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이돌 - 누가 당신의 소년을 죽였을까
서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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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디 아이돌> 시즌3. <디 아이돌>의 PD는 겉보기엔 능력 있는 대기업 계열 방송국 직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액수의 빚을 지고 있다. 어느 날 <디 아이돌> 시즌3 최종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양준우 연습생이 촬영장에서 지급된 간식 상자 속 곤약 젤리를 먹고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로 인해 <디 아이돌> 시즌3 방영이 중단되고, 순위 조작을 대가로 거액의 돈을 받을 예정이었던 PD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양준우 연습생이 사망한 원인이 곤약젤리에 든 독이었음이 밝혀지고, 현장에 있던 연습생 10명이 용의선상에 오르자 곤경에 처해 있던 PD가 이런 아이디어를 낸다. 국민 프로듀서들이 투표로 최고의 아이돌을 뽑는 형식을 모방해, 국민배심원들이 투표로 범인을 색출하는 리얼 추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디 아이돌 특별 편 : 소년 단죄>가 시작되고, 이 악마의 기획이 전국을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든다. 


서귤 작가의 소설 <디 아이돌>은 정말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최종 후보자 11명 중 1명이 독살 당한다. 범인은 나머지 10명의 후보자 중 한 명으로 짐작되는 상황. 기존 추리 소설의 문법을 따르면 용의자들 각각의 살인 동기를 추궁하고 알리바이를 파악하는 데 치중해야 할 텐데, 이 소설은 그러지 않는다. 용의자들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방송국, 연예기획사, 스폰서, 가족, 팬 등의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그린다. 


어쩌면 이는 아이돌의 특성과도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아이돌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다. 방송국 입장에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고, 연예기획사 입장에선 판매를 위해 제작한 상품이며, 스폰서 입장에선 매출을 높이는 도구다. 가족에게는 생계 부양자, 팬에게는 대리 애인. 이들에게 용의선상에 오른 아이돌 각자의 실제 생활이나 인간으로서의 감정이나 생각은 상관 없다. 방송만 잘 되면, 회사만 잘 되면, 물건만 잘 팔리면, 돈 잘 벌고 욕구만 해결해 주면 그만이다. 


비판적인 어조로 썼지만, 나 또한 아이돌의 팬이고 <디 아이돌>과 비슷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적도 있다. <디 아이돌 특별 편 : 소년 단죄>의 기획을 들었을 때 잔인하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실제로 제작되면 볼 것 같다. 최애가 나오면 욕하면서 본방 사수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 속 인물들(특히 팬들)을 욕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점에서 나와 이 사람들이 얼마나 다를까. 아이돌 입장에선 나와 이 사람들이 달라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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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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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사망한다. 남자의 이름은 K. K는 15년 전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K는 자신의 사망 보도 이후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살면서 한 여자의 이름과 얼굴을 빌려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여자는 K가 쓴 소설을 읽고 작가 행세를 하면서 지냈다. K가 사망한 날 아침, 여자는 죽은 K의 책상에서 K가 남긴 서류 봉투를 발견한다. 여자는 K가 남긴 서류 봉투를 K의 딸이 재직 중인 대학 연구실에 가져다 놓는다. 


K의 딸은 연구실 문 앞에 놓인 서류 봉투를 보고 깜짝 놀란다. 봉투에 적힌 이름이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그의 이름인 '손승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인 '강재인'이었기 때문이다. 봉투를 열어 그 안에 든 서류를 본 K의 딸은 그것이 15년 전 사망한 아버지 K가 쓴 글이란 걸 알게 된다. 대체 누가 왜 이런 글을 자신의 연구실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일까. 15년 전 사망한 아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정녕 없는 걸까. 


천희란의 소설 <K의 장례>는 남성 소설가 K의 두 번에 걸친 사망과 이를 통해 연결된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이름'이다. 문제의 중심에 있는 소설가 K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 반면, K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두 여자는 각각 전희정, 손승미라는 가명을 쓴다. 전희정, 손승미는 가짜 이름(가명)이기도 하지만, 남이 지어주지 않고 자신이 직접 지은 이름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진짜 이름'이기도 하다. 


두 여자의 차이점은, 전희정이 자신의 이름만 스스로 짓고 작품 활동은 K에게 의존한 반면, 손승미는 자신의 이름도 스스로 짓고 작품 활동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특히 전희정은 K가 쓴 소설로 유명 작가도 되고 돈도 많이 벌지만, 자기 스스로 이룬 성취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손승미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어떤 이름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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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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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랜드는 어릴 때 삼촌의 저택에서 지도 한 장을 보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 그것은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의 언어를 전부 배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외국어 공부에 몰두한 그는 번역가로 커리어를 쌓다가 출판사 사장이었던 아내의 뒤를 이어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그렇게 번역인으로 출판인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줄 알았던 그가 어느 날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가족이 있는 트리에스테를 떠나 자신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런던으로 간다. 


런던에서 레이랜드는 돌아가신 삼촌이 자기 앞으로 남긴 저택에서 지내며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본다. 그는 어린 시절 강압적인 아버지와 피상적인 학교 교육에 질려서 가출을 감행했다. 호텔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외국어를 공부했고,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번역가로 데뷔했다. 기자인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아내를 따라 아내의 고향인 트리에스테로 갔다. 그곳에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키웠고, 현재 그의 딸은 의사, 아들은 변호사가 될 예정이다. 즐거운 삶이었지만, 몇 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로는 예전만큼 즐겁지 않다. 


삼촌의 책상에서 '이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번역하는 일은 그만하고 너 자신의 글을 쓰라'는 내용의 편지를 읽은 후로 레이랜드는 남은 생을 자신의 글을 쓰는 데 바쳐야 할까 고민하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레이랜드는 이웃인 케네스 버크와 친구가 되고, 감옥에 갇혔을 때 통역해준 것을 계기로 러시아어 번역가 안드레이와 교류하게 된다. 오랫동안 신세 진 런던의 출판인 크리스티 모자에게 신세를 갚을 일도 생기고, 소설가 프란체스카 마르케세, 메리 앤과도 재회한다. 


<언어의 무게>는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된 원작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가 16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중요한 반전이 있는데, 그 반전이 인터넷서점 책 소개에 떡하니 나와 있는 걸 보면 반전이 아닌가 보다(반전을 모르고 읽었던 나로서는 반전을 읽고 충격이 상당히 컸기에 반전이 무엇인지 이 글에 적지 않겠다). 반전을 알기 전에는 시한부 판정 후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을 알고 나서는 어떤 '죽음'이 존엄한 죽음인가에 관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소설에는 배우자가 심각한 병에 걸려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 다른 배우자가 고의로 사망시킨다면 살인인지 존엄 상실인지에 관한 논쟁이 여러 번 등장한다. 레이랜드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나서 남은 생을 정리하는 한편으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다량을 섭취할 경우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약을 준비한다. 이 경우 후자는 극단적 선택일까 아니면 존엄 상실일까.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사는 것과 목숨이 다하기 전에 스스로 생을 마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존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또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런던으로 돌아온 레이랜드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동안 자신이 내렸던 선택들을 반추한다. 만약 자신이 가출하지 않고 아버지와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대학에 진학했다면 어땠을까. 호텔 경비원으로 취직하는 대신 철도원이 되었다면. 아내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내를 따라 트리에스테로 이주하지 않았다면. 아내의 뒤를 이어 출판사 사장이 되지 않았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기 전에 출판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면... 


레이랜드 앞에 선택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지만, 레이랜드는 그중 몇 가지만을 선택했다. 선택의 결과 레이랜드의 삶은 이렇게 되었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의 결과로도 레이랜드의 삶은 이렇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생은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러니 선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후회할 필요도 없는 것은 아닐까. 이제 더는 어제도 내일도, 삶도 죽음도 생각하지 않고 눈 앞의 소설에만 집중하는 레이랜드를 보니, 얼마 전에 읽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본 "다른 인생은 없다, 지금을 살아라'라는 경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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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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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였던 엠마 웹스터는 여성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기 위해 정치에 투신해 노동당 하원의원이 되었다. 현재 엠마는 불법 촬영물에 대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디언>지의 표지를 장식할 기회가 오고, 법안 홍보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한 엠마는 촬영에 응한다. 하지만 표지가 공개된 후 사람들의 반응은 엠마의 예상과 달랐다. 대중은 엠마가 인터뷰에 설명한 법안의 내용보다 엠마의 립스틱 색깔과 하이힐의 높이에 관심을 보였다. 


네티즌들은 물론이고 엠마의 지역구에 사는 유권자들마저 엠마가 노동당 정치인답지 않다고 등을 돌렸다. 여성들은 엠마가 페미니스트답지 않다고, 남성들은 엠마가 여성 인권만 챙기고 남성 인권에는 무심하다고 비난했다. 쏟아지는 공격에 정신이 혼미해진 엠마는 예전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한다. 그 결과 딸이 불법 촬영물 유포 가해자로 몰리고, 엠마 자신도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 과연 엠마는 정치인으로서,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벼랑 끝에 놓인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세라 본의 소설 <레퓨테이션 : 명예>는 촉망받는 여성 정치인이 언론과 대중의 집중 포화를 받으며 추락하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린다. 사실 요즘은 인터넷과 SNS가 워낙 발달해서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닌 일반인도 자칫하면 소설에서 엠마가 당한 일과 비슷한 일(악플 세례, 스토킹, 협박 등등)을 당할 수 있다. 심지어 '불명예도 명예'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만한 일을 하고(예를 들면 막말을 일삼는 정치인이나 사생활 팔이하는 연예인들) 그걸로 인기를 유지하고 돈을 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엠마가 좀 더 뻔뻔했으면, 덜 착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가디언>지의 표지가 공개되고 사람들이 비난할 때 "내가 얼마나 예쁘고 매력적이면 저럴까"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전 남편이 애 엄마가 너무 나대는 거 아니냐고 비난할 때 변명 대신 그렇게 걱정되면 네가 와서 직접 챙겨주라고 응수했다면 어땠을까. 호감이 있는 남자에게 예의를 차리는 대신 솔직하게 호감을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늘 겸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착하게 굴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엠마를 점점 더 나쁜 길로 이끈 건 아닐까. 


1권을 순식간에 읽었고 이제 2권을 읽을 차례인데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너무나 기대된다. 영상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궁금하다. 작가님의 전작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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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4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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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우크라이나에는 유대인 거주 지역이 따로 있었다. 유대인 거주 지역은 또 다시 주민들의 경제 수준에 따라 세 구역으로 나뉘었다. 아다의 아버지는 하층민 거주 지역인 게토 출신으로, 열심히 일한 덕분에 서로 다른 구역을 오가는 중개인의 지위에 올랐다. 아다는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부유한 유대인들의 눈에 아다의 아버지는 여전히 게토 출신 하층민일 뿐이다. 


아다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아버지가 죽고, 그의 가족들이 아다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때부터 아다는 작은 아버지의 아내인 라이사 숙모와 그의 딸 릴라, 아들 벤과 함께 산다. 나이가 비슷한 벤과는 친남매처럼 매일 같이 놀고 항상 붙어 다닌다. 해리를 처음 본 날도 벤과 함께였다. 유대인 가문 중에서 로스차일드 다음으로 부자로 소문난 솔로몬 시너의 손자 해리 시너를 처음으로 본 날. 그날 이후 아다는 해리만을 사랑한다. 


아다를 좋아하는 벤은 아다가 해리를 좋아하는 것이 싫다. 부자인 해리는 가난한 아다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싫다. 이들의 삼각관계는 파리에서도 이어진다. 다만 이때는 해리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우크라이나에선 부유한 유대인으로 떵떵거리며 살았던 해리는 프랑스에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은근한 배제와 차별을 당한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을 무시하는 프랑스인들보다 한결같이 사랑해 주는 아다가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문제는 해리에게는 아내가 있고 아다에게도 남편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다의 남편은 사촌인 벤이다. 사실 아다와 벤의 성도 시너이기 때문에, 아다와 벤, 해리는 모두 친척 관계다. 벤은 해리보다 먼저 아다를 사랑했고, 친척이기 때문에 외모도 닮았는데,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해리를 좋아하는 건 잘못이라고 아다를 설득한다. 하지만 아다가 해리를 좋아하는 건 단지 부유해서만은 아니다. 그러나 해리가 부유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이렌 네미롭스키의 소설 <개와 늑대>는 세 남녀의 엇갈리는 사랑을 그린 로맨스 소설로도 훌륭하지만, 20세기 초 유럽의 유대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사료로서도 가치가 상당하다. 소설에서 아다네 가족은 점점 더 심해지는 포그롬(유대인 박해)을 피해 프랑스로 이민을 가지만, 파리에서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소외당하고 차별받으며 힘든 생활을 한다. 도피와 방랑이 일상이기 때문에 돈과 물질을 숭배하고 혈연에 집착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다는 개처럼 길들여진 남자 해리도, 늑대처럼 자유로운 남자 벤도 아닌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는다. '그림, 자식, 용기. 이거면 살 수 있어. 그것도 아주 잘 살 수 있어.'라고 다짐하는 아다의 모습이 너무나 밝고 희망찬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렌 네미롭스키는 1940년 이 소설을 출간하고 1942년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삶을 지속할 수단과 목적과 의지가 있어도 처한 환경이 부적합하면 무용해진다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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