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딩, 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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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 턴>은 이혼하는 30대 부부의 이야기다. 돌연 이혼을 결정하고 헤어지는 과정과 그 반대의 이야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둘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눈부신 순간들을 교차시킨다.
상대의 큰 결함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흠들이 쌓여 결혼 지속 불가능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지원과 영진. 묘하게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결혼은 일상이니까.
서유미작가는 <틈> 이후 두 번째. 문장이나 구성은 안정적인데, 캐릭터는 다소 평면적이고 훅 빠지기에는 조금 무난하다.

 

청소기란 먼지를 빨아들여 청소를 돕는 기계라 주기적으로 먼지 통을 비우고 부속품을 닦아줘야 제대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영진은 청소기를 꺼낸다, 전원 버튼을 누른다, 집 안을 돌아다닌다, 의 순서만 반복했다. 지원이 뒷마무리까지 부탁해, 하며 먼지 통을 비우는 모습을 몇 번 보여줬지만 매번 알았어, 하고는 잊었다. 지원은 영진의 알았어, 가 지긋지긋했다. 그는 알았다는 말을 곧잘 했지만 행동으로 옮긴 적은 거의 없었다. 그 대답은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것, 지금을 지나가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41p

영화의 몇 장면과 가을날 오후의 포크댄스에 대해 얘기하면서 지원은 잘 우러난 차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 되었다. 지나온 어떤 순간, 인상적인 장면을 꺼내 후후 불며 맛볼 수 있는 건 인생이 베푼 행운임에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인생에는 언제든 꺼내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우려먹을 수 있는 티백이 필요하다.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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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머니 밀리언셀러 클럽 148
로스 맥도날드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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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 취향 저격이었던 책. 하드보일드 미스터리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로스 맥도날드의 <블랙 머니>는 미스테리아 잡지 추천글을 보고 읽게 되었다. 미국 배경으로 활동하는 탐정 루 아처는 부유한 어느 마을에 나타나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에 빠진 프랑스인 남자 프란시스 마텔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모든 챕터는 아처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조사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서술들이 지루하지 않고,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은 스릴 있고, 결국에는 '인간의 본성 그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문제를 껴안고 있고, 그 문제는 크거나 작거나 할 뿐이다.  프란시스 마텔이라는 수상한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여기에 도달했는가, 그 여정에 담긴 사회적 배경, 심리적 요인을 알게 되면서 대단히 복잡미묘한 감정이 든다. 단순한 동정이 아닌 씁쓸함.  사춘기 때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고 그 주인공을 보며 느꼈던, 혹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를 보며 느꼈던 그런 복합적 감정들.
리드미컬한 플롯, 핑퐁 같은 대화와 루 아처의 쿨한 캐릭터도 매력이다. 아무튼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던 두세 시간의 엔터테인먼트.

 

"프란시스 마텔이 가짜라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나 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지 않은가요? 나를 예로 들어 봅시다. 보다시피 혼자 술을 마시죠.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감추고만 싶어지고. 약간이나마 이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드러내 놓고 마시는 거죠. 그리고 피터와 베라의 비난을 감수하고."
39p

"내가 20년간 진료를 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실수가 된다 해도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둬야 한단 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깨우치게 되거든. 폐기종 환자면 결국엔 담배를 끊고. 만성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끊고. 그리고 중증 낭만주의자 아가씨는 현실주의자로 변합니다. 여기 내 사랑하는 아내처럼."
103p

그녀는 거칠었다. 너무 일찍 결혼해서 부엌에 갖혀 살다가 10년 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의문을 느끼게 된 여자들이 종종 그런 식이었다.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녀가 말했다.
"알아요, 내가 싸앙녀언이죠. 하지만 이유가 있어요. 남편은 밤마다 자정 너머까지 서재에 앉아 있어요. 그이가 신경 쓰는 게 플로베르와 보들레르와 그 끔찍한 학생들뿐이라고 내 인생이 끝나야 해요? 걔들이 몰려들어 남편에게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모르겠다고 떠들어 대는 걸 보면 토 나올 거 같다고요."
206p

쉬운 여자는 늘 골칫거리였다. 냉담하거나 밝히거나, 다중인격이거나 돈을 밝히거나 알코올 중독이거나, 때로는 그 다섯 가지 전부이기도 했다. 멋지게 꾸몄지만 포장을 풀고 나면 사제폭탄이거나, 독이 든 퍼지 케이크로 밝혀지기도 했다.
집에 갈 택시비를 주니 그녀는 받았다. 친근한 행동이었고, 상황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친근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삶보다 더 지독한 운명에 버리고 가기라도 하는 듯이 쳐다보았다.
210p

"우리 부부 사이를 그 애가 깨뜨리고 있었는데, 왠지 내 일이 아닌 기분이었어요. 나는 그저 결혼식에만 참석한 것처럼. 이게 내 인생이 아니라도 느껴졌어요. 내 인생은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처럼."
3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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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 - 며느리의, 며느리에 의한, 며느리를 위한
수신지 지음 / 귤프레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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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의 며느리 생활을 담담히 그린 웹툰 '며느라기'는 작가가 페이스북에 연재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독립 출판 형태로 출간되었다.
그저 무난한 시어머니와 남편을 둔 주인공은 그럼에도 구조적으로 여성에게만 주어진 소소한 의무들, 명절날 풍경, 남편의 무심함 등에 치인다. 시어머니는 친절하지만 '남은 과일은 너랑 나랑 먹어치우자'고 권하고, 아들이 설겆이하면 극구 말린다. "내 결혼은 잘한 것일까?". 많은 공감이 가는 만화다. 
정가 3만원은 소장가치를 고려한 가격일 텐데 얇은 투명 플라스틱 커버를 벗기면 표정이 울상으로 변한다. 짝 펴지는 노출제본도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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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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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살인 출산'은 본인 희망으로 10명의 아기를 인공 출산하면 1명을 살인할 수 있는 합법적 권리를 얻게 되는 가상의 세계를 그린다. 단 한 번의 살인 기회를 얻기 위해 10년 이상 출산의 고통에 시달린다는 이상한 시스템, 게다가 남자도 출산을 할 수 있다는.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한 사람을 칭송하는. 출산 저하율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이라고는 하나, 비틀려도 한참 비틀린 세계다.
'트리플'은 남녀 관계없이 세 명이 같이 연애를 하는 이야기다. 남남녀 커플도, 남녀녀 커플도 허용된다. 일반적인 커플을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청결한 결혼'은 서로의 합의하에 남매 같은, 계약만 있는 결혼 생활을 다룬다. 성행위는 다른 관계에서 풀고, 결혼은 공동의 생활일 뿐이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일본 드라마의 설정과도 유사하다. 네 편의 단편 중에 그나마 가장 무난하고 설득력 있다.
'여명'은 수명이 연장되어 200년씩 사는 세상에서 죽을 시점을 선택하는 이야기다. 아주 짧은 소품이다.

<편의점 인간>보다 너무 나아간 상상력, 게다가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가 조금은 불편했다. 그러한 세계를, 비록 문학이지만 받아들여주는 건 역시 일본이라서 가능한 것 아닐까. 읽기 전에 선택과 심호흡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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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미식회 - 여행의 모든 순간이 행복해지는 도쿄 인기 맛집
정윤정 지음 / 시공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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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맛집이 많지만 가이드북 맛집은 천편일률 비슷하고, 일반인 포스팅이나 일본 현지 평가 앱 타베로그나 구루나비를 뒤져야 괜찮은 맛집을 찾을 수 있는데 품이 많이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도쿄 미식회>는 꽤 잘 기획되고 만들어진 책이다. 큰 카테고리를 커피, 샌드위치, 돈부리, 팬케익, 야키토리 등 음식 장르로 디테일하게 구분하고 갈 만한 맛집을 리스트업했다. 원래 유명한 식당과 신선한 맛집이 고루 섞여있어 트렌디함도 놓치지 않는다.
편집은 한 페이지에 한 식당을 사진과 텍스트로 시원하게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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