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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 Niche - 왜 사람들은 더 이상 주류를 좋아하지 않는가
제임스 하킨 지음, 고동홍 옮김 / 더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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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분크림을 다 써서 이 참에 좋은 걸 장만해 볼 생각에 며칠째 백화점, 할인마트, 로드샵, 인터넷 할 것 없이 알아보는 중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브랜드도 많고 제품도 다양한지. 가격, 기능, 피부타입, 용량, 디자인별로 많기도 많고, 한 브랜드 안에도 하위 브랜드가 몇 개나 있어서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예전 같으면 '수분크림은 0사', '아이크림은 00사' 이런 식으로 한 품목을 대표하는 강력한 1위 브랜드가 있어서 그걸 사면 그럭저럭 만족했을텐데, 이제는 하도 경쟁이 치열해서 우위를 점하는 브랜드가 따로 없는 것 같다.

 

<니치>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정확히 진단하고 반영한 책이다. 초기 경제학자 중 한 명인 영국의 세(say)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말했고, 실제로 오랫동안 공급이 수요를 형성하고, 수요는 공급을 따라가면 되었다. 전에는 매대 위에 진열된 제품이 곧 내게 필요한 물건이요,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고, 매출 1위 제품이 곧 제일 좋은 제품이자 나한테도 가장 잘 맞는 제품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매대 위에 진열된 제품 중에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제품을 스스로 찾아서 선택할 수 있고, 직접 제작할 수도 있다. 아무리 매출이 높고, 점유율이 높은 제품이라도 나한테 안 맞으면 그만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가령, 이 책에 등장하는 의류 브랜드 '갭(GAP)'의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내 기억에도 90년대까지는 소위 '대중' 브랜드라는 것이 존재했다. 초등학교 시절, 반 친구들 중 다수가 당시 대중 브랜드 G사, E사, U사 등에서 나온 어린이용 옷을 입고 다녀서, 한 반에 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몇 명씩은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요즘은 브랜드 수가 워낙 많고,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취향에 맞는 옷을 골라서 사입을 수 있기 때문에 여간해선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날 일이 없다. (중, 고등학생들이 N사 점퍼를 비정상적으로 많이 입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이례적인 현상이니 예외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재화가 아닌 무형의 산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산업의 경우, 과거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부터 '타이타닉'까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흥행돌풍을 일으키는 '블록버스터' 급의 영화가 존재했다. 이런 영화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으로 되어 있고, 폭력과 성적인 표현은 청소년 관람이 아슬아슬하게 허용되는 수준까지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유명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톱스타가 나오는 영화가 '예상대로' 잘 되었다는 보도보다는, 저예산의, 소재가 신선하고 탄탄한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영화가 '이례적인' 흥행 성적을 거뒀다는 보도를 접하는 일이 더 많다. 미국에서는 '쏘우' 시리즈가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는 '워낭소리', '써니' 같은 영화가 그랬다.

 

주류, 다수, 대중을 공략하면 망하고, 비주류, 소수, 마니아층을 공략하면 흥하는 시대. 이런 시대에서 승자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주류와 다른 '나만의 것을 가져라' 라는 조언을 던진다. (p.324) 단점을 보완하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당신의 제품이 정말로 '그만그만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할 수 있다. 당신이 보여주거나 말할 뭔가를 갖고 있으면, 그것을 신봉하는 진정한 청중을 찾고, 그것을 끌어들여서 그것에 영양분을 공급하라. 이 단계에서 품질은 양보다 더욱 중요하다. 당신의 틈새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권위를 쌓아야 할 것이다. (p.324)

 

미국의 케이블 방송국인 HBO. 지금은 소위 '드라마 왕국'으로 불릴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전에는 공중파 방송국에 밀려 영화나 드라마 재방송이나 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HBO가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는 공중파 방송국과는 다른 케이블 방송국만의 특징, 바로 표현의 규제가 심하지 않다는 점을 활용한 제작자 알브레히트 덕분이었다. HBO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섹스 앤더 시티', '소프라노스' 등 성적 표현과 폭력 수위가 높기는 하지만 소재가 신선하고 스토리가 탄탄한 드라마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유료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당겼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잘 하는 것, 그것이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보여준 셈이다.

 

이외에도 애플, 스타벅스, 몰스킨 등 니치를 활용한 사례가 책에 나오는데, 사례들이 책 주제에 맞게 하나하나 잘 분석되어 있고, 글이 마케팅, 경영서적이라기 보다는 사회학 연구 리포트처럼 생생하고 읽기 쉽게 쓰여있는 점도 좋았다. 이 책에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사례만 소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어떤 니치 사례가 있는지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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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문쾌답 - 답이 없는 시대 필요한 것들
오마에 겐이치 지음, 홍성민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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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오마에 겐이치'는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와 함께 '세계 3대 경영 구루'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라고 한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고 '아니, 일본인이 어떻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경영학의 역사는 다른 학문에 비해 짧은 편이고, 일본은 중국이 부상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 대국이 아니었던가. 그만큼 아무리 일본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경영학, 기업 분야에 있어서는 배울 것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아니, 지난 수십년간 일본을 모델로 성장해온 우리나라로서는 필히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면서 배워야 하는 나라가 아닐까.

 

다시 책 얘기로 돌아와서ㅡ, 오마에 겐이치는 현재 주식회사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의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인재 양성과 교육 사업에 힘쓰고 있는데, 2010년 3월 이 회사의 직원이 당시 일본 내에 불고 있던 트위터 붐을 따라 '오마에봇(@ohmaebot)'이라는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 (http://twitter.com/#!/ohmaebot) '봇(bot)'은 정치인, 경영인, 예술인 등 유명 인사의 발언이나 저작 속의 문구를 소개하는 트위터 계정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트위터를 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오마에봇'이라고 하면 오마에 겐이치의 발언이나 저작 속의 문구를 소개하는 계정이라는 뜻인데, 이를 통해 소개된 글이 화제가 되어 아예 묶어서 만든 책이 바로 이 책 <난문쾌답>인 것이다. 그야말로 아날로그 매체인 책과 디지털 매체인 SNS가 선순환된, 책의 미래를 보여주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

 

이 책(그리고 오마에봇 계정)에 소개된 글은 오마에 겐이치의 경영 철학 및 삶의 지혜, 인생에 대한 교훈에 대한 내용이 많다. 경제는 불황이고 정치는 소통이 안 되는, 그야말로 '답이 없는 시대'. 이런 시대를 헤쳐나갈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오마에 겐이치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답을 구하는 것(p.10)'만이 답이라고 한다. 부모, 스승, 상사의 말대로, 매뉴얼 대로, 원칙 대로만 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답을 구하는 것. 말은 쉽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참 어렵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 시대를 바꾼 사람들 중에 원칙대로 한 사람,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직접 움직이고 나만의 답을 구하지 않는 한 성공은, 변화는 없다.

 

요즘은 글도 모자라 사진, 그림까지 빽빽히 실린 책도 많은데, 이 책은 잠언집처럼 한 페이지에 제목과 문구, 출처만 달랑 있고 여백이 많아서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형식이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할 여유를 주는 것 같았다. 마치 여백에 까만 펜으로 답을 채우듯이, 짧은 문장이지만 그 문장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무궁무진했다. 경영 철학, 삶의 지혜뿐 아니라 정치,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발언도 실려 있는 점도 신선했다. 하긴, 세상 만사 관련되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 오마에 겐이치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경영에 접목시키고, 이렇게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오마에봇'을 처음으로 제대로 훑어봤다. 하루에 한 번, 부지런히도 업데이트 되고 있다. 성공이란, 인터넷이란, 영어란... 수많은 단어가 내 눈길을 끈다. 책은 다 읽었지만, 앞으로는 이 오마에봇을 통해 구루, 현자의 생각을 배우고 훔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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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가지 책 100% 활용법 - 나를 변화시키는 88가지 실천적 독서법
우쓰데 마사미 지음, 김욱 옮김 / 북포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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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법에 관한 책이나 서평집 같은, 이른바 '책에 대한 책', '책을 위한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읽고 싶은 책 읽을 시간도 빠듯한데 그런 책까지 읽을 시간은 없다는 핑계로. 그런데 이 책 <수만 가지 책 100%활용법>은 표지가 컬러풀하니 예쁘기도 하고,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아서 눈길이 갔다. 저자가 일본인인만큼, 일본인 특유의 실용적인 정보와 깔끔한 정리도 돋보이고. 

 

비즈니스 서적을 비롯한 많은 책들은 현실에서 활용되기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만 도움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p.28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자 中

 

웬만큼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번 이상 절대 안 읽는 편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분명히 읽은 책인데도 제목이나 저자의 이름, 책에 대한 인상 정도만 기억할뿐 남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조금 다른 의미로 책 한 권을 오랜 시간 들여 한 번 읽는 것보다 빨리 여러 번 읽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책 읽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대개 모르는 부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 쉽고, 결국 책으로부터, 독서로부터 멀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가볍게, 편하게, 쉽게. 어려운 책, 어려운 독서라도 심플하게 대하는 것이 제일인 것 같다. 

 

어떤 상대나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계속 피하기만 하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거부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일부러 싫어하는 사람이나 장소를 스쳐 지나가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쉽게 말해 익숙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책도 똑같습니다. 내용이 어렵거나 싫어도 꼭 읽어야 되는 책이 있다면 '바라보기'부터 시작합니다. 그저 바라보는 사이에 어느덧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p.70 읽기 힘든 책은 우선 바라볼 것 中

 

원래 나는 책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도 재미가 없고 이해하기 어려워도 끝까지 붙들고 보는 성격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재미없다 싶으면 금방 그만두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몰라도 일단은 바라보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의 심리상 글자가 있으면 읽게 되고, 읽으면 이해하려고 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싶기도 하지만, 꼭 읽어야 하는 교과서나 업무상 서류, 매뉴얼 같은 것이 있으면 이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책읽기 뿐만 아니라 평소에 책을 어떻게 정리하고, 책장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방법도 아주 짤막하게 나와있다.

먼저 책 정리부터. 저자는 '적독도 독서의 일부'라고 하여 책을 쌓는 데에도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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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을 책이 있으면 보통 위 그림의 방식대로 책상이나 서랍장 위에 대충 책을 쌓아놓곤 했는데, 이제부터는 저자의 조언대로 책등이나 책제목이 보이도록 쌓아놔야겠다. 이렇게 하면 책등, 책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의식에 자극을 주고, 생각의 흐름에 영향을 주어서 책읽기뿐 아니라 사고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p.99 '적독도 독서의 일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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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책장을 정리할 때에는 '책과 책 사이의 공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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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분야 또는 같은 저자인 책끼리 분류하여 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책장 맨 윗 칸에는 외국 원서를 정리하고, 내 시선이 가장 자주 머무는 그 밑의 칸에는 좋아하고 아끼는 책들을 정리하고, 그 아래는 그 밖의 책들을 장르별로 분류하여 정리해두었다.

 

저자는 수시로 책장을 보면서 책과 책 사이, 칸과 칸 사이에 어떤 책이 들어가면 좋을지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래서 나도 고민해 보았다. 이 사진은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책들이 꽂힌 칸 중 하나를 찍은 것인데, 아직 구입하지 못한 시오노 나나미, 움베르토 에코, 조셉 캠벨의 책을 모으고, 비슷한 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틈틈이 정보를 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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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는 '다운로드식 독서'가 아닌, 상대(아마도 저자)가 읽어주길 바라는 대로 읽는 독서, 저자의 세계로 몰입하는 독서, 저자에게도 초점을 맞춰 읽는 독서 등 '나를 바꾸는 독서'를 하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이제까지 독서는 순전히 홀로, 스스로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말을 듣고보니 독서는 책을 매개로 저자라는 타인과 만나는, 지극히 상호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바꾸는 독서라... 어쩐지 올해 나의 책 읽기의 화두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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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배반 -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존 캐서디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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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과에 들어가면 제일 처음 수강하게 되는 과목이 '경제학 원론'이다. 그리고 경제학 원론 맨 첫 시간에 배우는 개념이 바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워낙 유명한 개념이라서 경제학 전공이 아니더라도 일반인을 위해 쓴 교양 경제학 서적을 읽은 적이 있다면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교 때 모 교수님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도 너무 길다고 학기 내내 '비시수(非示手)'라고 줄여서 부르셨던 기억도 난다. 그 강의 성적은 어땠더라...) 

 

하지만 이 유명한 개념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현재의 국내경제, 세계경제의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80년대 신보수주의와 탈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시장 중심의 경제체제가 공산주의 경제체제보다 낫다는 것이 자명해졌지만, 시장 중심의 경제체제가 안고 있는 내부적 결함 - 외부효과, 정보의 비대칭,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상충관계 등 - 이 시장 중심 경제체제 자체에 대해 의혹을 품게 만드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도대체 왜, 경제학의 'ㄱ'자도 모르는 경제학과 신입생도 아는 이개념이, 수많은 경제학 석학과 유수의 명문대 경제학과 졸업장을 거머쥔 엘리트들이 만든 현실 경제학의 세계에서는 제대로 구실을 못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시장의 배반> 표지에 적힌 문구 한 줄이 오랫동안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한 달 전에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었는데, 그 책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시장 기능을 신뢰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조차도 100퍼센트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정부 개입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미국, 영국 등 자유주의, 시장주의의 선봉에 있는 국가들조차도 사실상 정부의 개입을 시장으로부터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국가의 경제정책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계획경제'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특히 미국을 보면 전에는 일본, 이제는 중국에 밀려 죽어있는 산업을 다시 부흥시키고 살인적인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정부가 백방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외국인인 내 눈에도 여실히 비친다. 반세기 넘도록 세계 만방에 자유시장주의를 수출하기 위해 애써온 국가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계와 정계의 주류는 시장에 더욱 자율성을 주고, 정부는 개입을 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시장의 배반>의 저자 존 캐서디는 이러한 모순에 착안하여 애덤 스미스부터 최근 2008년 금융 위기까지, 몇 백년에 걸쳐 경제학자들이 논쟁해온 경제이론을 경제사적으로 분석하고, 이 이론들을 유토피아 경제학, 현실 경제학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미국발 금융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책은 수없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처럼 경제사와 현실 경제를 접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은 드물다. 경제사에 대한 책은 자칫 지루하고 어렵게만 느껴지기 쉬운데, 이 책은 경제 이론이 현실 경제와 어떤 식으로 연관이 되는지를 연결해서 서술했기 때문에 신선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다 할 결론이 없이 마무리된 점은 아쉬웠다. 시장이 너무 방만해지면 적절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은 시장주의자들도 동의하는 사항이다. 정부 개입이 지나친 것 또한 문제라는 주장은 시장주의자들이 수없이 반복한 주장이다. 결국 이 이상의 해결책은 결국 없는 것일까? 경제학은 시장과 국가, 자유방임주의와 계획경제의 줄다리기에 불과한 것일까?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당장 현실 경제는 물론, 앞으로 경제학 전체의 미래도 불투명한 것이나 다름 없다. 시장이 문제면 정부가, 정부가 문제면 시장이 나서는 미봉책뿐인 경제학. 이것이야말로 경제와 경제학의 진짜 '보이지 않는' 위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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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몰락]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아파트의 몰락 - 내 집 마련이 절실한 3040세대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
남우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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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재테크 수단으로서 아파트의 매력은 무엇일까?

 

먼저 수익률이 높다. 단기 수익률로 보면 단연 주식이 더 낫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리스크까지 고려하면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만한 투자 대상은 없다. 저축보다 나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투자의 진입장벽(?)이 낮다. 주식은 웬만큼 전문 지식을 쌓고 많은 시간을 들이는 사람도 높은 수익률을 거두기 어려운 분야다. 반면 부동산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나 동네 부동산 등에서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용어나 절차 등이 많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초보자가 접근하기 쉽다. 그리고 공공연한 비밀 ㅡ 한국사회의 시스템(?)상 정치, 경제적 유력 인사들이 대거 거주하는 지역의 집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기대도 부동산 불패 신화에 한 몫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재테크 수단으로서 아파트의 매력은 앞으로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하루를 멀다하고 집값 하락 뉴스가 언론을 도배하고 있지만, 거품이 슬슬 빠지는 것인지 일시적인 현상일지는 두고봐야 안다. 아파트는 몰라도, 범위를 넓혀서 부동산 전체로 보면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는 더욱 낙관적이다. 요즘 트렌드만 봐도 그렇다. 이제까지 아파트 투자에 골몰했던 투자자들은 현재 소형 아파트, 오피스텔, 고시촌 등 임대 사업으로 이동 중이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을 고려할 때 이런 추세는 금방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이사만 몇 번 해보면, 나처럼 부동산 투자 경험도 없고 지식도 일절 없는 사람도 이만한 '썰'을 풀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아파트의 몰락> 이런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사실 처음 읽을 때는 이런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당연한 얘기들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이 있을 것이며, 행여 아파트값 거품이 꺼지면 이들이,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가 겪을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우리나라 인구는 2011년~2018년 35만여 명이 늘어나 정점을 이루고, 앞으로 계속해서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향후 20년간의 인구 추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늘어나는 인구도 35만 명(1퍼센트)이고 2030년까지 감소되는 인구도 35만 명(1퍼센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향후 20년간 인구는 정체 상태일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주택 시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세대인 35세~54세 인구는 2011년부터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pp.156-7)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사람은 부동산, 아파트 투자에 빠삭한 투자자들이 아니다. 어디서 들은 소문, 주변 사람이나 중개인의 권유, 또는 부동산 불패 신화만 믿고 거액의 부채를 져가며 실수요와도 맞지 않는 고가의 대형 아파트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저자는 경제 원리, 인구학, 정부 정책, 일본 사례 등 다양한 근거를 들며 부동산 불패 신화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저자뿐만 아니라 현재 부동산 전문가 다수가 무분별한 투자를 멈추고 자신의 재정 상태에 맞는 실용적인 투자를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가끔 부모님과 케이블 부동산 채널을 시청하는데, 투자 상담 사례를 보다보면 거액의 부채를 지면서까지 몇 개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뢰인들이 꽤 많다. 그 때마다 전문가들은 한 채만 남기고 하루라도 빨리 다른 부동산은 처분하라고 조언한다. 필요한 것, 제 형편에 맞는 것만 산다. 이 간단하고 기초적인 구매 원칙은 부동산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부동산은 주식처럼 하루 아침에 종잇조각이 될 걱정이 없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만약 부모님이 부동산에 전재산의 대부분을 투자하고 있는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거기에 거액의 부채까지 있다면 자식들이 떠안게 될 부담이 얼마나 크겠는가. 부동산도 자산이고, 투자 대상이다. 리스크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GDP에서 건설투자 부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2009년 16.4퍼센트 정도로 우리나라 경제에서 건설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래서 "경기가 침체되면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것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정석 해법이다. 국내 노동인구 가운데 실제로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1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창호나 커튼, 가구, 인테리어 등 건설과 연관된 직업을 가진 사람 수를 모두 따져보면 노동인구 중에서 4분의 1이나 된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 주택건설을 중단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 가운데 4분의 1을 실업자로 만드는 것과 같은 얘기가 된다. (p.173)

 

투자 대상으로서 아파트의 가치가 폭락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얘기다. 아파트의 가치가 폭락하면 이제까지처럼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기를 쓰고 달려드는 풍조도 사라질 것이다. 일본이 그렇고, 현재 주택청약 관련 상품의 인기가 뚝 떨어진 것만 봐도 예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개인 소비와 투자 방법도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다. 아파트를 굳이 자가 보유하지 않고 전월세로 사는 트렌드가 일반화되면(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이 그렇다) 수입 중 대부분이 집세로 빠질 것이다. 이는 지금 대출금 등이 빠지는 금액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문제는 투자 방법인데, 앞으로는 아파트가 아닌 어떤 대상에 투자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까지 제시해주었다면 이 책이 더욱 빛났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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