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퓨테이션: 명예 2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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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여성 국회의원인 엠마 웹스터는 <가디언> 지 표지 사진을 찍고 구설수에 오른다. 역사 교사 출신의 노동당 평의원, 십 대 딸을 둔 페미니스트 엄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엠마를 '창녀', '걸레'라고 부르며 조롱하고, 엠마의 지역구 유권자들은 엠마가 자기 홍보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난한다. 엠마의 전 남편마저 엠마에게 딸 플로라를 생각해서 눈에 띄는 행동을 자제하라고 충고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안 그래도 높은 수준이었던 엠마의 경계심은 점점 더 높아진다. 이 와중에 딸 플로라가 불법 촬영 가해자로 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엠마의 신경이 더욱더 곤두선다. 엠마와 친하게 지냈던 남성 기자는 엠마의 딸에 관한 일을 보도하겠다며 엠마를 협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엠마의 집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엠마가 범인으로 지목된다. 하룻밤 사이에 잘나가는 여성 국회의원에서 살인 사건 용의자로 전락한 엠마는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 것인가. 


영국의 소설가 세라 본의 신작 장편 소설 <레퓨테이션 : 명예> 1권을 출판사 서평단으로 참여해 읽고 나서 이후의 전개와 결말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자비로 <레퓨테이션 : 명예> 2권을 구입해 읽었는데, 와... 정말 재밌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얼른 읽고 싶다. 


1권만 읽었을 때 나는 이 소설의 핵심이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엠마가 법정 싸움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는지 또는 무죄 판결을 받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판결 이후의 이야기를 보면서 법정 싸움을 통해서도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실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준 사건들을 통해 사건은 물론이고 인물들에 대한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러니 1권을 읽었다면 반드시 2권까지 읽으시라... 


엠마 개인의 서사가 여성 정치인, 여성 공인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점도 좋았다. 소설에서 엠마를 비롯한 여성 정치인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은 물론이고, 나이가 어리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남성에게도 무시와 위협을 당한다. 엠마처럼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공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여성들조차 남성들에 의해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를 당한다면, 사회적으로 유명하지도 않고 공적으로 영향력이 높지도 않은 여성들은 어떻겠는가. 


엠마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며 '마녀사냥'을 당하는 동안 수많은 여성들이 엠마의 편을 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엠마의 전 남편의 현 아내, 보수당 소속 여성 정치인 등 재판 전에는 엠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여성들마저 엠마에게 공감과 연대감을 표하는 대목이 좋았다. 엠마의 딸 플로라는 불법 촬영 가해자라는 전과가 생긴 후 어떻게 사는지, 엠마와 플로라의 관계는 이후 어떻게 되었지도 궁금하다. 속편을 기대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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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즐거운 육아 일기 위픽
오한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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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인 '나'는 비트코인 폭락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자양동에서 고덕동으로 이사한다. 남편(이 아니라 비트코인)을 믿고 퇴사를 감행했던 아내 '진진'은 경주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에 경력직으로 취업해 두 사람은 갑자기 주말 부부가 된다. 졸지에 '나'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주동'을 독박 육아하는 신세가 되고, 아들이 유치원에 있는 동안 뭐라도 써서 돈을 벌라는 아내의 말에 '나'는 다양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괴담을 창작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연히 시작한 괴담 콘텐츠 창작 일이 의외로 잘 풀리면서, '나'는 본업인 소설가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생각 끝에 '나'는 의뢰받은 일은 무엇이든 다 해준다는 심부름꾼 소년 'sb'를 고용해 그에게 이런저런 일거리를 맡기게 된다. 처음에는 저자 사인본에 대신 사인 해주기 같은 단순 업무를 주로 맡겼는데, sb가 일을 워낙 잘해서 점차 다양한 일을 시키고, 급기야 '나'에게 있어 삶의 낙이라고 할 수 있는 일까지 sb가 대신하며 '나'는 존재의 위기를 맞는다. 


오한기의 소설 <나의 즐거운 육아 일기>는 허구이지만 실화처럼 읽히는 작품이다. 일단 소설의 주인공 '나' 또한 소설가이며, 소설에 나오는 '나'의 소설들(<인간만세>, <산책하기 좋은 날>)은 오한기 작가의 실제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오한기 작가 역시 육아와 소설 쓰기를 병행한다. 작가 후기에 올림픽 공원과 송파 둘레길을 자주 걷는다고 쓰여 있는 걸 보면 고덕동 주민인 것도 일치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실제로 심부름꾼 소년을 고용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한기 작가는 전부터 현실과 환상, 실제와 허구가 뒤섞인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후장 사실주의' 작가 그룹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노동 때문에 살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초상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는 점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에는 유쾌했으나 다 읽은 후에는 씁쓸했다. (웃다가 생각해 보니 웃을 일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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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대지만 은밀하게 위픽
박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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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차 컨벤션 기획자인 32세 여성 신도윤은 권 팀장의 지시로 J 공공 기관의 '청년 창업 박람회'를 담당하게 된다. 의욕이 넘치는 도윤은 권 팀장으로부터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야 하지만, 그중 행사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어야 해요." 황당하고 막막한 도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동료들은 '뜨아아(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프로젝트'라고 도윤을 놀린다.


<북적대지만 은밀하게>는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소설이다. 저자 박소연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여느 소설가들과 다르다. 박소연 작가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졸업 후 경제단체에 입사해 다수의 국제행사 및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했다. 또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과 협력해 산업정책을 발굴하고 반영했다. 베스트셀러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시리즈의 저자이며, 최근에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콘텐츠 '시간과 생각'의 대표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고 있다. 


소설보다는 경제경영, 자기계발 분야의 저자에게서 볼 법한 이력이지만, 이 책이 박소연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은 아니다. 박소연 작가는 2021년 첫 번째 소설집 <재능의 불시착>을 발표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재능의 불시착>은 <북적대지만 은밀하게>와 마찬가지로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소설들이 주로 담겨 있는데, 책 띠지 문구에 '직장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집'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 직장 생활에 대한 묘사가 '초 사실'적일 것 같다(읽어보고 싶다). 


<북적대지만 은밀하게>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후 도윤은 클라이언트 측 담당자인 2년차 대리 류서준과 만나서 자초지종을 전해 듣는다. '많은 사람이 오지만 이름은 아무도 모르는' 행사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 사항이 나온 이유를 납득한 후, 도윤은 서준과 함께 클라이언트 측과 행사 참가자 모두가 만족하는 행사를 만들기 위해 말 그대로 '눈물 나는' 노력을 한다. 비슷한 소재의 소설로 최유안 작가의 소설 <백 오피스>가 있으니 함께 읽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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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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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 설명다운 설명도 없이 떠나버린다면, 꿈이라고 믿기엔 너무나 생생한 추억을 남기고 간다면 어떨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주인공 '나'는 겨우 열일곱 살 때 이런 경험을 한다. 고등학생 에세이 대회에서 만나 나란히 3등과 4등을 수상한 '나'와 '너'는 급속히 친해져 편지를 주고받고 서로의 동네를 오가며 만나는 사이가 된다. 


둘 다 아직 너무 어렸기에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도 이것이 첫사랑이고, 나중에 또 다른 사랑을 하더라도 이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 거라는 예감은 들었다. 그 정도로 푹 빠져 있었던 "백 퍼센트"의 상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아무리 찾아봐도 사라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자신이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다. 손톱만큼의 가치도 없는 인간 같다. 


그 후로 '나'는 대학에 진학하고 회사를 다니며 겉보기엔 제법 괜찮은 삶을 산다. 매력적인 여자들과 연애도 해보지만 '너'만큼 사랑한 여자는 없다. 결국 "깊은 위화감"을 느끼고 회사를 그만두고 새 직장을 구한다. 지인의 소개로 내륙 지방에 있는 도서관의 관장 자리를 얻는다. 그런데 이 도서관이 '나'의 오래되고 은밀한 기억을 자꾸만 건드린다. '너'가 들려준, 한때 '나'가 '꿈 읽는 이'로 지내기도 했던 상상 속 도시의 도서관과 그곳이 너무나 비슷한 탓이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제까지 발표한 소설의 총합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과거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나 요소가 많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이 소설의 초안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79년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한 이듬해인 1980년에 쓰였다. 당시에는 내용 면에서 작가의 마음에 들지 않아 책으로 출간하지 않았는데, 팬데믹 동안 대대적인 수정과 보완을 거쳐 완성했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총정리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작가가 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 속 '나'의 생애는 첫사랑처럼 살면서 잊기 힘든 강렬한 경험(착상)을 한 사람이 오랜 기간 그 경험에 대해 반추하며 정리하고 완성해(초고와 퇴고) 세상에 발표하고 독자들과 감상을 공유하는 경험(출간)의 은유로도 읽힌다. 그렇다면 '나'와 '너'가 만든 도시로 홀린 듯 사라진 소년은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온 우리(독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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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12-1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곧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답니다
아니 그런데 키치님... 좀 전에 리뷰 쓰신거 본 거 같은데
뭐였죠...<파이브>였네요^^
여기 또 벽돌책 리뷰가...ㅎㅎ

키치 2023-12-19 09:26   좋아요 1 | URL
예전에 읽은 책 리뷰를 한 번에 올렸습니다.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
 
오직 딱 한 해만, 다정한 이기주의자 - 한 달에 한 번, 온전히 나를 아껴주는열두 달의 자기 돌봄
베레나 카를.안네 오토 지음, 강민경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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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안네 오토는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이다. 저자는 예전에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생각한다니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라는 느낌마저 들었고, 잠깐 유행하다 사라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다 번아웃을 겪은 한 친구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상황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한 것을 듣고 자기돌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친구인 베레나 카를과 실험을 했다. 두 사람은 1년간 한 달에 하나씩 총 열두 가지의 각기 다른 자기돌봄 방법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 심리학자인 안네가 코치 겸 가이드 역할을 맡고, 베레나가 피실험자 역할을 맡았다. 이들이 도전한 자기돌봄 방법은 명상, 뜨개질, 빵 굽기, 식사, 휴식, 꿈 일기 쓰기, 슬로 아트 감상, 마이크로 어드벤처, 시네마 테라피, 자연 체험, 관계 다이어트, 감사하기 등 다양하다. 

자기돌봄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는 책은 이전에도 많았다. 이 책의 다른 점은 방법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가 직접 체험해 보고 느낀 점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실험자와 피실험자가 서로 친구이다 보니 그 내용 또한 구체적이고 솔직하다. 가령 1월의 자기돌봄 방법인 명상을 하면서 베레나는 명상 앱을 켠 후 몇 분 만에 포기하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을 떠올리고 그들의 행복을 빌라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 달간의 실험이 끝난 후에도 명상을 하면서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을 떠올리고 그들의 행복을 비는 일은 여전히 고역으로 느껴졌다. 그 대신 다른 효과적인 명상법을 찾았다. '연민하는 친구' 명상법으로, 혼자라고 느끼거나 너무 지쳤거나 화가 났을 때 나를 위로해 주고 이해해 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상 속 친구를 한 명 만드는 것이다. 그저 그런 대상을 상상하고 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뿐인데 (당연히 대답도 없는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심이 되었다. 

4월의 자기돌봄 방법은 '마음을 다해 휴식하기'인데, 프리랜서인 베레나는 주말도 휴일도 없이 일하기 때문에 제대로 휴식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한 시간마다 5분씩 쉬기로 정했지만 지키기가 어려웠고, 주말에 쉬기로 했지만 막상 주말이 되니 주중에 할 일을 미리 해두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이런 식으로 전문가들이 흔히 하는 처방을 직접 실천해 보고 느낀 점을 알려주고, 개선책이나 보완책을 일러주니 실천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들었다.

책에 실린 12가지 자기돌봄 방법 중에 내가 도전해 보고 싶은 건 6월의 '나를 괴롭히는 감정과 거리 두기'이다. 짜증이나 걱정,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습관이다. 다이어트나 금연과 마찬가지로, 이런 감정들도 끊는 연습을 통해 멀리할 수 있다. 미술, 영화, 운동, 외국어, 야외 활동 등의 취미 또는 여가 생활을 자기돌봄으로 승화하는 방법도 자세히 나온다. 내년에 꼭 한 달에 하나씩 도전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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