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팔다 베스트 모음
끼노 지음, 조일아 옮김 / 아트나인(비앤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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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풍자만화가 이렇게 재미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니, 어쩜 그렇게 심각하고도 중요한 이야기들을 잘 풀어내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팔다는 숱많은 검은 머리모양이 인상적인 여자아이다. 마팔다가 태어나 살던 시대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의 아르헨티나를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지만, 2007년인 지금 읽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지금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건 여전하기 때문이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국민들의 생활이 불안정한 것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른들의 생각이란 게 몇십년이 지나도 똑같다는 것도 재미나다.

 

만약 요즘 그려진 만화라면 라디오나 신문대신 텔리비전이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습이 나왔을 것이고, 마놀리또의 식품점도 대형할인마트 정도로 크기가 달라졌겠지?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남자들도 군대이야기만 시작하면 끝낼줄 모르고 계속하나 보다^^

마팔다의 엄마의 수다는 사회심리학적인 수다로 변신하고, 아빠의 사회생활도 그리 녹녹치 않다. 자동차 하나 구입하기 위해 이것저것 이유를 만들어대는 모습이나, 집밖으로 나가는 순간 TV광고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빠의 모습이 지금 우리네 아빠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같다. 마팔다는 아이지만, 아이답지 않게 조숙하고 게다가 직설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아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요즘 아이들을 보면, 마팔다 비슷한 아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싶다. 어른들은 이것저것 재느라 하지 못하는 말을 아이들은 생각한 그대로 말한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정보를 구하기 쉬운 시대에는 더 그러하다.

 

마팔다가 시원스레 꼬집어주는 이야기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건 만화니까, 이미지적인 측면을 봐도 마팔다의 캐릭터는 친근하면서도 강하다. 그래서 마팔다의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데 주저할 틈이 없다. 마놀리또는 기업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상정된 듯하다. 그런데, 그런 마놀리또가 돈 버는데는 열중하면서 멍청하다는 것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기업인들에 대한 풍자랄까? 지구본을 바라보면 속이 다타버려 번쩍 들릴만큼 가벼워졌다고 생각하고, 세계사람들이 속을 썩여서 위궤양에 걸렸을 거라 걱정하는 마팔다를 보면, 황당하지만 한편으로는 동감을 하게 된다. 게다가 주입식 교육을 비롯해 선생님의 체벌, 시험과 같은 교육문제에서부터 정치, 경제, 환경, 실업, 출산, 기아 등등등 마팔다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시사만화는 요즘들어 한컷짜리가 대세인듯한데-사실, 종이신문 안본지가 오래 돼서 인터넷으로는 기사만 보게 된다-, 4컷짜리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보는 맛도 색다르다. 시사풍자만화이면서도 웃음의 여지를 남겨두는 만화다. 마팔다처럼 세계와 인류를 생각할만큼 마음이 넓지도 않은 나지만 오늘만큼은 마팔다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마팔다같은 아이가 주변에 있었다면 경상도 말로 '대라졌다'고 표현할만한데 그런 마팔다가 결코 밉게 보이지 않는다. 잘난척 하는 걸로도 보이지 않는다. 만화를 보다보면 마팔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같다.

 

내가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 그건 바로 정치인들이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마팔다보다도 머리가 안돌아가는 그들,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명분만 가지고 싸우는 그들, 때로는 그 명분조차 개도 안물어갈 허접한 것들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네들이 하는 짓은 1960년대 아르헨티나의 상황과 뭐가 다르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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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 책과함께 아틀라스 1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김희균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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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국은 FTA(자유무역협정)기사가 연일 넘쳐난다. 한미FTA에 이어 한-EU FTA 협상이 진행중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세계무역은 있는 자들의 잔치상이 되어가고 있다. 뭐 그런 일이 한 두해 이어진 일도 아니고, 좁게 보면 국내경제도 세계경제와 똑같이 굴러간다. 기업 간의 이윤 경쟁이 국가 간의 이윤경쟁으로 확대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런 시점에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왜 하필 지도인가? “지도가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라는 말은 지금 그려져 있는 지도가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정치나 경제와 같은 힘의 논리에 의해 지도는 변해왔고 또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앞으로의 지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과거와 현재의 지도는 그동안 어떤 사건이 어디에서 발생했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이 이란을 ‘지정학적 골칫덩어리’로 보는 한 이란을 이해할 수 없다. 이란의 시각에서 이란을 볼 필요가 있다.(p.10)라고. 그러니까, 적어도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어느 국가, 어느 대륙을 자신들의 눈으로 비판하고 재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각 대륙, 각국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 그 의지만은 아주 높이 살만하다. 프랑스 아르테 방송의 다큐멘터리 <지도의 이면>을 책으로 풀어내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지면에 옮겨놓은 수고 또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 책의 곳곳에는 세계에 대한 편협한 시각에서 탈피하려는 원래의 의도에 부합하는 꼭지가 있는가 하면, 유럽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곳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경쟁상대인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아시아의 경우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이나 잠재적인 구매력을 가진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 등이 그러하고, 유럽연합에 회원국이 되려는 국가나, 그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유럽연합의 태도(궁극적으로는 유럽연합에 이익인가 아닌가로 판단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게 약한 점이 그러하다. 나름대로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듯 보이나 실상은 그들도 유럽연합의 대변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TV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겨오면서 설명과 화면이 동시에 제공되는 형태 때문에 지면이 복잡하게 구성된 것은 책을 읽는데 조금 불편했다.


 그러나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도를 통해 세계 정치경제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고, 각국의 이해관계를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잘 풀어낸 점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은 몇몇 강대국이나 경제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수많은 나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적이었던 국가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을 수도 있고,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혹은 경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군사력(또는 핵무기)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 책 속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지만(분쟁지역인 독도문제에 있어서도 일본 중심적 서술로 일관되어 있다) 오늘의 우방(미국)이 내일의 적(미국)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일이다.


 최근의 지도의 변화는 미국이 빠지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아주 커졌다.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여러 가지 기치 중에서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민주주의의 수호’는 냉전체제 이후 급격하게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사실, 냉전체제 당시에도 정말로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그렇게 싸웠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국의 이익이 걸려있지 않다면, 자국의 안보가 문제되지 않는다면 절대 개입하지 않았을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거대해진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돈과 군사무기로 점철된)은 확장일로에 있다. 저자는 (미국의) 30만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유럽의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점만큼은 두고두고 기억해야할 것(p.56)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미국은 보스니아나 코소보의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는데도, 발칸반도에 미국의 첨예한 이익이 걸려있지 않다고 판단(p.57)하여 개입하지 않았다. 탈레반 정권의 뿌리는 파키스탄이며 1998년 핵실험으로 핵클럽에 가입한 이후,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심도 받고 있는 상태다.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뒤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 이라크가 아니라, 파키스탄이기 때문(P.118)인데도 미국은 파키스탄을 공격하지 않았다. 마약이 가장 많이 나가는 곳이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은 마약 생산지 콜롬비아를 노릴 수밖에 없으며 북동부를 통과하는 카뇨리몬 송유관이나 경제적 이권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2004년에만 콜롬비아에 7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주었다. 미국의 이익에 관계없는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개입을 하든지, 개입을 하지 않든지, 뭔가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미국은 항상 정치적인 손익계산을 한다.(P.166) 그러나 이것은 유럽연합도 마찬가지이다. 대규모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사태를 감당(P.167)해야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 개입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쿠르드족을 보호하기 위해 감시체제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쿠르도족 지역 내에 있는 유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p.113)였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럽연합의 꼼수에 대해선 특별한 비판을 가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주로 중국, 일본, 인도 등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세계 경제대국인 일본에 비해 중국에 대해서는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또한 분쟁지역으로서의 독도에 대한 발언도 일본 쪽 견해에 따르고 있다. 즉, “우리는 그곳이 일본해라고 알고 있지만, 한국은 동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P.143)고 하며 일본 쪽 주장에 어울릴 지도를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저자나 아르테 방송국이 아니라 유럽연합을 의미하는 듯하다. 며칠 전부터 국제수로기구(IHO)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동시 표기하는 문제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무슨 특별한 때나 되어야 동해니, 독도니 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도 문제고,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세계의 구도가 어떻게 개편되어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경제대국이 이끌어가는 구도가 뻔히 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국의 번영과 안녕이지 세계평화와 지구의 안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허울좋은 세계화도 결국은 강대국과 경제대국을 위한 세계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그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묘책은 없는 것일까? 이란이나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하려고 하는 이유도 다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쥐도 도망갈 구멍을 놓고 쫓으라했다.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는 국가를 위협하거나 제재를 가할 것이 아니라 이미 핵무기를 가진 자들부터 비핵화되어야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결국은 핵무기를 가진 자들이 큰소리치는 세상에서, 절벽 끝까지 다다른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또 무엇이 있을까? 환경문제도 그러하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자기네들이 개발하고 파헤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저질러놓고 후진국들이 살아보겠다고 힘쓰는 걸 환경보호니 뭐니 하면서 거창한 이유로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세계사는 오늘도 힘의 논리에 지배를 받고 있다. 오늘은 집에 세계지도를 사다가 하나 붙여볼까. (^^)


 사족, 15-49세 에이즈 환자 지도(p.217)에 나타난 한국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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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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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너무 재미있는 책이었다.

나는, 온다 리쿠의 책 중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다. 아는 사람들이 이미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고 극찬을 한 것을 보았기에 망설임 없이 이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지인들이 추천한 책을 읽고 싶었지만, 때마침 이 책이 발간되었기 때문에 먼저 읽게 되었다. 아,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의 전작들이 다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방금, 온다 리쿠의 책 7권을 구매했다. 이런 걸 충동구매라고 해야할지... 어쨌든 그 만큼 온다 리쿠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다.

일단, 소설은 재미있고봐야한다. 전해주는 메시지 이런거는 둘째다. 첫째는 무조건 재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도 재미없으면 꽝 아닌가. 온다 리쿠의 소설은 이 책 한 권 읽었지만, 책이 읽히는 속도감이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든지 하는 점에서 합격점이었다. 게다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말에 허를 찔린 느낌이라니...

처음엔 이 책을 읽으면서 가벼운 연애소설로 착각했다. 마치, 꽃미남, 미소녀가 나오는 만화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첨엔 조금 실망스런 느낌도 없잖아 있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게 아닌 것이었다. 등장인물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새로운 사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라니...!!!

소설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마녀의 집'이라 불리는, 어린 시절에 잠시 산 적이 있는 백합장에 리세라는 소녀가 오면서부터 시작한다. [백합장]이 주는 묘한 분위기와 작은 동물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은 사람들이 왜 마녀의 집이라 부르는지 알만하다. 게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원인모를 사고들이 겹쳐지는데, 그 사건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막다른 골목에 도착해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소설은, 온다 리쿠의 전작들과 연관이 있는 소설이지만, 번역자인 권남희씨처럼, 이 책만 따로 읽어도 별 부담이 없다. 대신, 나처럼 그 전작이 궁금해 되짚어 올라갈 수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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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2007년 봄호 - 통권 4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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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겨울 문학계간지 "문학동네" 창간호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오랜 전통있는 계간지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던 때에 새로운 계간지가 나타났다. 어떤 새로운 문학적 이념이나 논리를 표방하지 않으면서 젊은 문학인들의 새로운 시도나 모험을 대폭 수용한, 한마디로 젊은 문학계간지의 출현이었다. 특히 매호마다 젊은 작가 특집과 해외작가 소개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90년대 중후반에 활발한 작품활동을 별였던 국내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이었다. 기존의 계간지에 비해 분위기가 조금 가벼웠기에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더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학계간지였기에, 지금까지도 애독을 하고 있다.



그런 '문학동네'에서 청소년 문예지를 발간한다고 했을 때 엄청 기대도 많이 했었는데,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통권 4호쯤 되면 기획의도나 편집구성에 있어서 어느 정도 평가가 이루어졌을 터이다. 마지막 페이지 out을 보면 터잡기는 제대로 한듯 보인다. 고정팬을 거느린 코너가 생겨났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래서, 그런 인기코너를 먼저 살펴보았다.

[연애의 기초],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앙꼬의 청춘일기]..

[풋]에 대한 내 기대와 생각은 바로 여기서 어긋났다. 내가 기대한 코너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지나치게 가벼운 코너...

다른 코너를 읽기 전에 나는 이 계간지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래, 이건, 청소년들의 생활을 청소년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거울이다. 라고...


나는 아마도 [풋]을 다른 책 - 지학사의 독서평설이나 창비의 어린이 같은 - 들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페이지의 절반 이상을 문학에 할애하고 있으나 주변의 것에 더 시선을 뺏기는 잡지이다.


이번 봄호 특집은 [하지마]이다. 주제 하나 끝내준다. 청소년 시절, 왜 그리도 하지마란 것들이 많았던가? 하라는 것은 없고 하지 마란것만 가득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글을 읽었다. 그렇지만, 특집치고는 내용이 그다지 무게있어보이지 않는다. 무게없음. 가벼움이 이 문예지 [풋]의 성격인듯하다. 지나친 무거움은 경계의 대상이지만, 지나친 가벼움 또한 넘길 일은 아닌듯하다.


제1회 청소년 문학상 공모 당선작들을 보노라니, 여고시절, 나름대로는 글 한번 써보리라 깝죽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뭐 얼마 못가 내길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그 당시, 글깨나 쓴다던 친구들을 보면, 문학소녀...라는 이미지 그대로였다. 요즘은 어떨까?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 그들은 이미 어른들의 세계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심사위원들이, 어른들의 눈으로 작품을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청소년들의 글을 통해서 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진실된 내용도 보고 싶지만, 문학의 형식을 깨부수는 과감한 시도도 엿보고 싶었다. 너무나 안정적인 글들만 보아서 그런지 [풋]은 그냥 풋!이 될뻔 했다.


하이틴 잡지와 문학계간지의 중간에서 약간은 어정쩡해 보이는 이 잡지가 계속 살아남아 청소년들의 소중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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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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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결말을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책들을 만날 때마다 당황하곤 한다. 작가의 언어적 유희를 쫓아가기에도 바쁜 내가, 그 향연의 마지막을 스스로 메우기에는 내공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독서에 있어서도 약간은 수동적인 독자인 나에게는, 이번에 읽은 애니멀 크래커스 같은 류의 소설은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딱 알맞은 책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니멀 크래커스를 읽는 동안, 나는 섬뜻한 우리들의 자화상을 발견하곤 소름이 끼쳤다. 어찌 보면 동물학대(?)로까지 보이는 장면장면들이 우리 마음 속의 욕망을 그대로 까발려 보여준 것 같기도 하다. 동물들을 가장 잘 다룰 것 같은 사육사들도 그들의 비위를 살살 맞추며 그들의 공격성에 늘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커다란 코끼리의 발밑에 누워 그 발바닥의 감촉을 즐기기도 한다. 날지 못하는 토끼를 창문으로 던져버린 아이는 그것이 토끼에게 어떤 공포감을 주는지는 관심도 없다. 그 자신이 어쩌면, 날고 싶었는데, 그럴 용기가 없어 자신을 토끼에게 투영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입은 토끼를 꿰매주는 엄마의 행동도 그렇다. 커다란 보아뱀을 애완동물로 키우던 남자의 배신(?)에 그 뱀을 튀겨 먹임으로써 다시 자신을 되찾게 되는 여자도 이야기도, 모든 이야기들이 섬뜩하면서도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슬픔이 묻어있다.

그저, 이 책이 엽기적인 동물학대에 머무르지 않은 것은, 우리의 가슴 속에 숨겨지고 억눌리고 분출되지 못해 꾸물대는 욕망들을 뼈아프게 드러내보여주기 때문일수도 있다.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슬픔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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