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요네하라 마리는 1960년부터 1964년까지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 다녔다. 마리의 아버지가 프라하에 있는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라는 잡지의 편집국에 파견된 편집위원회 멤버였기 때문이다.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라는 잡지는 공산주의 운동의 이론지로, 그 편집국은 세계 각국의 공산주의 정당으로서는 유일하게 남은 상설국제교류기관이기도 하다. 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이론은 간간히 접할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철저한 반공교육의 탓인지 약간은 삐뚤하게 바라보고 있었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리가 소비에트학교에 다니면서 보고 들은 내용들, 그리고 35년 후 그 시절의 친구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낸 이 책을 읽으면서는 피상적이었던 그 내용들의 실체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이 그런 이론을 풀어낸 책은 아니다.

마리가 다닌 소비에트학교에는 소련을 비롯하여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의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었다. 마리가 그 학교에 다니기 전에는 ''중공''-이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인가...-아이들도 있었다고 했지만 소련과 중공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아이들도 소비에트학교에 다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공산주의하면 막연하게 소련이나 중공- 때로는 북한까지-을 떠올렸던 나에게 두 나라는 같은 이념을 가진 비슷한 나라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도 여러가지 노선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프라하의 소비에트학교는 1930년에 러시아인을 위한 학사로 지어졌고 1945년에 나치스 독일 점령에서 구해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소련에게 선물한 학교이다. 내가 볼 때는 똑같은 공산주의국가인 중공과 소련이지만 그 미묘한 갈등은 아이들을 갈라놓았다. 이것은, 마리가 소비에트학교를 다니면서 겪은 일들(노선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분열, 공산주의 속의 민족주의 관점 등)에 대한 예고편이기도 하다.

마리는 소비에트학교에서 여러나라 아이들과 학교생활을 한다. 그 중에서도 마리는 리차와, 아냐, 야스나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35년이 지난 후 그들을 찾아 떠난다. 35년 전, 마리리가 기억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35년후의 만남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요매하라 마리는 세명의 친구 모두를 친했던 친구라고 기억하지만, 마리의 기억-혹은 추억-을 읽는 독자인 나는 마리의 우정에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35년 후의 만남에서도 여전히 똑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리차나 야스나에 대한 기억에 비해 아냐에 대한 기억은 조금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어린 시절의 마리는, 아냐에 대해 그렇게 느꼈을리는 없지만,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아냐와 아냐의 가족들의 생활이 공산주의 이념과는 괴리됨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식으로 그려졌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본주의의 논리에 가려지고 포장되고 감춰진 사회주의를 우리는 배워왔다. 물론 요즘은 많이 개방되어 예전에 비해 많이 알기는 하지만... 그럼 잘 모르는 공산주의 이념은 차치하고 우리의 체제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경제를 바라보자. 교과서적으로는 얼마나 멋진 이념인가마는, 실제로는 다수에 밀려 의미있는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얼마나 많이 봐 왔으며, 일한만큼 벌 수 있기는 커녕 있는자만이 더 벌어가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얼마나 많이 느끼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보자. 그런 다음 이 책을 다시 보자. 이 책을 읽다보면, 리차나 야스나를 통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장점을 볼 수도 있고 아냐를 통해 모순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것은 어떤 것이 무조건 옳고 어떤 것이 무조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경우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념이나 이론은 이상을 지향하지만 그 실천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마리의 어린 시절 경험은, 보통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으면서 공산당을 체험할 수 있었던 마리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나친 민족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리의 경험이 낯설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모든 것을 우리나라와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의 경험에는 비교될 수 없겠지만, 나도 많은 외국인과 접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또 외국에서 1년 정도 생활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념을 떠나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은 책표지의 문구처럼 이데올로기에 휩쓸린 소녀들을 통해 동유렵의 역사를 본다기보다, 나와 다른 민족이면서, 나와 다른 사고를 지닌 소녀들, 그리고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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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 수많은 고민이 한꺼번에 생겼다.

모든 것을 부모가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주지 못하는 것 때문에 혹시 속상하지나 않을지... 다른 아이들과 본의 아니게 비교하면서 아이를 닥달하지는 않을지.. 엄마의 욕심으로 아이를 망치지나 않을지..등등등... 별별 고민이 꼬리를 문다.

 

바위솔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됐는데, 웬만한 육아서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책 제목만을 보고서 독서지도에 관한 책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고, 그냥 느티나무 도서관 이야기다. 아, 그런 도서관이 있었어? 어린이 도서관?? 느티나무 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통해 독서가 교육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는 독서일 뿐이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책을 펼치고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감동하고 희노애락을 느끼면 된다. 그런데 요즘은 [~~학습], [~~교육]하면서 독서도 가르치려 든다. 가르치려 드니 배우기 싫은 게 당연하다.

 

어렸을 때, 책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누가 시켜서 읽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책 읽는 것이 좋았다. 다행히(?)도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성격이었던 탓에 집에 있는 책을 읽게 되고 그것에 재미를 붙여 무섭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버지께서 동네 서점에 이야기해서 내가 언제든지 읽고 싶은 책을 골라갈 수 있게 하였고, 당신께서는 월말이 되면 책값을 정산하셨다.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보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이 무궁무진하다. 모든 것을 직접 해 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준 것이 독서였다. 그래서 독서에는 즐거움과 재미가 있고, 지식과 지혜가 함께 있으며 감동이 있다. 그런데 요즘 독서는 그렇지 못한듯하다. 우리 아이가 독서를 독서답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이 책 속에 있다.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책을 놀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른들 마음이 바뀌어야한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느티나무 도서관이 있는 그곳은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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