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첨되셨습니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0
길상효 외 지음 / 비룡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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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라고 한다. 짧은 소설이 열 편 실려 있다. 우리가 삶에서 한번쯤 생각해 봤던 일들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작가가 다른 만큼 소설 속 세계도 다르다. 그런데 SF소설이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쿤'이라는 소설이 그렇다. 청소년기, 훌쩍 변해버린 모습. 낯선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런 변화만큼이나 변하지 않은 면이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코쿤이라는 다른 장소에 갔다 오면 변해 있는데, 그만큼 청소년기의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갑자기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갑자기 변한 자신의 모습, 친구들과의 낯선 관계. 그러나 아무리 변해도 지니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들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변하고 싶은 마음과 변하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교차하는 시기.


다른 소설들 역시 상상 속 현실이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중에서 '소생과 탄생 사이'는 인간의 불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려 한다. 그런데 어떻게?


과학(의학)기술로 인해서 많은 발전이 있지만, 이 소설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줄기세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와 비슷한 존재로 인해서 손상된 신체를 회복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 인간은 소생한 것일까? 탄생한 것일까?


소생이라면 죽음에서 살아났다고 할 수 있지만, 탄생이라고 하면 죽음과 연결되지 않는, 그 전의 존재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는 뜻인데...


어쩌면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 중에 뜻하지 않은 일을 겪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과연 인간에게 불멸이란 무엇일까도 생각하게 하고.


이와 비슷한 소설이 '당첨되셨습니다'다. 인간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다시 살려내는 기술이 있다. 그리고 살려내서 다시 살게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이렇게 인간을 다른 존재로 만드는 기술이 있다면 과연 그 사회는 행복한 사회일까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누나의 에펠탑'이 그렇다. 신체를 조작할 수 있다면, 신체만이 아니라 의식도 조작할 수 있다면,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원하는 존재가 당사자가 아니라 권력을 지닌 존재라면? 미성년자라고, 판단능력이 없다고 부모가 대신 판단하고 신체나 지적 능력을 다시 부모들 맘대로 돌려놓는다면,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면?


'소생과 탄생 사이, 누나의 에펠탑, 당첨되셨습니다'는 이렇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사회로 보낸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게 한다.


먼 미래의 일이라고 하겠지만,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복제부터 시작해서 인공지능까지 인간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이런 소설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한다. 미리 소설을 통해서 경험을 하고, 미래에 어떤 사회에서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할 수 있다. 소설은, 특히 SF소설은 이렇게 우리에게 미래를 먼저 경험하게 한다.


이 경험을 다른 사람과의 토론을 통해서 현실을 인식하고 삶의 방향을 정하는 쪽으로 만들어가면 된다. 그렇게 SF소설은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집도 그렇다. 다양한 상황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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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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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제목만으로는 어린이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어린이와 함께 지내면서 겪은 이야기를 쓴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와 멀어진 어른들에게는 그다지 읽을 필요를 느끼게 하지 못하는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 책을 펼치자마자 사라진다. 이 책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거치지 않은 어른이 없고, 어린이와 완전히 접촉을 끊은 어른도 역시 거의 없고, 어린이와 어른은 다른 존재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둘 중 어느 한 존재가 사라져서도 안 되고, 사라질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 두 존재는 동등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한쪽은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존재고, 한쪽은 보호와 지로를 해야 할 존재라고... 


물론 이 말이 그릇되지는 않았다. 아직 자신의 힘으로 자립할 수 없는 존재, 자립하기 위해서 배워가는 존재가 어린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평생교육을 이야기하는 지금 세상에서 배워야 하는 존재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보호와 지도만이 필요한 존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존재라고 해도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어린이는 그 자체로 오롯한, 완전한 존재다. 그렇게 어린이를 대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어른도 어른이 된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이 책에는 그런 어린이의 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어린이의 세계, 그리고 어른의 세계, 함께 살아가는 세계. 가끔 어른들은 어린이는 지도가 필요하다고, 가정교육의 중요성,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마치 자신들은 어린이들의 교육과 관련이 없다는 듯이. 하지만 아니다. 아이 한 명이 자리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들 교육은 사회 몫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 즉 교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된다. 가정과 학교는 교육의 출발점일 뿐 결국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한다. 그러기 싫어도 사회의 몫으로 돌아오고 만다.(254쪽)


한때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노 키즈 존'(왜 영어로 말하는지, 그냥 아이들출입금지구역이라고 해도 될 것을)이라는 말... 여기에는 부모들이 교육을 잘못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지 않을까. 부모가 아닌 자신들은 상관이 없다는 인식. 하지만 아니다.


'노 키즈 존'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활동하면서 배워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의 몫이고,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잘못되었다, 실패했다고 말하기 전에. 저자의 이 말이 가슴에 새겨진다.


나는 교육의 실패를 선언하고 싶다면 세상의 실패를 선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 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짐을 결국 어린이가 떠안을 것이다.(255쪽)


실패했다고 포기해버리면 그 짐을 다른 세대에게 넘겨버리는 꼴이라는 이 말. 그렇다. 문제는 지금 발생했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도 지금 사람들이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그러니 희망,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안고 가는 희망을 지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반대말을 찾지 않는다.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 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219쪽)


해야할 일, 옳은 일. 어린이라는 세계는 미래를 준비하는 단계만이 아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다. 온전한 세계다. 그 세계를 인정하고, 그런 세계가 다양하게 마련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라고 모두 동일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어른 역시 어른이라는 개념으로 뭉뚱그려지지 않듯이,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온전한, 오롯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생각한다. 어린이라는 나 자신도 거쳐온 세계를 통해 다시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지 어린이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아니다.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겪은 일들을 통해서 저자는 어린이라는 세계는 불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오롯한 세계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오롯한 세계를 우리에게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해서 지도와 보호만이 필요한 어린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어린이라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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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보이는 것이 어쩌면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들뿐이라는 사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과연 나에게 보이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일까? 내게 보이지 않는 면이 분명 있을텐데, 나는 그 보이지 않는 면을 보려고 노력했던가?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가짜뉴스는 사라진다. 빅이슈에서 가짜뉴스를 다뤘는데, 가짜뉴스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진실은 그만큼 단순하다. 너무 어렵게 진실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그 단순함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데는 꽤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에겐 가혹하게, 타인에겐 관대하게, 그리고 잘못한 것이 생긴다면 인정하고 사과할 것'(17쪽. 오후, '가짜뉴스 속에서 일단 대충 살아남기' 중에서)


참 단순하다. 그런데 참 어렵다. 자신에게 가혹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옛 성현의 말도 실천하기 힘든데, 이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나를 가혹하게 대하는 일... 남을 관대하게 대하는 일.


이런 자세만 지니고 있어도 지금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망사고는 막을 수 있다. 살기 위해서 노동을 하는데, 그 노동으로 인해서 죽음에 이르는 일이 빈번하다니...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어떤 환경인지 꼼꼼하게 챙기는 사업주, 관리자들이 얼마나 될까? 이윤보다도 노동자의 안전을 생각하는 경영자들이 얼마나 될까? 그들이 내는 이윤이 어디서 오는지, 노동이 없으면 이윤도 없음을 잘 알고 있을텐데...


그들은 자신들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가혹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권의 태도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가 떨어지거나 끼이거나 절단되거나 또는 서서히 몸 속에 스며드는 독으로 인해 죽는 경우가 많은데, 사과, 진정성 있는 사과가 이루어진 적이 있던가. 그때그때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형식적인 사과만 있지 않았나.


그러니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긴 자신이 한 말을 기억도 하지 못해 사과조차도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게 된다. 그 이면에 가려져 있는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빅이슈 이번호에는 그런 보이지 않던 면들이 실려 있다. 그런 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동물영화제 소개를 통해서 동물들의 삶을 생각하게 하고, 영화를 통해서 특성화고를 나오고 취업을 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어떤 유의 비극은 단 하나의 명징한 이유로 발생하지 않는다. 겹겹의, 연쇄의 원인 그 속에서 침묵한 입과 방관한 눈 속에서 오랜 시간 꾸준히 퇴적돼온 결과다. 열하홉 살 외주업체 노동자의 죽음, 현장실습 고교생의 죽음,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뉴스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30쪽. 정지혜, '우연을 기다리는 유연함으로' 중에서)


영화 <다음 소희>에 대한 글에서 나오는 말이다. 소희란 주인공이 겪는 일들을 그린 영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한다. 


이 글에서처럼 사고는 정말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때마다 사과, 사과... 그러나 그 사과가 잘못을 바로잡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는지... 오히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가혹한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한다.


계속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으로... 그래서 정문정이 이번 호에 쓴 '내가 아는 세상이 평균이 아니니까'라는 글에서 한 말을 곱씹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것이 상대에게도 통할까? 아닐 수 있음을...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면 가짜뉴스부터 시작해서 타인에게 가혹한 그런 환경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은 복잡한 일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간단하고 단순한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시 명심하자. 나에게는 가혹하게, 타인에게는 관대하게, 그리고 잘못은 진심을 다해서 사과하기.


빅이슈 이번 호, 내 태도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내게 보여준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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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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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 "이런 사람 꼭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시작하자마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브릿마리는 남을 평가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11쪽) 이 말이 얼마나 많이 반복되는지.


이 말은 곧 그런 사람이라는 말로 들린다. 우리 주변에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꼭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평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평가하는 사람, 고지식하지 않다고 하면서 고지식한 사람, 눈치가 없지 않다고 하면서 눈치가 없는 사람 등등.


우리 주변에는 남과 잘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이상하게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그럼에도 밉지 않은 사람. 브릿마리는 그런 사람이다. 


베크만 소설을 몇 권 읽으니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자기 나름대로 고집이 있고,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지만, 내면에는 따뜻함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 대해서는 애정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브릿마리 역시 마찬가지다. 청소에, 정리에 강박이 있는 듯이 행동한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밉지 않다.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60이 넘어서 남편을 떠나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려는 브릿마리. 그런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고, 자신처럼 떨어져 나온듯한 동네 보르그에서 임시 일자리를 얻는다. 그것도 실수로.


하지만 여기서 브릿마리는 싫어하던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것이 어찌 자신의 의도대로 되겠는가. 그냥 어느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고,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게 된다. 브릿마리에게 축구란 그렇게 다가온 존재가 된다.


보르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보르그에 대한 편견을 브릿마리가 지니고 있지 않다고 아이들은 여긴다. 그 순간부터 아이들은 브릿마리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함께 지내게 된다. 축구에 축자로 모르는 브릿마리를 코치로 영입하려 한다. 물론 코치가 있어야 대회에 나갈 수 있어서이긴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오베라는 남자]에서 오베와 이주민들이 마음을 열어가듯이, 이 소설에서도 브릿마리와 보르그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간다. 그렇다고 작가는 뻔한 결말을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왜 브릿마리가 청소에 집착을 했는지, 청소할 때 쓰는 물건에 그리도 집착을 하고, 정리(리스트)에 매달리는지가 소설을 읽으면 하나하나 드러난다. 브릿마리 역시 남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거다, 


브릿마리는 남을 의식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을 60이 되도록 살았는데,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꿈은?


그 꿈은 과거에 묻혀버리고 말았는가? 아니, 사람이 지닌 꿈은 묻혀 있지 않다. 꿈은 언제고 다시 나오게 된다.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브릿마리와 같은 사람이 꼭 있다. 자신의 꿈을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실현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 또 자신이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 그럼에도 어려운 사람에 대해서 애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


그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을 지니지 않고 보아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꼭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읽는 재미도 있고, 읽으면서 브릿마리가 변해가는 과정도, 또 보르그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도 재미있다. 재미있기도 하고 브릿마리처럼 실현하려 하지 않은 꿈이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소설은 읽으면서 재미도, 또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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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 가슴으로 써 내려간 아름다운 통일 이야기
이성원 지음 / 꿈결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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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색된 정국.


군사훈련이 재개되고, 긴장은 고조되고.


남북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평화로운 시기보다는 전쟁이나 갈등 시기가 더 많았다고 하는 말도 있는데,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려는 듯이 여기저기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그런데도 평화롭게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강대강.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군사력에는 군사력으로 대응하려고 한다.


햇볕정책이라는 말이 이제는 먼 과거의 유물로 취급되고, 남북이 교류하던 모습들도 과거로 사라져 버렸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남북단일팀...정상회담. 이것들이 단지 한두 번 벌어지는 이벤트성 일들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민간교류도 이루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미래를 꿈꾸었지만, 미래는 과거 속으로 다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남북 관계는 과거 냉전시대의 남북관계와 비슷하다.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고, 군사력을 과시하기 바쁜 시대.


예전 전쟁으로 이산가족들이 생겼고, 그들이 생전에 만나지도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제는 그런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이산가족 만남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니 과거 남북이 그래도 서로 교류하던 때가 떠오른다. 다른 점이 있어서 갈등도 하지만 그럼에도 만남 자체를 끊지는 않았던 때.


그 시절 통일부에서 근무하면서 북한을 많이 다녀왔던 저자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풀어놓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북한 바로 알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 책은 바로 알기 위해서는 내 입장만 고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 사람들과 수많은 만남을 통해, 또 교섭을 통해 그들도 우리와 같음을, 우리는 함께 해야 함을 저자는 느꼈고, 통일의 필요성을 몸으로 깨달았다고 하는데...


저자가 겪었던 일들이 과거의 일로 그치지 않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실현이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통일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교류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만남이 있어야 갈등이 해소될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 제목에서 강조한 것처럼 '그래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이 책은 그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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