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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섹스(sex), 젠더(gender), 섹슈얼리티(sexuality)

자연계에서 생물학적 성(sex)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꽃식물들은 처음에는 수컷에서 시작하여 암컷으로나아가며, 산호초에 사는 물고기는 우두머리 수컷이 죽으면 암컷들 중의 한마리가 수컷으로 전화한다. 인간 역시 처음에는 모두 암컷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가 어느순간 어떤 조작에 의해서 암컷의 생식기로 발달하려던게 갑자기 수컷 생식기로 발달하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 이러한 생물학계의 발견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대해 가하는 주요한 공격 -자연에 위배된다는-을 무효화 시킬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동물계에서는 거의 30%정도까지 개체들이 동성애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동물들도 있다면 이걸 비정상/비자연으로 보는 것 자체가 웃기게 되는 것 아닌가? 누가 30%나 되는 개체군을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재천씨는 조심스럽게 인간은 누구나 동성애적인 성향을 갖고 있을것이다라고 제기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두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사회적 성 (gender) -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신화는 여성의 탄생이 남성의 탄생이후 한참이 지난이후 판도라라는 최초의 여성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여성의 탄생이 아닌 '여성성'이라는 사회문화적 젠더의 탄생에 관한 신화적 처리라고 봐야한다. 또한 이것은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는 것의 시작인데 결국 이 분리는 권력분할의 시작이라고 봐야한다.

11장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소설인가 과학인가

인문학에서 프로이트에 주목하는 것은 그가 서구 근대의 합리성/주체 신화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내게는 내가 모르는 내가 있다' ,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 '나의 주인은 나의 무의식이다'라는 것.

그러나 과학자가 보는 프로이트는 과학의 객관성을 뒤집어썼을 뿐 과학적으로 어떤 것도 증명될 수 없는 허구의 산물이란다. 프로이트가 과학이라 부르기에는 검증성, 객관성 모두가 과학적이지 못한 비논리의 왕국을 왜 과학의 영토안에 세우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것. -프로이트의 출발점인 이드나 에고의 존재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신의 존재를 설정하는 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과학 역시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중요할 수 밖에 없고, 그 패러다임 넘기를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은 예술적 신화적 상상력과 비슷할 수 있다. 따라서 방법은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하되, 머리는 신화적으로 돌리는게 과학의 묘수가 아닐까? 즉 프로이트의 신화들이 비록 비과학적이라 해도, 거기서부터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이 비상할 수 있을 거라는 것(도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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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 동물의 교미와 인간의 섹스

종족보존이 아닌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해 섹스를 하는 동물이 인간말고 있을까? 만약 없다면 이게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보노보의 경우 - 보노보 두 무리가 하나의 무화과 나무에 도착했다면, 그 나무를 독점하기 위해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의 암컷이 나와서 다른쪽의 수컷과 그 자리에서 섹스를 한단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의 섹스? 또 발정기 때만이 아니라 매우 자유롭게 여러 수컷과 교대로 섹스를 즐기기도 하고, 자위행위까지... 결국 이러면 성적쾌락을 위한 섹스는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듯... 거기다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어졌던 마주보고 하는 성체위까지 보노보에겐 나타난다고 하니...(나는 이사실이 그렇게 충격적인지 몰랐는데 인문학자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듯... 특히 기독교계에서..)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살아남기'와 '번식'이라는 두단어로만 설명된다. 그러나 인문학에서는 이 필연 뿐만 아니라 거기서 이탈하는 행위 - 이를 자유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다.-들도 중요하다. 결국 번식과 필요없는 보노보나 인간의 성행위는 필연에서 벗어난 자유라고 명명할 수도... 그런 관점에서 인간의 피임이나 동성애도 바라볼 수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자유가 동물계에서도 -보노보나 민벌레의 으뜸수컷과 교미하지 않고 2위 3위의 수컷들과 교미하는 암컷들- 존재한다면 결국 사회생물학의 입장에서특별히 인간적이랄 행동의 없게 된다.

인간에게서 보이는 성적 은밀성의 문제 -인문학 쪽에서 본다면 인간이 가지는 성적 은밀성은 신성성의 다른 이름일 수도.. 다른 영장류 동물의 경우 수태 가능성을 광고하는데 비해 인간은 그것을 숨기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런 인간 여성의 배란 은폐는 남성의 일부다처제적 성향을 상당히 줄여주지 않았을까? 배란시기를 모르는 상황에서 남성이 찾아낸 가장 좋은 전략은 한 여성이라도 잡아놓고 매일 밤 그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 즉 가족과 결혼의 탄생을 이렇게 생물학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구나...(감탄..)

9장 - 판도라속의 암컷, 이데올로기속의 수컷

생물학의 오류들이 역사속에서 학문적 오류로 끝나지 않고 정치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거의 범죄에 가까운 만행의 도구가 되었던 경우 - 백인제국주의, 남성우월주의

최근의 사회생물학은 자연의 질서라는게 결국은 암컷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컷은 암컷이 번식하는데 잉여로 만들어졌다는걸 말하고 있단다. 근데 신화에서도 모든 가부장제 신화에는 남자의 잉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단다. 고대신화가 여성을 잉여존재로 강등시킨 것은 사실인즉 남성들 자신이 잉여존재일지 모른다는 공포를 역으로 투사한 거라고 볼수도 있다.(남성들의 거세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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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 인간, 거짓말과 기만의 천재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일단 시작은 '구라'에서 시작한다. 과학은 반드시 입증의 책임앞에 서야 하고 인문학적 이야기는 그런 엄격한 입증을 요구받지 않는다는 차이는 있지만.....

인간사회 모든곳에서는 신화가 존재하고 어차피 신화라는 것 자체가 '구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구라가 잘못쓰일때- 즉 지배세력의 사회체제를 정당화하거나 정치적 생존과 지배의 전략으로 사용될 때 그것이 미치는 파급효과는 치명적이다. 유대인들의 신화가 시온주의의 배경이 되고 인도의 거인신 신화가 인도의 계급제도의 기초가 되는 것과 같이.... 그런데 곤충세계에서도 개미사회에 그런 개미행세를 하는 곤충들이 엄청 많은데도 개미사회가 무너지지 않는걸 보면서 인간사회나 개미사회나 세상의 충격을 막아내는 점에서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뇌 발달 과정에서 특이한게 '자기 기만'인데 이건 대표적인 경우가 '난 할 수 있어' '하면 된다'같은 것. 누가봐도 못할 일인데 스스로에게 하면 된다고 하고, 때때로 가끔은 해내는 경우.  세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분명한 의식체계를 발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틀린 그림을 그려놓고는 그 그림을 정확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도록 자기를 속이는 능력. -자연계 역시 동물들의 신호체계에 있어 이러한 기만술이 가득하다는 것은 결국 인간과 자연계 모두의 기만술은 자연선택이 갈고 닦은 적응, 번식, 생존술의 일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신화와 과학의 관련성 - 자기들이 처해있는환경과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함으로써 더 강력한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탄생할 것이고, 결국 이것은 과학의 필요성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7장 - 예술과 과학, 진화인가 창조인가

예술의 탄생에 대한 담론 - 구석기인들의 동굴벽화의 예

고래의 습성을 치밀하게 알지않고서는 그릴 수 없는 그림들이 발견되나 중요한 것은 누가 왜 그렸냐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인문학이나 생물학이나 속시원한 대답이 없다.(상징 문법의 상실)

생물학에서는 예술에 대해 자연선택이 아닌 '성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관점을 제시. -공작 수컷의 화려한 꼬리깃털은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불리하지만 성선택의 관점에서 유리함으로 인해 진화해 왔다는 것.

인간에게도 성선택설이 적용될 수 있을까? - 그림 잘그리는 사람이 구석기 시대에 성선택에서 유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외 신, 죽음, 조상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도 성선택설로는 설명이 힘들지 않을까?

결국 이런 근본적인 질문은 정답이 없음으로 해서 오히려 이런저런 생각을 촉발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예술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인문학에서는 놀이설, 제의설, 실용설 등등...진화생물학에서는 성선택설 뿐만 아니라 ''줄달음 선택".-도저히 실용적이지 못할 것 같은 예술 행위도 처음에는 별로 대단찮은 것에서 시작했다가 갑자기 고비가 풀리면서 그 방면으로 확 진화하는 것 같은 것. 하지만 인문학쪽에서의 반발은 이러한 줄달음 선택도 자연계가 아닌 인간들 사이에서는 생물학적 원인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환경이 원인이 되어 일어날 수도 있다. 즉 성선택에 개입하거나 그걸 제한하는 문화제도들이 인간사회에서는 너무 많다는 것.

과학 역시 최재천씨의 경우 두뇌가 진화의 산물인 이상 과학도 진화의 사물로 볼 수 있다. 우리 두뇌가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렇다면 그런 사고를 잘하는 인간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진화의 역사를 통해 더 성공적이엇을 거라는 논리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사회로 확장하면 좀 문제가 있을 듯...) 어떻게 보면 또 이런 논리는 하느님이 과학을 하게끔 인간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과학이 필연이라는 말과 별로 다를바가 없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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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인간기원을 둘러싼 신화와 과학의 격돌

글쎄 이 문제는 굳이 논쟁이 필요한 것일까? 지금에야 인간에 대한 진화론은 기본적인 상식으로 알려졌고, 그것이 고릴라든 침팬지든 아니면 보노보노 원숭이든 - 최재천씨는 침팬지라더만 - 그야 과학적으로 연구하면 더 밝혀질 것이고.... 종교계에서 창조론을 주장한다는건 지금이 만약 중세기독교 사회였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조론을 신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건 생각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논쟁이겠지만...

내가 종교가 없어서인지는 알수 없지만 진화론은 과학의 문제이고 창조론은 믿음의 문제이다. 둘 사이에는 논쟁 자체가 성립되기 힘든게 아닌가? 진화론에서는 인간의 조상이 침팬지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뿐 생명이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선 사실상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자가 누구일까? 결국 아직은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간이 풀수 없는 문제이다. 종교쪽의 창조론 역시 이건 믿는 사람들끼리만 설득력이 있는거고 말이다. 결국 논쟁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서로가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는 허공을 맴돌 수 밖에 없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도정일씨의 의견 중 계속 강조되는 신화나 종교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읽으면 안된다. 신화는 과학이 아니라 상징이고 은유이다. 그리고 신화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짐으로써 어떤 생물학적 설명보다도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지혜가 담겨있다는 얘기에 공감이 간다.

5장 DNA는 영혼을 복제할 수 있는가

지금 현재 유전체 프로젝트의 문제점 - 지금 밝혀진 것은 어느 자리에 어떤 유전자가 앉아 있다는 위치만 찾아낸 것. 하지만 그 유전자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유전자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현재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는 유전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최재천 - 다른 실험들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 선무당이 사람 잡게 하는 꼴이란 얘긴데... 황박사가 생각나는군...쩝~~)

복제인간에 대한 두사람의 가상풍경이 재밌는데 최재천씨의 경우 만약 복제인간이 만들어진다면 처음에는 신기하고 하겠지만 결국 그것도 익숙해지면 세상에 쌍둥이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는 정도가 아니겠는가라는 낙관론을 편다. 물론 각 개개인의 입장에서만 보면 뭐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여기에 국가권력이나 자본의 힘이 개입한다면 상황이 달라질지 어찌 알겠는가? 유전자를 조작하고 그에 따라 인간이 하기 싫은 일을 맡기는 복제인간을 만들어 그들을 노예로 부려먹는다면? 공상과학 같은 얘기지만 뭐 완전히 불가능한 얘긴 아닐 것 같고.... 그럼 세상은 너무 끔찍해지지 않을까?

실제로 도정일씨의 복제기술과 우생학의 결합 얘기는 끔찍하다. 자식에 대한 욕심이 엄청난 우리나라의 경우는 만약 과학이 우생학을 보장한다면 너도 나도 덤벼들지 않겠는가? 결국 개인적으로는 엄청 우수한 인가들이 많아지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라는 종 자체의  다양성이 깨지면서 내외부 충격에 상당히 약해지는 그런 인간사회의 등장. - 그렇다면 인류자체가 절멸하는 것도 가능하겠군....

인간의 영혼은 DNA인가? DNA라면 유전도 되는가? 절충안 등장!  영혼은 복제되지 않고 유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혼이란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그 존재를 믿고 싶어하는 성향자체는 인간의 DNA안에 들어 있다. 생물학적으로 복제되고 유전되는 것은 이 성향이다. 그리고 이런 성향이 발현되는건 개개인마다 다른 문화적 유전자 - 종교 사회 신화 등등....-에 의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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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6-01-17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만날 수 없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신화와 과학의 만남을 주선해보자는 것이 두 학자가 만난 공통점 아닌가요. 과학이 신화를 파헤치고 신화를 통해 과학을 연구하는 것이 왜 성립할 수 없는 조건이 되는 건가요? 과학이 신화를 파헤친다는 건, 다시 말하면 과학이 인간의 기계적 측면이 아닌 영혼, 상상, 허구의 세상으로 발을 들이미는 건데요. 많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는 가스통 바슐라르가 이러한 작업을 하지 않았나요. 촛불의 시학, 물과 꿈, 공기와 꿈...

바람돌이 2006-01-17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두학자가 만난건 그런 이유가 맞는데요. 저는 이 문제가 워낙에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보니까 접합지점을 찾기가 너무나 어려운 문제라 서로 다르다고 그냥 인정해버리는 편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물론 이 두사람은 둘다 종교적인 주장을 안하니까 그런대로 논쟁이 되긴 하더라마는.... 하지만 이 책의 논쟁 대부분의 주제가 워낙에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건드리니까 사실상 답은 없어요. 인문학쪽이 논쟁을 주도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과학에 의해 인간을 파악하기는 아직까지도 너무 힘드니까 인문학적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것 처럼 보이구요. 글구 저는 바슐라르 글은 하나도 안 읽어봤어요. 어려운 책 기피 현상이 심해서리.... ^^;;
 

2장 - 생물학적 유전자와 인문학적 유전자

두사람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어딘가에서 접합점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진화론 - 생물학 분야가 될 것이다라는데 두사람의 의견은 일치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유전자와 유전물질의 발견 이후 그 거리가 더 멀어지고 있다는데도 공감하는듯하다. 인문학의 기본 전제는 결정론과 환원론을 배격하고 문제를 열어두고 싶어한다면 현대 생물학은 환원론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게 아닌가 이런 방향이라면 두 학문간의 괴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두사람의 관점에 차이가 나타나는데

일단 최재천씨는 현대 생물학=유전자 과학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생물학 내에도 무수히 많은 분야가 존재한다. 흔히 비생물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징으로 문화, 사회, 경제적 특성들을 얘기하지만 그것 역시 개미사회의 경제, 개미사회의 정치라는 식으로 개미생물학이 있듯이 인간에게는 <사회생물학>이 있다. 따라서 비생물학적 차원이라는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뭐 어떻게 보면 어차피 인간이란 존재가 생물=동물이라는 것에서 출발을 시작하고 또 인간사회의 여러면도 자연계의 여러 특징을 보이는 점도 있을 수 밖에 없고하다면 이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남는 의문은 있다.

여기에 대한 도정일씨의 주장을 정리해보자.  도정일씨는 인간이란 생물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비생물적인 측면도 가진 존재임을 강조한다. 가령 '평등'이라는 개념을 두고 볼때 이것은 자연계의 질서는 아니다. 인간이 사회라면 이래야 저래야 된다고 규정하는 일련의 가치와 규범을 만들어가는 것은 생물적 진화의 결과라기 보다는 사회적 진화의 결과이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비생물학적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자연스럽지 않은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 자연상태에 개입하고 자신의 행동과 존재방식을 바꾸어 사회적 진화를 이루는 것이 비생물학적 차원이라는것.

이 부분에서는 서로의 입장차이를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친듯.

대담은 이후 진화 진보의 개념에 대한 인식으로 옮겨간다. 내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는 생물학 쪽에서는 모두가 생물의 개체가 진화를 해온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줄 알았더니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으가보다. 진화를 인정하는 쪽과 생물 발생의 유전자, 환경, 생명체등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고려하게 되면 그것을 꼭 진보해왔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쪽도 있다는 것. 결국 그것은 인간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일터... 지금까지의 역사가 반드시 진보한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어려운것처럼 그건 생물학쪽도 마찬가지인가보다.

3장. 생명복제 이제 인간만 남은 것인가

이미 올해 최대의 사기극으로 판명나버린 황우석박사의 연구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책이 약간 먼저 나왔다보니 시의성은 떨어지지만 이 두 학자의 접합점을 가장 많이 찾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이들이 말하는 원칙은 지금에 와서 오히려 다시 되새겨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딜레마란 '과학과 생명윤리의 대립'이기도 하지만 기술이 어떤 미래를 열지 불투명한 지금의 시점에서 "이건 안돼"라고 말할 수도 없고, "하자, 하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도 없는 경우가 생명과학의 딜레마가 아닐까? 여기에서 인문학과 과학쪽의 대처방법에 차이가 나는데 일단 과학쪽은 방법의 맹목성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하자는... 하지만 인문학은 그 방법이란게 '무엇을 위한 방법인가"를 따지는 것에서의 차이. (도정일)  ---- 결국 필요한 것은 과학자 역시 어떤 방법을 하자고 말하기 이전에 그것이 무엇을 위한 방법인가를 고민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져야 한다는 백번 지당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잘 안돼서 그렇지...

한편에서 제기되는 과학적 사고의 문제에서는 최재천씨의 말이 한 편으로 와닿는다. 전에 국가에서 자립형사립고 20개를 선정하면서 반발을 샀었는데 이건 너무나도 비과학적인 우리나라의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즉 자립형사립고의 교육효과가 훨씬 좋다는걸 입증하려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세우고 실험군과 다른 평준화 대조군을 같이 만들어야 하고 또한 재정지원이나 여타 지원에서 가능한한 조건을 똑같이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놓치는건 자립형 사립고는 사실 20년뒤의 교육효과 어쩌고 하는것보다는 가진자들이 자기의 많은 돈을 더 투자해서 지 자식 출세시키겠다는 귀족 교육적 발상이라는건 일단 제껴두고 보자) 이런 국가의 정책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고방식 중의 하나가 과학적 사고방식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은 있어도 과학적 사고는 없는게 현재의 상황이라는 것. (최재천)

결국 다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적 사고능력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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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1-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렇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워낙 게을러서 말이죠.
님이 하시니까 저는 다시 읽기만 하렵니다. ^^

바람돌이 2006-01-1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순전히 제 주관적인 정리라서...^^
저도 요즘 방학이니까 이러고 있는거지요. 뭐...^^

돌바람 2006-01-1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 저 '자연적 진화'랑 '사회적 진화'를 무리하게 접합하려는 예를 많이 보게 돼요. 억지스럽지요. 어제 다큐를 하나 보다가 잠깐 뜨끔하였는데요. 육지동물이 수상동물로 환경이 바뀔 때요, 육지에서 필요했던 허파며 발이며 하는 것들이 퇴화하잖아요. 대신 아가미며 지느러미 같은 것들이 새로운 환경에 의해(필요에 의해) 나오구요. 물론 몇 백, 몇 천년에 걸쳐서 진행되겠지만, 그걸 진화로 볼 거냐, 퇴화로 볼 거냐! 같은 거요. 비교적 간단한 이런 현상에마저 저는 '퇴화했잖아', 그렇게 말해버렸다니까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잘못된 통합적 사고능력'의 예였슴다. 그러니 통섭을 말한다는 것은 더 어렵지요. 으그그...

바람돌이 2006-01-17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도 그런 새로운 진화의 예가 무척 많이 나옵니다. 심지어 성적 선택에 유리할 때 그에 맞도록 진화를 하는게 아니냐까지...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세계 자연의 세계는 너무 오묘해서 사실 이게 인간의 힘으로 이해가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진화론적으로 어떤 변화를 설명하고 그것을 인간사회에 적용하면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다가도 또 인간에게는 그런 변화를 가져오는 주된 요인이 동물과는 다른 사회적 이유가 나오거든요. 그러다 보면 양자의 통합은 또 멀어지고요. 어쨌든 이 두 학문간의 대화가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음은 분명해보입니다. 책속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오는데요. 인문학자가 과학을 하는건 너무 어려우니까 과학자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인문학적 사고를 해야하지 않나라는 얘기요. ^^ 뭐 이것도 100% 맞는 얘기는 아닌것 같지만-인문학자의 사고에서도 과학적 사고는 반드시 필요한거겠죠- 양자의 통섭은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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