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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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의 올가는 한때 작가를 꿈꿨지만 현재는 대학 교수인 남편 마리오와 남매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오가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으니 올가와 헤어지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마리오가 말한 '사랑하는 여자'란 몇 년 전 마리오와 일 때문에 가깝게 지냈던 여자, 가 아니라 그 여자의 딸이다. 올가는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줄 알았던 마리오가 자신과 아이들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한편, 이제 막 미성년자 신분에서 벗어난 여자(애)와 사귄다는 사실에 환멸을 느낀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집을 나가고, 올가에게는 엄마 말을 지겹게 안 듣는 아이 둘과 남편이 데려온 개 오토만이 남는다. 평생의 사랑인 줄 알았던 남자가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에게 떠난 것만 해도 슬프고 괴로운데, 그가 남긴 아이들과 개까지 돌봐야 한다니 미칠 노릇이다. 그 순간 올가는 고향에서 '불쌍한 여자'라고 불렸던 이웃 여자를 떠올린다.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그 여자도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빠져서 집을 떠난 후 미쳐버렸다. 올가 자신의 미래가 그 여자일 줄이야. 


소설 후반까지도 올가는 마리오의 배신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인다. 살림을 내팽개치고 아이들과 개를 돌보지 않으며 자기 몸조차 못 씻고 못 먹인다. 홧김에 그동안 한심하게 여겼던 이웃 남자에게 자기 몸을 허락하기도 하고, 외출을 했다가 가스 불을 끄고 나오지 않은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천천히 이성을 되찾으면서 마리오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과연 그는 내가 이렇게 울고불고 매달릴 정도로 괜찮은 남자일까. 


올가가 마리오의 배신을 알고 괴로워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머리로는 딸 뻘인 여자에게 빠져서 가족을 내팽개친 남편이 구제불능의 쓰레기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여전히 그를 원하는 올가를 이해하기 힘들면서도 이해가 되었다(아아 사랑이란...). 그랬던 올가가 점점 정신을 차리고 남편과 자기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지금의 남편의 커리어를 만들어준 것이 올가이고, 올가가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전업주부로 살게 한 것이 남편임을 깨닫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버려진 사랑>은 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다른 두 작품인 <성가신 사랑>과 <잃어버린 사랑>은 모녀 간의 이야기인 반면 <버려진 사랑>은 부부 간의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성가신 사랑>과 <잃어버린 사랑>을 다 읽고 나서는 기쁨이나 후련함 같은 감정을 못 느꼈는데 <버려진 사랑>을 다 읽고 나서는 기쁘고 후련했다. 옛 남자는 새 남자로 잊을 수 있어도, 엄마와 딸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일까. 그런 의미에서는 다른 두 작품보다 읽기 편한 내용이었다(TV 드라마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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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신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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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사는 40대 초반의 만화가 델리아는 나폴리에 사는 어머니가 해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시신을 확인하러 간 델리아는 어머니가 평소에 입던 낡고 평범한 디자인의 속옷이 아닌 처음 보는 세련된 디자인의 속옷 차림인 것에 의문을 품는다. 어머니는 대체 누구와 만나려고 이런 속옷을 입었을까. 장례식을 마치고 어머니가 혼자 살던 집으로 간 델리아는 어머니의 소지품을 뒤지고 어머니의 형제와 이웃을 만나며 자신이 알지 못한 어머니의 삶을 알아내기 위해 애쓴다. 


이 과정에서 델리아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 하나를 떠올린다. '카세르타'. 그 이름을 쓰던 남자는 한때 아버지의 동업자였고 어머니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델리아의 아버지는 카세르타가 어머니에게 선물을 보낼 때마다 어머니를 때렸고,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말하는 꼴도 못 볼 만큼 의처증이 심해졌다. 어린 델리아는 딸인 자신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어머니를 카세르타가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카세르타에게 갈까봐 불안했다. 


이후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는 혼자서 자식들을 부양했다. 델리아는 어머니가 자식들을 출가시킨 후 카세르타와 만났고, 어쩌면 카세르타가 어머니의 마지막을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카세르타를 찾아 다닌다. 델리아는 오래 전 아버지와 삼촌이 카세르타와 어머니의 관계를 추궁하다 카세르타를 심하게 때리고 고향에서 내쫓은 일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어머니를 죽인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어머니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끝내 죽게 한 것은 전혀 뜻밖의 인물임을 알게 된다. 


<성가신 사랑>은 '나폴리 4부작'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엘레나 페란테의 데뷔작이다. 이 소설은 <버려진 사랑>, <잃어버린 사랑>과 함께 '나쁜 사랑 3부작'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소설은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그린다. 델리아는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한다. 어머니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 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 때문에 뭇 남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아버지에게 의심을 사고 가정을 위태롭게 만드는 건 못마땅했다. 


델리아는 어머니를 의심하고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러한 원인을 제공하는 건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자신 또한 아버지의 시선을 답습해 어머니를 의심하고 증오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델리아는 자신이 어머니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했든 간에 어머니는 델리아를 지켜주었음을 알게 된다. 그때 델리아가 무슨 일을 겪었고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세상에 알려졌다면 델리아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적어도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을 만나고 고향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델리아가 아직 어렸고 델리아 또한 어떤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므로, 가해자를 찾아내 처벌받게 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의 잘못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델리아가 무슨 일을 겪었고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이후 어머니가 일절 말하지 않은 것은 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망친 딸에게 복수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엘레나 페란테가 주로 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 어머니라고 해서 자식을 무한히 사랑하는 건 아니라는 내용의 -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임을 감안한다면 그럴 듯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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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 철학자가 번역한 고대 희랍어 원전 완역본 인문학 클래식 6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김동훈 옮김 / 민음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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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민음사 인문학 클래식 버전으로 다시 읽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년)는 로마제국의 16대 황제(161~180년)이다. 그가 재위하던 시기의 로마제국은 전쟁에 전염병까지 덮쳐 대내외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고통과 질병, 상실과 분노가 일상이었고, 한 명의 인간이자 한 나라의 군주로서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살피고 돌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꾸준히 일기를 썼다. 그가 남긴 12권의 일기를 후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것이 <명상록>이다. 민음사 인문학 클래식은 이를 다시 '철학 훈련(관찰력)', '선택 훈련(결단력)', '관리 훈련(절제력)'으로 분류해 소개한다. 각 권의 마지막에는 서양 고전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김동훈 번역자가 직접 만든 질문들과 일종의 내용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명상 포인트가 실려 있어 이해를 돕는다. 


<명상록>은 짧은 길이의 잠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기보다는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읽기에 좋다. 제1권 '본보기'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직, 간접적으로 배우고 익힌 것들이 나온다. 할아버지에게는 "성내지 않는 좋은 습관"을, 아버지에게는 "염치와 사내다움"을, 어머니에게는 "경건하면서도 관용 있는 태도"와 "부자들이 벌이는 헛돈질을 멀리하는 소박한 삶"을 배웠다는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제2권 '철학훈련(관찰력)'에선 "내 몸을 노예처럼 대하지 말고 윗사람처럼 여기며 관리하십시오."라고 쓴 대목에 공감했다. "당신이 3000년을 산다 한들, 3만 년을 산다 한들, 다른 인생을 버려서 지금을 사는 것이 아니고, 지금을 버려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라는 대목에도 밑줄을 그었다. 내세나 이상이 아닌 현실을 중시하는 이러한 태도 때문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후기 스토아 학파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제3권 '선택훈련(결단력)'에선 "무엇이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항상 그것을 정의하고 표현하십시오. 그래서 그것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하십시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는 인생은 짧고,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헛된 일에 신경을 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선택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을 때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보류 조건'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최대한 찾아보라는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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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 잠 못 드는 사람들 / 올라브의 꿈 / 해질 무렵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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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인 아슬레와 알리다는 연인 사이다. 아슬레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될 예정이고, 알리다는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다가 덜컥 임신을 한다. 알리다의 엄마는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이 임신을 했다며 알리다를 집에서 내쫓는다. 때마침 아슬레의 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죽는 바람에 아슬레도 집을 잃는다. 당장 잘 곳도 없는 두 사람은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로 간다. 


다른 도시에 도착한 아슬레와 알리다는 며칠이라도 머물 수 있는 여관을 찾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두 사람을 묵게 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동안 언제 출산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부푼 알리다의 배를 보고 겁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아슬레가 두 사람이 잘 곳을 마련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알리다의 배가 신호를 보내서 아슬레는 산파를 구해온다. 얼마 후 알리다는 아들인 시그발을 낳는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3부작>은 2007년에 발표한 1부 <잠 못 드는 사람들>, 2012년에 발표한 2부 <올라브의 꿈>, 2014년에 발표한 3부 <해질 무렵>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1부와 2부 초반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작품이 먼저 읽은 <아침 그리고 저녁>처럼 노르웨이 해안 마을 출신의 가난한 젊은 부부가 주인공인 휴먼 드라마 풍의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2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의외로 범죄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 마지막에 시그발을 낳은 아슬레와 알리다는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기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고향 사람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함이었고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올라브로 이름을 바꾼 아슬레를 어떤 노인이 알아봤고, 노인 때문에 가족 모두의 삶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아슬레는 노인을 따돌리려고 애를 쓰지만 좀처럼 노인의 감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3부는 아슬레가 떠난 후 혼자 남은 알리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알리다는 아슬레 없이 혼자서 시그발을 부양하느라 고생하던 중에 자신을 알아본 고향 어른의 도움으로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알리다는 고향 어른 덕분에 시그발도 잘 키우고 새로운 딸을 얻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알리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슬레뿐이다. 문장에 마침표가 없어서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지만, 한 번 몰입하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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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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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어느 해안 마을. 어부인 올라이는 아내 마르타의 출산을 기다리는 중이다. 올라이는 이제 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기대감보다 자칫하면 마르타와 아이 모두 잘못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어쩐지 이 순간에는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기도를 시작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마르타와 아이가 무사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그리고 아들이 태어난다면 아버지의 이름을 따 요한네스라고 짓겠다고.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가 2000년에 발표한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이 아들의 탄생을 기다리는 올라이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두 번째 장은 올라이의 아들 요한네스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장에서 거의 내내 엄마 뱃속에 있었던 요한네스는 두 번째 장에서 이미 노인이 되어 있다. 아버지 올라이의 바람대로 어부로서 평생을 보냈고,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를 먼저 보내고 막내딸에게 의지해 살고 있다.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확인한 요한네스는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빵을 먹는다. 하지만 왠지 어제와 다르게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어도 위장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고 담배를 피우기 전이나 후나 몸과 머리가 개운하다. 밖으로 나가니 오랫동안 소식이 뜸했던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혼자 사는 아버지가 잘 있나 보러 온 막내딸과 마주치지만, 웬일인지 막내딸의 표정이 평소에 비해 어둡고 뭔가 걱정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 


이 소설은 분량도 길지 않고 복잡한 서사도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장의 요한네스가 어떤 상황에 놓인 건지 알고 나면 내용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진다. 올라이와 요한네스라는 아버지와 아들, 두 남자, 두 인간의 이야기가 영혼의 생성과 소멸을 기록한 거대하고 근원적인 신화가 된다.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 사이에 생략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독법이 될 듯하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의 전작 읽기를 이 책으로 시작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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