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세로 세계사 1 : 발칸반도 - 강인한 민족들의 땅 가로세로 세계사 1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원복씨라면 학습만화계에서는 스타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어린시절에도 그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면서 자랐는데 요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니 하나의 책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는다는건 정말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요즘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유럽에서 벗어나서 세계를 확대하고 있다.
유럽 중심의 세계 - 정확히 말하면 서유럽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동유럽,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기 시작한 것.
일단 이원복씨가 쓰면 기본은 팔려나간다는점에서 그가 이런 지역들을 써준것이 고맙기만 하다.

이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실제로 책의 내용중에서 발칸반도를 다룬 부분은 반정도밖에 안된다.
책의 앞 반 정도는 민족과 민족주의, 민족국가, 국민국가, 제국과 제국주의 등의 설명에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을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지만 실제로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개념들이다.
발칸반도는 특히나 민족과 종교, 역사가 복잡하게 뒤얽혀 그들 내부의 민족주의들이 상호 끊임없이 충돌하고, 또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해가 맞물리는 곳이었으니 더욱더 이러한 개념들의 정리는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소 지루하더라도 저자는 이런 개념정리를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개념 설명은 대체로 별 무리없이 민족과 국민국가의 성립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는 솔직히 이 설명이 얼마나 이해되어 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워낙에 단일민족의 신화의 맹목성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또 실제로 그런 민족이라 하면 혈연의 단일성부터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가 하는 설명은 피부로 와닿기에는 무리가 많다.
그래서 어쩌면 이원복씨의 이 시리즈 중 이 책만큼은 중고생용이 되어야 하지않을까 싶기도 하다.

발칸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방정교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발칸반도에는 카톨릭,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가 믿어지지만 역시 중심을 이루는 것은 동방정교이기 때문이다.
역시 책은 동방정교의 성립과 역사 그리고 카톨릭과 비교되는 그만의 특징을 찾아내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생소한 종교의 하나이기도 하기에 무척이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동방정교와 카톨릭의 분리에서 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카톨릭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형성하는 동방정교의 역사가 재미있게 정리가 잘 되었다.
개인적으로 동방의 이콘 문화가 어떻게 발달할 수 있었을까가 궁금했었다.
우상숭배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성상파괴운동을 주도한 비잔틴 제국이지만 그들 역시 야만족이라 불리던 이민족인 슬라브족이 이동해오자 그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다시 이콘을 유행시켰던 상황은 결국 종교라는 것이 필요에 의해 자신의 주장이나 모습을 얼마나 간단히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발칸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좀 더 자세하게 다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원래 이 지역에 살던 민족들외에 이후 대규모의 슬라브족의 이동. 그리고 오랜 오스만 제국의 지배 등은 이 지역의 민족구성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슬람의 지배기간동안 개종자도 많이 생겼는데 보통은 이 개종이 마을이나 촌락단위로 이루어짐으로써 이후 종교적인 분열의 싹까지 만들게 된다.
그것이 이후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인종 청소, 코소보사태를 만들어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책을 읽다보면 민족이나 종교는 다르지만 수백년의 세월을 같이 살아온 사람들이 결국 서로를 말살시키고자 싸우는 광경은 이것이 인간사회의 일이라고 믿고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의 공존, 종교의 공존이란것은 결국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것도 꽤 오랫동안 공산주의라는 체제하에서 동지적 연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서로를 향한 증오의 총구를 들이댈 수 있다는 것은 섬뜩한 현실이다.

이원복씨는 이렇게 발칸의 현대사까지를 서술하면서 닫힌 민족주의, 국수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사상인가를 열변한다. 하지만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여전히 민족주의다.
열린 민족주의라는 것이 그것.
하지만 저자가 앞서 했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비교하면 이러한 결론은 지나치게 안이한 결론이라는 비판을 버릴 수 없다.
열린 민족주의라는 것은 결국 본질은 그대로 둔채 얼굴에 살짜 분만 바른 민족주의에 다름 아니다라는 것.
실제로 책의 마지막 문장들

내나라, 내민족, 내 문화에 대해 강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편 세계와 인류를 함께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식을 지니는 것이 열린 민족주의지.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세계로 진출하며 문화국민, 문화민족으로 세계를 당당하게 끌어안는 정신과 자세 그래서 세계의 중심에 서는 것이야말로 바로 열린 민족주의로군요.

일면 도덕교과서에 딱 나올법한 평범한 결론이다. 하지만 이런 민족주의가 결국 기존에 말한던 민족주의와 뭐가 다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누구든 평화시기에는 민족주의에 대해 저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저런 민족주의가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리해질때면 어떻게 다른 이에 대한 가혹한 폭력으로 전환될수 있는가를 발칸의 역사는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결국 이원복씨는 제대로 잘 말해놓고 마지막에 가서 결론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해버리는 우유부단함을 보인다.
만약 말하기가 힘들었거나 결론을 내지지 않았다면 그냥 결론 없이 열린대로 두어도 될 법한 책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민족주의의 유령은 참 떨치기 어려운가 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7-09-2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완다의 민족간 참극이나 보스니아의 참상들을 읽다 보면, 정말 민족이나 국가라는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넘들에 대해 너무도 증오심이 끓어올랐습니다.
정말, 민족이나 나라 같은 것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07-09-28 22:21   좋아요 0 | URL
민족이나 국가라는 것은 결구 그 태생부터 차별을 전제하고 나온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과 비국민, 민족과 비민족 그래서 내부자가 아닌 타자에 대한 폭력을 필연적으로 전제한 것이라는 거죠. 요즘은 제대로 된 세상이 되려면 정말 님의 말처럼 민족의 경계라는 것부터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저도 듭니다.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일본 역사를 움직인 여인들
호사카 유지 지음 / 문학수첩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일단 이 책의 저자 이력이 상당히 독특하다. 일본인이면서 한일관계사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가 결국 귀화하여 눌러앉은 이다. 내가 알수는 없으나 이런 경력이 그리 흔할 것 같지는 않다. 그의 그런 이력만큼 이 책의 내용은 상당히 독특하다. 이런 류의 책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가 지나친 흥미위주로 가면서 한없이 가벼워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일단 치명적인 위험은 피해간 듯하다. 일본의 여성들을 다루면서도 역사적인 배경과 시대상황을 읽어내는데 늘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당시의 여성들을 통해서 일본에서의 여성의 지위의 변천, 부수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역사를 움직여 나가고자 했던 그들의 삶,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상이 변해나가는 모습까지 일본사 개설서로서의 역할까지 꽤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첫번째로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주장은 일본 중세 이전의 역사에서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의 역할을 엄청나게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7세기까지  100만에서 200만에 이르는 인구가 한반도에서 유입되었고 이들은 이 시기 일본 역사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도래인들의 존재나 그들이 일본 문화나 역사에 끼친 영향력이 꽤 컸다는 것은 뭐 대부분이 알고있는 얘기지만 이 책에서 얘기되는 영향의 정도나 한반도와 일본의 밀착정도는 기존에 알고있던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가야계 도래인 출신인 천황으로부터 천황을 능가하는 권력을 누리며 일본의 다른 귀족집안과 권력다툼을 벌였던 소가씨 집안. 백제 멸망기에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왕자 풍이 어쩌면 일본 사이메이 천황의 아들인 나카노오에 왕자가 아닐까라는 가설. 그리고 동시에 연결된 것으로 백제계로 추정되는 천황들 등. 그의 주장대로라면 일본이든 한국이든 고대사를 완성하려면 이 두나라의 하나처럼 밀착된 관계를 파헤치지 않고는 반쪽의 역사가 될 정도이다. 일단 이러한 주장들의 진위 여부는 내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고, 다만 그 주장의 대담성이 참 흥미롭다. 실제로 한일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미묘한 문제인가 말이다. 국내의 학자라면 국수주의자가 아니고서는 이정도까지 논지를 펼치기는 어렵다. 정말 명명백백한 학문적 증거가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그런데 어쩌면 일본 출신 귀화 한국인이라는 그의 존재가 이런 주장도 맘껏 펼칠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대담한 가설이 한일관계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있는 기폭제나 문제제기가 될 수 도 있지만, 반대로 이것이 잘못 작용하면 쓸데없는 민족적 자만심으로 연결될수도 있는 문제가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한일관계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든 상태고 옛날에 우리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줬다는게 무슨 대대손손 길이 이어갈 훈장인것처럼 보는 분위기니... 그런데 이런 태도야 말로 국수주의의 온상이고 또한 한일관계와 역사를 발전적으로 전망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 

중세 막부시대로 가면 일본의 지배층 여성들의 현실 정치에서의 역할은 고대에 비해서 확실히 줄어든다. 고대의 여성이 독자적인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한 이가 많았다면 중세의 여성들은 이제 누구의 아내 또는 딸로서의 지위가 일차적이게 된다. 뭐 고대라고 해서 그런면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고대에는 누구의 아내 딸이라는 지위에서 출발하지만 귀결은 그 자신의 독자적인 지위의 획득으로 이어졌던 반면 중세 이후가 되면 아내와 딸이라는 지위에 머무는 수준에서 그녀들의 역할이 펼쳐진다는 거다. 헤이시의 난에서 패배한 겐지 가문의 도키와 고젠은 그녀의 미모를 이용하여 겐지가문의 후손 요시쓰네를 결국 헤이시를 무찌르고 겐지가문의 시대를 만드는주역으로 키워낸다. 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순신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 곁에 나긋나긋하고 약하디 약한 모습으로 보여졌던 요도기미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다. 그녀는 단순히 토요토미 곁은 꽃같은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하고자 했던 여성으로 그려진다.

에도 시대로 가면 당시 조선에서 전래되었던 성리학이 사회의 통치이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성리학이란 이념은 조선에서나 일본에서나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족쇄였음 역시 흥미롭다. 여성들의 정치계로의 진출이나 역할이 모두 현저히 줄어들어버리니.... 이제 여성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아내와 어머니라는 집안 울타릭 갇혀버리는 것도 두 나라가 어찌나 똑같은지.... 

고대에서 근대까지 역사속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의 삶을 통해서 바라보는 일본사는 꽤나 흥미롭다. 내가 일본사를 좀 더 제대로 알았더라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남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낭메고 돌아본 일본역사
임용한 지음 / 혜안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여행기가 차고 넘치지만 유적군들을 중심으로 하는 답사기를 찾으려니 의외로 찾기 힘들다.
번역서도 문화사 쪽은 잘 안보이고....
겨우 찾아낸 책이 이 책이었다.

재기발랄함이나 톡쏘는 유머의 맛 이런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대신에 나름대로의 진중함과 성실한 고민들이 잘 우러나오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사 전공자다.
누구나 직업은 속일 수 없듯이 그의 여행은 끊임없이 일본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비교하고 그 차이와 동질성을 고민한다.
그 고민들이 아직 뚜렷한 결실을 맺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새겨들을 만하다.

히메지 성을 보면서 그는 아름다운 공포라고 했다.
나 역시 책으로만 봐도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는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쌓은 왜성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
몇년전 왜성답사를 준비하면서 강의를 몇꼭지 들은게 있었는데 그 때 들은 왜성의 구조는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전쟁을 통해 발달한 성곽과 기본적으로 평화가 훨씬 오래 지속된 지역의 성곽은 이렇게도 다른 것이구나.
단순히 성곽의 튼튼함이나 방어의 효율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성곽은 그 자체로 가미가제 특공대나 태평양전쟁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의 막무가내식 돌격성, 패전을 맞아 할복으로 죽음을 맞는 그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히메지는 대표적인 일본 관광사진으로 흔히 쓰일만큼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그러나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하는걸 상상하는 순간 그대로 전율이 된다.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이나 단숨에 정복되거나 정복하는게 불가능한 수많은 피를 뿌려야만 하는구조 그 자체.
그곳에 아름다운 공포라는 이름은 어쩌면 그리도 딱 들어맞을까 싶다.

흔히 일본인들은 작은 것을 잘 만들고 섬세하다고들 한다.
그리고 그런 일본인의 심성은 땅이 좁은데서 나오지 않았겠나라고 쉽게 얘기들을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면에서도 역사학자 답다.
땅의 넓고 좁음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집권체제라는게 거의 성립한 적이 없는 일본의 역사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일본중세와 메이지유신 이전의 역사는 지방 봉건영주격인 다이묘가 통치의 중심단위이다.
방어를 위해 최대한 밀착된 도시구조를 만들고 따라서 당연히 공간을 극단적으로 활용해야만 했던 그들의 기나긴 역사에서 일본의 주요 심성의 근원을 찾아보고자 한다.
땅이 좁아서라는 막연한 대답보다는 훨씬 공감이 가는 고민이다.

이 책의 장점이 이런 것들이다.
문화재 자체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는다.
문화재가 형성된 시대의 역사를 살피고 거기에 어떤 사람들이 관련되어있는지, 그것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어떤 것들인지 늘 고민하는 저자의 자세는 참 학자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일본사 전공자는 아니다 보니 개설서를 넘어서는 설명은 힘들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자 역시 일본사 전공할려고 가는건 아니니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어렵지 않게 일본의 역사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잘 짚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 책과함께 아틀라스 1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김희균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묘한 느낌이 든다.
애초부터 어느정도 확정된 국경선이 존재했던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아프리카의 땅을 그린 지도를 보면 그 국경선의 딱딱한 직선이 당황스럽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자를 대고 확 그어놓은 선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들을 만들어냈는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넘나들던 사람들이 어느날 지도라는 종이쪼가리에 그어진 선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부족이 해체되고.....
초원의 그 수많은 유목민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느날 한 국민국가의 구성원이 돼버림으로써 이동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오늘날 그 국경선이란 지도상의 선들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다.
오로지 자본과 상품만이 그 국경선들을 무소불위로 날아다닌다.

인간의 이동의 자유를 꺾어버리고 자본과 상품만이 자유로운 오늘의 세계.
그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불행들이 책을 한가득 메우고 있다.

책은 오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들로 가득차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양상과 구체적인 원인들. 그리고 지도들.
자본이 주인인 세상이 얼마나 흉악한 세상인지가 눈앞가득 펼쳐진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부터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모리셔서라는 인도양의 조그만 섬나라까지 자본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과연 탈출구는 있을까? 인간에게 미래는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민중사 1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데 인색하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하지만 그 단위가 민족 국가로 커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역사 교과서가 국수적 민족주의로 똘똘 뭉쳐있는것도 그러하다.
민족주의라는 이념이 그나마 식민지를 거치면서 저항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할때야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이미 우리의 민족주의가 진보적 이념을 상실하고 타인에 대한 배척으로 더 기능하는 오늘에 와서도 우리는 이 이념을 버리지 못한다.
오히려 어쩌면 더 미친듯이 광분하는 모습에 소름이 끼치기까지 할 정도다.
역사학계나 진보적인 진영에서도 그 민족주의(민족적 온정주의라는게 더 맞지않을까 싶지만)에 거스르는 부분을 발견하면 멈칫거리게 된다.
그리고 참으로 편하게 침묵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를 숱하게 보게 된다.

뭐 나라고 해서 다를까?
한동안 난리가 났었고 언제든 다시 불붙을 동북공정이나 독도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나는 대부분 침묵을 지킨다.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발언에 찬성해서도 또 그 반대의견에 전적으로 반대해서도 아니다.
나는 다만 그 민족주의의 광풍이라 할만한 바람들이 뿜어내는 위험이 더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행보보다도 우리 안의 국수주의적 행동들이 나는 더 무섭다.
그렇다면 당연히 싸워야 하고 논쟁해야 함에도 나는 침묵을 지키는 비겁자다.
헛바퀴도는 감정적 논쟁을 감당할만큼 간이 크지도 못한 면도 있지만
또한편으로는 아직도 예전의 저항적 민족주의의 잔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잔영은 의외로 깊어 단칼에 쳐낼수 없을만큼 사고의 깊은곳을 지배하고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것. 우리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그래서 여전히 험난한 산이다.

비판의 칼날을 자신의 내부로 돌리는것. 그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 거기에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들어있다.
어중간한 어줍잖은 이런일도 있었지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실하게 칼날을 그어버리는, 자신에 대한 적당한 변명과 그래도 이런 좋은 사람도 있었다는식의 온정주의는 들어설 곳이 없다.
기존의 진보적이라고 하는 역사해석들조차도 자신에 대한 온정적 주저함이 있을때 하워드 진의 비판의 칼날을 비켜갈 수없다.
그래서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는 진정한 역사가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웅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략과 학살로 역사가 시작된 나라 -미국!
인디언, 흑인, 온갖 천하고 상서러운 신분의 이민자들, 가난한 하층 농민들과 노동자들
그들이 짓밟힌 역사에 어떤 식의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어줍잖은 변명을 시도하는 온갖 논의들과도 저자는 명백하게 선을 긋고 싸운다.
그 죄악을 죄악 그대로 낱낱히 고발하는 것.
또한 그 죄악을 옹호하는(의도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마찬가지인) 모든 이론과 싸우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두번째 미덕이다.

그러면 오늘날의 이 미국을 만든 것은 정녕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고통당했고, 또한 처절하게 싸웠다.
그럼에도 그 모든 싸움들이 패배하고 오늘날의 깡패 패권국가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하워드 진의 고민은 이 부문에도 상당부분 할애되어있다.
미국의 저항이 보수세력의 품안으로 결국은 포용되어버리는 과정의 단편들을 이 책 곳곳에서 만날수 있다.
아마도 이 주제는 2권에서 본격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지만 1권에서도 그 역사적 연원들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 덕분에 자본의 여유가 생긴 지배층들이 저항세력들을 포섭해가는과정들이 조금씩 눈에 띈다.
자본과 지배층에 향한 칼날을 무디게 해줄 중간층의 형성과정이 얼마나 기만적인 전술이면서도 잘 먹혀들어갔는가 말이다.
미국의 오늘을 만든 이 지점이 2권에서 어떻게 펼쳐질지가 사뭇 기대된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7-03-03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에요. 책의 강점을 잘 설명해 주셨어요. 너무너무 탐나지만, 묵히지 않고 읽을 수 있을 때 살래요. 흑흑...ㅠ.ㅠ

홍수맘 2007-03-03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진주 2007-03-0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침묵과 저의 침묵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저는.....논쟁할만큼...아는..게..없어서뤼....=3=3=3

클리오 2007-03-0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흑... 이 책 봐야 되는데.. 여기저기서 좋은 평 만빵에다 하워드 진 아저씨의 책인데... 가격도, 두께도... 어흑흑...

달팽이 2007-03-03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좋습니다. 바람돌이님.
저도 국기에 대한 경례할 때
손을 올리기보다
태극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으로 여깁니다.

바람돌이 2007-03-0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좋은 책이에요. 하지만 분량이 워낙 만만찮으니 여유 있으실때 천천히 읽으세요. ^^
홍수맘님/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진주님/알면서 침묵하는거 그게 훨씬 더 나쁜거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뭐 그렇다고 제가 제대로 아는것도 아니지만...ㅠ.ㅠ
클리오님/책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아요. 하지만 워낙에 분량이 많다보니 예찬이 데리고 짬짬이 읽기엔 어려울거 같네요. 생각해볼 문제거리들을 많이 던져주거든요. 읽던 와중에 시간이 조금만 더 되었더라면 중간 중간에 생각이 필요한 지점들을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결국 메모만 가득찬 책으로 남고 말았어요. 막판에 진을 뺐더니 다시 정리하겠다는 생각은 안드네요. 님은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있으시면 보세요.
달팽이/국기에 대한 경례??? 딜레마죠. 제 어정쩡한 타협의 대표지점입니다. 아 괴로워요.... ㅠ.ㅠ

국경을넘어 2007-03-04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월서각에서 나온 걸로 가지고 있는데(그것도 몇년 전 서울 가는 길에 힘들게 구해서), 아직도 못 읽고 있네요

kleinsusun 2007-03-04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120%. 전 아직도 황우석 지지자들이 많은 게....무서워요. ㅠㅠ
잘 읽고, 추천하고 갑니당.^^
개학하셨겠네요. 새학기 즐겁게 시작하세요!

바람돌이 2007-03-04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촌님/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선뜻 잡기 힘든 책은 맞는 것 같아요. 전 2월달에 2권을 모두 볼 생각이었는데 결국 1권밖에 못봤어요. 3월은 여유 없는 달이니 그냥 넘기고 4월에 가서 좀 보려구요.
수선님/그렇죠. 한편으로는 웃기면서도 웃긴것 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요. 수선님도 올 봄에는 좋은 일들만 생기세요. 에릭 클립튼의 공연을 같이 봤던 그분과의 얘기가 자꾸 궁금해진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