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날이다.

 

날이 추워지면 어려운 사람들에겐 더 힘든 나날이 된다.

 

따뜻한 일들이 일어나 사람들 마음과 몸이 훈훈해졌으면 좋겠다.

 

시집을 이리저리 넘기다 아, 이 시구나, 예전에 보았던 시인데...지금 이 시대 아버지들이, 청년들이, 아니 우리들 보통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 아니던가.

 

시에 너무도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는 이 현실을... 시를 읽으며 공감하고.

 

  아버지 경제

 

한 방안이

점점 좁아지는구나

내가 밀려서 잠을 깨다 보면

요놈들은

키도 크고

넓어졌구나.

 

쌀도 한 말이면

일주일을 먹는데

요사이는 며칠 못 먹으니

아버지 경제는

찬바람이 불구나.

 

엄마는

추운데 밖을 나가고

아버지는 눈을 감고

몸부림치는구나.

 

봄이 오기 전에

모든 물가는 뛰고

아버지 경제는

더 더욱 적자운영으로

가득 채운 먹구름

주름살이

늘어만 난다.

 

이 시대는

식구들의

한 달 먹을 것이

벌써 걱정이니,

 

아버지의 경제는

어쩌자는 건가.

 

박봉우, 황지의 풀잎, 창작과비평사, 1979 3판. 14-15쪽.

 

춥다.

 

그렇다고 늘 움츠리고만 있을 수도 없는데. 그래,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 우리들에게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 시. 다시 한 번 읽는다. 아버지의 경제를 어쩌자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리들이 모두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는 사회가 되게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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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운동의 세계적 현황과 전망 기본소득 총서 3
강남훈.권정임 외 지음 / 박종철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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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본소득 논의가 우리나라에서는 잠잠해졌다. 실제로 잠잠해진 것인지, 아니면 언론에서 무시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데, 복지정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언론을 통해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없으니...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지고,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느니 마느니 각 지방의회에서 말들이 많은데, 무상이 아니라 '의무'라는 말로 바꾸자고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무상 중의 무상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국민에게 어떤 조건도 걸지 않고 균등하게 일정 소득을 보장해 주는 제도가 기본소득이니,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문제에도 두 팔 걷고 덤비는 사람들에겐 기본소득이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때문인지 언론들은 기본소득은 다루지지도 않는다. 현실의 문제만을 조금씩 다루고 있을 뿐인데, 복지정책에 관해서 앞서 가는 의제를 만들어내는 언론을 보기 힘든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충분히 논의가 되어야 하지만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러한 기본소득에 대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논의되거나 실험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하여, 복지국가라고 하는 핀란드, 독일, 그리고 지금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스페인-카탈루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뉴질랜드, 아일랜드를 거쳐 아프리카에 있는 한 도시에서 기본소득을 직접 시행한 나미비아, 그리고 헌법에 기본소득 조항을 명시한 브라질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논의가 한창이고, 기본소득 이론을 구체화시켜가고 있다. 이것은 기본소득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얘기라고 받아들여도 된다.

 

함께 삶에 대해서 고민한다면 '기본소득'에 대해서 간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마음 속에 개운치 않은 점이 남아 있다. 왜 이렇게 오래 전부터 기본소득에 대해서 논의를 했고, 어떤 도시에서는 시행도 했고, 헌법에 기본소득을 명시하기도 했는데 왜 아직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는가?

 

기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그렇게 좋다고 하는, 또 단순하고 명쾌한 이 기본소득 정책이 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경제가 호황을 이루었을 때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쏙 들어갔다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본소득 논의가 재점화되는 모습이 이 책에 나타난 세계 여러나라의 모습이었는데, 그럼에도 논의는 활발했으나 실행을 되지 못하는 현실을 이 책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대해서 알리고, 실현가능성을 주장하는 책이지만 이상하게 읽으면서 기본소득이 실현되기가 참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유토피아'라고 모두가 힘들어질 때 그 때 함께 살아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

 

그렇다면 지나친 경제적 풍요는 기본소득 논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함께 어려워지자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출발점이 바로 여기다. 기본소득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노동을 신성시하는, 노동을 꼭 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사람 존재 자체가 바로 '일'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함께 삶 자체가 바로 일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존재 자체에 대해서 인정을 받고 존중을 받을 필요가 있으니, 그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이 되면 기본소득은 충분히 시행이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전제된다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들에서도 자주 나오는데 재원을 마련하는 문제는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의 세금에서 많이 올리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는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세금이 투명하지 않은, 고액 탈루자가 너무도 많은, 종교인들에게 과세를 하지 않는, 상위 소득자의 세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소득의 재원은 사실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그리 걱정할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본소득을 추진할 정당이 있어야 하고, 그 정당이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또 정당으로 하여금 기본소득을 추진하게 강제할 시민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무언가 찜찜한 마음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좋은 기본소득이 논의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기본소득은 분명 가능하다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책이다.

 

이제는 무상급식이나 뭐니 이런 논의를 떠나 좀더 발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우리나라도 이 책의 사례들처럼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으니, 서로 함께 살 수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의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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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어버리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마음은 답답하고, 무언가가 가슴에 콱 들어박힌 것 같은데...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거야?

 

이제는 좋아져야 하는 것 아냐?

 

그게 발전이고 진보 아냐?

 

민주화 되었다고, 절차적 민주주의는 나름대로 정착되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민주주의지.

 

힘없는 사람이 힘든 세상이 민주주의 사회인가? 그것은 아닌데... 많은 일들이 터지고 있는데,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 그런 것들, 정말 쓸어버리고 싶다.

 

모두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오래 된 시집을 뒤적이다가 "쓰르라미"라는 시를 발견했다. 이 쓰르라미에 발음이 비슷한 말들을 엮어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시.

 

강창민의 "물음표를 위하여"라는 시집에 실려 있는 시다.

 

 

쓰르라미

 

 

비가 내려도 울어쌌고

작년 늦봄부터

뭐가 그리도 싫은지, 싫어라미

왼종일 싫다고 울어댔제.

매운 6월

성난 광장마다 사람들이 모여

외침 낭자히 피 흘릴 제

무얼 쓸어라는지, 쓸어라미

아침부터 쓸라고만 소리쳤제.

올 여름 쓰르라미는

나무 꼭대기에 올라 앉아

무얼 새로 하라는지

칠 년 동안의 쌓인 울음을

뉘 들어라 울어쌌는지, 새로라미

누가 그 소리 귀에 담고 있노?

 

 

 

강창민, 물음표를 위하여, 문학과지성사, 1991년 2쇄. 53쪽.

 

 

절말 이렇게 외쳐댔던 그 많은 외침들이, 그 많은 소리들이 마음 속에 하나도 담기지 않고 다 날려가 버렸는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와닿아 사라지지 않는다.

 

민주화 시대라는데, 왜 살기는 더 팍팍해지고 있는지...  이런 때 시인은 이렇게 자괴감을 표출한다. 물론 이 시는 80년대의 시라는 점을 명심할 것. 다만 시는 한 시대에서 머물지 않고, 시대를 넘어 계속 살아남는다는 것.

 

이 땅의 수많은 박사들, 이 시 한 번 읽어보면 어떨지... 하나라도 제대로 잘 박았으면, 그랬으면, 이렇게 많은 말들이 쌓이지 않고 사라지지는 않을텐데... 

 

 

                       박사 이후

 

                                  1

                        학위 축하해요, 강선생.

건배합시다, 쭈욱.

                        어이, 아가씨 박사가 뭔지 아나?

                        박는 데 도사라는 게야.

 

                                  2

                       그게 아니다.

                       한 가지만 빼고는 잘 박지도 못한다.

                       그 한 가지도 결국 빼고

                       언제나 뺀다.

                       자유를 위해, 민주화를 위해

                       몸 박지 못하고

                       늘 뺀 채로

                       얼도 뺀 채로

                       이 가을을 맞는다.

 

 강창민, 물음표를 위하여, 문학과지성사, 1991년 2쇄.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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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에서 만난 단원 - 김홍도의 제자가 되어 그림 여행을 떠나다
한해영 지음 / 시공아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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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신윤복을 여성으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바람의 화원"이라는 작품이 큰 역할을 했는데... 그 작품에서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또 영화로도 만들어져 신윤복이 진짜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미술 전문가들에 의하면 신윤복은 남자임이 틀림없다고 하니, "바람의 화원"은 팩션이라고 하기에는 처음 시작에 문제가 있다 하겠다.

 

그러나 분명 팩션임에는 틀림없다. 신윤복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이 없으니, 그에 대하여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실과 상상을 조합한 작품으로 인기를 누렸으니... 그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주로 그의 작품이 중심이 되는 팩션인데...

 

어쩌면 "저잣거리에서 만난 단원"이라는 이 책이 먼저 나오고, 신윤복에 관한 책이 나중에 나왔으면 좀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으나 순서가 무슨 상관이랴?

 

오히려 자료가 많은 김홍도에 대해서 쓴 팩션이 나중에 나오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사실이 잘 알려진 사람에 대해서 소설로 만들어내기는 참 힘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상이 들어갈 틈이 별로 없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 책은 팩션이다. 소설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단순히 역사소설로 보기보다는 김홍도와 그의 그림에 대해서 더 잘 알게 해주려는 목적으로 쓴 팩션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그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 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외국 사람들이 쓴 그림 속의 인물이 말한다든지, 또 화가가 말하는 식으로 쓴 책을 읽었는데...

 

이 작품은 미술관에 간 한 학생이 상상 곳으로 들어가 단원을 만나고, 그와 3년을 함께 하면서 단원의 그림이 창작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알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술관에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던 여학생이 단원의 그림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순간 이동을 해서 과거로 들어가 단원과 함께 하다 돌아온다는 발상.

 

단순한 발상이지만, 단원의 그림들을 전문가스럽게 설명하려 하지 않고,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미술책보다도 더 단원의 그림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본다.

 

또 저잣거리(요즘으로 말하면 시장통이라고 해야 할텐데...)에서 만난 단원이라는 제목 때문에 단원의 풍속화만 다루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그 점을 넘어서 단원의 작품들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따라서 단원의 풍속화가 모두 나오지는 않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풍속화에다가 그의 진경산수화(특히 금강산 그림)가 나오고, 또 문인화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도 나와서 책을 읽어가면서 그의 작품 세계를 모두 감상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단원의 그림들을 죽 나열해 놓고, 그 그림들과 연관되게 이야기를 만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과감한 생략들이 이루어져서 오히려 읽는 사람에게 박진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말년에 단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언제 어디에서 세상을 떴는지가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를 그의 그림 '염불서승도'를 배치해서 그가 선인(仙人)으로 돌아갔다고 정리하고 있는 점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과 단원의 일생을 연결짓고, 그것을 하나의 줄거리로 꿰어 서사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사실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으려 했으며, 그림에 대해서도 알게 해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다가 어쩌면 단원이 살았던 시대, 한창 개혁이 이루어지려다 꺾여버린 그 시대가 지금 시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다면 단원과 같이 좌절하는, 단원은 재능을 꽃 피웠지만, 단원과 달리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예술가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

 

그러면서도, 예술은 시대가 아무리 험난해도 제 길을 가는 것, 연꽃과도 같은 존재가 예술이니, 우리를 위로해주고, 우리를 안내해주는 역할을 예술이 할 수 있기를...

 

이 책에서는 그것을 인간의 진화라고 했는데... 예술이 그 역할을 계속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단원 김홍도. 그가 남긴 예술을 현재의 여학생이 과거로 들어가 단원과 함께 하면서 그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준다는 발상, 그러한 팩션... 재미와 지식을 함께 살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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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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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한다.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려서,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말을.

 

스투디움이 일반적인 해석이라면, 푼크툼은 개별적인 이해하고 한다. (19쪽)

 

둘은 상반될 수도 있지만, 상보적이어야 한다. 일반적 해석을 무시한 개별적 해석은 독단에 불과하고, 개별적 해석을 하지 못하고 일반적 해석만을 따르는 일은 모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스투디움과 푼크툼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진중권의 책들이 그렇듯이 읽기에 편하고, 명쾌하다.

 

그를 우리 시대의 입담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입담이 글로도 잘 나타나고 있으니, 그는 글과 말을 다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목적이 작품을 읽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을 읽도록 자극하기 위해서라고.

 

대중을 예술적 문맹으로 가눚하고 그들에게 작품을 읽어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독자로 하여금 작품을 스스로 읽도록 자극하는 것이리라.

작품을 스스로 읽는다는 것은, 작품을 보며 스스로 물은을 제기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은 제작된 순간에 완성되는 죽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끝없는 물음과 답변의 놀이를 통해 영원히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생물'이다. (18쪽)

 

그렇다면 이 책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그림들을 '생물'로서 느끼도록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림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도 읽으면서 그림에 대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며, 그림에 대한 해석이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음을 조르조네의 '폭풍우'라는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해석이 무려 스물여덟 가지나 된다고 하니 말이다. 어떻게 해석되는지는 이 책의 '해석이 바벨탑'이라는 부분을 읽으면 될 것이고.

 

이렇듯 일반적인 해석과 개별적인 해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또 그림에 대해서 이거다라고 단정짓지 않고, 그림을 다양한 방식으로 볼 수 있게 안내해주고 있다.

 

제목이 된 '교수대 위의 까치'라는 그림에 대해서도 이런 면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그림에 대한 읽기 방식을 배울 수도 있고, 또 당시 시대상에 대해서도, 작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스투디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푼크툼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 그런 나만의 그림 읽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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