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 중국의 세기
조너선 D. 스펜스 외 지음, 콜린 제이콥슨 외 사진편집, 김희교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먼저 저 표지의 사진
티벳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은 아슬아슬한 나무다리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무려 천년이나....
아래로는 집어삼킬듯 강물이 넘실대고,
뒤편으로는 그 누구도 범접못할 기운의 산줄기가 뻗어있다.
다리 위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묵묵히 진행된다.
중국이란 나라의 광활함을 웅변하는 듯 한 사진이다.

전족을 한 발의 벗은 모습을 이리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다.
사진속의 아름다운 소녀도 나이든 노인도 조막만한 신발속에 발을 감추고 있다.
하지만 그속의 발이 어떤 희생을 치르는지....
눈물겨운 발이다.

곳곳에 부유층의 삶과 대비되어 펼쳐지는 가난한이들의 모습은 인간의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직도 진행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청조에서도 외세 침략기에도 그리고 지금도.....
우아하게 차려입고 자신만만한 이들의 모습과 함께 펼쳐지는
가난한 이들의 삶은 더더욱 눈물겹다.

이립삼의 군중연설 장면은 그대로 하나의 선동이다.
모인 군중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그의 삐쩍 마른 모습에서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의 열정을 본다.
그들이 바라던 사회는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희생이 작았던 것도 아닌데....
같은 군중연설장면인데도 장제스의 모습과 이립삼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부르조아적 깔끔함으로 무장한 장제스의 모습에서 열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로지 냉혹한 권력욕이 보일뿐.....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전쟁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를 절절하게 표현하는 한장의 사진
125쪽의 공포에 휩싸인 거리...
발디딜틈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피난행렬로  꽉찬 거리는 그대로 공포의 도가니다.
어디로 가야하나....
전쟁의 거리는 아프고 고통에 찬 사람들이 넘쳐나나 그대로 일상이 되었을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빛
고통이 넘쳐나면 그것도 무감각해지나 보다.

어린 홍위병들에게 머리를 강제로 깎이고 '흑방의 단원'이란 팻말을 목에 건 채 절을 강요당하는 모습은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또한 마오어록을 손에 쥔채 열광하는 홍위병의 군중 모습은 섬뜩하다.
중국의 혁명가들이 그토록 원했던 중국사회주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텐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사진은 광기를 보여주나 그 원인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늘의 중국은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고 있을까?

사진에 충격에 비해서 글은 지나치게 평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중국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어가는 정도....
그런데 읽어갈수록 불만인것은 이 책의 내용이 그야말로 서양인 독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단순히 이름의 한자표기가 병기되지 않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서양인의 구미에 맞춰진,
그러니까 그들의 시각과 틀에 맞춰진 중국 이야기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것이다.
중국의 가치관이나 중국인의 목소리를 이 책에서 들을 수는 없다.
다만 서구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잣대에서 늘 모자라는 중국의 모습만이 존재한다.

중국 혁명이 이뤄놓은 것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인지 아니면 그들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건지 알수는 없지만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이 이뤄놓은 것은 모두 지나친다.
그리고 그 혁명이 낳은 문제들은 아주 상세히 다뤄진다.
어떤 사회든 어떤 혁명이든 문제점들만 있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더더군다나 중국의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중국 혁명과 혁명가들의 고난에 찬 삶이 서구인의 낭만어린 시선에 갇혀버리고 흩어져 버리는 걸 읽어 내려가는 건 좀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사진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시리즈 영국편도 빨리 읽고 싶은데 도대체가 시간이 날까?
게다가 정말로 기대되는건 다음에 나오는 아일랜드편!

이 시리즈가 앞으로 쭈욱 많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그럴려면 많이 사봐야 될텐데...
그래야 출판사가 안 망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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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09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선물 받아서 지금 그냥 책상에 있는데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바람돌이 2006-11-09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이렇게 비싼 책을 선물해주는 분이 계시다니....
저도 소개좀 시켜 주세요. 잘 사귀어보게요. ㅎㅎㅎ
사진만 봐도 아니 오히려 사진이 주인공인 책입니다. 바쁘시면 사진만 살펴보셔도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클리오 2006-11-0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국, 중국 샀는데, 중국의 사진들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전족 사진은,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좋겠군.. 이란 생각을 절로하고.. 그래도 전 아직 다 못봤어요.. 글은 볼 엄두를 못내고 사진만 보는데도... ㅋ

marine 2006-11-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참형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어쩜 그렇게 절묘한 타이밍을 잡았는지...
 
역사용어 바로쓰기
박명림, 서중석 외 지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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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의식을 구속하고 제약한다.
더군다나 역사용어는 당연히 그냥 어떤 사실을 단순히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건을 어떤 말로 이름지를 것인가에는 그 사건의 성격과 평가가 모두 들어있다고 봐야한다.
19세기 동학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농민항쟁의 표현법인
동학농민운동, 농민반란, 갑오농민전쟁은 이 사건에 대한 전혀 다른 관점을 표현하고 있다.
농민반란을 제끼고 얼핏 비슷해보이는 동학농민운동과 갑오농민전쟁만 비교하더라도 항쟁의 주체와 주요성격을 누구를 중심으로 볼것인가에 대한 아주 큰 이견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역사용어 표현을 쓰기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무지함을 통탄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용어들을 별다른 생각없이 써왔는지...
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음도 느끼게 된다.
역사용어라는 것이 단순히 용어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관의 문제로 나아갈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  - 삼국시대에 대한 문제제기
사실 삼국시대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래된 것이었고, 따라서 교과서는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해놨다. 즉 가야는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뭐 나도 솔직히 여기에 대해서 딱히 동의한다기보다는 별 생각이 없었다.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정치 중심적이며 지배층 중심적인 생각인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왜 한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정치제제나 지배층의 지배력 정도라는 한 가지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져야 하는가? 그들이 이룬 사회체제와 문화의 성숙도는 왜 일고의 가치도 업이 배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자체를 가로막는 대답이 바로 저 중앙집권화란 개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중앙의 권력집중에 너무도 익숙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저 대답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 건 아닌지.... 생각의 전환은 늘 쉽지 않다. 그럼에도 늘 필요한 것이다.

위의 삼국시대 용어문제와 통일신라시대라는 용어문제를 제외하면 나머지 책의 내용은 모두 근현대사에 해당한다. 아무래도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다 보니 왜곡이나 용어의 혼란이 가장 심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다.

이 책의 내용들은 일률적이지는 않다. 책의 머리말에 보면 전체 내용을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1. 그동안 통용되어온 기존의 용어를 비판하고 새로운 용어를 제안하거나 대안 검토를 제안한 경우
     - 삼국시대를 사국시대로, 신사유람단을 1881년 일본시찰단으로, 소군정의 실체를 묻고 소군정이라는 말 자체가 인정되지 않음을 얘기하는 경우, 외국 국가명에 들어가는 관습적 이미지를 바꿀 것을 제안하는 경우같은 것들이다. 이 중에서 외국 국가명 표기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참 신선했다. 관습이니까 뭐 그렇게 별 생각없이 써 왔었고 고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제기를 하기가 어려웠으리라 보이는데 그 관습 자체도 필요하다면 바꿔야 함을 역설한것이 좋았다고나 할까...

2. 혼용되고 있는 용어들을 소개하고 바람직한 용어를 대안으로 제시한 경우
  - 위안부, 정신대, 공창, 성노예는 모두 같은 사실을 지칭하고 있으나 혼용되어 쓰여지고 있다. 역사적인 상황을 정확히 고려한다면 군대 성노예가 맞는 표현이나 그 단어가 주는 어감의 섬뜩함이 현재 살아계신 당사자 할머니들에게 또다른 아픔이 될 것을 고려한다면 아직은 군 위안부로 그대로 통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라는 말에 동의한다. 역사용어의 엄정함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
또 한 예로 무정부주의와 아나키즘이 혼용되고 있는데 무정부주의라는 말이 그 부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말이라는 역사적 연원을 밝히면서 아나키즘의 내용을 다시 정리해내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읽다보면 용어의 정리속에서 역사적맥락을 다시 정리하기에도 깔끔한 책이다.

3. 혼용되고 있는 상이한 용어들을 소개하고 이 용어들이 사용되는 담론의 맥락을 비교분석한 경우
   --- 특별한 대안이 제시되어있지 않고 그저 각 용어들이 사용되는 맥락을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경우이다. 마지막에 소개된 중국애국주의의 실체: 신중화주의, 중화패권주의, 민족주의를 인상깊게 읽었는데 아무래도 동북공정이니 해서 시끄러운 덕분이다. 이것은 용어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의 중국의 애국주의를 어떻게 볼것인가의 관점을 얘기하고 있다. 결론은 중화패권주의나 신중화주의로 보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앞서가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 현재의 중국의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의 수준에서 얘기할 수 있으며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더 두고봐야하지만 그렇다고 미리 앞서가서 난리를 부릴 이유는 없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논리에 우리가 그대로 휘말려드는게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어쨌든 제발 동북공정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그만했으면 좋겟다. 지금은 차분하게 학문적인 대응과 토론이 필요한 단계가 아닐런지....

4. 의미변천사를 포함하여 기존 용어의 의미를 상술한 경우
책의 전체 내용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쉽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다. 역사적으로 백성, 평민, 민중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 지를 적은 글이라든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시대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 쓰여져왔는가 같은 내용들이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의사와 열사는 어떻게 다른가" "양력과음력'의 사용 같은 경우도 편하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5.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
해방공간에서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과를 둘러싼 찬/반탁운동에 대해 찬탁이라는 용어가 성립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당시의 사회상과 좌우익의 대립을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정리하는 글도 괜찮았고, 한국전쟁을 표현하는 6.25라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반공적, 냉전적 논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글도 좋았다. 또한 6.25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새로운 평화의 페러다임을 제공하는 논리도 신선했다.

워낙에 많은 필진들이 참가하다보니 일관된 관점이나 서술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 대해 용어를 통해 사고의 전환이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민해볼 수 있게 하는 글들이 많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의 모든 글들에 동의하는것은 아니고 또 어떤 부분은 지나친 문제제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대부분이 고민을 하고 새롭게 생각해야할 이야기들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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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15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아 갑니다. 축하드려요^^

바람돌이 2006-10-16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잠 안 올때 아무곳이나 펼쳐서 한 장씩 읽어나가도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도 하구요. ^^
 
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한 대중적인 역사 쓰기는 말은 쉽지만 참 어렵다.
뭐 나와 있는 책들을 보면 보이는 것이....
재밌게 쓴다고 하는게 보면 순전히 야사 위주여서 역사라고 말하기 뭣해지는가 하면,
조금 제대로 역사적 안목을 들이대면 또 읽기 어려워지는게 이 분야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존재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추리소설을 보는듯한(약간이지만) 재미와 동시에 각종 사료와 당시의 사회상, 그리고 역사적 평가까지 놓치지 않고 두루 섭렵하고 있기때문이다.
깊이와 재미를 두루 갖추다.
이만하면 이 책에 대한 최대의 찬사를 바쳤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딴지를 걸어볼까?
읽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대부분의 장마다 이 왕이 살았더라면 하는 만약이다.
저자 역시 역사에서 만약이란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안다고 하면서도 되풀이 되는 이 말.


소현세자가 살아서 순조롭게 왕위를 계승했다면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빨리 근대화를 이루고 발전할 수 있지 訪弩뺑?
개혁군주 정조가 10년쯤 더 살고 순조가 성인이 되어 왕위를 이었다면 조선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을까?

다른 분의 리뷰들에서 이런 만약이 얼마나 순진한 환상인가는 이야기 된 것 같으니 그건 넘어가자.
그런데 나의 경우 더 걸리는건 이런 식의 발상들이 계속 얘기되면서 공통으로 배여나오는 느낌이다.
독살당한 왕들이 좀 더 강력한 왕권으로 그들의 뜻을 펼칠 수 있었다면 나라가 좀 더 잘되지 않았을까 하는...
이른바 강력한 왕권=강력한 힘=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으로 비치는거다.

저자도 얘기하고 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임진왜란때 망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조선이 망하지 않은 이유는 어쨋든 내 생각으로는 지배층 사대부의 힘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당시 다른 세계에서는 보기 힘들정도로 관료제가 발달한 나라이다.
일방적으로 왕권이 나라를 이끌어갔던게 아니라 사대부층이 권력을 왕과 분점하고 있었던 것.
따라서 왕실이 완전히 무너졌을때 그 왕실과 조선이라는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힘은 사대부들에게서 나왔었다. 또한 그 사대부들의 힘은 관료제의 힘이기도 하다. (어쨌든 지방 곳곳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것도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도 다 사대부이며 관료 내지는 예비 관료들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왕과 사대부의 힘의 역관계가 점차적으로 변해가는건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것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사대부들이 얘기하던 공론 정치를 순조롭게 추구해갔다면 오히려 조선의 모습은 더 나아질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선 후기 정치를 완전히 단박에 뒤엎어버린건 조선 후기에 그나마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던 숙종이다.
숙종이 마누라와 붕당을 완전히 갈아치우는 환국 정치를 통해서 조선 후기 정치판을 완전히 개판으로 만든 건 아닐까? 숙종대 이후에 가면 조선 사대부의 관료제는 기형화 되어버린다.
시대와 맞지 않게 쓸데없이 강력해진 왕권이 오히려 문제가 아니였을까 하는거다.
나아가서는 조선 후기의 왕들이 끊임없이 실추된 왕권을 끌어올려 사대부의 위에 서려고 노력함으로써 오히려 왕과 사대부간의 악순환을 만들어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반성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그의 반성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저자가 끊임없이 얘기하는 강력한 지도자인가? (오우... 그건 박통만으로 충분히 악몽이었다. 제발....)
책 한권으로 저자에게 지나친 혐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사대부와 왕의 관계에서 그의 일방적인 '왕 사랑'은 거슬리니 어쩌겠는가?

**************
뱀꼬리... 일본에도 탁월한 역사 이야기꾼이 한 명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이다. 근데 이 책을 보면서 자꾸 그녀가 떠올랐다. 두 사람다 공통적으로 참 글을 잘 쓴다. 그런데 두사람다 힘에 대한 숭배 열정, 국가주의 영웅주의의 모습이 겹치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 쪽이 훨씬 심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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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7-22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군요. 잘 읽었슴다. ^^

세실 2006-07-23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님의 글이 더 재미있어요....저두 생각지 못했던 시각 배우고 갑니다...

바람돌이 2006-07-2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생각은 다 다르죠. ^^ 근데 이 서평은 저도 어슬픈 생각인지라 좀 그렇네요.
세실님/그냥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뭐 확신을 가진건 아니고요. 다만 강력한 왕권에 대한 향수 비슷한게 계속 맘에 걸렸다고나 할까요. ^^

agipahak 2006-08-0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 '책 한권'이라는 말에 이제까지 쓴 글 다 지웠습니다. 정말 모르는 겁니까? 이덕일 씨의 사관은 왕사랑이 아닙니다. 님은 이덕일씨의 저작을 많이 안봐서 그러는군요. 하다못해 이덕일씨가 쓴 통사인 '교양 한국사' 시리즈를 보고 비판하심이 어떠실런지.. 이덕일 씨가 왕사랑으로 보이는 건 이 책이 '왕의 암살'이라는 주제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적으로 말해서 여기에 나오는 왕들이 조선 전체의 왕이라도 됩니까? 이덕일 씨가 언제 조선의 모든 왕들을 사랑했나요?
그리고 님은 이 책에 나오는 왕들에게 대항하는 신하들이 조선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사대부이자 토지를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라는 사실을 모르시나요?
신권이 강화된 나라는 이런 기득권들의 이해가 반영 되어, 백성이 수탈 되도 모르는 척하고, 그리고 '대동법'이라는 획기적인 법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자영 농민(즉 자기 토지를 가지고 있는 농민들)들이 몰락하는 그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대부들로선 자영농민들이 없어져야 자기 땅이 많이 생기는 거 아닌가요?
이덕일 씨는 이렇게 기득권층들의 이해 관계로 왜곡된 신권 정치를 나쁘게 생각하고, 이것이 조선이 그렇게 조선 체제가 근대화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친일파의 역사는 조선 신권의 최고 권력을 가진 여당인 노론의 역사입니다. 노론은 고스란히 일제에 협력해 호의호식해 친일파를 이루었습니다.
조선의 기득권이, 일제에게 협력을 했다는 것이죠.

님은 강력한 왕권만이 독재를 만드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로 똘똘 뭉친 당론도 하나의 독재를 만듭니다. 님은 강력한 왕권만이 독재를 탄생하게 한다는 뉘앙스로 강력한 왕권은 안된다고 하셨는데, 따지고 보면 유교 정권의 독재 이데올로기는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농민들을 장악하기 위한 사대부들의 이해도 있는 겁니다.
반대로 강력한 왕권으로 탄생한 것이 세종대왕 대의 화려한 문화 정치이며, 광개토 대왕의 다양하고 위대한 업적이 아니었습니까? 모든 것은 그것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로 비판해야지 왕권만 나쁜 게 아니라, 신권도 나쁜 겁니다.

이덕일 씨는 왕권 찬양의 사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조선의 다양한 면들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그런 자들을 비판하는 겁니다. 이 책의 주제가 왕의 암살이라 그런 면이 많이 부각 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덕일 씨는 세종을 비판했던 적도 있고(그렇게 심한 비판은 아니지만) 세조와 인조를 비판한 사람입니다.
이덕일 씨가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왕사랑의 사가라서가 아니라 조선의 독특한 신권 정치의 역사에서 비롯된 암울한 면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바람돌이 2006-08-0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ipahak님 안녕하세요. 닉네임을 읽기가 힘드네요. 어찌 읽어야 될지.... ^^
일단 저의 글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과도한 비판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님의 말에 대해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첫째, 이덕일씨의 왕사랑 혐의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정말 몰라서 맞습니다. 제가 읽은 이덕일씨의 책은 얼마전에 읽은 <조선 최대의 갑부, 역관>과 이 책 두권입니다. 조선 최대의 갑부는 이책에서 보이는 이덕일씨의 글솜씨도 보기 힘들었고 뭔가 기존의 연구성과를 짜집기해서 급조해낸듯한 느낌이 많은 드는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어야만 그 사람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덕일씨의 사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저는 적어도 이 책에서 제가 읽은 바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책에서 이덕일씨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왕조국가인 조선에서 이렇게 많은 왕들이 암살되었다는 것은 조선이 뭔가 비정상적인 사회라는 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조선이 비정상적인 사회였다는 것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가 왕의 암살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의도가 어떻든간에 중요한 것은 독자가 어떻게 그 책과 논지를 받아들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 올려진 수많은 리뷰들이 대부분 하고 있는 얘기는 어느 왕이 암살되지 않았다면 조선의 왕권이 좀 더 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바램을 강력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 책이 저자 개인의 성향이나 사관을 벗어나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겝니다. 그것이 저자의 책임은 아니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저는 이덕일씨가 이 책을 쓴 논조가 바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아주 설득력 있게요.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저같은 사람은 당연히 다른 생각을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신권정치에 대한 님의 평가입니다. 조선의 주인은 왕과 사대부였습니다. 조선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정치가 왕권과 신권의 조화였습니다. 하지만 어느정도라도 그게 이루어졌던건 세종대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항상 왕권과 신권은 서로 줄다리기를했고 어느 한편으로 기울었습니다. 세력균형이란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조선의 정치에서 왕과 사대부 이 둘은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지배층으로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졌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옹호해주는 존재이기도 하였습니다. 전근대 사회에서 지배층의 백성을 얼마나 수탈했는가 하는 것을 지금 얘기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건 계급사회의 태생적 한계니까요. 다만 이런 수탈에 있어서 왕과 사대부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동법을 얘기하셨는데 실제로 대동법을 주장한 것도 반대한 것도 모두 사대부입니다. 이 대동법이 -그리 획기적인 법안이었는가는 차치하고 - 전국적으로 시행되는데 200년이 걸립니다. 그럼 이 200년 동안 왕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모든 왕들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었으나 사대부들의 반대때문에 못한 것 뿐일까요? 아마 왕들은 이 대동법의 확대여부를 가지고 신하들을 조종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이용했을 겁니다. 즉 백성들의 안정이나 생활향상이란건 왕이나 사대부나 모두 부차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동전의 양면같은 지배층이었으니까요. 조선후기에 정치가 비정상적인 일당독재 체제가 되고 노론의 전제정치가 나라를 망쳤다라는 결론은 옳을 수 있지만 그것의 대안이 똑똑한 왕이 좀 더 살았더라면이라고 나가는데는 저는 반대합니다. 그것은 왕조국가의 태생적 한계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황제의 권한이 강했던 중국의 왕조 말기는 항상 환관들의 권력독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사대부의 권력 독점보다 낫다고 말할 수 는 없겟지요. 결국 조선의 양대 지배층의 문제는 저는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인 손을 들어줄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은 그야말로 동전의 양면이니까요.

두번째 강력한 왕권만이 아니라 하나로 똘똘 뭉친 당론도 독재를 만든다는 님의 의견은 맞습니다. 하지만 예로 드신 세종이나 광개토 대왕의 예는 오히려 제가 가진 혐의를 더 강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왕권이었을때 우리나라가 잘 나갔다? 역사적인 내용은 일단 차치하고 그런 낭만적인 감정이 현실 정치로 옮겨올 때 어떤 함의를 가지게 될까요? 제가 말한 것은 바로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이런 힘에 대한 환상에 대해서였습니다.

님의 글에 대한 답변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천천히 이덕일씨의 책은 좀 더 볼 예정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도 책은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이고, 제가 생각하기에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덕일씨의 사관이 왕사랑이 아니었다면 이덕일씨는 이 책을 쓸 때 좀 더 주의깊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경을넘어 2006-08-0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쟁쟁한 댓글들이 달리네요. 저는 딴지걸기로 가겠습니다. 대동법의 전국적 시행은 100년 아닌가요? 이 과정은 이덕일의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에 잘 나와 있더군요. 사실 이덕일씨는 왕 사랑은 아닐 건데 제목부터 보면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하네요. 대중 역사서가 경계해야 할 지점이 아닐런지... 이덕일이라는 이름만으로 수만부를 기본적으로 팔 수있는 이덕일 역사서를 바라보는 우려도 그렇구요. 근데 친일파의 역사가 노론의 역사라는 건 논리 비약이 심하네요. 사색당파 가리지 않고 친일의 흔적이 도처에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친일에는 당파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참고로 저희 집안은 굳이 따진다면 소론 집안입니다. 명재선생(윤증)하고 아주 가깝습니다^^*

바람돌이 2006-08-05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인촌님/대동법이 100년이었던가요? 이런 하도 공부를 안하니 외웠던 것도 까먹고.... ㅠ.ㅠ 저도 이 책에 대해서는 대중적이고 쉽게 쓰야 한다는 압박감이 논리의 비약을 가져온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덕일씨 정도되는 사람이면 좀 다르게 썼을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참고로 저희집안은 상놈의 집안입니다. ^^

송도둘리 2007-11-29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웅주의'에 대한 경계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덕일씨의 '소현세자가 더 살았더라면, 정조가 더 살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인간적인 아쉬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왕조국가였고, 기득권 사대부들보다 소현세자와 정조가 더 개혁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예요. 아무튼 재미있는 책을 읽은 이후에 좋은 서평까지 읽게 되니 참 뿌듯한 하루네요. 하하.

바람돌이 2007-11-30 01: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펠릭스님! 뭐 인간적인 아쉬움이란 누구나 가질 수 있는거니까요. 그들이 좀더 오래 살고 제대로 왕노릇을 했더라면 좀 더 나아질 수는 있었을지고... 그것이 당대의 기본적인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하더라도 말입니다. ㅎㅎ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 시대와 불화한 천재들을 통해 본 고전문학사의 지평
고미숙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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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이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야 워낙에 경쟁이라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특히 내가 누구보다 잘해야겟다라는 생각 자체를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으니...
그래도 역사속의 라이벌을 보는 것은 재밌다.
뭐 내일이 아니고 남의 경쟁을 보는건 한 걸음 물러나서 즐길 수 있으니...

하지만 문학사의 라이벌이라는 건 좀 의미 자체가 웃기는 것 아닌가 싶다.
문학이란게 달리기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제목이 좀 의아했었다.
문학관이나 이런데서 견해를 달리하던 두사람을 선택해 주고받는 논쟁이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책 내용은 꼭 라이벌이라고 말하기에는 힘들다.
그저 비슷한 시대를 살면서 문학관과 세계관 또는 운명을 달리했던 사람들을 둘씩 붙여 그들의 문학적 지향에 대한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뭐 당대에는 그들은 라이벌이란 의식조차도 아니 존재조차도 몰랐던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래도 내용은 참 흥미롭다.

김부식과 일연편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다뤄지는 여성에 대한 관점을 대립시키고 있다.
유교적 세계관으로 똘똘 뭉쳤던 김부식은 여성을 다룰때도 여성 그 자체로서 다루는 법이 없다.
오로지 딸이라든가 아내라는, 곧 가족의 이름으로서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효녀지은, 설씨녀, 도미처는 그들의 효행과 절의덕분에 삼국사기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김부식의 유교적 세계관에 어긋나는 부분은 과감한 삭제를 거쳤으리라고 짐작한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은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는 수렵생활을 벗어나 농경생활로 진입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서 그런 유화는 필요없었다.
그녀의 자리는 건국주 주몽을 낳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자리 뿐이었다.
이런 얘기를 읽으면서 유화의 자리가 원래는 어떠했을지 그 행간을 상상해보는건 즐거운 상상이었다.
그런데 일연의 여성은 좀 다르다.
삼국유사의 여성은 '가족의 이름'으로 불려나오는 대신 훨씬 독자적이고 주체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일연이 승려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철저하게 불교적으로 그려진다.
불교적 승화를 위해 도구로 그려지는 여성.
유교와 불교 두개의 세계관 속에서 중세의 여성의 삶이 옥죄어져 가는 과정을 추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정약용과 박지원 편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두 천재가 너무나도 다른 학풍과 성격을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고, 같은 시대를 살았음에도 서로에 대한 글 하나 남기지 않은 것도 흥미롭다.
지금이야 실학자라는 이름으로 뭉릴瀏?표현해버리지만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그들은 절대 같이 할 수 없는 다른 입장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정하고 한치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 정약용과 늘 어디 하나가 삐죽이 솟아나 있고 늘 남들과는 다른 삐딱이 학생일 것 같은 박지원!
이런 두 천재의 면면에 당신은 어느쪽에 더 점수를 줄 것인가라고 묻는 듯하다.

그 외에도 무신정권시대를 살았던 이인로와 이규보를  구귀족과 신흥사대부의 대립으로 보는 글.
조선 건국의 혁명아였던 정도전과 한 발 떨어져 관망하다가 조선이 치국의 길로 들어서면서 두각을 들어내는 권근을 대조한 글
조선조 세조때 시류에 합류해 인생 자체가 넉넉했고 따라서 글도 늘 온유하고 넉넉할 수 밖에 없었던 서거정과 반대로 시대에 반하여 늘 치열할 수 밖에 없었던 김시습의 글을 비교하는 것도 재밌다.

단지 한 사람에 대한 글만 읽는다면 그 시대의 단면만을 볼 수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식으로 두사람의 문인을 라이벌로 설정하고 읽는 글은 시대의 다른 측면을 같이 볼 수 있어 하나의 시대를 보다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나 관점에 따라 글도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를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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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6-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라이벌로 세계를. 아주 재미있을 것같은데요

바람돌이 2006-06-0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일부 글은 약간 머리 아프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재밌게 봤습니다.
 
조선 최대 갑부 역관 표정있는 역사 1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왕조나 지배층 중심의 역사가 아닌 민중의 역사가 우리 학계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이니 벌써 20년이다.
관점의 전환과 문제제기야 오래되었으나, 실제로 연구성과는 미미한 것이었다.
제대로 연구를 하려고 해도 워낙에 기본적인 자료의 부족이라는 난관이 큰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일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은 문제는 우리 학계의 풍토 - 거시사 중심의 연구풍토 - 에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아직도 미시사는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나오는 미시사 관련서적이나 논의도 대부분 서양사 전공자들에 의한 것이지 한국사 전공자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미시사에 대한 다양한 비판도 있겠지만 일단 보다 총체적으로 시대를 해석하려면 역사의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아우러져야 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연구결과의 대중화의 노력 역시 무시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요즘에 들어와서 다양한 계층의 삶을 복원해내려는 시도가 있지만 그마저도 역사학계에서 보다는 오히려 국문학쪽에서 많은 형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덕일씨의 이 책은 역사학자가 보다 더 다양한 계층으로 연구를 확대해나가는 발걸음으로 일단 환영할만하다 하겠다. 또한 이덕일씨의 평소의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 역시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역관의 존재에 대한 책이다.(물론 고려말의 이야기가 잠깐 나오지만 고려말 역관의 존재는 우리 역사에서는 상당히 예외적인 존재다. 이 때는 몽고와 관련된다는 것이 바로 신분상승이었으니까...)
책의 시작은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으로 시작하는데 허생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허생에게 돈을 빌려준 변부자에 초점을 두는데 그의 손자가 역관출신의 부자였던 변승업이다. 이로써 조선 제일의 부자였던 역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실제로 변씨를 제외한 다른 역관들이 정말로 조선 최대 갑부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양반관료가 아니고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조선의 상황에서 중국과의 조공무역을 틈탄 사무역으로 부를 축적해나갔던 역관은 당시의 기준으로는 상당한 부자에 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부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요즘 말로 하면 밀수에 의한 것이었고 따라서 워낙에 위험부담과 제재가 많았던 까닭에 조선 최대 갑부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조선 후기에 공공연하게 사무역(밀수)이 행해지자 오히려 역관은 상인들의 맹렬한 추격과 경쟁에 밀리기 시작한다. 이 역시 이들을 조선 최대갑부라고 보기에는....???
그러고 보면 이 책의 제목은 책의 홍보를 위한 과대제목(?) 과대광고로 꼽을 수 있을거 같다.

오히려 책의 재미는 역관들이 부의 축적을 보는 것 보다는 다른 면모들에서 나타난다.
옛 역관들은 어떻게 외국어를 배웠을까?
역관들이 중국어를 배우는 방법 - 철저하게 회화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재의 소개와 그것을 암송하는 것으로 역관의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 하지만 요즘도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회화 교재 몇개를 통째로 외워봤자 그게 바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마도 교육은 저렇게 책을 통째로 외우고 나서 다음에 실습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대부분의 중인들이 그렇듯이 역관은 보통 대대로 집안에서 직업을 물려받고 있다. 아마도 집에서 아버지에게서 실전 회화를 주로 배우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자료의 추적이나 서술이 없는 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또한 시대와 대외상황이 몽고에서 명, 청으로 바뀌면서 역관의 역할과 위상도 변해 나가는 과정을 추적하는 건 흥미롭다.
특히 청나라가 세워지면서 사대부에게 북경으로 가는 사행길이 오랑캐 만주족에게 조공을 바치러 가는 길이 되면서 부끄러운 일이 되자 역관의 위상이 오히려 높아지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곧 대통아역이라는 직위가 청나라에 새로 생긴다. 이들은 아마도 병자호란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인질로 잡혀갔던 이들의 후손들인 듯 한데 이들이 조선어와 중국어를 모두 잘하니 아예 역관도 청나라측에서 이들로 임명해버린것. 따라서 업무가 대폭 줄어들어버린 조선 역관들은 통역보다는 상인의 업무에 더 충실하고 결국 조선 후기에 사무역에 종사하는 역관이 더욱 더 늘어난 듯하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기존의 연구를 뛰어넘는 해석이나 새로운 역관의 면모를 총체적으로 살피는 데는 부족한 듯.

조선 후기에 들어서 오경석과 같은 선구적인 역관들도 더 있었을 듯 싶은데 역시 시대를 뛰어넘은 역관들이라는 장에서도 기존에 익히 알려진 오경석 외에는 뚜렷한 인물의 발굴이 없는 것도 많이 아쉽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역관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정리한 수준정도.
자료의 부족이야 이미 전제된거라면 좀더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역관이라는 존재를 추적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다만 기존 자료의 정리 정도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음 인쇄에서 고쳐져야 할 부분 - 이 책의 189-190쪽에 보면 "오경석에게는 양반 사대부 스승과 역관 스승이 있었는데, 사대부 출신 스승은 박지원의 조부 박제가였다." 박제가의 손자가 이름이 박지원인지 어떤지는 알 수없지만, 만약에 손자라고 해도 별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유명한 연암 박지원일텐데 연암쪽이 나이가 훨씬 위이다. 오경석의 스승이 박제가였던 건 맞지만 저 앞부분은 실수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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