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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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그만둔 후 20년간 집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던 남성이 시체로 발견된다. 사건 현장을 봤을 때 자살일 거라고 짐작한 경찰은 남성의 옷장 안에서 뜻밖의 물건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옷장 안에는 스물다섯 개의 유리병이 있고 그 안에는 누군가의 시신 토막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20년 동안 바깥 출입을 전혀 하지 않은 남자가 언제 어디서 사람을 죽여서 어떻게 시체를 처리한 걸까. 강력반 형사 '쉬유이'는 엄청난 사건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조사에 착수한다. 


<고독한 용의자>는 <기억나지 않음, 형사>, <13.67>, <망내인> 등 다수의 소설을 펴낸 홍콩 작가 찬호께이의 최신작이다. 처음에 나는 은둔형 외톨이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설정이 - 추리 소설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밀실 트릭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존재라는 점에서 -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꼈는데, 생각보다 이른 단계에서 소설 속 은둔형 외톨이가 20년 간 거주한 방이 실제로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다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반전을 보고 '역시 찬호께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반전인지는 직접 읽어보고 알아내시길...


찬호께이는 사회파 범죄소설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소설에도 그런 면모가 드러난다. 자살은 너무 흔한 일이라서 놀라는 사람도 별로 없다. 누군가가 고립되어 은둔하는 생활을 해도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드물다. 남성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직접 대시하는 대신 돈으로 '렌탈 애인'을 사고, 여성들은 생활비, 학비를 벌기 위해 어릴 때부터 성매매에 뛰어든다. 경찰은 무능하거나 무력하고, 시민들은 경찰을 신뢰하지 않는다. 과연 이 도시에 '고독한 용의자'는 단 한 명뿐일까. 소설 속 장면들을 곱씹을수록, 쓸쓸한 결말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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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메이드는 여왕의 비밀을 알고 있다. 1
토야마 에마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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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보는 능력을 지닌 '리즈'는 마녀 같다는 이유로 혼기가 되었는데도 결혼하지 못했다. 리즈 자신도 남자나 결혼에 관심이 없어서 이런 게 삶이라면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던 차에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린필리아 왕국의 여왕인 슐리에스 여왕 폐하가 리즈의 능력을 특별히 여겨 자신의 전속 메이드로 고용한 것이다. 리즈는 자신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 주고 지낼 곳까지 마련해 준 여왕에게 어떻게든 보은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리즈는 여왕이 가까운 가족에게도 숨기고 있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는데... 


토야마 에마의 <마녀 메이드는 여왕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설정이 상당히 재미있는 만화다. 이 나라의 왕궁에서 일하는 메이드는 단순한 시녀가 아니라 '신부 후보'이다. 여왕은 물론 다섯 왕자와 왕궁을 드나드는 귀족 남성들 모두 메이드를 신부 후보로 여기고 관심이 가는 메이드에게 청혼한다. 이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여왕에게 '픽'을 받은 리즈는 일견 가장 신세가 좋아 보이지만, 여왕과는 결혼도 할 수 없고 후계자도 낳을 수 없다. 그래서 리즈는 여왕과 여왕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여왕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자신이 하기로 한다. 아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랑인가...


이 만화에는 슐리에스와 리즈 외에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이 나온다. 백합보다 이성애 로맨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리즈와 다섯 왕자들의 케미도 좋아할 듯. 특히 금발 미남인 2왕자 류시온과 흑발 미남인 3왕자 데트와르가 이성애 로맨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남주&서브남 캐릭터라서 이들과의 케미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 같다. (나는 슐리에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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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 백
후지모토 타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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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줄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기 만화 <체인소 맨>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 <룩 백>에는 혼자서는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던 세계에 서로를 데려다 주는 관계가 나온다.


초등학교 4학년인 후지노는 또래 친구들보다 뛰어난 그림 실력과 개그 감각을 인정 받아 학년 신문에 4컷 만화를 싣는다. 어느 날 후지노의 담임 선생님이 등교 거부 중인 은둔형 외톨이 쿄모토와 함께 만화를 연재할 것을 제안한다. 후지노는 "학교에도 못 오는 나약한 애가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요?"라고 코웃음 치는데, 얼마 후 신문에 실린 쿄모토의 만화를 보고 더는 잘난 체하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쿄모토의 그림 실력이 후지노의 그것보다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후로 후지노는 쿄모토의 실력을 뛰어넘기 위해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줄이고 그림에 매진한다. 하지만 6학년이 되어도 쿄모토의 실력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가족과 친구들은 공부도 친구도 등한시하고 그림에만 빠져 있는 후지노를 질책한다. 결국 후지노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그림을 그만두기로 하는데, 졸업식 날 담임 선생님의 부탁으로 졸업 증서를 전해주기 위해 쿄모토의 집에 찾아 갔다가 뜻밖의 일을 겪는다.


이후의 전개는 후지노가 계속 그림을 그릴 경우의 미래와 후지노가 그림을 그만둘 경우의 미래, 이렇게 두 가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양쪽 모두 후지노가 쿄모토와 만나게 되고 쿄모토와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후지노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인생을 살든 간에 후지노에게 쿄모토는 반드시 만날 인연이고, 그림은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일종의 '업'이라는 의미로 읽혔다.


주인공이 n회차의 인생을 경험하면서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과 반드시 해내야 할 과업을 깨닫고 그것에만 몰두하는 삶을 사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일본 드라마 <브러시업 라이프>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노 요코의 <백 만 번 산 고양이>와 함께 너무나도 좋아하는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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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리가 신세 좀 지겠습니다 1
카이도 치토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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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최애 연예인의 매니저가 되어 24시간 붙어 지내며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카이도 치토세의 만화 <우리 반리가 신세 좀 지겠습니다>의 주인공 아카시 나나세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연예기획사에서 일하는 언니의 부탁으로 임시 매니저 일을 맡게 된다. 근데 무려 담당 연예인이 나나세의 최애. 요즘 가장 잘나가는 인기 배우 나리타 반리인 것이다.


임시직이기는 하지만 최애의 매니저로 일할 수 있게 되어 흥분한 것도 잠시. 나나세는 곧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깨닫고 절망한다. 드라마에서 본 나리타 반리는 얼굴도 스윗, 성격도 스윗, 모든 게 완벽한 이상형 그 자체였지만, 실제로 만난 나리타 반리는 폭군과 다름 없는 성격인 것이다. 나나세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에게 '갑질'을 하는 반리에 대한 불만이 커지지만, 언니의 부탁으로 일하게 된 거라서 그만두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반리의 성격은 몰라도 얼굴은 여전히 스윗하잖아...ㅎㅎ


나나세가 반리의 매니저로 계속 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에는 진지한 반리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연기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연기자 선후배와 스태프를 열심히 챙기는 반리를 보면서, 나나세는 반리의 얼굴만 좋아하는 팬에서 나리타 반리라는 한 명의 인간, 한 명의 배우가 성장하는 데 있어 전력으로 서포트하는 매니저가 되고 싶어진다. 과연 나나세는 일과 사랑 모두를 잡을 수 있을까. 내용도 재미있고 작화도 예뻐서 완결까지 쭉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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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
하라다 히카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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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찾는 가게나 식당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나에게는 아직 그런 가게나 식당이 없지만, 한두 곳 정도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제 가도 늘 그 분위기인 가게. 어쩌다 들러도 한결 같은 맛을 보장하는 식당. 그런 가게나 식당이 있다면, 이 '차가운 XXX들의 도시'가 조금은 따뜻하고 좀 더 살아볼 만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한 건,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하라다 히카의 소설 <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의 무대인 정식집 자츠가 딱 이런 식당이기 때문이다. 언제 가도 늘 그 분위기인, 어쩌다 들러도 한결 같은 맛을 보장하는 식당 말이다.


소설은 남편에게 갑자기 이혼하자는 말을 들은 30대 여성 사야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던 사야카는 남편이 요근래 즐겨 찾는 듯했던 정식집 자츠에 가본다. 푸근한 인상의 주인 아주머니를 남편이 마음에 둘 리는 없고, 식당 손님 중에 남편이 마음에 둔 여자가 있는 게 아닌가 짐작한 사야카는 자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편이 마음에 둔 여자를 찾기로 한다. 그렇게 '불순한' 의도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사야카의 인생도 바꾸고 주인 아주머니인 조우 씨의 인생도 바꾸는데,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시길.


혼자서 식당을 경영하는 나이 든 여자와 아르바이트생으로 인연을 맺게 된 젊은 여자의 이야기인 점에서 무레 요코의 소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이 떠오르기도 했다. 음식을 곁들인 잔잔한 일상 힐링물처럼 읽히지만, 의지할 남편이나 자식이 없는 여성이 나이듦이라는 점점 가중되는 부담을 견디면서 어떻게 돈 벌고 먹고 살지에 관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히라다 히카의 전작들과 이어져 있다. 팬데믹 전후 자영업자, 특히 식당 종사자 분들이 겪은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 고충에 대해 묘사한 부분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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