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 샘깊은 오늘고전 3
허난설헌 지음, 이경혜 엮음, 윤석남.윤기언 그림 / 알마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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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을 알고 있는가? 학교 다닐 때 다들 한번씩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고, 허균의 누이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 허난설헌이다. 한국역사에서 이름난 여성이라 하면 의례 신사임당이나 황진이 정도만 떠올리는 우리에게 허난설헌은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인물이다. 그러한 허난설헌을 다시 되살려낸 책이 바로 이 책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이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는 그리 녹녹치 않다. 그것은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다. 특히 조선시대의 여성의 삶은 더더욱 그러했던 듯 하다. 우리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신사임당을 기억하거나, 화담 서경덕과의 일화로 더 잘 알려진 황진이와 마찬가지로 허난설헌 역시 허균의 누이로 기억하는 이가 더 많다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같은 이유일 것이다. 남자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그 재주로 인하여 오히려 불행하게 살다 간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에서는 허난설헌의 사람과 문학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대상을 굳이 청소년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허난설헌의 한시를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이 많을 터이므로 이 책을 성인들이 읽어도 될 책이라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전체적인 설명투의 문장이 청소년용임을 표방하고잇긴 하지만 말이다.

자, 또 한가지, 이 책을 읽기 전에 맨 앞장에 있는 [일러두기]는 꼭 읽기 바란다. 이 책 속의 시는 허난설헌의 한시를 요즘 청소년들이 읽기 쉽게 번안했음을 알려두고 있는데, 굳이 딴지를 걸려는 사람이 있을까 노파심에 [일러두기]를 꼭 읽어두기를 바란다.

한시(漢詩)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면, 한시를 읽어도 어떤 감흥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것은 특히 요즘 젊은이들처럼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이 책에서는, 다행히도(??) 이경혜씨가 한시를 아주 멋들어지게 번안해놓았다. 그래서 이 시를 쓸 당시의 허난설헌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더욱 쉽게 다가설 수 있다. 한시는 우리문학이기는 하지만, 한글세대인 젊은이들에게는 한시 역시 외국문학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한시를 풀어쓰는 것 역시 새로운 문학의 재창조라고도 할 수 있는 문학번역과 같이 생각해야한다. 그래서일까? 이경혜씨가 재창조해낸 허난설헌의 시가 쏙쏙 마음에 와닿는 것에 안도감마저 느꼈다. 어설픈 번역이야말로 오히려 그것에서 멀어지게 하는 계기마저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허난설헌, 그녀의 삶이 스물일곱의 나이에 끝나버렸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이라도 한듯한 -꿈에 본 것을 적다- 시를 읽으니 가슴 한켠이 씁쓸해진다. 스물일곱해를 살다간 그녀의 삶이 결코 아름답기만 햇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그러하다. 뛰어난 재주를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오히려 더 외롭게 살다간 - 부부의 정도 그러하고 자식과의 인연도 그러하다 - 허난설헌.

그리고 여기에 더해 윤석남 윤기언의 작품은 문학과 더불어 미술 영역으로까지 확대된 허난설헌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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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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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세번, 음식 쓰레기통에 스티커를 붙여 밖으로 내놓는다. 그때마다 나는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야채와 과일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리곤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생활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동과는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이 책에서는 세계의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비만에 시달리고 있는데, 또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아이와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쉽게 풀어내고 있다. 세계를 살펴볼 것도 없이, 우리 나라, 아니 내 주변을 둘러봐도 이러한 불합리를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교에서 주는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떼우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한 학교에 3-40명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그 아이들이 굶는 이유와 책임을 어디다 물어야 할까? 그들의 부모가 게으르고 나태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실업자가 넘쳐나고, 한부모 가정이 넘쳐나는 사회적 구조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을터이다.

 

이 책에서는, 수천만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의 주범은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경제질서 (p.22) 라고 말한다. 그 세계 경제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선진국들(이른바 강대국들)과 다국적기업들, 세계 시장의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거대 자본들의 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물론 그들의 최고 목표는 이윤의 극대화이다보니 그런 각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그들 나라에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어서라기보다 자유무역협정이나, 식민지정책의 잔재로 계속되고 있는 단일농작물의 재배 등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그 나라에서 생산, 소비가 가능한데도, 다른 나라의 잉여농산물이 싼 가격으로 시장을 점령해버리면 그 나라의 농가들은 더이상 생산을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생산을 포기하게 된다. 또, 선진국들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만을 생산하는 단일농작물재배 시스템이 되어버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결국 주식이 되는 농작물(자동차나 공업제품과는 달리 생존을 위협하는 품목이다)을 자급할 수 없게 되니 다른 나라에서 수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져 버린다면??

 

지금 한미FTA협정으로 시끄럽다. 한두해 있어 온 일도 아니지만, 그동안 저게 뭐 그리 큰 문제일까 생각했었다. 싼 농산물을 들여와서 먹을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주는 참혹함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의약품도 그렇다. 축산업을 통해 양질의 가축을 길러 풍요롭지는 않아도 자급이 가능했던 나라가 의약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축산업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보면 어느 하나 자유로운 것이 없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식의 협정이라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줘도 손해볼 것 없고 받으면 좋은 강대국의 입장일 뿐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론을 등에 업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강대국들의 횡포는 이제 극에 달한 듯 하다. 국가를 떠나 자유롭게 무역을 하도록 하자는 허울 좋은 껍데기에 둘러싸여 그 이면을 보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경제력과 기술을 가진 강대국과, 소규모 생산밖에 할 수 없는 나라들이 어떻게 같은 조건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강대국들에 의해 경제를 잠식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이 책 속의 아이도 그렇지만, 나도 항상 가진 의문이 하나 있다. 왜 남아도는 농작물을 기아로 허덕이는 이들에게 주지 않고 바다에 버리거나, 땅을 갈아엎어버리거나 하면서 없애버릴까? 결국은 그것 역시 무지막지한 경제 논리 속에 가려진 이유, 즉, 이윤 극대화가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었다.

 

또, 자연재해 등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사건에 의한 기아 외에도, 전쟁이나 내전때문에 기아에 시달리는 국가들도 있다. 미국이 잘하는 짓(?)이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남의 나라 내전 문제에도 거침없이 참견하고 전쟁을 선포하는 짓... 그런 짓도 골라가며 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쿠웨이트와 그 석유는 서방 강대국의 경제에 대단히 중요하지만, 아프리카 내전은 선진국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지. (p.89)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때까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p.101)

 

부르키나파소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도 아니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니까. (p.143)

 

그러니까,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거나 자국 기업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벗고 나서지만, 자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때에는 한마디로 쌩깐다(--)는 사실이다. 세계 평화 수호자라는 탈을 쓰고 그 이면에서는 이리 저리 자를 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한 최소한 조건 중에서도 음식은 가장 중요하다.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고 인권이 어떻고 떠들기 전에 가장 최소한의 조건조차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저자는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 (p.152)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밀어붙이기식의 FTA협정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자유무역인가??

 

그리고, 이 책에서는 내 지식의 단순함을 일깨워준 대목도 있었다.

식료품을 실은 비행기가 수단 남부의 관목지대 위를 낮게 날면서 그 화물을 연신 떨어뜨리는 사진, 그리고 바싹 마름 덤불 속에서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나 화물 쪽으로 몰려드는 장면이었지. 사진 설명에는 "드디어 구호의 손길이 수단에 닿다"라고 적혀 있었어. 정말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진들이지. 하지만 실제로 구호활동은 그런 장면과는 크게 다르단다. 전문 의료지식을 바탕으로 대단히 면밀하게 이루어지거든. (p.59)

 

즉, 이런 식의 구호활동은 그저 그림일 뿐 현실이 아니란 것이다. 우리가 아플 때를 생각해 보자. 허약해진 몸의 기운을 북돋우고 추스리기 위해 먼저 위에 부담이 되지 않는 음식부터 먹기 시작을 한다. 그것도 어려울 때는 주사를 맞아 기력을 회복한 다음에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하물며, 만성적으로 굶고 있는 이들에게 적절한 처치 없이 곧바로 음식을 먹게 한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 음식을 주기 전에 의사의 진료와 처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내전이나 전쟁으로 인해 기아에 시달리는 지역에서는 특히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늘에서 떨어뜨린 화물을 줍기 위해 뛰어가다 지뢰를 밟거나 하여 다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한장의 사진을 통해 우리가 할건 다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진정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다같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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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2:09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바다의 풍경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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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끄럽게도.

솔직히 아동문학이니 청소년 문학이니 하는 책들에 관심이 없었던 탓도 있고

이런 류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어떤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던 탓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추천하던 책이라 이번에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생기자마자 주저않고 읽게 되었다.

책을 다 읽은 나의 첫느낌이자 하이타니 겐지로와의 첫만남은,

대단히 만족스러우며, 그와 더불어 많은 생각꺼리를 안게 되었다.


소키치는 고3이 되면서부터 등교거부를 하고

도시락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버지의 흔적 찾기를 하고 있는 학생이다.

자신의 생각을 잘 이야기하지 않기때문에 선생님과 친구들 뿐만 아니라

유일한 가족인 누나조차도 소키치가 왜 등교거부를 하고 있는지 알지를 못한다.

소키치의 담임인 시마오 선생도 소키치가 단순히 학교교육에 반항하기 위해

등교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소키치 때문에 교사로서의 자신에 대해 고민을 거듭한다.

 

책의 첫머리부터 소키치의 등교거부는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등교거부는 일본의 교육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문제로 익히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등교거부에 대해서는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등교거부는 학부모 또는 어른들의 요구 관철을 위해

이유도 모른채 등교거부를 명령(!!)받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뉴스 정도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도 아이들의 자발적 의지에 의한 등교거부가 존재한다.

학교교육에 반발하여 스스로 학교를 떠난 학생이나,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 측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학생 등등.

그리고 그런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이슈가 된 적도 있다.

 

혹시 주변에 등교거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 있는가?

있다면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가?

 

대부분 등교거부의 이유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 대부분이 주위 사람들을 믿지 않으며(혹은 믿을 수 없게 되었으며),

또, 친구들조차도 그들을 외면하기 일쑤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같이 생각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일단 학교에 가야한다는 전제하에서 그들을 지도하려 들거나,

설득하려들기 때문이다.

 

소키치도 마찬가지다. 소키치는 학교에 가지 않는 대신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웃들의 고기잡이 일을 돕기도 한다. 또,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고 직접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등교거부학생 = 문제아 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소키치를 역시 그와 같은 공식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소키치 뿐만 아니라 다른 등교거부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 학생이 왜 무슨 이유로 등교거부를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 근본원인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일단 학교를 벗어난 학생은 문제아라는 공식에 사로잡혀 있는

어른들의 눈 때문이다.

 

자, 다시 소키치로 돌아가보자. 소키치가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의 뒤를 좇는

이유는 누구보다 섬을 사랑하고 어부를 천직으로 알던 아버지가 섬의 자연을

파괴하는 송전탑 건설에 동참한 것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키치는 아버지의 흔적을 뒤쫓으면서, 정치와 기업의 논리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일본의 섬과 자연들, 그리고, 1차 산업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개발이 곧 발전이라는 논리가 얼마나 황망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한참 FTA협상때문에 시끄럽다. 자동차니 의약이니 여러 가지가 걸려 있지만,

가장 크게 대두되는 것 중에 하나가 농업이나 축산업 같은 1차 산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1차 산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굳어져왔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게으름을 부리면 농사꾼 밖에 될 수 없다"는 선생의 말에 상처받은 아이가

"기왕이면 그렇게 게을러서야 어떻게 훌륭한 농사꾼이 될 수 있겠냐고 야단쳐줬으면" (p.66)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차산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바로 그 선생과 다를 것이 무엇이던가.

게다가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는 1차 산업 종사자들이 자신의 자녀들은 이런 일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키치가 아버지의 흔적으 뒤좇는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그토록 섬과 자연을 사랑한 아버지가 섬의 파괴가 눈에 보듯 뻔한 송전탑 건설을

도왔다는 사실이 과연 다른 이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어업을 일치감치 포기하고

토산품 가게를 하면서 편안한 삶에 안주하기 위해서가 아니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의 삶을 좀더 능동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키치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을 따라가면서

히데요의 가족, 시마 아저씨, 유코, 오키나와의 리쓰, 시마오 선생님, 와카마쓰 선생님,

그리고 학교 친구들 등 소키치가 만나는 사람들을 함께 만났다.

그들을 통해 소키치가 남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풀어야할

문제라는 걸 인식하게 되면서 소키치는 자신이 독선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듯이

나 역시, 소키치와 마찬가지로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소키치가 학교를 떠나 혼자서 많은 고민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풀어나가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것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로 발전하면서, 학교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걸 행복하다고 여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권의 책 속에 하이타니 겐지로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등교거부 문제, 환경파괴문제,

1차산업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등..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각각 다른 문제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문제라는 걸 보여주었다.

또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주어진 레일을 따라 얌전히 걸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새로운 레일을 깔고 그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행복한 사회,

살아있어서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됨을 알 수 있었다.

 

청소년 책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성인들에게도 충분한 감동과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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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 되풀이되는 연구 부정과 '자기검증'이라는 환상
니콜라스 웨이드.윌리엄 브로드 지음, 김동광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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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우석과 이필상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서문을 통해 황우석 사태를 바라보는 외국 기자의 시선을 짧게나마 읽을 수 있었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황우석 사태는 연일 미디어를 강타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결론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로 잊혀져 가고 있다. 지금 황우석은, 그리고 황우석과 함께 그 엄청난 조작에 관여했던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합당한 조치에 처해졌는가? 이 책 속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만의 메커니즘 속에서 보호받으면서 우리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비단 과학자의 기만행위뿐만 아니라 얼마 전 고려대 총장의 논문표절 사건 등을 통해 지식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기만행위들에 대해 알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최근에 일어난 새로운 사태가 아니라 몇 백 년 전부터 있어온 일이며,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만행위에 대처하는 방법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도 놀랍다.


2. 지식의 사기꾼, 과학의 사기꾼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2006년에 시아출판사에서 출판된 하인리히 창클의 『지식의 사기꾼』과 『과학의 사기꾼』을 떠올렸다. 분면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 내용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뒤져보니 이 두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상당 부분 같은 내용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지식의 사기꾼에서는,

   알사브티 ‘박사', 멋대로 쓰이는 지능 검사, 버트 교수가 조작한 쌍둥이 연구, 상상의 산물인 뇌신경전달물질, 베링거의 가짜 화석, 필트다운 화석을 둘러싼 스캔들


   과학의 사기꾼에서는,

   프롤레마이오스의 별자리지도,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칙, 뉴턴의 '조작인수', 블론로의 N선, 멘델의 교배실험, 헤켈의 생물발생 법칙과 사진 조작, 카머러의 이상한 두꺼비, 과학답지 않은 리센코의 '과학', 단백질 분리 사기극, 사기로 드러난 서머린의 피부이식, 스펙터의 키나제 사건, 롱의 이상한 호지킨 세포주


등이 그러하다. 물론, 하인리히 창클이 쓴 책에는, 윌리엄 보로드와 니콜라스 웨이드의 글 상당수가 참고문헌으로 올라있다.


3. 윌리엄 보로드와 니콜라스 웨이드, 그리고 하인리히 창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책은 아래와 같은 점에서 다르다.

   하인리히 창클의 책이 구체적인 사례들을 전달하는데 그친다면, 윌리엄 보로드와 니콜라스 웨이드의 책은 구체적인 사례와 더불어 그런 기만행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과학자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과 과학자들이 말하는 자기규찰시스템의 세 가지 메커니즘 동료평가, 심사위원제도, 재연 등이 올바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적 시도들을 소개하면서, 과학자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따라서, 재미있는(?) 일화를 읽고 싶다면 과학/지식의 사기꾼을, 일화와 더불어 과학자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추천한다.


   이들은 모두 이러한 과학자의 기만행위들을 1830년 런던에서 발표된 찰스 배비지의 『영국 학술의 몰락에 관한 고찰들』을 근거로 하여 ‘위조(forging)’, ‘요리하기(cooking)’, ‘다듬기(trimming)’, 그리고 ‘표절’등으로 구분하였다. 그런데, 이 두 책은 저자의 오류인지, 번역자의 실수인지는 알 수 없으나 똑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지식의 사기꾼 / 과학의 사기꾼』에서의 머리말 [학문에서 사기는 어떻게 일어나나?]의 일부 p. 8-9를 보자. 배비지도 그로 말미암아 여러 측정치를 합하여 얻어낸 중간 값이 본질마저 뒤바뀌는 정도가 아닌 한 ‘요리하기’가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절차를 배비지는 ‘다듬기’라고 이름 지었는데, 독일에서는 이를 흔히 ‘데이터 마사지’라고 한다. -중략- 배비지는 요리하기보다 더 위험한 사기행위를, 처음부터 자신이 설정한 값이 나오도록 측정값을 계속해서 조작하는 ‘다듬기’라고 보았다.


   그러나 『진신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2장 [역사 속의 기만행위 사례들]의 일부 p. 43을 보면,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배비지는 당시 이런 다듬기가 다른 유형의 기만행위들에 비해 그나마 덜 비난할 만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다듬기를 하는 사람의 관찰로 나온 평균값은 다듬기를 하든 그렇지 않든 같기 때문이다. -중략-” 배비지의 관점에서 다듬기보다 더 고약한 행위는 그가 ‘요리하기cooking)’라고 기술한 것이었다.


   과연 배비지의 견해는 두 책의 저자 중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4. 이런 일들이 비단 과학계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은 아니다. 논문 표절, 도용, 위조는 이미 학계에 많이 퍼져 있다. 보통 내부 고발자에 의해 밝혀질 수밖에 없는데, 만약, 누군가가 학계에서 그런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한다면, 아마도, 그 내부 고발자는 학계에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 몇몇, 양심적인 학자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교수들이 자신의 양심에 아무런 죄책도 없이 그러한 일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부산에 있는 모 대학 교정에 산책 삼아 나갔다가, 교수 동 앞에 푯말 - 이 연구동은 교수님들이 연구를 하는 곳이니 정숙해주십시오- 을 보고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다. 과연 몇 명이나 되는 교수들이 연구를 하고 있을까? 대학원 석․박사 과정생들에게 제대로 논문 지도를 해주는 교수가 몇이나 되며, 뒷날을 볼모로 삼아 자신의 연구를 그들에게 떠넘기는 교수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지나치게 부정적인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한국대학의 현실이다.

   몇 백 년 전에도, 이 책이 쓰인 20여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변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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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어제 뉴스에서는, 여수출입국관리소에서 화재로 10여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때마침 내가 읽고 있었던 책은 중남미국가의 불법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야기한 [엔리케의 여정]이었다. 사실, [엔리케의 여정]을 읽으면서,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으려 하는 모습들이 중남미 혹은 미국과 국경을 인접한 지역의 특수한 경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국경을 넘다 기차에 수족을 잃거나 갱에게 당하는 것이나, 국가기관인 출입국관리소에 수용되어 강제출국을 기다리는 그들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엔리케의 여정]은, 온두라스에 사는 엔리케라는 아이가, 미국으로 일하러 간 엄마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가는 여정을 사실 그대로 그린 책이다.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작가의 목소리보다는 엔리케의 여정을 쫓아가면서 독자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아이를 두고 혼자 미국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싱글맘들이 많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하다가 국경을 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중남미국가들. 엄마들은 밀입국알선자를 통해 국경을 넘고, 그런 엄마를 찾아가기 위해 아이들은 몰래 국경을 넘는다. 미국으로 넘어가는 국경인접 마을마다 엄마를 찾아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불법이주자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차지붕에 매달려 국경을 넘어가는 이들에게는 추위와 더위, 그리고 굶주림과 더불어 갱까지, 험난한 여정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사선을 넘나들며 마침내 엄마를 만난 아이들은 행복한 재회를 꿈꾸지만, 수년간 떨어져 살아온 그들에게는 또다른 갈등이 증폭되고 폭발한다. 이것은 중남미국가뿐만 아니라 해마다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미국사회에서도 문제가 된다. 결국, 이 험난한 여정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중남미 국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 뿐이다.

 

미국은, 그동안 세계 평화 유지자라는 가면을 쓴 채 수많은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종속시켜버렸다. 그 결과 미국은 부유해졌고, 그 어느 나라도 미국에 대항할 수 없는 체제가 되었지만, 미국 사회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동시에 같이 안고 가게 되었다. 그것은, 자국에서의 경제활동이 보장되지 않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윤택한 미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고, 오히려 미국민들의 일자리를 싼 노동력의 이주자들이 차지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간에 값싼 노동력이 해외로부터 많이 유입되게 되면, 일자리를 잃는 자국민의 숫자가 많이 줄어든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있는 자는 값싼 노동력으로 부를 축적하게 되고 없는 자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과 물류에 종속된 국가들은 그 국가들대로 살아남기 위해 또다른 국가의 값싼 노동력을 가져옴으로써 자국민이 설자리를 잃게 되는 똑같은 악순환이 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남아국가의 이주 노동자들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해마다 불법체류자들을 강제이송한다 어쩐다하며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기도 한다. 엔리케가 겪은 수많은 고통들이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부패 경찰관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갈취하는 악덕기업주들과, 그런 노동자들에게 사기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불법이주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만 잘먹고 잘살면 되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아야 한다. 근본원인(불법이주자들의 국가가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치료하지 않고서는 물고 물리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불법이주자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그들 가족들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물론, 내가 가르친 대부분의 학생들은 유학 온 대학생이나, 기업체의 전문기술직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좀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가르치면서, 한국사람들의 이중적인 잣대를 보았다. 대학생이든 전문기술자들이건간에 출신국가(선진국이냐 아니냐)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지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산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생산직 외국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2-3년 전,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강좌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 노동자들이 알고 있는 한국어들이 대부분 한국의 욕설이었다는 것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즉, 그들이 듣는 수많은 한국어가 욕이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불과 몇십년 전에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간 노동자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잊어버린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의 내용은 좋으나 별점이 적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1. 두려(P.57) ->두드려 (오타) 

 2. 엔리케도 그녀가 자신의 멋진 옷과 진지한 태도가 건방져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P.58) -> 그녀가 건방져 보이는 건지 엔리케가 건방져 보이는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번역

 3. 스 다섯 점(P.66) -> 스물 다섯 점, 스 명(P.105 / P.197) -> 스무 명

: 스물 + 수분류사(개, 대, 명 등등)이 오면 ㄹ 탈락, 스물 + 숫자 오면 ㄹ 유지되는 것이 맞춤법에 맞음.

 4. 나라(P.89) -> 우리 나라

 5. 국경에서 북부 치아파스의 아리아가에 이르기까지가 구역인 검은 피부와 이마에 MS문신을 한 뚱뚱한 엘살바도르인 블랙키, 엘 더크, 포르키, 홈보이 등등 많았다.(P.117) -> 이런 문장처럼 꾸미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문장 다수

 6. 르티야(P,124)와 르티야(P.125)처럼 같은 단어의 다른 표기들.

 7. 물 컵(P.128) 한 살 반 인(P.128) -> 띄어쓰기 오류

 8. (P.154), 코요태(P.175) 셔츠(P.226) ->조사 오류

 9. 그는 부패한 경찰들도 가난한 이주민들 강탈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P.183) -> 은/는 보조사의 명확하지 못한 사용

 10. 고속도로의 아스팔트가 녹을 정도였던 섭씨 44도에서 47도를 나타냈던, 지난주보다는 기온이 낮아졌지만 (P.198) -> 어색한 문장

 11. 그는 그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인 결과, 결론은 혼자서는 가지 말라는 것이다.(P.200) -> 주어와 서술어의 불일치 문장 다수

 12. 그곳은 일반전화 훨씬 싸기 때문에 엔리케에게 전화할 때 (P.261) -> 생략된 조사로 인해 불분명한 문장

 13. 준비하고 있으라는 연락이었다, (P.276) -> 틀린 문장부호

 14. 더 것 같았다. (P.277) -> 더 나을 것 같았다. 맞춤법 오류

 15. 이주민들은 그들이 받는 서비스 요금보다 적은 3,463달러를 덜 낸다고 국립조사위원회는 말한다.(P.294) -> 서비스 요금보다 3,463달러가 적다는 것인지, 3,463달러를 덜 낸다는 것인지 불명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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