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독립선언 - 일본어사전을 베낀 국어사전 바로잡기
박일환 지음 / 섬앤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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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사전을 베낀 국어사전 바로잡기'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토박이말, 외래어, 외국어가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데, 그 말들을 많은 사람이 쓴다면 당연히 사전에 수록되어야 한다.


토박이말만으로 자기 나라 언어를 만들 수는 없으므로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말들이 널리 쓰인다면 그 말을 자기 나라 말로 삼을 수밖에 없다. 


사전이 사람들이 쓰는 말과 달리, 규범적인 말들만 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사전은 언어생활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므로 외래어를 실었다고 문제를 삼지는 않는다.


다만, 외래어를 받아들였는데, 사전이 그 말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토박이말인지, 외래어인지 알 수가 없다. 사전이 말의 용례만이 아니라, 어원도 밝혀주면 언어를 더 넓고 깊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표준국어대사전을 비판하는 책을 여러 권 냈지만, 과연 사전 편찬자들이 그 책들을 읽었는지조차 의문이라고 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전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어렵고도 두려운 일이다. 글자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하고, 그 말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말의 쓰임이 어떤지,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도 살펴야 한다.


많은 예산을 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사전이 나올 수 있다.


당장은 효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그리고 사전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들을 확보해야 한다. 


일제시대 조선어사전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어려운 일을 겪었는지는 '조선어학회 사건' 등을 통해서 알려져 있다. 그런 고초에도 불구하고 사전은 곧 나라를 대표한다고 생각했기에 많은 학자들이 사전 만들기에 참여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나라 국어사전을 갖게 되었고, 그 사전은 계속 보강되고 있다. 보강되어야 하는데, 예전만큼 사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니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되고, 지적이 되는데도 고쳐지지 않고 있지.


특히 일제시대 그렇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만들어내려 했던 사전이 일본어사전을 베낀 말들로 채워진다면, 그건 역사에 대한 거스름이고, 조상들에 대한 배신이다.


사전을 만들면서 특히 그 부분에 더 신경을 써야 했을텐데,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일본어사전 풀이를 거의 그대로 갖다 쓴 말들이 많은지...


또 일본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만, 지금 우리는 거의 쓰지 않는 말들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되어 있는지, 게다가 일본말에서 온 말이 분명한데도 그것을 밝히지 않아 토박이말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풀이도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이렇게 사전을 홀대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저자는 외래어, 외국어를 무조건 배제하자고는 하지 않는다. 말이 산다는 말은 외래어, 외국어를 배제하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쓰고, 이미 언중들에게 인식된 언어라면 그 뜻을 제대로 풀이하고, 그 말의 기원을 밝혀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쓰자는 말이다.


그래야 하는데, 쉽고 편하게 일본어사전에 있는 말들을 베껴쓰면 그것이 말이 죽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살리는 길, 먼저 사전을 제대로 만드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이 쓰는 말을 사전에 수록하고, 그 말의 뜻을 제대로 풀이하고, 쓰임과 기원을 밝혀주는 일을 사전이 해야 한다. 사전을 보면서 그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면 말이 살 수가 있다.


저자의 비판을 트집잡기라고 해서는 안 된다. 좋은 국어사전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떠한 비판도 받아들여야 한다. 검토해야 한다. 찾고 또 찾고,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잘못되었다면 바로바로 고려야 좋은 사전이 된다.


그런 좋은 사전이 나오길 고대하는 저자의 고심이 이런 책을 계속 내게 하고 있다. 국어학자라면 적어도 이런 책은 찾아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국립국어원에서는 언어에 관한 책들을 검토하는 부서가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적어도 자신들의 연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낸 책들을 통해서 우리나라 국어에 대해서 검토하고 정책을 마련하는 활동을 하는 곳이 국립국어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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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6호를 읽는다. 읽을거리가 많다.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잡지라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단지 사회적 약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런 관심들을 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준다. 물론 사회 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


  작은 행복이라고 해야 하나? 디저트에 대한 소개도 하고, 집에 대한 소개도 하고, 직업에 대한 소개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많은 면들이 이 잡지에 실린다고 보면 된다.


  이번에는 농업이다. 빅이슈와 농업은 거리가 멀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빅이슈가 도시에서 생활하는 집 없는 사람들을 주 대상으로 삼는다면, 농업은 정착해서 살아가는, 주거문제는 해결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농민들의 삶은 팍팍하다. 살기 힘들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은 예전부터 들려왔지만, 이제는 웬만한 기업농이 아니면 농업으로 버티기 힘들다. 그렇다고 농업을 포기할 수도 없다.


우리가 먹을거리 없이 살아갈 수는 없기에, 농업은 우리들 삶이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갈수록 힘들어지는 농업에 대해서 빅이슈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기후위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도 힘들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무척 어려움을 겪었으니, 기후위기를 빅이슈가 다루면서 농업을 다룰 수밖에 없다.


농업에 종사하는데, 도시에서 하는 농업을 소개하기도 하고, 또 친환경, 유기농으로 농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못난이 채소를 판매하는 곳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맛은 같은데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상품이 되지 못하는 채소들이 많았는데, 이런 관점을 벗어난 사람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이처럼 빅이슈는 다양한 삶, 다양한 사람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상임을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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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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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을 읽는 일은 즐겁고도 재미 있다. 특히 그 작가의 작품을 졸아한다면 더더욱. 작가가 어떻게 그 작품을 썼는지 엿볼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지만.


김초엽이 쓴 이 책은 자신이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SF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책과 글쓰기 작업에 얽힌 이야기들을 싣고 있다. 처음부터 책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지만, 도대체 무엇을 SF소설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굳이 장르를 나누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글을 쓰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 이들이 굳이 장르를 나누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제목과 같이 이 책에는 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읽어야 했던 책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책들. 그런 책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읽으면서 야, 나도 이 책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 많은 책을 다 따라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내게 필요한 책들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겠지 하는 생각도 한다.


서점, 작은 서점, 그렇다.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만난 책들이 큰 기쁨을 주는 때가 있다. 어떤 책을 사야지 하고 목표를 정하지 않고 서점 이곳저곳을 서성이다가 발견한 책. 아니 눈에 띤 책. 그런 책들이 더 기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가끔 헌책방을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책방에서는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쁨이란... 김초엽도 이 책에서 그런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았는데...


이런 수필집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소설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쓴 수필까지 찾아 읽지는 않는다. 그런데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책과 우연들이라니... 그럼 책도 우연인가? 하는 생각.


꼭 정하지 않아도 읽어야 할 책들, 내가 관심을 갖지 않다가도 우연한 기회에 읽을 기회가 생긴 책들. 나는 김초엽 작가와는 반대로 과학 종류의 책은 잘 읽지 않다가 최근에 좀 읽는 편인데...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쪽 방면의 책을 읽었던 작가와는 반대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문학부터 읽다가 그러다가 SF소설을 읽고, 이거 과학을 모르면 잘 이해를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쉬운 과학책을 찾아 읽고, 그러면서 과학책들도 재미 있는 책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읽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까인데, 읽은 책을 또 읽는 경우도 있고, 분명 읽은 책인데 읽었단 생각도 들지 않는 책이 있어서, 그러면 왜 읽는가 회의도 들곤 했는데...


기억을 하지 못해도 내 몸, 내 마음 속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때 읽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와 또 미래의 나를 연결해 주고 있으며, 나를 다른 사람들, 다른 존재들과 연결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록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읽은 책들이 우연처럼 내게 다가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고 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책은 모든 존재를 연결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명, 함께 울림을 경험하게도 한다. 시공간을 넘어서. 그런 점에서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주고, 김초엽의 이 책 역시 다른 책들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우연들,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 관심 속에서 생겨난 우연들. 그런 우연은 공명을 이룬다. 함께 울린다. 이 책 역시 그렇게 마음을 울리고 있다.  


김초엽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전보다 더 흥미롭고 복잡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결코 읽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길도 주지 않았던 책을 우연히 펼쳐드는 순간이 있다. 투덜거리며, 의심을 가득 품고, 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그런 우연한 순간들이 때로는 나를 가장 기이하고 반짝이는 세상으로 데려가고는 했다.

  그 우연의 순간들을 여기에 조심스레 펼쳐놓는다.' (11쪽. '들어가며'에서)


자, 김초엽의 우연의 순간들을 만나고, 다시 자기 자신의 우연한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하겠는가. 우리도 책을 만나러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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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순양함 무적호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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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스와프 렘이 쓴 소설 읽기, 세 번째. 이번에는 우주 전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모험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렇지는 않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라는 제목만으로 보면 항공모함을 연상하게 하고, 우주를 가로지르면서 위용을 자랑하는 그런 소설일 거라 생각했는데,(제대로 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스타트렉의 우주선처럼) 한 행성에서 실종된 또다른 우주선을 찾아가서 겪게 되는 내용이다.


즉, 낯선 행성에서 만나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행성에서 만나는 존재가 생명체라 아니라는데 이 소설의 특이점이 있다.


우주에서 우리는 진화는 생명들이 한다고 알고 있다. 무생물들은 진화를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 연구하고 있는 로봇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에서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로봇들은 진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기계에도 있다고 한다면, 그때 세상은 어떤 세상이겠는가?


만약 그 기계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존재들을 없애고, 자신들만의 행성을 만들었다면? 그 행성에 인간이 가서 개입하는 것이 옳은가?


이 소설은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한다. 60년대에 기계가 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점도 놀랍지만, 그런 기계도 하나의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이 놀랍기도 하다. 


지금도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종속된 존재로만 여기는 사람도 많은데...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복제인간을 어떻게 여길 것인가에 대한 논쟁도 많은데, 이 소설을 읽으면 인공지능이든 복제인간이든 인간의 손을 떠나서 자신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면, 거기에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일들을 그 행성에서 겪은 뒤, 주인공은 로한은 이렇게 생각한다.


'과학자들 중 누구도 자신과 공감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한은 실종자들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서, 더불어 이 행성을 지금 상태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 위해서 함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모든 것이, 모든 장소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그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316쪽)


어떤 행성이든 인간의 지배 아래 둘 수는 없다. 그 행성들은 행성들 나름대로 존재할 의미가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또다른 식민지로 다른 행성을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여러 행성을 지구에 있는 다른 지역으로 바꾸어 말하면 지구에서 살아가는 각 존재들은 자신들의 삶을 꾸릴 권리가 있으므로, 그들의 삶을 자신들의 삶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또 자신들의 삶에 맞추려고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성이 없는 기계가 진화해서 자신들의 행성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설정, 그리고 그 행성이 인간이 침입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인간이 깨달아 가는 과정. 이 과정이 이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 나타나는 알갱이와 같은 기계들, 그들은 하나의 개체로서는 약하지만 함께 뭉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존재로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집단지성의 모습이기도 하고,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쪽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이 존재들이 영화 '빅 히어로'에 나오는 작은 자석같은 금속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들도 하나의 개체는 독립적이지만 약한 존재인데, 결합하면 어떤 형태로든 변신이 가능하고 또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알갱이들도 그러하다. 마치 구름처럼 몰려다니며 위력을 발휘하는 존재들.


하여 60년대 상상력이 현대에 영화에도 반영이 되고,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그런 점보다도 인간 우선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이 소설에서 읽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바로 인용한 로한의 생각에 담겨 있다고 본다. 로한의 생각처럼 과학자들은 공감하지 않겠지만. 아니, 공감하는 과학자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 속 과학자들과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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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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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나온 소설. 1960년대 창작된 소설이라고 한다. 우주를 배경으로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인데... 


지금 읽어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소설이다. 여전히 우리가 꿈꾸는 모습들이 소설 속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라는 제목으로 우주 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서술하는 부분. '이욘 티히의 회고록'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회상이 실린 부분, 그리고 끝으로 이욘 티히의 청원서가 실려 있는데, 얼핏 잘못 읽으면 사실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허구이고, 상상의 세계이긴 하지만, 이 상상의 세계가 허무맹랑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가 여전히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우주를 여행하는 일은 아직도 멀다. 이 소설에서처럼 우주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상상을 넘어선 경험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말로 우주를 여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는가. 평행우주란 말이 있고, 시간의 뒤집힘이란 말도 있는데,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나는 일이 생기지 않으란 법이 어디 있는가.


이 소설 첫번째 부분이 바로 이렇다.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인데, 우주선이 고장났다. 고쳐야 한다. 그런데 혼자서는 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잡아주어야 너트를 조일 수가 있는데, 우주선에는 혼자만 타고 있다. 


우주선에는 나 혼자만이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뒤집힌 세계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또다른 나'들'이 우주선에 있다. 그들은 오늘이 월요일이라고 하면, 화요일의 나, 수요일의 나, 토요일의 나, 일요일의 나 등으로 미래의 '나'가 시간의 뒤틀림으로 우주선에 동시에 나타난다.


이거야 원. 이런 나'들'이 얽히고 설킨 관계를 유지하다가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소설 첫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소설은 이욘 티히의 우주 여행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이욘 티히가 우주 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온갖 일들을 여러 일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도 있는 일들이 있는데... 역사적인 사건들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소설 속에 등장시키기도 한다.


종교에 대한 비판도 있고,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도 소설 속에서 찾을 수가 있다. 여기에 두 번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회상 부분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영혼에 대해서 지금도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소설을 통해서 고민하게 하고 있다.


인간이 달에도 가지 못한 때, 인공지능 로봇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 이 소설은 이미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려고 하는 로봇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러한 길로 가려는 과학자들을 보여주고 있고.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일들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이 계속 추구해 나가는 일들이 이 소설 속에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소설의 끝에 실린 '우주를 구하자: 이욘 티히의 탄원'을 보면 우주 문제를 지구 문제로 국한시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소설 속에 나온 문장을 보자. 이 문장이 어찌 과거의 문장이라 할 수 있겠는지...


'이런 변덕스러운 욕심을 충족시키고자 우리는 우주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운석과 행성을 오염시키고, 대보호 구역의 재정을 텅 비게 하고, 우주에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오만 가지 쓰레기를 버리면서 전 우주를 거대한 쓰게리 폐기장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을 기억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할 때다. 단 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서, 나는 우주를 구하고자 경종을 울린다.' (563쪽)


과학적 지식과 더불어 역사, 철학, 문화적 지식이 있으면 이 소설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단 생각을 한다. 소설 속에 나타난 비판의식을 찾아 읽는다면 더 재미가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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