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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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을 여러 번 읽는 경우가 드문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린의 날개>는 두 번 읽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건 2017년. 이 소설이 국내에 처음 출간되었을 때, 소설의 배경이 내가 가본 도쿄 긴자 니혼바시 부근이라고 해서 반가움과 호기심으로 읽어 보았다. 그 때 쓴 리뷰를 찾아 보니 니혼바시가 배경인 건 반갑지만 내용은 그저 그랬다는 식으로 썼는데, 솔직히 이번에 이 소설을 다시 읽고 느낀 감상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오히려 직전에 읽은 <신참자> 쪽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2021년에 발표한 자신의 데뷔 35주년 기념작 <백조와 박쥐>와 비슷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어떻게 비슷한지는 차차 쓰는 것으로...


소설은 도쿄 도심 한복판에 있는 니혼바시 다리에서 중년 남성이 칼에 찔려 죽은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시간 후 근처 도로에서 한 청년이 차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데, 청년의 소지품 중에 죽은 남성의 지갑이 있다는 이유로 경찰은 청년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니혼바시 경찰서의 가가 형사는 사건이 보기와는 다를 수도 있다고 짐작하고 피해자와 용의자의 주변 탐문을 꼼꼼하게 진행한다. 그 결과 용의자가 해고 당한 전 직장의 상사가 피해자였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용의자가 범인일 수 있다는 설에 점점 더 무게가 실리는데...


앞에서 이 소설이 <백조와 박쥐>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썼는데, 첫째는 도쿄 한복판에서 중년 남성이 살해 당하는 장면으로 소설이 시작되는데, 살해 당한 남성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있지 않고 남은 힘을 짜내어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이는 살해 당한 사람이 자신을 살해한 사람을 고발하기 위해 쓰는 '다잉 메시지'와는 정반대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숨겨주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행동인데, 두 소설에서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숨겨주려고 하는 목적 내지는 이유도 비슷하다.


둘째는 사건이 알려지고 언론 보도가 과열되면서 가해자의 가족뿐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도 피해를 입는다는 점이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가족들이 스스로 사건 해결에 나서는 양상은 <백조와 박쥐>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기린의 날개>에서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기린의 날개>에서 피해자의 아들인 유토와 용의자의 아내인 가오리가 <백조와 박쥐>에서 용의자의 아들인 가즈마와 피해자의 딸인 미레이에 비해 활약을 못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유토는 아직 미성년자인 학생이고 가오리는 임신한 상태라서가 아닐까.


셋째는 모든 것이 아버지의 자식 사랑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이 난다는 점인데, 이는 두 소설뿐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라서 특별한 것 같지는 않다. <백조와 박쥐>에서 노인 대상 사기 문제를 거론한 것처럼 <기린의 날개>에서는 일자리 부족과 산업 재해 문제를 거론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린의 날개>를 처음 읽었을 때는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공장 내에서 일어나는 중대 재해를 은폐하는지 잘 몰랐는데, 그동안 몇몇 사건을 접하고 불매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진작에 이를 언급한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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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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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학창 시절부터 일본 소설을 즐겨 읽었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오래 전부터 읽어 왔지만 요즘처럼 좋아한 적은 없다(예전에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에 재미를 느끼다니. 요즘 내 삶이 너무 피폐한가...). 내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매력을 새롭게 알려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 시리즈인 '고다이 쓰토무' 시리즈를 다 읽고(라고 해도 아직 <백조와 박쥐>, <가공범> 두 권뿐이다) 뭘 읽을까 하던 차에, 가가 형사 시리즈가 재미있다는 추천을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2025년 9월 현재까지 총 12권이 출간되었다. 이중에 나는 제9권 <기린의 날개> 단 한 권을 읽었고, 이번에 제8권 <신참자>를 읽었다. <신참자>는 2010년에 방영된 아베 히로시 주연 드라마의 원작 소설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어보니 정통 범죄 미스터리 소설일 것 같다는 짐작과 달리 도쿄의 오래된 상점가를 배경으로 한 휴먼 드라마 느낌이라서 놀랐다. 같은 시리즈라도 작품의 전개 방식이나 분위기 등에 차이를 두는 점이 신기하고, 이런 식으로 작품마다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점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렇게 많은 작품을 써내도 독자들이 매번 새로움을 기대하면서 그의 작품을 따라 읽는가 싶다.


소설은 도쿄 니혼바시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던 45세 여성 미쓰이 미네코가 교살당해 죽은 상태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니혼바시 경찰서에 새로 부임한 '신참자' 가가 교이치로는 미쓰이의 전 남편과 아들, 친구는 물론 미쓰이가 생전에 자주 다니던 닌교초 거리의 상점가 사람들을 수시로 탐문하며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가가의 동료들은 가가 형사가 센베이 가게 딸, 요릿집 수련생, 사기그릇 가게 며느리, 케이크 가게 점원 등 사건과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가가의 생각은 다르다.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278쪽)


가가 형사에 따르면, 형사가 하는 일은 범인을 잡는 것만이 아니다. 사건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려줘서 그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형사가 해야 할 일이다. 이는 <신참자>에 이어서 읽은 <기린의 날개>에도 나오는 생각이고, 가가 형사 시리즈는 아니지만 최근에 읽은 <백조와 박쥐>, <가공범>의 고다이 쓰토무 형사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사건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은 대체로 피해자의 가족인데, <신참자>에서도 가가 형사는 미쓰이의 아들이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무심했던 것을 반성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라도 어머니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 보탬이 되고 싶어한다. 이는 가가 형사 자신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되는데, 가가 형사가 아버지와 어떤 관계였고 그로 인해 어떤 문제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앞부분을 읽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서 구입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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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메이드는 여왕의 비밀을 알고 있다. 3
토야마 에마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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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리즈는 슐리에스 여왕을 지키기 위해 슐리에스 여왕에게 청혼한 옆 나라 레온 왕자의 아내가 되러 간다. 하지만 레온 왕자의 속셈은 따로 있었고,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리즈는 2권 마지막에 등장한 수수께끼의 남자 길과 함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을 찾는다. 한편 리즈가 레온 왕자의 꾀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슐리에스 여왕은 군사를 일으키고, 마침내 슐리에스 여왕을 꾀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 레온 왕자는 둘만의 자리를 만든다. 이때 예상 밖의 인물이 나타나 슐리에스 여왕을 구하는데, 슐리에스 여왕의 관심은 오로지 리즈뿐이다.


토야마 에마의 만화 <마녀 메이드는 여왕의 비밀을 알고 있다> 3권은 이야기가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주인공 리즈의 과거사가 드러난다. 리즈가 지닌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특별한 줄은 알았지만 정말로 '특별'한 것일 줄이야. 리즈 본인도 잊고 있었던 리즈의 과거사가 드러나면서 여왕과 5왕자 그리고 길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원래는 슐리에스/브래드-리즈 커플이 최애였는데, 새로 등장한 길이 잘생기기도 하고 캐릭터가 매력적이기도 해서 길-리즈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ㅎㅎ 어서 다음 권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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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메이드는 여왕의 비밀을 알고 있다. 2
토야마 에마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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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서 혼처를 구하지 못한 리즈는 린필리아 왕국의 여왕 슐리에스의 전속 메이드로 발탁이 된다. 남자도 결혼도 질색이었던 리즈는 아름답고 믿음직한 여왕에게 봉사하며 살 수 있게 되었음에 기뻐한다. 기쁨도 잠시. 리즈는 결혼도 하지 않고 후계자도 없는 여왕의 지위를 여왕의 이복 남동생 다섯 명이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여왕이 리즈에게만 알려준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리즈는 여왕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다짐하는데...


토야마 에마의 <마녀 메이드는 여왕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여왕의 비밀이 상당히 중요한 만화다. 1권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까봐 안 썼는데 2권 뒤표지에 비밀의 내용이 나와 있으니까 써보자면, 여왕은 사실 실종된 제1왕자, 즉 남성이다. 브래드는 왕궁에서 독살당한 어머니와 누나 슐리에스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대가로 슐리에스의 모습이 되어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브래드는 리즈에게 왕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사랑을 나누고 후계자를 낳자고 하는데, 남성을 싫어하고 (브래드가 아닌) 슐리에스 여왕을 좋아하는 리즈에게는 쉽지 않은 제안이다.


2권에서 리즈는 슐리에스 여왕을 지키기 위해 슐리에스 여왕에게 청혼한 옆나라 레온 왕자의 아내가 되기로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슐리에스 여왕은 바로 군사를 일으키고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의 기운이 감돈다. 2권에는 3왕자 데트와르의 사연이 나오는데 왕궁 로맨스 좋아하는 분들은 이 캐릭터도 상당히 좋아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2권 마지막에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가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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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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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하는 일을 쉽게 해내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이를테면 처음 보는 사람과도 편안하게 대화하는 사람. 사람들 앞에서 잘 웃고 잘 울고 잘 화내고 잘 잊어버리는 사람. 눈 앞에 다수의 사람들이 있어도 긴장하지 않고 자기 표현을 잘 하는 사람.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 걱정하지 않고 쉽게 뛰어드는 사람.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걸 잘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닮고 싶고 그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으로 나는 왜 그런 사람이 아닌지 자책하는 마음,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절망하고 체념하는 마음이 든다.


2021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받은 소설가 문진영이 2023년에 발표한 소설집 <최소한의 최선>에는 그런 사람, 그런 관계가 여러 번 등장한다. <미노리와 테츠>의 '나'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캐릭터인 친구 수민을 부러워한다. <변산에서>의 '나'는 학창시절부터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해 딸을 낳고 자신보다 훨씬 어른스럽게 살고 있는 친구 민주를 내심 우러러 본다. <오! 상그리아>의 '나'는 해외여행 자체가 드물었던 시대에 세계일주를 다니며 여행작가로 이름을 날린 엄마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품고 있다. <내 할머니의 모든 것>의 '나'는 여자는 현모양처로 사는 게 제일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던 시대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외할머니를 남몰래 동경한다.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이 부러운 건 내 삶의 형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웬만해선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의 '나'가 인도 여행 중에 만난 안와를 보면서 느끼는 경외심이 그렇고, <고래 사냥>에서 함께 취업 준비생 시절을 겪고 있는 룸메씨와 월미도 바이킹을 타러 가는 '나'의 심정이 그렇다. 가족들과의 태국 여행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 론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네버랜드에서>의 '나', 퇴사 후 생산적인 나날을 보내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지나가는 바람>의 '나'도 그렇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괴로운 이유는, 어쩌면 과거에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자기 자신과 불화하거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령 <한낮의 빛>의 '나'는 오랫동안 남들 앞에서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그가 철들기 전에 저지른 어떤 일과 관련이 있다. 그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였을 수도 있지만,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의 나로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최소한의' 나도 '최선'의 나라는 걸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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