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작 - 잠 못 드는 사람들 / 올라브의 꿈 / 해질 무렵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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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인 아슬레와 알리다는 연인 사이다. 아슬레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될 예정이고, 알리다는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다가 덜컥 임신을 한다. 알리다의 엄마는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이 임신을 했다며 알리다를 집에서 내쫓는다. 때마침 아슬레의 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죽는 바람에 아슬레도 집을 잃는다. 당장 잘 곳도 없는 두 사람은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로 간다. 


다른 도시에 도착한 아슬레와 알리다는 며칠이라도 머물 수 있는 여관을 찾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두 사람을 묵게 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동안 언제 출산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부푼 알리다의 배를 보고 겁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아슬레가 두 사람이 잘 곳을 마련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알리다의 배가 신호를 보내서 아슬레는 산파를 구해온다. 얼마 후 알리다는 아들인 시그발을 낳는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3부작>은 2007년에 발표한 1부 <잠 못 드는 사람들>, 2012년에 발표한 2부 <올라브의 꿈>, 2014년에 발표한 3부 <해질 무렵>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1부와 2부 초반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작품이 먼저 읽은 <아침 그리고 저녁>처럼 노르웨이 해안 마을 출신의 가난한 젊은 부부가 주인공인 휴먼 드라마 풍의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2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의외로 범죄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 마지막에 시그발을 낳은 아슬레와 알리다는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기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고향 사람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함이었고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올라브로 이름을 바꾼 아슬레를 어떤 노인이 알아봤고, 노인 때문에 가족 모두의 삶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아슬레는 노인을 따돌리려고 애를 쓰지만 좀처럼 노인의 감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3부는 아슬레가 떠난 후 혼자 남은 알리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알리다는 아슬레 없이 혼자서 시그발을 부양하느라 고생하던 중에 자신을 알아본 고향 어른의 도움으로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알리다는 고향 어른 덕분에 시그발도 잘 키우고 새로운 딸을 얻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알리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슬레뿐이다. 문장에 마침표가 없어서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지만, 한 번 몰입하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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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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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어느 해안 마을. 어부인 올라이는 아내 마르타의 출산을 기다리는 중이다. 올라이는 이제 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기대감보다 자칫하면 마르타와 아이 모두 잘못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어쩐지 이 순간에는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기도를 시작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마르타와 아이가 무사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그리고 아들이 태어난다면 아버지의 이름을 따 요한네스라고 짓겠다고.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가 2000년에 발표한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이 아들의 탄생을 기다리는 올라이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두 번째 장은 올라이의 아들 요한네스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장에서 거의 내내 엄마 뱃속에 있었던 요한네스는 두 번째 장에서 이미 노인이 되어 있다. 아버지 올라이의 바람대로 어부로서 평생을 보냈고,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를 먼저 보내고 막내딸에게 의지해 살고 있다.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확인한 요한네스는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빵을 먹는다. 하지만 왠지 어제와 다르게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어도 위장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고 담배를 피우기 전이나 후나 몸과 머리가 개운하다. 밖으로 나가니 오랫동안 소식이 뜸했던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혼자 사는 아버지가 잘 있나 보러 온 막내딸과 마주치지만, 웬일인지 막내딸의 표정이 평소에 비해 어둡고 뭔가 걱정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 


이 소설은 분량도 길지 않고 복잡한 서사도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장의 요한네스가 어떤 상황에 놓인 건지 알고 나면 내용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진다. 올라이와 요한네스라는 아버지와 아들, 두 남자, 두 인간의 이야기가 영혼의 생성과 소멸을 기록한 거대하고 근원적인 신화가 된다.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 사이에 생략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독법이 될 듯하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의 전작 읽기를 이 책으로 시작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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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뷰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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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뷰>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등을 쓴 첩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유작이다. 저자 후기에 따르면 존 르 카레는 2020년 12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이자 작가인 닉 콘웰에게 원고의 존재를 알렸고, 미완성된 부분을 아들이 대신 완성해 출간해 주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존 르 카레의 이전 작품에 비해 길이가 짧고 내용이 소프트한 감이 없지 않지만, 거장을 추억하는 마지막 작품으로서는 괜찮았다. 


소설은 런던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줄리언 론즐리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이스트앵글리아에 작은 서점을 열면서 시작된다. 줄리언은 서점에 찾아오는 손님은 적지만 조용하고 단조로운 생활에 만족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신사가 줄리언의 서점에 찾아와 이런저런 참견을 한다. 알고 보니 노신사는 줄리언의 아버지와 같은 학교 출신으로, 줄리언의 아버지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를 막 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줄리언은 노신사에게 잘해준다. 


노신사의 이름은 에드워드 에이번. 그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실버뷰'라는 저택에서 암 말기인 아내 데버라와 단둘이 살고 있다. 줄리언은 에드워드와 데버라가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부유한 노인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두 사람은 영국 정보부에서도 알아주는 정보원들이다. 그 중에서도 에드워드는 폴란드인으로 태어나 영국 정보부의 첩보원이 되어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투입된 복잡한 이력의 소유자다. 


처음에 줄리언은 에드워드와 데버라가 여느 부부들처럼 가끔 싸우기는 해도 대체로 사이 좋은 부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영국 정보부에서는 첩보원들끼리 결혼하는 일이 흔한데, 이는 사랑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서다. 데버라는 평생 에드워드를 감시했고, 에드워드 역시 평생 데버라를 감시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첩보원들이란 '더 위대한 사랑'을 위해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견디는 족속인 것이다. 


소설은 줄리언의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은 에드워드이다. 에드워드는 약소국인 폴란드에서 태어나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영국 정보부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출세 가도를 걷는 듯했으나 오래지 않아 그것이 지옥으로 가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첩보국이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라는 표현도 하는데, 이는 첩보국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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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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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은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처음으로 선보인 SF 소설집이다. 미야베 미유키가 미스터리 한 장르만 고집하지 않고 오컬트, 판타지, 시대물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온 건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SF 소설에 도전하다니. 미야베 미유키의 오랜 팬으로서 매우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첫 번째 단편부터 매우 만족스러웠다. (장편 소설로 써주시면 안 될까요?) 


첫 번째 단편 <엄마의 법률>은 '마더 법'이라는 법이 제정된 근미래가 배경이다. 마더법은 아동이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면 정부가 바로 구제해 학대당한 기억을 지우고 최적의 입양처를 찾아주는 법 제도다. 16세 여고생 후타바는 4살 때 마더법에 따라 겐이치 아빠, 사키코 엄마에게 입양되어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사키코 엄마가 죽자 마더법에 따라 '그랜드 홈'이라는 시설에 돌려보내진다. 사랑하는 가족과 강제로 헤어지게 된 후타바는 불만이 많다. 


소설 초반에는 법을 적용당하는 개인의 의사에 반해 정부가 친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보고 작가가 의문을 제기한 것은 부모와 정부 중에 어느 쪽이 친권을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친권 자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권(親權)은 단어 뜻 그대로 부모의 권리인데, 후타바의 부모처럼 자식을 학대하고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부모에게도 부모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 걸까. '인권은 인간에게 과분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친권도 어떤 부모들에게는 과분하지 않나. 


두 번째 단편 <전투원>은 녹내장을 앓는 80대 노인 후지카와 다쓰조가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사는 소년이 방범 카메라를 훼손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시작된다. 후지카와는 소년의 '장난'을 막으려고 동네에 설치된 방범 카메라를 주의 깊게 보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도 방범 카메라 위치가 자꾸만 바뀌고 그때마다 동네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 소설도 반전이 있는데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세 번째 단편 <나와 나>는 40대 독신 여성인 '나'가 오랜만에 본가에 방문했다가 10대 시절의 '나'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미래에 닥쳐올 불행을 모르는 철부지 여고생인 과거의 '나'는 마흔이 넘었는데 결혼도 안 하고 직장도 변변찮은 미래의 '나'를 한심하게 여긴다. 타임 슬립물은 대체로 미래에 사는 사람이 과거로 가는데, 이 소설은 과거에 사는 사람이 미래로 오는 점이 특이하다.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과거의 자신과 사이좋게 지낼 생각은 없다"라는 미래의 '나'의 대사가 좋았다. 


표제작 <안녕의 의식>은 폐기된 로봇을 수거하는 일을 하는 로봇 기사와 노후된 로봇 '하먼'을 가져온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먼'은 "수다 비즈니스"로 돈 버는 데 한계를 느낀 정보통신업계가 살림과 육아, 간병 등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한 가정용 로봇이다. 갓난아기 때부터 하먼이 키운 것이나 다름 없는 소녀는 하먼을 감정 없는 기계로 여기지도 않고, 여기저기 고장도 많고 더 이상 수리할 수도 없으니 폐기시키자는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반면 고아로 자라서 친구도 없고 연인도 없는 로봇 기사는 로봇이면서 인간에게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하먼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폐기되기 직전까지도 소녀에게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받는 하먼을 보며 급기야 로봇 기사는 "나는 로봇이 되고 싶다."라고 읊조린다. 인간이지만 기계를 부러워 하는 로봇 기사를 보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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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한의원
이소영 지음 / 사계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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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운영하는 회사에 8년째 다니고 있는 이지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오른손과 팔에 통증을 느낀다. 주요 업무가 사진 보정인데 마우스조차 잡을 수 없게 되자 통증을 치료하려고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 물리치료실을 전부 다녀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지와 똑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을 고친 한의원이 딱 한 군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그 한의원이 알래스카에 있다는 건데, 이러다 일을 못해서 굶어죽게 생긴 이지는 전 재산을 털어 알래스카로 간다. 


알래스카에 도착해 보니 과연 소문의 한의원이 있기는 했다. 이 한의원의 원장은 고담이라는 남자인데, 고담은 이지에게 그동안 다른 병원에선 하지 않은 질문을 한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날 무슨 일이 있었죠?" 그 전까지 통증의 원인이 교통사고 후유증인 줄로만 알았던 이지는 이때 처음으로 그 날 있었던 일을 천천히 되짚어 보기 시작한다. 그 날이 평소와 달랐다면 <시차 유령>이라는 동화책을 산 것 정도인데, 그 동화책이 이지의 통증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소영 작가의 소설 <알래스카 한의원>은 일단 알래스카에도 한의원이 있는지 궁금했고(소설을 다 읽은 지금도 궁금하다), 주인공이 병을 고치려고 알래스카에 있는 한의원까지 간다는 설정이 재미있어서 읽게 되었다. 평범하게 직장 다니던 여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외국에서 생활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이야기인 <카모메 식당> 같은 전개를 상상했는데, 의외로 미스터리 소설에 가깝고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신선했다. 


이지는 몇 달 동안 자신을 괴롭힌 통증이 사실은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원인으로 짐작되는 <시차 유령>이라는 책의 작가는 유명하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물리적인 문제보다 심리적인 문제가 치료하기가 훨씬 어렵다. 이지는 이대로 영원히 치료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 통증이 여전한 손과 팔을 가지고 앞으로 뭘 해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같은 고민에 시달린다. 


다행인 건 낯선 외국 땅인 줄로만 알았던 알래스카에도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고담을 비롯해 여러 이웃과 친구들이 이지의 사연을 듣고 안타까움을 표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알고 보면 이들에게도 알래스카로 올 수 밖에 없었던 각자의 사연이 있는데, 서로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들어주며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갈 기력을 회복한다. 영상화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배우들이 어떤 연기로 이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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