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2권의 고고학 관련 책을 연달아 읽게됐다.

알려진것만 30여종의 인류가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지 묻는 제목부터 흥미를 유발하는 책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사실 이런 제목의 책 치고 네이밍센스만큼 책 내용이 따라주는적이 없었던지라 별 기대 없이 잡은 책이다. 앗 그런데 이 책 생각보다 즐거운 책이다. 읽는 내내 오오오 하면서 읽은 부분이 꽤 많다.

흑요석은 구석기 시대의 획기적인 발명품 중 하나다. 아주 섬세하고 날카로운 첨단 재료였지만 이것의 생산지가 한정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연구성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발굴되는 흑요석의 원산지는 백두산이며, 남해안에서 발견되는 흑요석 뗀석기의 원산지는 일본 규슈란다.
백두산에서 한반도를 지나 일본 규슈까지 연결되는 구석기시대의 흑요석루트라니....
흑요석을 구하기 위해 이동하는 구석기인들을 상상하는건 너무 힘든데 고고학은 역시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먹도끼라는 유물 하나가 어떻게 인종차별적 논리의 근거로 이용되는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가 어떻게 서구의 제국주의적 인종 차별 논리를 깨는지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가장 재밌는건 역시 제목에 있는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지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대목인데 그 논리가 상당히 재밌다. 유발 하라라가 <사피엔스>에서 같은 주제를 심도있게 다루면서 공동페를 이루는 힘을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얘기했던것같은데 이 책에서는 고고학 유물의 입장에서 아주 사소한 작은 유물 하나로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을 설명하는데 나름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그 유물이 무엇이었는지는 책을 직접 읽을 분들을 위해서 남겨놓기로 한다.

인류가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인 형태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두개골만으로 직립보행을 했는지 안했는지 판별할 수 있는 방법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구석기 시대의 예술 등등등

쉽게 써졌지만 고고학의 세계로 독자들을 능숙하고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다. 제목때문에 그저 청소년용 교양서가 아닌가 의심하실 분들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고고학이나 역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강력추천한다.

다음으로 잡은 책은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앞의 책과는 약간 다른 방향에서 고고학을 얘기한다. 저자가 시베리아쪽 발굴에 참여한 경험이 많았던듯 다양한 발굴경험과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시베리아쪽의 문화를 비교하며 고고학을 좀 더 폭넓게 소개하고자하는 노력이 보인다.

각 지역별로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각 유물에 나타나는지, 인류에게 중요했던 불, 술, 음악, 음식 등등의 흔적을 어떻게 고고학이 쫓아가는지를 얘기한다.
또 책 후반에서는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발달과 유물들의 현재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문제는 하고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듯하여 독자가 도대체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헷갈린다는거다. 독자는 고고학자가 아니고, 또 저자가 고고학자를 꿈꾸는 소수를 위한 입문서로 이 책을 쓴게 아니라면 전달하고자 하는 범위를 좀 더 좁게 명확히 해서 썼다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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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6-23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치 못한 분야였는데 흥미롭네요 바람돌이님 리뷰를 읽고 오른손 잡이가 왜 많아졌는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바람돌이 2020-06-23 10:56   좋아요 1 | URL
저도 한번도 딱히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읽어보니 아하 싶더라구요. 도구를 사용하는 쪽의 뇌와 관련된다네요. 나머지는 책에요. ㅎㅎ
 

이제까지 많은 연구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쑥과 마늘의 의미를통과의례, 빛과 하늘의 신화, 곰과 호랑이의 토템 등 다양하게 해석해왔다. 그런데 단군신화의 진짜 의의는 바로 유라시아의 보편성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핀란드에서 태평양 연안의 캄차카까지 곰과 관련된 신화가 없는 부족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지역에서는 기나긴 겨울을 지나 등장하는 알싸한 곰마늘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곰마늘의 맛과 향에서 단군신화에서 잊혀진 또 다른 이야기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 P139

구제발굴은 건물이나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땅속에 있는 유적이 불가피하게 파괴될 때 공사에 앞서 미리 유적을 발굴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건설 공사가 많아지면서 한국에서는 전제 발굴의95% 이상이 구제발굴이다. 정말 중요한 유적이라면 아예 공사가중단되거나 유적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발굴이 끝나면 건물들이 들어서고 영영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된다.
- P194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1954년에 세계 각국은 전쟁으로부터문화재를 보호하는 취지에서 헤이그 문화재보호조약을 체결했다.
전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해도 그 나라의 문화재를 불법으로 없애거나 약탈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는 유럽의 열강들이 경쟁적으로 상대국의 문화재를 폭격하고 약탈했던 것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문화재 약탈의 한쪽 측면만 본것이다. 서구 열강은 그때까지 전쟁과 침략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나라들에서 약탈한 문화재에 대해 어떠한 보상이나 대책도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유물을 빼앗긴 나라들은 상대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유물을 반환 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만약 이집트가 영국을 침략해서 승리했더라도 영국의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피라미드의 유물이나 미라에는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헤이그 조약이지만, 실제로는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열강들이 약탈한 문화재를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되었다. 즉 헤이그조약은 국제사회에서 약탈된 문화재를 반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버린셈이다. 실제로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 국가들은 대부분 독립했지만, 문화재의 제대로 된 반환은 거의 없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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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매력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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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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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와서는 역사에 대한 콘텐츠는 어쩌면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넘쳐난다.

그런 콘텐츠들 속에서 역사e가 가지는 강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테일이 가지는 힘을 한껏 밀어붙인다는데 있다.

 

역사학계의 주류적인 흐름은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역사를 거대한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그 속에서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친, 또는 당대의 주도적인 정치, 사상, 경제, 문화분야들을 연구하여 그것의 법칙성을 찾아냄으로써 역사가 오늘날과 미래를 살아가는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연구는 당연히 수많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만들어나간 그 세밀하고도 풍부한 경험들을 놓칠 수 밖에 없다.

그것들을 가지치기하지 않고 살려두다보면 역사는 도대체 뭘 얘기하자고 하는지 알 수없는 난해한 덩어리자체가 되버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버려진 것들, 작은 것들이 모여서 인간의 삶의 풍부함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또한 분명한 진리이다.

역사는 거대담론만으로 절대 완성될 수 없다.

역사는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수많은 인간군상들은 집단성만큼이나 하나하나의 개별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과 고민의 지점이기도 했다.

역사e가 위치하는 지점이 바로 고민의 지점, 이곳이다.

 

역사e 1권에 이어 2권에서도 역사e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실들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기존의 역사적 흐름과 접목해내고 그것의 의미를 되살려낸다.

 

1부에서는 주류역사에서 버려졌던 많은 사람들을 복원해내고 있다.

조선시대 주류담론을 생산해내는 것은 사대부 지식층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그것을 유통시키는 존재가 없었다면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자로서의 책쾌를 다시 이곳에 불러낸다.

노비 출신의 시인 정초부(초부는 나뭇꾼이란 뜻이니 제대로 된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한 존재다)는 그의 시를 짓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평생 양반들이 '노비가 시를 짓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라는 결국 구경거리의 신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런 그의 속내는 한 편의 시로 전해지는데, 평생을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시짓는 노비로 대접받아야 했던 시인의 씁쓸함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강가에 있는 나무꾼 집일 뿐

과객 맞는 여관이 아니라요

내 성명을 알고 싶다면

광릉에 가서 꽃에게나 물으시오

 

조선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의 삶과 그 당시로는 참 드물게도 그런 부인을 내조했던 남편 박유산의 삶도 흥미로웠다.

자신이 기르던 아이가 왕이 되었을 경우 판서보다 높은 품계를 받았던 유모의 존재

역사속에 묻혀 조명되지 못한, 그러나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운동의 사이를 메웠던 활빈당

조선의 장애인 인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세종실록의 기록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에게

현송(거문고를 타며 시를 엂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 세상에 버릴 역사와 삶이 아무것도 없다하겠다.

 

2부에서는 사라진 것들을 되살리는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역사시간에 시험용으로 이름만 외웠던, 그래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진 책인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 책을 복원해낸 사람들. 그리고 실학자 서유구를 오롯이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다른 실학자들이 제도의 개혁을 주장할 때 서유구는 밥먹고, 씨 뿌리고 거두고, 땀흘리는 일상에서 개혁은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바지를 걷고 밭을 갈고, 꽃을 가꾸고 옷을 지어입으며 이 책을 완성하였다.

온갖 농사와 의식주와 건강법,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망라한 이 백과사전은 내용의 방대함에 국가기관에서도 번역을 포기했는데 40여명의 소장학자에 의해서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해낸 학자들이 어쩌면 서유구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은 이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일본의 군용모피를 만들기 위해 거의 멸종되어진 우리 시골마을의 삽살개를 다시 살려낸 사람들,

일본의 공업용 원료로 사용될 소금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밀려난 우리 전통 소금 자염. 너무도 쉽게 다들 천일염이 전통소금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들을 찾아 묻고 물어 원래 끓여서 만들던 자염의 제조법을 되살린 사람들

되살려낸 것 그 자체도 소중하지만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되살려내는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2부 마지막은 야스쿠니신사와 도쿄전범재판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2부의 소제목에는 어울리지 않는듯 보이지만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들, 하지만 아직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전쟁의 신으로 또는 일본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으로 둔갑해버린 조선인 강제징병자 2만 1000여명.

우리가 잊는 순간 그들은 그 억울함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그들의 고향 땅임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반환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3부는 시대의 맥박, 살아있다는 표현으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해냈던 순간들을 되살린다.

임진왜란 당시 초기의 열세를 뒤집어낼 수 있었던 조선의 화약기술의 발전과 비격진천뢰

의성김씨 명문가 종손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파락호로 살면서 집안의 전 재산을 거덜낸 줄 알았으나, 그가 죽은뒤에야 밝혀진 진실은 그 많은 돈을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낸 애국지사였다는 것. 독립운동의 역사에 김용환 그 이름 석자를 조용히 올려본다.

시집에 가져갈 장농값마저 빼앗아가버려 평생 시댁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했던 딸의 시는평생 원망스러웠던 아버지에게 시를 쓴다.

 

................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리

내 생각한 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어쩌면 그 따님마저 이토록 의연한지...

평생의 원망을 저 하나로 날려보낼 수 있는 의연함이 명문 집안의 가풍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와 함께 너무 평범하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사소해서 잊혀진 6264인의 독립운동가들을 오늘의 역사에 불러내본다.

집을 나간 장부는 뜻을 이룰때까지 살아돌아오지 않는다면 2개의 폭탄을 쥐고 상하이 홍커우공원으로 향했던 윤봉길의사의 마음과 6264인의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오늘 다시 깨닫는다.

 

역사e가 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6264인의 독립운동가를 살려내는 것.

너무 사소해서 작아서 평범해서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것들. 하지만 그것들을 전체로서 오롯이 살려낼때만이 기존의 역사의 뼈대에 살이 붙고 근육이 붙고 피가 흘러 제대로 온전히 바라봐줄 수 있는 것들. 이런것들을 살려내는 그 첫걸음.

이것이 역사e가 하고자 하는 것, 역할이 될 것이다.

 

때때로 방송을 의식한 과장이나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도 보인다.

예를 들면 17, 18세기의 조선은 폐쇄된 나라라는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이미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외국어를 가르치고 외교관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었으므로 폐쇄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는 서술의 경우이다.

물론 조선은 역관을 국가에서 주도하여 길러내고 있었고 이들이 외교에서 일정 역할을 담보한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조선의 지배구조나 개별정책이 아닌 조선의 외교정책의 기본틀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 시대 조선의 결정권을 가진 것은 사대부이지 역관이 아닌 것이다.

 

또한 조선의 장애인정책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 정조때의 재상이었던 체제공을 시각 장애인으로 표현하고있는데 이는 얼핏보면 두 눈이 모두 안보였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런데 체제공의 장애는 사시이다. 체제공의 초상화를 보면 그가 사시였던걸 알 수 있는데, 이 정도의 장애로 아무 부연설명없이 시각 장애인이란 표현을 쓰는건 지나친 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송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 말자.

실수라거나 잘못알았다면 고치면 그만이지만 방송효과를 노린 의도된 과장이라면 이 자체로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

어떤 목표를 향한 과장, 왜곡은 항상 그 부작용이 더 컸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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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세계사 3 - 로코코의 여왕에서 신의 분노 흑사병까지, 화려하고 치명적인 유럽 역사 이야기 풍경이 있는 역사 3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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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표지에 보면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가르친다면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 J.R. 키플링(정글북 작가)"

 

이 책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출판사의 선전문구이다.

아 근데 나는 이 한 줄의 글이 어찌나 거슬리는지....

영국인 키플링이 어떤 맥락에서 저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 말을 한 키플링이 역사를 제대로 교육받은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키플링은 아주 견고한 제국주의자의 논리로 무장하고 그 논리를 문학으로 전파했었다.

 

         백인의 의무    -키플링-

백인의 의무를 다하라

너희가 가진 최정예를 파견하라

용사들은 쉽게 못 돌아올 것이니

새 백성들은 교화할 일이 너무도 많은 탓이라

무력도 불사해야 하리라

참으로 미개한 원주민들,

막 포획되어 아직 야수와 같은

사납고도 유치한 이 무리들에게는

 

 

식민지 경험을 한 우리는 키플링이 말하는 바 미개한 원주민들에 속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최정예 군대에 의해 무력을 통해서라도 교화를 받아야 하는....

출판사가 어떤 의도로 저 문구를 광고 문구로 선택했는지 그 의도는 알겠으나,

이 의도가 읽는 독자들에게 과잉 해석되어 마치 지금 학교의 역사교육이나 어린 시절의 역사교육이 재미가 없어서 내가 역사를 못했다는, 그래서 역사교육이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통한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귀결되어버리는 걸 자주 목격했다.

물론 이것은 출판사의 본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의도와 달라지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야기라는 형식 또는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스토리텔링은 결국 역사교육의 방법론일 뿐이다. 효과적인만큼 한계도 분명한..... 

방법론을 본질적인 내용으로 치환해버리는 오류를 조장한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일까?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별게 아니다.

이 책은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이다.

그냥 재밌는 이야기... 더더구나 저자의 입담과 글솜씨가 좋아서 상당히 재밌게 읽히는 이야기.

어릴 적 할머니같은 어른들에게서 귀를 쫑긋대며 듣던, 또는 몇권 안돼서 아끼고 아끼며 읽던 동화책속의 이야기들.

이야기들은 재밌게 읽으면 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즐겁게 읽어 달랬다.

쓸데없이 과도한 의미무여를 할게 아니라는거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건 꽤나 즐거웠다.

'스캔들'이란 말 자체의 사전적 의미가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지 않은가?

원래 무난하고 도덕적인건 재미가 없다.

얘기 중에서도 뒷담화가 재미로는 최고다.

세계는 넓고도 오래됐으니 웃기고, 슬프고, 부도덕하고, 충격적인 인물들, 사건들은 넘쳐난다.

뒷담화를 할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거다.

그들의 사생활을 엿보고 본격적으로 뒷담화를 해보는건 재미의 영역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물론 최소한의 말솜씨는 있어야겠지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이야기꾼을 잘못 만나면 얼마나 썰렁해지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인 이주은씨는 상당히 숙련되고 세련된 이야기꾼이다.

걸쭉한 입담은 아니지만 조근조근 맛깔나게 말을 버무릴줄 아는 이야기꾼이다.

 

또한 책속 각 장의 부제들을 보면

'합스부르크 가문, 악마를 낳다' '여왕의 연인, 그리고 슬픈 부인', '오스만 제국의 올드보이', '왕의 자리를 탐낸 꽃미남'......

이런 걸 선정적이라 하던가?

이런 제목들 치고 실제 내용이 부실하지 않은 경우가 드문데 의외로 이 책은 내용도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덕분에 벌써 3권까지 나왔고 나 역시 1-3권을 다 읽었다)

이런 글들의 특성상 전체적인 내용에서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빼거나 ~카더라 식으로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면서도 필요한 자료나 증거들은 성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자료들을 잘 수집하고 버무려놓았다.

또한 흑사병의 전파과정이나 이유들, 마녀재판의 이야기,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렸다는 조지 카버의 일생 같은 이야기는 선정성과 상관없이 생각해볼 거리들을 제공하여 약간의 지적 만족감을 느끼게도 한다.

 

이정도면 좋은 이야기책이라고 할만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괜히 역사책이라고 우기지 않는다면 그냥 역사를 소재로 잘 만든 이야기책으로 읽는다면 충분히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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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9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14-12-09 23:28   좋아요 0 | URL
우와 돌바람님 정말 오랫만이죠. 뭐 제가 게으르고 무심해서인지라 죄송하기만 해요. ㅠ.ㅠ
잘 지내시죠? 오랫만에 들어와서 여러분들이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 인사해주시면 너무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그래요. ㅎㅎ
집 주소는 그대로예요. 늘 게으른 저인지라 이사같은 어려운 일은 못한답니다. 반드시가 아니면요. ^^
자주 들를게요.

바람돌이 2014-12-12 09:45   좋아요 0 | URL
돌바람님 정말 감사하게 책 받았어요. 어젯밤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책이 와있더라구요.
예전에 등단하셨다는 얘기는 잠시 들었지만 이후 전태일 문학상까지 받으신지는 정말 몰랐어요. 의미도 큰 상이잖아요. 제 이름을 넣은 사인본 책은 진짜 감동이에요. 이런 훌륭한 작가님과 아는 사이라니, 제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

귀한책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서재를 막아놓으신건가요? 님의 서재로 들어가지지가 않네요.
또 하나 따로 써주신 타이프체 편지는 진짜 타이프인가요? 아님 새로운 글씨체?
오랫만에 타이프 글씨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