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을 위한 되풀이 ㅣ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평점 :
이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를 보기 전에 황인찬 시인이 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려고 했는데 못 들었어. 그거 듣는다고 여기 담긴 시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다시듣기라도 들어봤다면 좋았을까. 시집 보는 데 광고가 나왔어. 그건 황인찬 시인이 나오는 방송과는 다른 걸 말하는 거였어. 오디오 천국이라고 여러 가지 방송이 나오는 거야. 요새는 잘 안 듣지만, 황인찬과 김새벽이 ‘시로 만난 세계’던가에서 시를 읽는 건데, 그건 어쩌다 한번 들었어. 그게 언제쯤 나올까 하고 기다린 적도 있는데. 지금 그 팟캐스는 끝났지만 오디오 천국에는 가끔 나오는 것 같아. 시인이 다 시를 잘 읽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황인찬 시인은 시 잘 읽더라고. 목소리가 좋다고 할까. 이런 말 신용목 시인 시집 보고도 했군. 그때는 신용목 시인이 시 잘 읽는다고 했지. 황인찬 시인이 시 읽는 거 듣고 싶으면 라디오 방송 잘 챙겨들으면 될 텐데 요새 게을러져서 한동안 못 들었어. 그 라디오 방송도. 내가 못 듣는 사이 바뀌면 아쉬울 텐데. 지금은 라디오 방송 시간 놓쳐도 나중에 들을 수 있지만, 내가 그런 걸 찾아들을 만큼 부지런하지 못해. (이제 황인찬 시인 라디오 방송에 나오지 않아. 그래도 시로 만난 세계는 나와. 전과 조금 다른.)
앞에서 황인찬 시인이 오디오 천국 ‘시로 만난 세계’ 광고 하는 거 들었다고 하다가 다른 말을 했군. 그 방송 말할 때 황인찬은 자기 시를 읽어.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 이 방에는 사랑이 흘러가고 관념만 남아서 / 그저 기뻐하기만 있으면 좋겠다 //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시에 담겨 영영 이 시로부터 탈주하지 못한다면 좋겠다 (<그것은 가벼운 절망이다 지루함의 하느님이다>에서, 147쪽)’고 하는 부분이야. 글을 보는 것과 듣는 건 조금 다르기는 하지. 이 부분 읽는 것도 괜찮아. 예전에 그걸 듣고 저런 시가 《사랑 위한 되풀이》에 담겼구나 했어. 그리고 이 시집 볼 때 그걸 들었어. 신기한 일이지. 본래 내가 들으려는 건 못 들었지만, 대신 다른 걸 들었으니 말이야. 그거 처음 들은 건 아니었는데 이 시집 볼 때 들어서 반가웠어. 이 말 하니 라디오 들으면서 시집 본 것 같네. 아주 안 들은 건 아니지만, 주파수를 옮기고 들은 거였어. 그것만 듣고 라디오는 껐어. 다음 방송은 책 보면서 듣기에 안 좋아서.
나는 꿈속에서 부자가 되었다
높은 집에서 창 아래를 내려다본다
친구가 아래를 지나가며 내게 묻는다
“이거 너희 집이야?”
나는 대답한다
“응, 근데 꿈일 수도 있어”
친구는 말한다
“그럼 일단 깨지 말고 있어봐”
그후로 너무 긴 시간이 지났다 아마 꿈이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그렇다면 도무지 깰 방법이 없다
-<구곡>, 17쪽
‘구곡’은 꿈일까. 시인은 그 꿈에서 아직도 깨지 못했을까. 지금 보니 이 시에는 넓다는 말은 없군. 부자가 되어 높은 집에 살게 되다니.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황인찬은 넓은 집에 살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 같아. 그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 때문에 이 시에서 멈췄을지도. 난 꿈을 꾸면 지금 집이 아닌 예전에 살던 집에 살아. 별로 좋지도 않은데. 지금 집도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더 가난했던 시절 꿈을 꿔. 왜 그런지 모르겠어. 본래 꿈은 그런 걸까. 지금 생각하니 한번인가 넓은 집에 사는 꿈 꾸기도 했어. 그 꿈에서 깨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언제나 꿈은 깨는 거지.
어떻게 말을 꺼내지, 어떻게 말하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지
너는 책상에 앉아 있고
나는 창 너머에 서 있고
백년째 복도를 헤매던 사람도 이제는 지쳤다고 한다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아이들은 일동 차렷하고 인사를 하네
문을 열고 내가 들어가면 모두 놀라버릴 텐데
이상한 것도 놀라운 것도 이제는 버거운데
어떻게 말해야 하지, 어떻게 말하면
경이롭지 않을 수 있지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시면 수업이 시작되시고
나는 창 너머에서 수업을 지켜봅니다
수업은 좋습니다 한국 교육은 백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선량하고 아이들은 무구합니다
너는 판서된 것을 따라 적고
나는 창 너머에서 그것을 따라 읽고
어떻게 말을 건넬까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을 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그 말을 할 수 있지
자꾸 고민하면서
백년째 말을 걸지 못하는 내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시면 아이들이 복도로 밀려나오고
복도에 서 있는 내 앞에 네가 서 있다
손을 내밀고 있었다
무얼 하느냐고, 빨리 들어오라고
-<불가능한 경이>, 46쪽~48쪽
꿈을 꿨어. 죽은 사람이 나오는.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고 그냥 그 사람이 죽은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어. 이 시집 보기 전에 별일이 다 있었군. 꿈에 죽은 사람이 나왔다 해도 무섭지는 않았어. 그런 꿈을 꾸고 시집을 보니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오지 뭐야. 내 꿈은 좀 흐릿하지만, 시는 선명하군. 시여서 그럴까. 생각하는 것과 그걸 글로 쓰는 건 다르지. 자신이 생각한 걸 하려면 글로 써 보는 것도 좋아. 그렇게 해도 난 못할 때가 더 많지만. 어쩌면 나만 그럴지도. 여기 나온 사람은 아이일까. 아주 오래전에 죽은. 거길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교실 밖에 서 있었나 봐. 한 아이가 그 아이를 알아봤군. 그때 아이는 얼마나 기뻤을까. 살아 있어도 남한테 잘 보이지 않는 사람도 생각나는군. (앞에 시를 다시 보니 하고 싶은 말을 오랫동안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
여기 담긴 시를 보면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황인찬 시집은 세번째인데, 난 두번째 시집인 (《희지의 세계》)와 이번 세번째를 만났어. 세권에서 두권이면 많은 거지. 또 말하는데 라디오 방송에서 목소리를 들어서 황인찬 시인을 조금 가깝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어. 여기에는 알듯 말듯한 시가 담겼어. 시집 보고 이 말 안 할 때 없군. 황인찬 시를 보니, 똑같이 쓰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식으로 시든 글이든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뭔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내가 쓰는 건 쉽지. 쉽다 해도 괜찮은 이야기면 좋을 텐데. 가끔 쓸데없는 일 쓰기도 해. 그런 건 일기장에나 써야 하는데. 일기도 공감 가는 게 있기도 하군. 앞으로는 좀 더 생각하고 글 써야겠어.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