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 곽재식의 기후 시민 수업
곽재식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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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대해서, 기후위기라고 하기도 하고, 기후재앙이라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가 힘들어진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 책은 분명히 말한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힘들어지지는 않는다. 지구는 그만큼 많은 기후변화를 겪어왔다. 다만, 힘들어지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힘들어진다? 모든 사람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힘들어지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소위 사회적 약자라고 하는 사람들.


가끔 텔레비젼을 보다보면 광고로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 물이 부족해서, 영양이 부족해서 너무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자는 광고가 나온다. 참 많은 단체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서 일한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여전하다.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어 그들 삶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데에는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 작용이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 나라 사람들이라고 모두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는다. 그 나라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이 힘든 삶을 살아간다. 생활이 아니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자신들의 생명 유지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적 약자다. 또 기후변화가 지구 곳곳에서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다. 어느 지역에 또 어느 때에 갑자기 폭우, 폭설, 폭염, 가뭄, 강추위 등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나타난 기후재앙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하게 다가온다.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한다. 그런 점에서 기후변화는 지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사람이 사람을 함께 사는 존재로 여긴다면, 기후로 인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덜 고통받도록, 또 고통받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이익이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이윤을 포기할 수 없기에, 기후변화 역시 대응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지구에 사는 나라들이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자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책은 그것이 왜 어려운지를 역사적 대응을 살펴보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경제가 개입되면 함께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또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현재의 관점에서만 이야기하면 선진국은 책임에서 멀어지고, 개발도상국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사태가 생긴다. 사고는 선진국이 치고, 뒷감당은 개발도상국들이, 그것도 개발도상국에서도 사회적 약자가 덤터기를 쓰게 된다.


그러니 기후변화를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말자고 한다. 그냥 바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자고 한다.


지구를 살린다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바로 우리 이웃과 함께 살자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만큼 기후변화는 당장 닥친 우리의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란, 무슨 고상한 취향을 드러내기 위한 선행 같은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미래에 우리와 우리 이웃이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더 긴박하고 현실적인 문제다. 기후변화에 대해 고민한답시고 사람의 손길에서 벗어난 자연의 섭리 같은 평온하고 흐릿한 관념에 빠져 있던 세상은 이미 갔고, 이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찾아왔다. ...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을 생각할 때, 귀여운 북극곰들이 당황하는 모습만을 떠올리기보다는, 급작스러운 집중호우에 배수가 역류하는 도시의 반지하 방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인지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다.' (439쪽)


마음 속에 담아두어야 할 말이다. 책이 좀 두껍기는 하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또 읽으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이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도 우리가 친환경이라고 여기는 일들이 과연 기후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인지도 생각하게 하고.


이런 글이 이 책에 나온다.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탄소발자국에 대해서도 여러 논란이 있고, 어떤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치즈가 반도체보다도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안 좋은 쪽으로) 하는 통계 수치도 있다고 하니까. (428쪽)


'비닐봉지는 워낙 만드는 데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기 때문에, 면으로 만든 가방을 하나 만들 정도면 비닐봉지를 131개 만들 수 있다. 이 계산은 영국환경청의 2011년 발표인데...'(418-419쪽)


비닐봉지를 쓰지 말자고 많이들 말하는데, 면봉지가 더 문제일 수 있다는 주장. 이렇게 기후변화에 관련되어서는 다양한 관점, 다양한 통계가 적용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니, 더 정확한 통계를 요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체로 공유되고 있는 방법들,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확충하는 방법, 주택을 단열이 잘 되도록 짓는 방법 등등을 살리고, 정부가 기후변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후변화로 인해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적어지도록 정책을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전기차와 수소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러 자료와 과학적인 내용을 들어서 설명해주고 있어서, 그것들이 지금 어떤 위치에 와 있는지도, 왜 전기차만이 아니라 수소차에 대해서도 계속 연구를 하고 있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소개하고 있고, 그것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도 알려주고 있어서, 기후변화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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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지 않을 권리
김태경 지음 / 웨일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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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다움'이라는 말. 이 말로 인해서 피해자는 또다른 피해에 시달리게 된다. 도대체 피해자다움이 어디에 있는가? 사람은 모두 다르지 않나. 같은 일이라도 대응하는 태도는 모두 다른데, 그것을 어떤 범주로 정해놓고, 그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문제가 있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말이 너무도 많이 적용이 된다. 피해자다움으로 인해서, 많은 피해자들이 또다른 피해를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2차 가해라는 말에는 가해라는 말이 있어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피해자다움이라는 말에는 가해라는 말보다는 태도에 관한 관점이 담겨 있어서 가해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다움을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2차 가해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그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놀랐다. 피해자를 이렇게 대했던가 하는 생각.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피해자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이 책에는 너무도 많이 나와 있다.


책 제목이 '용서하지 않을 권리'라고 해서, 가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내용이 전개되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피해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중심에 놓고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피해자를 먼저 생각하고, 피해자가 사회에서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지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이다.


특히 법정에서 피해자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하는 법정에서 피해자들이 또다른 피해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피해자에게 재판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많은 문제들이 있다. 이는 피해자다움이라는 말이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기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피해자다움이라는 말은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이라는 말과도 연결이 된다. 피해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체득해왔던 이 말들로 인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하고 자신의 잘못을 찾는다고 한다.


우연히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에 대한 인과관계를 찾기 시작하면, 잘못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자신이 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말로 안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았다.


네가 그렇게 했으니까, 네가 그렇게 하고 다녔으니까, 너는 맞을 만했으니까, 네가 조심했어야지, 왜 늦게 돌아다녀... 등등. 이런 말들이 난무하지 않았던가.


또한 섣부른 공감으로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한 경우도 많지 않았던가. 이번 이태원 참사로 인해 방송에 나온 한 유가족이 한 말.. 세월호 때 세월이 약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제 입을 찢고 싶다고... 


그렇게 공감이 겉돌 때가 있다. 그러니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처지에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한다는 것. 말보다는 듣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라는 것. 섣부르게 단정짓지 말라는 것. 


이 책은 그렇게 '피해자를 바라보는 적정한 시선과 태도에 관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말. 이 책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의 목적은 범죄 피해자의 사건 후 경험에 대한 이웃들의 이해 폭을 넓히는 것, 나아가 피해 회복을 위해 이웃인 우리가 해야 할 지침을 제안하는 것에 있다.'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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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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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소가 있다. 이 장소와 직접 관계맺은 사람은 둘이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그러나 이 장소에는 또다른 인물이 관계를 맺고 있다. 빌렘, 뮈텔 신부. 


소설은 이렇게 세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감정이 철저하게 절제된, 건조한 문체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감정을 실을 수가 없다.


안중근이 이토를 쏘기까지의 과정이 긴박감이 느껴지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거기에 안중근이 느끼는 부담감 등이 서술되기를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쉽다. 소설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신문기사보다도 더 건조하게, 담담하게 사건이 진행된다.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이 사람을 그 자리에 데려다 놓은 듯하다.


그냥 운명대로 흘러갔다고 하는 편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그렇게 소설은 감정이 배제된 서술로 전개된다. 이토도 마찬가지, 안중근도, 가끔 나오는 우덕순 역시 그렇다. 그나마 감정이 좀 드러나는 사람들은 프랑스 신부인 뮈텔과 빌렘이다.


이들은 종교와 국가 사이에서 철저하게 종교 쪽에 선다. 자신들은 강대국의 국민으로, 그런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인지, 특히 뮈텔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소설 속에서 그는 황사영과 안중근을 비교하는데, 황사영은 종교를 위해서 나라를 없애도 된다는 쪽이었다면(그는 편지를 통해 서양 군대를 요청했다. 조선에...), 안중근은 종교보다는 나라를 위한 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조선에 와 있던 신부들은 당연히 나라보다는 종교쪽이었고, 그들은 애국심이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선교가 제약되지 않기를 바랐다. 마찬가지로 조선이 빨리 근대화되기도 바라지 않았을 터. 


그들에게 중요한 일은 선교지, 선교할 나라의 발전, 그 나라 사람들의 독립, 민주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건조하게 진행되는 소설에서도 이런 관점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뮈텔은 신앙과 문명을 군함에 실어서 세계에 전하는 조국 프랑스와 프랑스 왕과 프랑스 군대와 프랑스 교회를 위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도 뮈텔의 날들은 경건했다.' (251쪽)


이들의 종교는 무력에 의한 종교다. 무력이 없었다면, 그들의 선교는 성공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힘센 나라에 다른 힘으로(그것도 아주 약한 무력, 개인의 무력?으로 저항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들에게는) 저항하는 일은 종교를 벗어나는 일이다. 아니, 종교의 교리에 반하는 일이다.


이미 이루어진 일, '권위에 복종하라'는 말이 되는지, 종교는 철저하게 식민지가 될 나라와 구분되어야 한다.


소설 속에서 이러한 관점이 비판적으로 제시된다. 안중근이나 이토에게 나오지 않는 감정 서술이 서양 신부들에게는 나타나고 있으니, 이는 세계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선이고, 강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뮈텔이 말했다. 조선에 대학교는 가당치 않다. 조선인은 우선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조선인이 학문을 배우면 신심을 해치게 된다. 좋지 않다. 다시는 이런 말을 꺼내지 마라.' (184쪽)


이것이 본질이다. 그러니 안중근이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을 먼저 이야기하는 일은 1909년 하얼빈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데 문제가 있다.


하얼빈에서의 일은 종교와 상관없는 정치의 일이다. 철저하게 정치적인 문제고, 세계 정치에서 힘이 없는 약소국의 국민이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말이 막힌 사회다. 말은 강자들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강자들의 귀에 익숙해지고, 약자들에게는 명령으로만 존재한다. 약자들의 말은 강자에게 가 닿지 못한다. 그들의 말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다른 존재에게 가 닿지 못하는 말, 그 말은 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말이 기능을 상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설은 그 점을 파고든다. 안중근의 거사는 말이다. 그는 이토를 왜 죽여야 하는지, 이토가 왜 죽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이토에게 너는 이래서 잘못했어라고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토에게 말할 방법이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말은 결국 폭력을 통해서 주목을 받은 상태에서야 가능해진다. 이토 살해. 재판정에서의 말. 그러나 그 말도 결국은 강자에 의해 왜곡된다. 가려진다. 약자의 말. 그 말하기... 지금도 그렇다. 말은 늘 강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강한 사람의 말이 퍼뜨려진다.


약자의 말은 가려진다. 왜곡된다. 곳곳에서 약자들의 말이 들리기 위해서 그들이 하는 일을 보라. 안중근이 자신의 말을 하기 위해서 한 일을 생각하라. 그 말들을 종교가 어떻게 막았는지도 생각해 보라.


소설은 그 점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다시 하얼빈. 이 장소에는 안중근과 이토가 있다. 그러나 이 장소에는 말들이 있다. 제국주의의 말, 식민지를 벗어나려는 말. 이미 제국주의를 실현하고 그를 종교로 덮어버리는 말.


안중근을 도마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종교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제국주의를 실어나르는 종교가 아니라, 식민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종교. 그 종교에 귀의한 안중근. 그렇게 가야 한다.


김훈 소설, 하얼빈. 감정을 쏙 빼고, 하얼빈이라는 장소에 얽힌 두 인물,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그러나 여기에 프랑스인 신부들인 뮈텔과 빌렘이 등장해 말이 어떻게 가려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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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 루이스 세풀베다 산문집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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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루이스 세풀베다. 오래 전에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이라는 소설을 읽고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됐다.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왠지 믿음이 간다고.


그런 세풀베다가 2020년에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고 한다. 사람이 죽음이라는 세계로 가는 일을 피할 수 없지만, 이런 작가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세풀베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는 세풀베다가 만났던 사람들, 그와 친분을 맺고 지냈던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모두들, 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를 위해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세풀베다 역시 망명 생활을 오래했고.


그런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 다른 세계로 간 일을 글을 통해서 추모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추모,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시절을 잊지 않겠다는, 그들과 함께 추구했던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런 의지가 나타는 글들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과 관련된 글이 있다. '친구가 된 노인'이라는 글인데, 그 소설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소설에 관한 내용, 라틴아메리카 작가나 예술가들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은 라틴아메리카가 독재로부터 벗어나 사람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세풀베다가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가 아옌데에 대해서, 네루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첫번째로 실린 글은 칠레에 온 세풀베다가 (그는 오랫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오래 전에 찍은 칠레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그 사진 속 아이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칠레의 현실이 과연 나아졌는가를 생각하게 하는데...


사진 속에 있던 아이 중에 한 아이는 세상을 떴고, 다른 아이들도 역시 희망을 잃고 있다. 이런 현실을 알리는 글을 세풀베다는 쓰려고 한다. 그것이 비록 힘겨운 일은 아닐지라도.


글 (아이들의 사진에 남겨진 빈자리:르포) 끝에서 세풀베다는 이 글을 쓴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다 쓰고 나면 국제 시민 사회의 연대를 지향하는 어느 잡지에 실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어린아이들의 순수함과 따뜻한 사랑이 넘쳐흐르는 세계를 있는 힘껏 지키고자 하는 전 세계 남자들과 여자들이 읽게 되리라' (63쪽)


이렇게 세풀베다는 암울한 현실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현실을 기록하고자 한다. 단지 기록에서 머물지 않고 발표하고자 않다. 잊지 않기 위해서, 용서하지 않기 위해서.


이런 자세를 지닌 작가가 있으면 세상은 결코 암흑세계에 머물 수가 없다. 그런 암흑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존재들로 인해, 암흑 세계를 만든 이들을 잊지 않게 된다. 또한 용서하지 않게 된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세풀베다의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이 라틴아메리카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세풀베다의 좌우명을 인용한다. '잊지 말라, 용서하지도 말라.'(111쪽)


우리 역시 잊지 말아야 할 일, 용서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하고 되새기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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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3-01-02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정말 사랑하는 소설입니다. 세풀베다가 먼 곳으로 떠났군요. 이 산문집은 꼭 읽고 싶네요

kinye91 2023-01-02 12:11   좋아요 1 | URL
저도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참 좋게 읽었어요. 이 책도 읽을 만해요.
 
미끄러지는 말들 -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백승주 지음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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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말은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말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떠돌고 있는 말들은 어떤가? 잇는 역할보다는 가르는 역할을 더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 사람을 살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런 말들을 혐오표현이라고 하는데, 혐오표현인지도 모르고 쓰는 말들, 혐오표현인 줄 알면서 그렇기 때문에 쓰는 말들도 많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너무도 많은 말들이 사람을 가르고, 사람을 떨쳐내는 역할을 하고 있구나, 우리 사회에서 지금 그런 말들이 너무도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많은 말들, 누구의 말이냐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누가 쓸 수 있는 말이냐도 꽤 중요한데, 언어의 다양성을 보장하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그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혐오표현이 용인되어서는 안 된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시작은 비유로 시작한다. 사람에게 여러 혀가 있다는 말로... 혀, 그렇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른 혀들이 작동한다. 내가 쓰는 언어가 달라진다. 그런 언어들을 하나로만 묶으려 하면 안 된다.


언어에 권력관계를 동원해서는 안 된다. 언어는 동등하다. 물론 혐오표현 언어는 빼고. 그렇지만 사투리를 썼다는 이유로, 또는 가난한 나라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특정 상황에서 어느 지역의 사투리는 정겨운 느낌을 주는 반면, 어느 지역의 사투리는 그런 느낌을 주지 못하고 저속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을 한다. 언어에 위계가 생기면,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차별이 따라온다. 그런 차별을 공고하게 하는 언어들이 발달하게 되고, 사람들과 사람들을 가르게 된다.


그렇게 말들은 미끄러진다.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엮여 있는 책인데, 글들이 마음에 자리잡는다. 생각해 볼만한 글들이 많다.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쓰는 말들이 혐오표현이 되지 않는지 끊임없이 점검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더 말이 필요없다. 이 책은 직접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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