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반장 카르페디엠 13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은진 옮김 / 양철북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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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은 늘 무언가를 잃은 아이들이다.
아 그래 보통은 가족이지... 마코토도 그렇다. 아빠를 병으로 잃은 소녀.
하지만 소녀라는 호칭이 왠지 뜬금없이 느껴지는 용감하고 당찬 아이 마코토.
외발자전거를 묘기대행진 하듯 능숙하게 타내며 옳지 못한 일에 절대 등돌리지 않는, 그리고 슬플때면 아빠가 가르쳐준 휘파람을 불면 울지 않게 된다며 누구보다 능숙하게 휘파람을 부는 마코토.
그런 마코토가 어쩐지 나는 더 마음이 쓰이고 안타깝다.
너무 일찍 커버린걸까?
조금은 더 응석도 부리고 아이다운 투정도 부려도 될텐데..... 

아이들의 세계가 늘 언제나 티없이 맑다고 착각하는 어른들이 많다.
어른들 역시 그 시절을 통과해왔음에도 자신이 어땠는지는 까맣게 잊고 아이들의 세계는 순수하다느니 하는....
하지만 그 세계에도 여전히 비겁함, 잔인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책 속에 펼쳐지는 아이들의 세계는 그런 세계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전학온 마코토가 오자 마자 반장이 되겠다고 선포하는 바람에 "쟤 전학온 주제에 너무 재수없지 않아?"라는 한 마디로 마코토 왕따동맹이 결성되어버린다.
현실감이 없다고? 아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그런 왕따 동맹에도 의연하게 자기 길을 가는 마코토가 현실감이 없는거지...
체육시간에 언제나 뭐든지 느려서 제대로 다 해내는 일이 없는 그래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다카노와 짝이 되어 결국 결승점까지 느리지만 도착하고야 마는 마코토.
체험학습 버스속에서 멀미로 고생하는 친구를 절대 외면하지 않고 같이 내려 남은 길을 걸어가 줄줄 아는 아이 마코토.
상습적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상급생 껌딱지단에도 굴하지 않고 대항해 결국 그들을 물리치고야 마는 마코토.
아 정말 비현실적이다. 이런 아이가 정말로 있을까? 

어쩌면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마코토는 작가가 정말로 마코토같은 어른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의 입장에서 어른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모든것을 생각하고 해결하려 하는 그런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책을 생각해줄줄 아는... 그리고 아이들의 세계를 존중해줄줄 아는 그런 어른 말이다. 

나는 아이들의 세계를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아는 어른일까?
반성하며 책을 덮는데 순간 마코토가 그리워진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 츠요시가 된듯한 기분.
아 책 속의 조그만 삽화들이 참 재밌다. 아이들이라면 키득거리며 즐거워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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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3-23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그림 참 귀엽죠. ^^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의 모습은... 참 징그럽지 않나요? ㅠㅜ

바람돌이 2009-03-23 00:51   좋아요 0 | URL
그런 의미에서 마코토는 아이가 아니죠. 어른이 바랄게 아니라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나 학급의 모습은 참 재밌게 읽었어요. ^^

글샘 2009-03-25 19:02   좋아요 0 | URL
저도 마코토를 보면서, 아, 저렇게 힘든 사람 옆에서 있어줘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지요. ^^ 멋진 책입니다.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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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 광고카피하나는 정말 절묘하게 뽑아낼 수 있게 하는 작가다. 굳이 카피라이터가 골싸매고 고민할 필요가 뭐 있을까? 그의 작품 설정 자체가 쇼킹 그 자체인데...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세상(눈먼자들의 세상)
어느 누구도 투표하지 않았다. 투표율 0%(눈뜬자들의 세상)
그리고 이번에는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죽음의 중지)이다.
항상 설정 자체가 어찌나 획기적인지 번번이 그의 소설을 읽지 않을수가 없다. 뭐 그렇다고 내가 이 대단한 거장에게 불만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의 그런 설정때문에 또다시 책을 들고야 말게 해주니 고맙다고 해야지. 

인간이란 당연히 죽음을 향해가는 존재이면서도 끊임없이 삶을 갈구한다. 누구는 불로장생을 위한 불로초를 찾아헤맸다지만... 죽음만큼 공평한게 어디 있을라고. 누구나 죽는다. 그것도 딱 한번씩만... 그 죽음이 중지됐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아 인간의 유토피아가 드디어 도래했다? 아니 아니,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한권이라도 읽은 이라면 이 작가가 유토피아를 그릴리가 없다는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죽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경축할 일에 너도 나도 국기를 게양해서 집단적으로 축하를 벌인다. 하지만 그건 잠시일뿐...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온갖 문제점들이 불거진다. 이제 끊임없이 확장되어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될 요양원, 절대 퇴원못하는 환자들이 점점 늘어가는 병원, 생명보험의 의미가 무색해져버린 보험회사들... 뭐니뭐니 해도 압권은 실직위기에 처한 장의사들이다. 근데 이들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 또한 얼마나 기발한지... 이제 이들은 사람 대신에 모든 동물들의 죽음을 반드시 정당한 절차를 거쳐 매장 또는 화장할 것을 국가에 요구한다. 장의사들의 이런 해결에 고무되어 각자 나름의 해결책을 정부에 요구하는 이들.
그리고 신종 마피아의 등장. 죽어야 하는데 죽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또는 가족들의 부담을 덜고자하는 이들에게 국경너머 죽음이 존재하는 곳으로 죽을 이들을 옮겨주는 마피아. 뭐 당연히 공짜는 아니지.... 그리고 이런 각각의 요구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
결국 세상은 죽음이 있든 없든 그리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성의 끝이 사라진다는 엄청난 사건앞에서도 세상의 모습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들의 집합체이며 그 각각에 대응하는 정부, 정치가 역시 별반 달라지지 않는단 말이지... 죽음이 사라진다 해서 인간들이 갑자기 너그러워지거나 행복해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실인지도 모르지.

인간이란 존재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건지도.... 국경을 넘어 죽음을 맞이하러가게 하는 행위가 공공연해지고 합법이 되자 좋아할 것 같던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 몰래 행동하는 것은 다르죠, 한밤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나가는 건 말이예요. 그러면 이웃도 그분이 여전히 고통스러운 병상에 누워 있는지 아니면 그냥 증발해 버렸는지 알 도리가 없으니까요, 거짓말을 하는건 쉬워요, 슬픈 표정으로 말하는 건 말이에요, 지금도 여기 계시죠, 가엾은 양반, 하고요, 이웃집 사람을 층계참에서 만났는데, 그래, 할아버지는 요즘 어떠세요, 하고 물어봤을 때 말이에요,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사망증명서도 있고, 공동묘지에는 이름을 다 적은 명판까지 붙여요, 이러니 몇 시간 후면 시샘 많고 남 욕하기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죽었다는걸 알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잔인하고 배은망덕한 가족이 할아버지를 국경으로 데려갔다는 말밖에 더 돼요, 그럼 창피해지는거죠,(92-93쪽)    - 인간이란 원래 이런거야....

그리고 느닷없이 죽음이 다시 찾아온다.(원래 죽음은 느닷없는게 더 자연스럽지만...)
그동안 죽지 않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는 것. 그리고 죽음은 이제 자주색 편지지에 죽을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일주일 뒤에 당신이 죽을터이니 그에 대한 준비를 하라는.... 죽음이 원한건 주변 정리나 인사, 유언 이런 것들이었겠지만 오히려 인간들은 공황상태에 빠져버리고 마니 역시 죽음은 삶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겠지.... 

이제 책은 죽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이 살아온 모든 세월을 같이 살아온 그녀. 돌연한 그녀의 파업은 뭔가 변화를 주고싶은 변덕의 발로였을까? 전편이 죽음이 사라지고 죽음이 돌아온 세상만태를 스케치하는 것이었다면, 2부는 이제 죽음 그녀의 이야기다. 자신의 연출에 만족해있던 그녀에게 즉 죽음의 예고장을 발부하면서 자신이 일으킨 변화에 뿌듯해하던 그녀에게 문제가 생긴다. 유독 한 인간에게만 죽음의 경고장이 날아가지 않는 것.
이 딜레마를 그녀 죽음은 과연 풀 수 있을까? 그 해법이 죽음이 삶을 지향해버리는 것이라면? 이 지독한 모순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숙제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럼 이제 다시 어떻게 될까? 묵직한 숙제 하나를 받아들면 책은 끝난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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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 선덕 여왕을 꿈꾸다 푸른도서관 27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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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을 사모해 미쳐버렸다는 지귀.
그 지귀가 여왕을 한 번 뵙기 위해 여왕이 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동안 탑아래에서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어버린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여왕이 그 광경을 보고 지귀의 가슴에 금팔찌를 뽑아 놓고 가니 이윽고 깨어난 지귀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급기야 가슴이 타들어가 화신이 디고 만다. 지귀가 불귀신이 되어 온 세상에 떠돌아 다니자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급기야 여왕은 노래로 주문을 만들어 대문에 붙이게 하니 그 후 백성들은 화재를 면하게 되었다.
지귀의 마음속 불길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불귀신으로 변했네
창해밖으로 흘러가
만나지도 친하지도 말지어다.     - 권문해 <대동운부군옥>조선 선조때  - 

 

 

옛 이야기는 때로 현대인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울때가 많다.
지귀의 설화도 역시 전후맥락을 따지고 들어가자면 어린 청년이 나이 환갑을 바라보는 여왕을 사모하는 마음도 그러하고, 죽은 이후에는 불귀신이 되었다는 것도 그러하며 선덕여왕의 주문이란 것도  지귀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쫒아내는 것이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설화의 열려있는 사이 사이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문학적 상상력일 것이다.
그래서 작가란 이 몇줄 안되는 설화를 그의 상상력으로 복원해내는 이가 될테고... 

 

지귀, 선덕여왕을 꿈꾸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래서 내게는 각별한 호기심을 유발시켰다 하겠다.
 어떤 식으로 지귀의 마음을 복원시켜내고 있을까?
지귀의 마음이 선덕여왕에게 간 것은 어떤 이유때문이었을까
이런 호기심을 안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 책을 읽었건만..... 

 

물론 스토리상으로는 김유신과 법민을 한켠으로 하고 또 다른 한켠으로 김유신측의 라이벌집안의 아들인 가진과의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지귀의 설정은 무난했다.
그 속에서 지귀의 여왕에 대한 감정은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고뇌를 단칼에 풀어줄 무한한 신뢰에 다름아니었다는 설정 역시 수긍이 갈말한 전개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단순성 평면성은 이런 상상력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마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찌 이 글 속의 신라인들은 그렇게 하나같이 여왕을 우르러기만 할까?
오직 나라를 위한 충심 하나 이외의 감정은 없는 것일까?
왜 그런 충성은 맹목적이고 무조건 당연시되고 있을까?
인물들이 뱉어내는 말이 모두 한결같으니 각각의 인물들의 입체성은 사라지고 인형들이 줄줄이 늘어서 똑같은 소리를 무한반복하고 있는 형상이니 원.... 

설화를 재구성하는 설정의 참신함은 좋았으나 그것을 이끌어나가는 인물의 창조와 현실감의 창조에서는 실망스러운 책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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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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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쿠? 저주!
그래 이 정도라면 저주라 할만 하겠다.
아내와 예쁜 두 딸과 정부, 충분하고도 넘치는 부와 명예. 더 이상 바랄게 없는 도미니카라는 나라의 카브랄 가문.
그 가문의 아벨라르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했고, 남들처럼 그 부와 명예를 더 늘리고자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렇게 평화롭게 살고 싶었을뿐...
그러나 때는 트루히요라는 희대의 독재자의 통치기다.
트루히요 - 박통과 전통을 합쳐놓은듯한,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보이는 독재자.
그 독재자 덕분에 아벨라르의 삶은 한순간에 박살이 난다.
정말로 아벨라르가 과도한 긴장과 술때문에 트루히요를 욕하는 엄청난 실수를 했는지 아니면 정말 그의 딸을 탐한 트리히요의 성욕때문이었는지 알려져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제 그의 가문은 트루히요의 푸쿠-저주에 걸렸다는 것.
그것도 대를 이어 반복되는 저주 말이다. 
아벨라르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 벨라 그리고 벨라의 아들 오스카로 이어지는 가공할 저주.
그래봤자 갱스터를 사랑했는데 그 대가로 사탕수수밭으로 끌려가 죽음직전까지 가는 벨라나
이웃의 창녀여자를 사랑했을뿐인 오스카까지 사탕수수밭이라니...
이 가공할 푸쿠를 푸는 역주문 사파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랑이야기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걱정하는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던 그럼으로써 파멸한 할아버지 아벨라르.
뛰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랑에 배신당하고 생존을 위해 그 사랑에서 도망치는 수 외에는 없었던 엄마 벨라
그러나 오스카는 근본적인 왕따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던 바로 그 오스카가 사랑을 위해 스스로 사탕수수밭으로 걸어간다. 한순간의 사랑을 위해 남은 생을 모두 놓아버리는 그런 사랑이야기.
그 멍청한 오스카의 사랑이 트루히요의 푸쿠-저주를 푸는 역주문 사파였을까?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데 아마도 그렇다면 영화의 주인공 오스카는 아마 영화역사상 가장 로맨스에 안어울리는 인물 1위로 오를것 같은데 그런 오스카와 최고의 낭만적인 사랑이라...
그러나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인해 오히려 오스카의 사랑이 빛나는 아이러니라니... 
오스카의 사랑이 정말 저주를 푸는 역주문이었을까?
그 답을 작가가 얘기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독자에게 맡길 뿐....

 이 소설은 또 한편으로 정치소설이다.
섬나라 도미니카를 지정학적의미에서뿐만이 아니라 독재의 장막에 갇힌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트루히요독재시대의 도미니카와 사람들의 삶이 소설의 또 한축을 형성하며 펼쳐진다.
그 숨막히고 억눌린 삶들. 또는 고향을 버릴 수 밖에 없는 디아스포라의 삶들.
살아있되 죽어있는 억눌린 삶들은 오스카의 집안으로 대표되는 도미니카인 전체의 삶이다.
그래서 안되는 일은 모두 트루히요의 저주라고 체념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런 삶들. 독재에 시달리는 어느 삶이 안 그럴까?
남의 나라일임에도 이다지도 친숙하게 느껴지는건 우리가 그 세월을 똑같이 통과해왔고 또 지금 그 시절로의 회귀를 꿈꾸는자들이 살아나고 있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 이 소설은 유머소설이기도 하다.
특히나 오스카의 독특한 캐릭터는 전혀 사랑얘기의 주인공답지 않다.
100키로가 훨씬 넘는 거구의 몸매 하며, 왕따당하기에 딱 안성맞춤인 이상한 성격하며....
그의 도저히 적응불가능한 성격과 그로 인한 온갖 예측불가능한 좌충우돌은 독자에게 곳곳에서 예기치못한 웃음을 전해준다.  
하지만 독자들은 곧 전혀 이해되지 않는 감정을 발견하리라...
그토록 말도 안되고 이해안될정도로 멍청하며 대화 불가능의 비호감덩어리 오스카가 점점 사랑스러워지는 그런 감정의 변화말이다.

정치와 역사, 그리고 사랑이야기를 이토록 독특한 구성과 번뜩이는 재치로 잘 버무려놓은 독특한 소설. 이 책을 읽는 이가 정치와 역사, 사랑 어디에 중점을 두고 읽든 그건 독자의 몫이리라..
하지만 어디에 방점을 찍든 즐거운 독서가 되리라는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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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2-28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와 사랑이 버무려진 발칙한 소설이었어요. 영화로 만들어지는군요. 저도 캐스팅이 몹시 기대가 되네요. 특히 검은 진주 벨라 역은 누가 맡을지 그것도 궁금해요. 각주 읽느라 눈이 충혈될 뻔 했어요. ^^;;;

바람돌이 2009-02-28 23:37   좋아요 0 | URL
벨라역은 한 배우가 젊었을때와 중년의 역할을 같이 할지 아니면 다른 배우가 각각할지도 궁금하네요. ^^ 정말 각주 읽는다고 눈 뻘개 졌었는데 전 그 각주가 또 굉장히 재밌더라구요. ^^

꿈꾸는섬 2009-02-2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읽으려고 하는 책인데 바람돌이님 리뷰보니 더 빨리 읽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바람돌이 2009-02-28 23:37   좋아요 0 | URL
처음엔 각주도 있고 책장이 좀 안 넘어가던데 뒤로 갈수록 재밌어지더라구요. ^^ 즐거운 독서가 되시길... ^^

프레이야 2009-03-0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보고 당장 담아가요^^

바람돌이 2009-03-02 00:36   좋아요 0 | URL
맘에 드는 독서가 되시길.... ^^
 
나폴레옹광 아토다 다카시 총서 2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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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롤러코스터를 보고 있으면 360도 회전하는 부분에서 아찔함을 느낀다.
아! 진짜 저렇게 뒤집어지면 정말 끝내주게 무섭겠다라는 생각.
하지만 실제로 롤러코스터를 타보면 진정한 공포는 그 360도 회전에 있지 않다는것을 바로 알수 있다.
정말로 심장이 짜릿짜릿하도록 무서운건 출발 직후 본격적인 속도를 내기전에 끼릭끼릭 공중으로 공중으로 천천히 올라가는 그 순간, 다가올 전율을 기대하며 온몸의 세포들이 발광을 하고 손가락이 하얗도록 안전대를 쥐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인 것이다.
그런데 그 롤러코스터가 꼭대기에서 내리막을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멈춰버린다면? 그리고 그것이 언제 떨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면? ㅎㅎ 

내게 아토다 다카시의 <나폴레옹광>은 딱 그런 분위기의 책이다.
무언가가 시작될 것 같은 기묘하고도 음습한 분위기, 마지막 반전과 절정을 향해 천천히 속력을 내기 시작하는 구조, 그러다가 절정의 순간에 딱 멈춰버리는 마지막 순간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이제 시작이다. 마지막 순간의 아찔한 공포는 머릿속에서 확대되어 상상이라는 녀석으로 스멀스멀 배어나온다. 진짜 무서운 것은 책을 읽을때가 아니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고 난 이후 내 상상속에서 진짜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나폴레옹을 너무나도 숭배하여 나폴레옹에 관한 모든 것을 수집하는 <나폴레옹광>과 자신이 나폴레옹의 환생이라고 믿는 이의 만남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얘기하지 않지만 독자의 머릿속은 이미 상상의 사건으로 소름이 쫙 끼치고 있을테다. 

이쪽은 아닌데 유난히 친한척을 하는 <뻔뻔한 방문자>는 정말은 왜 여자의 집을 방문했을까? 여자의 집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한 방문자의 진짜 목적은? 마지막 장면 사랑스런 아이를 바라보는 여자의 표정은 어땠을까? 혼란과 애정과 끔찍한 의혹같은 것들? 히치콕의 영화에서 볼 수 있을듯한 표정일까? 

자동차가 말을 한다고? 그리고 알아서 돈을 벌어온다고? 일면 우스운 상황에서 시작한 <딱정벌레의 푸가>는 전혀 웃기지 않은 결론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남자가 정말로 미칠상황이다. 독자는 또한 이 남자가 앞으로 어찌될지를 그려보며 그가 느낄 공포에 동참할 차례다. 

<이> 다정하고 착한 아내가 정말로 한 짓은? 작가는 아무 말을 하지 않지만 이야기속 남편은 충분한 공포를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두고 두고 갉아먹으리라...  

책에 실린 13편의 단편 중 확실하게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는 몇 안된다. 다만 암시를 할 뿐.... 하지만 암시만으로도 아니 오히려 암시이기에 이후의 상황을 온전히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리고 독자의 머리를 쭈빗거리게 하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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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9-02-0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추..추리소설인가봐요? 여기도 죽이고 살리나요? 헤헷~무서워서 횡설수설..

바람돌이 2009-02-06 22:42   좋아요 0 | URL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추리소설이겠지만 그렇다고 정통 추리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요. 주욱.... 죽이죠. ㅎㅎ
근데 추리소설계의 로알드 달이랄까? 로알드 달의 단편을 추리버전으로 만들면 이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