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산문
박준 지음 / 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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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만난 《계절 산문》은 박준 두번째 산문집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나오고 몇해 만일까. 그런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작가 책은 나오면 나오는구나 한다. 박준은 시인이구나. 이름도 시인 같다. 한번 들어볼까 하다 듣지 못한 라디오 방송도 진행했다. 지금도 하려나. 이 책을 보니 그 방송 글도 썼던가 보다. 나도 잘 모르지만 시인이면서 라디오 방송작가도 한 사람 좀 있을 거다. 이병률 시인, 허수경 시인. 시인 아니 글쓰는 사람은 텔레비전 방송보다 라디오 방송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요즘은 팟캐스트 하는 시인도 있구나. 그런 게 있다 해도 못 듣지만. 라디오 방송도 지방에 살아서 듣지 못한다. 들을 수 있는 것만 듣는다. 지금도 라디오 방송 듣지만 어렸을 때만큼 듣지는 않는다. 텔레비전 보면서는 다른 거 못하지만 라디오 들으면서는 여러 가지 할 수 있다. 책 볼 때는 조금 어렵지만. 이 말 처음 하는 게 아니구나. 박준이 하는 라디오 방송은 못 들었지만, 몇해 전에 두번째 시집이 나왔을 때 라디오 방송에 나온 건 들었다. 시집이 아니고 산문집 나왔을 때였던가.

 

 첫번째 산문집 보면서도 산문이 시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시인이 쓰는 산문은 거의 그렇던가. 시인이 쓴 산문 많이 봤는지 조금 봤는지. 여러 권 보기는 했는데. 얼마전에는 안희연 시인 산문집(《단어의 집》)을 만났구나. 박준 글을 보면서는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처럼 쓴 산문을 보고. 잘 쓰지도 못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날마다는 아니어도 그날 그날 생각하고 쓰는데. 생각해뒀다 쓰는 건 아주아주 가끔이다. 생각해도 끝내 못 쓰기도 한다. 이런 재미없는 내 이야기를 쓰다니. 재미없다 해도 읽어볼 만한 걸 써야 하는데. 언젠가는 그냥 재미없어도 쓰자고 한 것 같다. 재미없어도 쓸 게 있으면 좋겠다. 쓸 게 없네, 쓸 게 없어.

 

 여기에는 일월 산문부터 십이월 산문까지 담겼다. 그건 그 달에 느낌을 적었을까. 언젠가 나도 그런 걸 쓴 적 있지. 박준은 어릴 때부터 잘 울었단다. 갑자기 이걸 쓰다니. 잘 울면 어떤가. 하나도 울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실컷 울어도 나이를 먹으면 울음을 삼켜야 하지. 아니다, 나이를 먹고 울어도 된다. 남이 안 보는 데서 울면 되잖아. 이런저런 생각하다보면 눈물이 나기도 하지. 그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다. 누군가한테 안 좋은 말 들어도 울고 싶던가. 그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나 해서겠지. 그때뿐 아니라 내가 잘못했구나 할 때도. 눈물이 아픈 마음을 조금 낫게 해주는 걸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생각난다. 맞다. 울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도 울어야지.

 

 박준한테는 누나가 있었다. 이 책을 보니 박준보다 두살 많았던가 보다. 지난번에도 봤을 텐데. 박준 글을 보면 어쩐지 슬프기도 하다. 부모님 옆집 개 이야기도 슬펐다. 가끔 박준이 가서 물이나 먹을 걸 주기도 했는데. 개가 무섭기는 한데, 강아지가 줄에 묶인 걸 보면 안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건 예전에 느꼈던 거구나. 사나운 개를 묶어두지 않아 그 개한테 물린 사람이 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그런 개는 무섭다. 슬픈 개에서 무서운 개로 넘어가다니. 언젠가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흙이 무너져 거기에 묻힌 새끼를 어미 개가 살려달라고 한 게 생각난다. 그 강아지들 지금도 잘 지낼까. 별게 다 생각나다니.

 

 앞으로도 박준은 누나 이야기 쓰겠지. 글을 쓰는 게 잊지 않는 거겠다. 박준 누나는 누군가 기억해줘서 좋겠다. 이런 걸 부러워하다니. 그러고 보니 여기엔 허수경 시인 이야기도 나왔구나. 박준은 허수경 시인을 선배라 했다. 독일에 사는 허수경 시인한테 돌절구를 보냈다 한다. 그런 걸 보내다니. 단단해서, 단단하게 살라고. 허수경 시인이 박준 첫번째 시집에 글을 썼던가. 별 말 하지 않았던 편안했던 선생님도 있었다. 내가 말을 잘 안 해서. 나는 말하지 않는 걸 편하게 여기지 않아서 다른 사람도 그런 나와 있으면 편하지 않을 것 같다. 말 안 하면 어떤가 싶지만. 난 다른 사람이 하는 거 듣는 게 더 편하다. 말을 잘 못해서. 할 말이 없어서 안 하고, 어떤 때는 말이 정리가 안 돼서 이상해지기도 했다. 말도 연습을 해야 조금이라도 잘 할 텐데, 박준은 말 잘 못한다고 했는데 나보다 잘 하는 것 같다. 박준은 식구나 친한 사람한테는 말 잘 한다고 했구나. 난 식구나 친구한테도 말 잘 못한다.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야지 어떡하나.

 

 친구 이야기와 누군가와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 갔다는 이야기도 담겼다. 박준 혼자였던 적도 있구나. 누군가를 생각하고 어딘가에 가기도 했다. 작가는 언제든 글을 생각할까. 박준 글을 보고 나도 여러 가지 글 써야겠다 생각했다. 앞에서도 한 말이구나. 박준처럼이 아니고, 내가 쓰고 싶은대로 써야겠다.

 

 

 

희선

 

 

 

 

☆―

 

세상 끝 등대 4

 

 

 

불행이 길도 없이 달려올 때

우리는 서로의 눈을 가려주었지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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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2-23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준시인 산문집이 나왔군요. 박준 시인은 잘 읽히면서도 진심이 느껴지는 따뜻한 글들이라 참 좋았었어요. 희선님이 책을 읽어가면서 순간순간의 느낌들을 적어가는 게 그려지네요. 읽으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저도 그럴 때 있거든요.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_^

희선 2022-12-26 00:30   좋아요 1 | URL
나온 날짜 보니 지난해 12월이네요 한해가 지나서 봤습니다 처음 나온 건 그것보다 조금 빨리 봤을지도 모를 텐데... 진심이 느껴지는 따듯한 글이라는 말은 그 글 쓴 사람한테 좋은 말이겠습니다 다른 때보다 더 이런저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거 거의 못 쓸 때가 더 많아요

호우 님 성탄절 즐겁게 따스하게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희선

새파랑 2022-12-23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준 시인의 이름은 시인 같기 보다는
...
미용사 같지 않나요? ㅋ 박준 헤어클럽? ㅋ

박준 시인님 작품 처음 읽었을때 산문인줄 알았습니다 ㅋ 비슷한 세대여서 그런지 공감이 많이 가더라구요~!!

희선 2022-12-26 00:33   좋아요 1 | URL
박준 헤어클럽... 어딘가에 그런 곳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간판 잘 보면 보일지...

저는 첫번째 시집 제목 때문에 보기도 했네요 그때도 그 시집 나오고 시간이 좀 지나고 봤던 것 같습니다 슬프면서도 따듯하기도 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12-23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준 시인님의 산문집!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감수성을 놓지 않고 사시는 분 같아요^^

희선 2022-12-26 00:34   좋아요 0 | URL
시인한테 감수성은 중요할 듯합니다 그것뿐 아니라 다른 것도 있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 언젠가 만나시겠군요

거리의화가 님 새로운 주 즐겁게 시작하세요 2022년 마지막 주네요


희선

서니데이 2022-12-23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는 지난해에 선물받았던 책이었어요.
양장본의 에세이집이었던 것, 생각나네요.
희선님, 이번주 날씨가 많이 춥고, 주말에도 눈이 더 올 수도 있다고 해요.
이번 주말이 크리스마스인데, 너무 춥네요.
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희선 2022-12-26 00:37   좋아요 1 | URL
저도 선물 받았어요 이 책 나온 거 보고 살까 말까 그랬는데... 첫번째는 제가 여러 분한테 선물하기도 했는데...

지난주 춥고 눈도 많이 왔습니다 이틀 동안 눈이 많이 내리고 아직도 안 녹았습니다 그거 녹으려면 시간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눈이 있어서 좀 더 춥기도 합니다

서니데이 님 성탄절 따스하게 보냈는지... 새로운 주 즐겁게 시작하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희선

2022-12-25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26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의책장 2022-12-25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어보고선 몇 권 더 구매해 선물했었는데 호불호없이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희선님은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다음주도 많이 춥다고 하니 감기 조심하세요ㅎㅎ
따뜻하고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Merry Christmas🎄❤

희선 2022-12-26 00:42   좋아요 1 | URL
하나 님은 다른 분한테 선물하기도 했군요 저는 첫번째 산문집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그때도 괜찮았지요

성탄절 다른 날과 똑같이 보냈습니다 눈이 온 게 녹지 않아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어요 성탄절이 가니 뭔가 아쉽기도 하네요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렇겠습니다

하나 님 고맙습니다 2022년 마지막 주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2023-01-06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7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3-01-06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3-01-07 23:59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고맙습니다 새해 오고 첫번째 주말이네요 앞으로도 하루하루 잘 가겠습니다


희선

thkang1001 2023-01-07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3-01-08 00:00   좋아요 0 | URL
thkang1001 님 고맙습니다 thkang1001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마음 몸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thkang1001 2023-01-08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남은 휴일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3-01-0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글을 놓쳤는가 봅니다.
박준 시인은 워낙 유명해 그의 책을 읽은 것처럼 생각되지만 아직 읽지는 않았어요. 시인이 쓴 산문이라 시처럼 읽힐 것 같아요. 박준 시인은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쓴다고 하네요. 그런 분들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희선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바람에 흩어진 민들레 씨앗은

여기저기로 날아갔어요

 

누가 멀리 가나 경기할까 했지만

마음대로 날아가기 어려웠어요

 

땅이 아닌 물에 떨어진 것도 있었지만,

저마다 어딘가에 잘 내려앉았어요

 

민들레 씨앗은 새로운 곳에서

다음에 꽃 피울 준비를 했어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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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2-23 0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이쁘네요. 밖은 추운데 벌써 봄이 느껴집니다.

희선 2022-12-26 00:19   좋아요 1 | URL
지금은 겨울이지만, 겨울이 가면 따스한 봄이 오는군요 사진으로 따스함을 느껴서 다행입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12-23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이 너무 추워서 얼른 봄이 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사진까지 함께하니 더욱 좋네요.

희선 2022-12-26 00:20   좋아요 1 | URL
겨울이라 해도 춥기만 하지 않은데, 십이월엔 추운 날만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눈도 많이 오고... 이런 날도 가고 따스한 봄은 오죠 추운 날이 있어서 따스한 봄이 더 반갑겠습니다


희선

2022-12-24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26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은 저와 다르게 잘하는 게 많습니다

저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제가 아주 작게 느껴져요

잘하는 게 없으면 어떤가 하다가도

뭐든 잘하는 당신을 보면 부럽습니다

부러워하기보다 다른 걸 생각하는 게 좋을 텐데

 

당신도 누군가를 부러워하기도 할까요

어쩐지 그러지 않을 것 같네요

그저 당신이 좋아하는 걸 할 뿐이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이고

저는 저죠

 

잘하는 건 없지만,

즐겁게 해 볼게요

꾸준히 하다 보면 좀 나은 날도 있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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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2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23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12-23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은 매우 잘하는게 있습니다. 바로 시 쓰기~!!

희선 2022-12-26 00:18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 고맙습니다 어쩌다 보니 짧게 쓰기를 하게 돼서... 괜찮게 써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네요


희선
 
소설 보다 : 봄 2022 소설 보다
김병운.위수정.이주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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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이 돌고 돌아 봄이 오듯, ‘소설 보다 봄 2022’도 2022년 봄에 나왔다. 지난해(2021)에는 15일이나 16일에 나와서 이번에도 그때 찾아보니 책이 없었다. 이제 안 나오는 건가 했다. 이 책이 나왔다는 건 4월에 알았다. 책이 나온 것에 조금 마음 놓았다. 그렇게 잘 보지도 못하는데. 한편 단편소설은 어렵다. 이 말 빼놓지 않고 쓰는구나. 자꾸 보다 보면 좀 나아질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다른 때와 다르지 않게 여기엔 소설이 세 편 실렸다. 세 편이 딱 좋은 것 같다. <윤광호>(김병운), <아무도>(위수정),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이주혜)다. 소설 제목을 먼저 말하다니. 김병운 소설 <윤광호>를 보고 이광수 소설 <윤광호>가 있다는 걸 알았다. 김병운 소설에 나온 광호도 이광수 소설을 보고 자기 이름을 광호라 했단다. 진짜 이름은 따로 있었다. 누군가 윤광호 이름이 광호가 아니라는 걸 알고 놀랐다고 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말은 안 하는 게 나았으려나. 오래전이라고 동성애자, 성소수자가 없었을 리 없겠지. 그런 소설이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겠다. 이광수 소설 ‘윤광호’가 그런 소설이었다. 광호는 P라는 사람한테 자기 마음을 말했는데, P는 광호한테 미모와 재력이 없어서 거절했다. 그 뒤 광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건 예전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거절당한 충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죽었구나.

 

 첫번째 소설은 성소수자가 성소수자인 광호가 폐암으로 죽은 뒤 광호 이야기를 쓴 거다. ‘나’는 광호를 만났을 때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자신은 성소수자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고 했다. 광호는 그 말에 언젠가는 ‘나’가 자기들 이야기를 쓰게 될 거다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나’는 글을 쓰는 걸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자신을 드러내는 걸 조심스럽게 여겼다. 성소수자가 죽는 일이 있기도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지 않나.

 

 위수정 소설 <아무도>에는 남편과 따로 사는 희진이 나온다. 희진이 수형과 따로 살기로 한 건 연애를 하려고였단다. 그러면서도 희진은 수형을 좋아했다. 결혼하고 배우자를 좋아해도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 많은 사람은 그 시간을 잘 넘길지도 모르겠다. 그걸 바람이다 하는구나. 바람은 지나간다. 희진도 다시 자신이 수형과 살게 될 거다 한다. 그때 괜찮을까. 수형은 희진을 별로 탓하지 않았다. 희진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런 사람도 있겠지. 희진 아버지는 희진이 고등학생 때 누군가를 잠깐 만났던 걸까. 이 소설은 이 정도밖에 말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당신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당신이 이 일을 결코 잊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너와 함께 생활하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함께 살기 위해 부모는 되지 않고.

 

 어떤 마음은 없는 듯, 죽이고 사는 게 어른인 거지 그렇지?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미래가 당연히 있다고 믿는 건가? 그러나 이 모든 말을 나는 할 수 없었다.  (<아무도>에서, 88쪽)

 

 

 세번째 소설 <그 고양이 이름은 길다>(이주혜)에서는 쉰셋 구은정이 영이 되어 자근 근종 수술을 받는 자신을 내려다 본다. 수술할 때 정말 그런 일 일어나기도 할까. 은정은 아버지가 어딘가에 잡혀갔다 돌아오고 빈 자루가 되었을 때 가장이 된다. 가장은 무겁겠지. 누군가 짐을 지우지 않는다 해도 가장이라는 이름 자체가 무거울 것 같다. 돈을 버는 사람이 가장일까, 집안 중심을 잡는 사람이 가장일까. 거의 돈 버는 사람을 가장이다 하는구나. 돈이 뭐라고. 돈이 없으면 살기 어렵기는 하지. 은정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고 그동안 고생하고 병이 생긴 걸지도. 그런 때 은정은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까지는 그럴 시간이 없었겠다.

 

 은정은 서른해 넘게 한 회사에 다녔다. 거기에서 소희 언니를 만났는데. 사장이 은정을 일본 출장에 데려간 뒤로는 사이가 멀어졌다.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딱 잘라내다니 그런 거 보니 무섭구나. 소희 언니도 다른 사람처럼 사장과 은정 사이를 자기 마음대로 생각했던가 보다. 사장은 자신과 은정 소문이 회사에 퍼진 걸 알았을까. 알고도 모르는 척했을지도. 은정은 사실과 다른 소문이 퍼져도 그 회사에 다니다니 대단하다. 은정은 사장 비밀을 지키려고 했던 걸까. 사장이 일본에서 만난 사람이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건 사장이 죽고 남겨준 서랍장 때문에 알았다(사장이 만난 사람 남성 아니었던가. 난 남성으로 봤는데). 어쩌면 은정도 잠시 일본에서 보내는 시간이 괜찮았던 걸지도. 거기에서 은정은 가장이 아니었다.

 

 벌써 봄은 가고 여름엔 ‘소설 보다 여름 2022’가 나왔다. 그건 바로 보면 좋을 텐데. 이렇게 생각해도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이젠 겨울이 나오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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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2-19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덕분에 <윤광호>란 소설이 있다는 걸 저도 처음 알았네요. 덕분에 담아갑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지요. 불교계는 그래도 좀 바뀌는 것 같은데 기독교 쪽은 여전히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듯합니다.

희선 2022-12-22 23:27   좋아요 2 | URL
예전보다 나아졌다 해도 여전히 안 좋게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말하고 이렇다 할지도... 그래도 불교계는 바뀌려고 하는군요 종교는 여러 가지를 잘 받아들이는 거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희선

청아 2022-12-19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윤광호>가 인상깊었어요. 겉보기로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때면 어쩔 수 없이
많이들 고독하겠구나 실감하게 되요. 찾아보니 ‘겨울‘편 나왔네요 ㅎㅎ

희선 2022-12-22 23:31   좋아요 2 | URL
같은 성소수자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기도 하고 마음이 맞지 않기도 하겠습니다 아니 그건 사람이라면 다 그렇겠네요 세상은 남자 여자 둘로만 나누기도 하니 자기 이야기를 터놓지 못하기도 하겠습니다 겨울 나왔더군요 여름 가을도 봐야 하는데, 2022년 건 다 늦게 보겠네요


희선

scott 2022-12-23 00: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 소설집은 착한 가격으로 다양한 작품을 읽어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전 옆에 쌓아 놓고 보는 걸 좋아해서
이런 계간 문학지는 한꺼번에 쌓아 두고 읽어 버려요 ㅎㅎ^^

희선 2022-12-22 23:33   좋아요 2 | URL
쌓아놓고 보시는군요 저는 한권씩 보는 것도 힘듭니다 단편이어서... 예전에도 단편소설 봤지만, 잘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네요 어렵게 느껴서 한권 한권 봅니다 책이 가볍고 싸서 좋지요


희선

새파랑 2022-12-19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었었네요~! 리뷰 보니까 기억이 확 납니다~! 세 작품다 좋았던거 같아요 ㅋ 언제 다시 봄이 올까요? ㅡㅡ

희선 2022-12-22 23:34   좋아요 3 | URL
겨울이 가면, 눈이 녹으면... 어쨌든 봄은 옵니다 철은 어김없이 찾아오니, 이번 겨울은 추우니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일월엔 어떨지 모르겠네요


희선

mini74 2022-12-21 13: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22년 봄, 이제 벌써 2022년 겨울이네요.
그러다보면 다시 2023 봄 이 오겠지요.

희선 2022-12-22 23:35   좋아요 2 | URL
많이 늦게 봤습니다 어느새 겨울이 나왔는데... 몇달 지나면 봄이 나오겠네요 앞으로도 잘 나오면 좋겠습니다


희선
 

 

 

 

조금씩 천천히 춤추며 내려오던 눈발이

굵어지고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곧 세상은 흰 눈에 덮였지요

 

쌓인 눈이 소리를 흡수하자

세상은 조용해졌어요

 

아니, 잘 들어봐요

강아지는 눈이 온다고 기뻐서 뛰고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고 처음 본 눈을 신기하게 여기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은

걱정스럽게 눈을 바라보고

차들은 느릿느릿 움직였어요

 

눈이 오면 새는 어디에서 자고

길고양이는 어디에서 지낼지

새와 길고양이가 따듯한 곳을 찾길 바라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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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2-19 0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목요일 내리던 눈이 딱 시의 풍경처럼 이랬어요^^
차들은 기어가고 사람들도 넘어질새라 조심조심 걷지만 눈가엔 미소와 웃음이 떠나지 않더라구요. 아이들도 신나하고~ 동물들도 신나하는 날이였습니다.

희선 2022-12-22 23:09   좋아요 2 | URL
이번주엔 눈이 더 많이 오는군요 오늘 낮에 눈 쓸었는데, 10분인가 20분쯤 지나고 다시 쌓였습니다 이번 겨울엔 짧은 기간 동안 눈을 자주 보는군요 이번 눈은 언제 녹을지... 그래도 조금 좋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눈이 많이 와서... 운전하는 사람은 안 좋을 것 같네요


희선

scott 2022-12-19 1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쌓인 눈으로
스노우 오리 만들려고 했는데
넘 추워서 포귀 ㅎㅎ

12월의 추위에 길냥이들 새들 모두 추위에 떨고 있을 것 같습니다

희선 2022-12-22 23:10   좋아요 2 | URL
눈오리도 만드는군요 나츠메 우인장에서 나츠메가 눈토끼 만들었던 거 생각납니다 며칠전에 걸으면서 어떤 가게 앞에 눈사람 만들어둔 거 봤어요

길고양이 새 눈이 많이 와서 춥겠습니다 따듯한 곳 찾았기를 바랍니다


희선

새파랑 2022-12-19 1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눈오는날 눈소리 들으셨나요? ^^

김광진님의 <눈이 와요> 노래 추천드립니다~!!

희선 2022-12-22 23:11   좋아요 3 | URL
눈 쌓이는 소리 잘 들어보고 싶기도 한데... 눈 밟는 소리나 눈 치우는 소리는 잘 들립니다 그건 잘 들리겠지요 차 소리는 거의 안 들려요


희선

감은빛 2022-12-19 14: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거의 눈구경을 못 하고 자랐어요. 군대를 강원도 철책선으로 갔는데, 그 2번의 겨울 동안 평생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을 보았고, 눈을 끔찍하게 싫어하게 되었죠. 어쩌다 서울살이를 시작한후로 매년 서너번은 눈으로 인해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사는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 저절로 녹아 없어질 정도의 눈이 살짝 내리고 말아준다면 이쁘기는한데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희선 2022-12-22 23:14   좋아요 2 | URL
부산에서는 눈 보기 어렵기도 하겠습니다 남쪽 사람은 어쩌다 한번 눈이 오면 참 좋아하겠습니다 눈이 비가 될 때가 많겠지요 강원도는 눈 많이 오는 곳이군요 사람 키만큼 온다고 들은 것도 같은데, 옛날엔 그랬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다른 곳보다 많이 오겠네요 서울에는 눈이 오죠

지난주에 온 눈도 다 녹지 않았는데 또 내려서 눈이 더 녹지 않겠습니다 사고 같은 거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페넬로페 2022-12-20 15: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눈이 자주 오네요.
오늘도 눈이 예고되어 있어요.
눈이 좋기도 하지만 이 눈때문에 누군가는 위험하기도, 고생하기도 할 것 같아 걱정도 됩니다^^

희선 2022-12-22 23:18   좋아요 3 | URL
첫눈 아주 늦게 봤다 했는데, 눈이 이렇게 많이 올지 몰랐네요 예전에 한번은 정말 오래 눈이 왔어요 비는 많이 오면 큰일이지만 눈은 괜찮습니다 밖에 다니기 안 좋기만 합니다 차 운전이 가장 힘들겠네요 낮에 해라도 보이면 좀 나을 텐데...


희선

mini74 2022-12-21 1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어릴땐 눈이 마냥 좋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눈이 오는 날의 뒷모습도 걱정하게 됩니다. 희선님 글 속 고양이들도, 눈길에 달려야 할 차들도, 새들도....

희선 2022-12-22 23:20   좋아요 2 | URL
지난 겨울에 눈이 별로 안 와서 이번에 눈이 와서 좋은데, 오늘은 많이 와서 걱정되는군요 다음주에 일이 있는데... 그때는 조금 녹기를 바랍니다 얼마전에 고양이가 길에 앉아 있는 거 봤는데, 거기 따듯했을지...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