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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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은, 온다리쿠 식의 미스터리에 별로 감흥을 받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괜찮을 책이다. 미스터리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미스터리가 아닌 약간은 낭만적인 느낌의 소설. 내가 그동안 읽어온 온다 리쿠의 소설들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가족이라는 대전제를 끌고 들어와서 그런가?

다카코와 도오루가 다니는 학교에는 수학여행 대신 보행제를 실시한다. 보행제라 함은, 일종의 걷기대회 같은 건데, 우리나라의 국토순례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행사이다. 보행제와 비슷한 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전혀 없는 나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이건 등산과도 비슷한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 몸은 지쳐가지만 곧 눈앞에 마주한 정상을 향해 걷고 오르고 또 걷는, 대피소 부근에서 한숨 쉬고 또 걸어가는 등산을 떠올렸다. 그리고, 비약적이긴 하지만, 매년 고생을 하면서도 또 다시 보행제를 시작할 때쯤이면 고생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설레임과 보행제 이후의 감동만 남아있어 기대를 하게 되고 막상 보행제가 시작되면 예전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는 과정은 출산(出産)과도 맞닿은 느낌을 준다.

다카코와 도오루는, 서로 상대가 자기를 싫어할거라 생각하는 소년소녀다. 물론 다른 친구들의 눈에는 오히려 그것이 두 사람 사이의 모종의 약속, 그러니까 두 사람이 사귀는 게 아닐까라는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말이다. 왜 그럴까? 라는 의문을 가진 채 이 소설을 읽었다. 대답은 의외로 빨리 나와버렸다.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건 미스터리가 아니다. 오히려 사카키 안나의 엽서 내용 속의 주문이 무엇인지가 더 궁금증을 유발하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미스터리는 아니라는 생각은 더 강하게 든다. 그래서 그동안 온다리쿠의 똑같은 느낌의 소설들에 약간 질려가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두 사람의 관계를 개선시키고 서로가 원했던 방향으로 결론을 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친구들 (가깝게는, 시오루와 미와코, 멀게는 안나까지)이다. 온다 리쿠의 소설에서, 쓸데없이 지면만 장식하는 주변인물들이 많다고 느꼈던 내게, 이 소설 속 친구들은 각자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 인물들이 이렇게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야지.

안나의 동생 준야의 등장은, 그런 보행제나 수학여행 같이 밤을 지새는 행사가 있을때면 의례 이야기꽃을 피우기 마련인 유령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또 학교괴담시리즈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의 진실도 너무나 쉽게 밝혀진다. 오히려, 이 소설에서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없어서 좋다.

대학수험을 앞둔 고3에게 보행제가 주는 의미는 다양할 것 같다. 친구들과의 고교시절에 대한 추억을 남기는 의미로도 가치가 있지만,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코스를 끝내고, 골인지점에 도착하기까지 서로를 도와가며 목표를 이루는 그 행사를 통해 긴 수험생활에 지칠 수 밖에 없는 고3학생의 마음을 드러내보여준다. 극기훈련이라는 말로도 대체할 수 있겠지만, 단 시간에 이루어지는 극기훈련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길을 걷고 또 걷는 동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다음에 맛보는 감동. 이 보행제를 떠올릴 때마다 고통보다는 그 감동을 떠올리는 것이 바로 보행제를 통해 참의미를 깨닫는 것이 아닐까.

의외로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그 간극이 지나치게 벌어져 있지만-간의 단절된 틈을 보행제라는 행사를 통해 효과적으로 메웠다. 거기에다가 진한 우정의 주문, 미와코와 안나의 배려, 준야의 엉뚱한 행동, 도우루와 시노부의 우정, 고이치로의 엉뚱한 모습까지..모두 아름답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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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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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사요코를 이제서야 만났다. 온다 리쿠의 작품을 하나하나 읽고 있는 중인데 여섯번째 사요코를 어젯밤에 읽기를 마쳤다. 밤중에 읽기에는 으스스한 면이 있는 소설이다. 특히, 학교축제 때 공연된(?) "여섯번째 사요코"를 12시가 넘은 한밤중에 빨간램프, 노란램프에 맞춰 읽고 있자니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책의 장점은 그런 오싹함과 무서움에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빼면, 약간은 흐지부지한 면이 없잖아 보인다. 또한, 사요코와 슈를 제외한 주변인물들의 역할이 지나치게 주변적(?)이어서 존재이유를 모를 정도였기에 아쉬움이 큰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마사코의 역할을 어느 정도 기대했었다. 마사코의 무녀와도 같은 촉매적 분위기(p.57)라든가, 마사코가 '그 느낌'(p.26)이라고 지칭하는 것들, 그리고 유달리 사요코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사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의 문장들이 그러했지만, 결국 마사코가 한 역할이라곤 별것없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유키오는 그 자신의 직감과 불길한 느낌(p.31)을 갖고 있으면서도 소설 끝까지 가는 동안 마사코와 연인이 되고 싶은 남학생 이상의 어떤 역할도 부여받지 못했다. 오히려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시다라가 슈와 함께 문제를 푸는데 동참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시다라도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는 주변인물일 뿐이다.

책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인문들의 존재가 책의 내용 전개상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특히, 특이한 정신세계(?)의 소유자인 슈의 아버지도, 그런 특이한 등장 외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슈에게 어떤 실마리도 제공하지 못하는 인물이 왜 그렇게 특이한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모를 일이다.

[여섯번째 사요코]의 내용은 누군가 말했듯이 [여고괴담]과 닿아있다. 뿐만 아니라 온다 리쿠의 이후의 작품 전반에 걸쳐 학교를 무대로 하거나, 미소녀 미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형식적인 틀과도 닿아있다. 여섯번째 사요코가 한밤중 내게 느끼게 해 준 그 오싹함과 무서움마저 없었다면, 의미없는 책이 될 뻔 했다.

한 작가의 책을 계속해서 읽는다는 것은 이래서 조금 불편하다. 책의 서두만 보고서도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문체의 독창성이라는 점으로 볼 때는 무한한 칭찬이지만, 비슷한 인물들, 비슷한 사건 전개들, 비슷한 배경들로 알아차리게 될 경우에는 시리즈 물이 아닌 다음에야 결코 칭찬이 될 수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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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구슬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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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흡혈귀의 비상]을 읽은 이후 오랜만에 그의 작품을 만났다. 사막에서 생활하는 이드리스는 랜드로버를 탄 금발머리 여자에게 사진을 찍힌 이후, 그 사진을 찾아 프랑스로 떠난다. 이드리스가 알고 있는 정보는, 금발머리 여자가 파리에 있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사진에 찍히면 자신의 영혼까지 뺏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비단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생활하는 타벨발라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과거의 우리 조상들도 그러했다. 내 이미지가 사진이라는 이미지로 재탄생하는 것을 처음 본 사람들로서는 당연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라디오 속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텔레비전 속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미지로 형상화된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사진은 더욱 그런 생각을 부채질했을 법하다.

어쨌든, 사막의 이드리스는 자신의 사진을 찾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자기를 지켜주리라 생각했던 황금구슬-불라 아우레아-를 몸에 지니고서. 이드리스가 프랑스의 파리까지 가는 여정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들과의 조우였다. 그렇지만 이드리스가 만난 문명은 가짜-이미지-들로 가득찬 것들이었다. 사막은 이드리스가 늘 생활하는 곳이지만, '사하라'라는 이름을 가진 사막의 이미지는 이드리스가 살고 있는 사막이 아니었다. 가난하고 모자라고 비어있어서 고통을 겪고 있는(p.203) 사막의 오아시스는 금발머리의 여인이 있는 화려한 호텔의 배경으로서 존재한다. 사막의 길동무이자 고기를 조달해주는 낙타도 파리에서는 동물원이나 서커스단의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드리스가 만난 문명은 온통 진실을 숨긴 이미지들이었다.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은 눈을 위한 (p.276)것일 뿐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눈으로 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한다.

내용 중에 이드리스가 낙타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동물원이나 서커스단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 낙타의 모습은 슬프다. 그것은, 도시를 걷고 있어도,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온 이드리스와 함께 걷고 있을 때 낙타로서의 자신을 찾을 수 있지, 사람들의 함성소리에 파묻힌 낙타는 이미 낙타가 아니기 때문이다.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문구가 결코 낯설지 않은 우리는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딴소리지만,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작동해볼 수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가 더 마음에 와닿고 기억에 남지 눈으로만 본 전시물은 전시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과 같다.

라디오를 들을 때 우리는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나오고 영화가 나오면서 이미지로 전환된 그것 외에는 더이상의 의식확장을 하기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백분 발휘하는 작품도 있긴 하지만 그런 작품이 드물기 때문에 칭송받는 게 아닐까? 어쨌거나, 이드리스가 자신의 사진을 찾아 여행(?)을 하는 동안, 문명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이미지들 속에서 이드리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쓴다.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황금구슬을 창녀에게 어이없이 빼앗긴 이후 이드리스의 혼란은 점점 가중되지만, 마지막에 황금구슬을 다시 되찾음으로써 이드리스의 혼란은 막을 내린다.

아랍의 캘리그래피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이지만, 손으로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호흡법을 조절하고, 시간을 들여 글을 씀으로써 시간의 무게를 느끼는 기쁨을 얻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게 되었다. 미셸 투르니에는 작품과, 번역자와의 대담을 통해 이미지보다 기호가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깊이를 다 모른다 할지라도 캘리그래피를 통해 기호들을 통한 이미지의 해방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억에 남는 구절>

'이미지는 나쁜 힘을 가지고 있어. 너는 이미지가 충실하고 헌신적인 하녀 같은 것이기를 바랄지 모르겠다만, 이미지는 그런 하녀가 아냐. 겉으로는 어느 모로 보나 영락없는 하녀지. 하지만 실제로 음흉하고 거짓말 잘하고 오만한 여자야. 순종하기는 커녕 고약하게도 너를 노예로 만들겠다는 열망을 품고 있어.'(p.163-164)

이 책에서는 이민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는데 아래의 몇 구절을 통해, 얼마 전에 읽었던 '커피와 소브로빵'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살빛이 검고 머리가 곱슬곱슬해서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자들일수록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더 거만해.'(p.198)

'결국 그 낙타는 이민노동자들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군요. 우리는 그들을 빌려왔다고 생각했고 필요가 없어지면 그들 나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믿었죠. 그러다가 이제야 우리가 그들을 샀고 그래서 프랑스에 계속 머물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거죠.'(p.255)

투르니에의 소설을 읽는 내내, 천천히 몇번이나 곱씹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 속에 투르니에가 인용한 구절 및 짧은 그의 시는 한번 읽은 걸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첫째는 그가 인용한 구절이 있는 원문을 다 읽어보지 못해서일 것이고, 둘째는 그걸 알았다 치더라도 이 소설 속에 언급한 인과성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나의 무지일 것이다. 그러나, 투르니에의 말을 빌러 결론을 내리자면 과도한 주석으로 인해 소설이 무겁게 되는 것보다 소설에서 즐거움을 얻(p,387)는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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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실 속 책만들기
우경희. 박광철 지음 / 테크빌닷컴(주)(우리가희망)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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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상품만족도에서 별 세개를 준 이유부터 말하자면, 전반적인 책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첫페이지부터 chapter06에 이르기까지가 오타, 앞뒤 구절의 호응불일치, 띄어쓰기 오류 등으로 가득찬 책이기 때문이다. 사진이 글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책에서 한페이지에 10개 이상이 발견된다면 다른 분들도 나처럼 생각할 터이다.

전체 chapter가 30 이므로 그중 1-6까지에서 많이 나타나므로 적다면 적다고도 할 수 있으나, 책을 읽는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충분히 감점 사유가 된다. 또한 이런 오류가 뒷부분에서도 안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앞부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교정을 보았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교육전공자들이 쓴 교사를 위한 책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문이 곳곳에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부분의 이런 실수(?)는 이해하기 어렵다. 일단, chapter07부터는 이런 오류가 현저하게 줄어 든다.

다음은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책만들기의 가장 기본부터 시작하여 점차 좀더 어려운 단계의 책만들기로 나아가고 있어서 초보자가 따라하기에 좋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아이의 독서활동을 보조하기 위해 재미있는 독서 후활동을 생각하다가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책만들기를 활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찾아보게 되었다. 최근에 어린이북아트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지고 있고, 그것을 활용한 독서후활동이 아이들에게 흥미를 유발하여 독서라는 것이 결코 따분하고 재미없는 작업이 아니란 걸 깨닫게 하는데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초등학교 때 교실에 걸어두는 벽신문을 도맡아서 만들곤 했었는데, 벽신문 만들기를 하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았던 모든 것들이 책만들기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단순히 좀 더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이제는 내 아이의 독서활동을 돕기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책만들기에 대한 책이 몇 권 나와있는데, 그래도 이 책이 가장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만들기에 대한 이론 보다 실제로 만들기 위한 팁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책만들기가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이 교사들을 위해 쓰여져서 선생님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나, 교실 속에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하는 부분이 많지만, 집에서 활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만약, 이 책을 다시 재판하는 일이 있다면 꼭 교정을 새로 봐주었으면 한다. 내용이 아무리 알차도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인 글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전달해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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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 - 문명기행
권삼윤 지음 / 이가서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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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년 넘게 60여 개국을 여행하며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 이른바 '나의 세계비교문화론'(p.9)이라는 말이 딱 맞는, 그야말로, 저자 권삼윤씨의 세계비교문화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객관적인 문명비교서가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이고, 그래서 개인의 감정이 더 많이 실렸으며, 어딘지 저자의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 거기에 맞춰진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어야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저자 스스로도 이것은 본격적인 학술서가 아니(p.12)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는 동양과 서양을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나누고 있다. 물이 풍부한 곳이 동양이고, 그것이 넉넉지 않은 곳이 서양이(p.11)라는 뜻으로 책에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빵과 밥으로 이루어진 문명을 이야기하기 위해 동양과 서양을 '물'로 나누었고 동양은 '밥'을 서양은 '빵'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양과 서양을 모두 아우르는 문명관이라기보다는 한국(물론 중국이나 인도같은 나라도 다루고 있지만)과 그외 몇몇 서양국가들의 이야기처럼 보여진다.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은 이유기도 하다. 예전에 '빵의 역사'라는 책을 읽은 적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빵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빵과 밥이 도대체 어떻게 문명을 결정한다는 말일까? 궁금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과정에서 빵과 밥, 밀과 쌀, 유목민족과 농경민족, 건조기후와 몬순기후로 생각을 확대해나가다 보면 결국은 문명은 물에 의해서 나눠진 것이라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 책은 가장 큰 단위를 버리고 가장 작은 단위인 빵과 밥으로 두 문명을 이야기하는 형식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재미있는 발상은, 뒤로 갈수록 약간의 문제점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억지로 빵과 밥에 끼워맞춘 것 같은 부분이 심심찮게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밥과 빵이라는 주식의 차이가 도시와 가옥의 구조는 물론 사고방식과 언어, 예술의 표현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p.296)는 부분에 이르면, 이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크게 보았을 때 물이 풍부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차이때문에 그렇다고 한다면 모를까.

그러나 이 책이 아주 쓸모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주식인 밥과 빵이 인류의 생활에 미친 영향을 재미있게 풀고 있다. 더군다나 저자가 직접 발로 뛰고 보고 겪은 것이라 그 느낌은 더 생생하다. 문명보고서가 아니라 한편의 기행문으로 읽는다 해도 좋을 듯하다.

덧붙임 : 사진의 배열이나 사진 속 설명 등은 좀 투박하여 보기에 좋지는 않았다. 시각 이미지를 상당히 많이 싣고 있음에도 그 효과를 배가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감소시키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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