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버뷰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평점 :
<실버뷰>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등을 쓴 첩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유작이다. 저자 후기에 따르면 존 르 카레는 2020년 12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이자 작가인 닉 콘웰에게 원고의 존재를 알렸고, 미완성된 부분을 아들이 대신 완성해 출간해 주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존 르 카레의 이전 작품에 비해 길이가 짧고 내용이 소프트한 감이 없지 않지만, 거장을 추억하는 마지막 작품으로서는 괜찮았다.
소설은 런던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줄리언 론즐리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이스트앵글리아에 작은 서점을 열면서 시작된다. 줄리언은 서점에 찾아오는 손님은 적지만 조용하고 단조로운 생활에 만족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신사가 줄리언의 서점에 찾아와 이런저런 참견을 한다. 알고 보니 노신사는 줄리언의 아버지와 같은 학교 출신으로, 줄리언의 아버지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를 막 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줄리언은 노신사에게 잘해준다.
노신사의 이름은 에드워드 에이번. 그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실버뷰'라는 저택에서 암 말기인 아내 데버라와 단둘이 살고 있다. 줄리언은 에드워드와 데버라가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부유한 노인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두 사람은 영국 정보부에서도 알아주는 정보원들이다. 그 중에서도 에드워드는 폴란드인으로 태어나 영국 정보부의 첩보원이 되어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투입된 복잡한 이력의 소유자다.
처음에 줄리언은 에드워드와 데버라가 여느 부부들처럼 가끔 싸우기는 해도 대체로 사이 좋은 부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영국 정보부에서는 첩보원들끼리 결혼하는 일이 흔한데, 이는 사랑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서다. 데버라는 평생 에드워드를 감시했고, 에드워드 역시 평생 데버라를 감시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첩보원들이란 '더 위대한 사랑'을 위해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견디는 족속인 것이다.
소설은 줄리언의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은 에드워드이다. 에드워드는 약소국인 폴란드에서 태어나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영국 정보부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출세 가도를 걷는 듯했으나 오래지 않아 그것이 지옥으로 가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첩보국이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라는 표현도 하는데, 이는 첩보국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