가지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