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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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소, 삼십 년 전의 어느 장거리 경주'


다 다른 내용이지만, 공통점을 굳이 찾으라면, 주인공들이 잘사는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투철한 공산주의 사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하층민, 우리가 서민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과연 그런 세상이 왔을까, 이들은 혁명 전후를 비교하지만, 혁명 이후에 무엇이 나아졌는지 묻고 있다.


아니, 혁명을 통해서 과연 사람들이 지닌 기본적인 감정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겪게 되는 여러 일들이 체제를 막론하고 일어날 수 있음을 모옌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공산주의가 한창 자리를 잡아가야 할 때를 배경으로 그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산주의 사회의 허구성, 폐쇄성, 폭력성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소설도 아니다. 어느 체제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경직된 관료들, 그런 사회에서도 나름대로 융통성을 발휘해서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소설에 잘 나와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읽다보면 그 체제에서도 참 많은 문제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체제의 우월성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피고, 그들이 잘살아가는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함을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평생 모범 노동자로 살던 사람이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정리해고 되는 모습, 그런 사회가 어찌 공산주의 사회겠는가? 체제와 상관없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공장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는 처지. 그들을 도와줄 체제는 없다.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에 나오는 주인공은 살 길을 찾다가 연인들이 사랑을 나눌 장소를 만들어 돈을 버는 라오 딩, 이 소설에서 딩 사부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가 겪는 일은 우리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각자도생. 이것을 이 소설은 유머러스한 문체로 풀어가고 있다.


'소'는 더 해학적이다. 우리나라 김유정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소설인데, 불까기한 소를 살리기 위해 밤새도록 끌고다녀야 하는 순박한? 시골 소년과 노인. 이들의 노력에도 소는 죽고, 그 다음이 풍자적이다. 그 소를 키우는 생산대에 주지 않고 자신들이 요리해 먹은 간부들이 식중독에 걸려 죽을 고비를 겪는 내용.


그렇다. 어떤 사회에서도 윗사람들은 잘먹고 잘산다. 그들은 없는 사람들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특출난 재주가 있다. 그런 재주를 이 소설에서 잘 볼 수 있다.


마지막에 실린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우파'로 몰리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지만, 우파들이 어떻게 우파가 되었는지를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냥 우파가 필요했을 뿐이다. 세상에 행진할 때 오른발이 먼저 나갔다고 우파라니?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어느 마을이든 우파가 꼭 필요했기에 이런 이유로도 우파가 될 수 있었음을, 마을의 장거리 경주를 배경으로, 과거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소년의 눈으로 본 그 우파나 또 그 마을 사람들의 모습인데...


오래 전 마오쩌뚱이 중국을 공산주의 사회로 만들려고 했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음을 모옌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이 소설들을 통해서 경직된 사회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런 것이 바로 삶임을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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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세계
션 B. 캐럴 지음, 장호연 옮김 / 코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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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이냐 우연이냐를 많이 따진다.눈먼 시계공이라는 말도 있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우리 삶이 과연 정해진 대로 살아질까? 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만 하면 될까?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의 삶에는 우연이 없다는 말일까?


과연 그럴까? 인간 숫자가 70억 정도 되는 이 지구에서 과연 모든 일들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질까?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멸종들도 필연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의문들이 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 그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한계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필연을 생각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도 그런데, 그 상상이 인간의 한계를 짓는다고도 해야 한다.


신의 뜻대로라면 인간이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자유의지는 없다는 말도 있지만, 자유의지라고 해도 과연 필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내 뜻대로 한다는 의미의 자유의지라면 내 뜻대로에는 수많은 우연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우리는 우연으로 이루어진 세계, 우연이 만든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된다.


왜 하필 그때, 또 똑같은 일을 당하고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른 경우,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가 거의 비슷하지만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이유 등등.. 결국은 우연이 작동한 결과라고 한다.


우연히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살아남아 다시 퍼뜨리고, 강화되고, 거기에 다시 우연이 발동하여 돌연변이가 생기고, 돌연변이가 널리 퍼져 우세종이 되는 현상. 이러한 현상들에 어떤 필연성을 찾기보다는 우연으로 인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몇억 분의 일이라는 확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우연이 작동한다. 그 점은 우리도 안다. 하지만 단지 모든 것을 우연에 기대지는 않는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노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여기에 또다른 우연이 개입해서 다른 변화가 일어난다.


이 말을 저자의 말을 빌리면 '우연은 창조하고, 자연선택은 발명품을 퍼뜨린다'(156쪽)고 할 수 있다.


왜 저자는 이렇게 우연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이것은 바로 인간의 자율성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신에게 인간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아닌, 수많은 우연으로 인류가 지구상의 지배종이 되었고, 또 수많은 우연으로 인간 유전자에 많은 변이들이 생기며, 그런 우연들이 살아남음으로써 지구상에서 생명들이 살아가게 했다는.


책은 처음에 지질 발견부터 시작한다. 단층이 생겼고, 거기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는. 멸종이 이루어졌는데, 멸종을 무엇이 일으켰느냐는 추적으로 부터. 추적의 결과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고, 그 충돌로 인해서 많은 생물들이 멸종했다고 한다.


많은 생물들의 멸종을 일으킨 소행성 충돌은 필연일까? 아주 적은 확률로 일어난 우연이다. 이 우연이 생명체들의 존속을 갈랐으니... 그렇다면 이런 우연에서도 살아남은 종들은 어떤 종들일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을 창조한 생명체들이다.


결국 우연이 생명체들의 몸에 무언가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고, 이래서 우연이 창조하고, 자연선택이 퍼뜨린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 인간은 과거를 학습하는 능력이 있으니, 그러한 우연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되었을 터. 우리는 우연으로부터 창조와 지속을 학습했고, 이런 학습이 바로 인간의 자율성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우연은 자리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신의 존재에 대한 비판이 이 책6장에서 오순절 교회 목사들이 독사를 들고 설교하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우연을 강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우리 세상은 우연이 우리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일이 많다. 


그러니 신의 뜻대로가 아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니,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즐겨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우연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율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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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 대하여


  우리는 꿈을 꾼다. 꿈이 없다면 삶은 참 삭막할 것이다. 꿈이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생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꿈은 꾼다고 한다. 꿈꾼다.


  하지만 꿈꾼다는 말은 곧 실현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꿈꾸고 있네라는 말이 있듯이, 꿈은 실현불가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꿈은 실현이자 실현불가능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꿈과 실현, 실현이라는 말을 앞뒤를 바꾸자. 현실이다. 꿈과 현실. 이것은 일치하기도 하고, 일치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므로 꿈은 움직임이다. 꿈은 명사지만 동사다. 동사였다가 명사가 되어야 한다. 명사가 되지 못한 꿈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꿈을 꾼다. 꿈이 없는 삶은 너무도 삭막하기 때문이다. 실현되지 않는 꿈이 있기에 꿈은 더더욱 필요하다. 꿈을 현실로 만들려는 몸부림이 있기 때문에 꿈이 명사가 되기까지 동사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승희 시집을 읽다가 해석이 안 되는 말이 나와 당황하기도 했지만, 도대체 어떤 의미로 썼는지 도대체 모르겠는 말. 그럼에도 이상하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 시적인 효과라고 해야 하나. 그런 말이 있다. '토마토 어금니'라는 말.


이 말에 대해 생각하지만 답을 찾지 못하겠다. 어쩌면 답이 없는지도. 답을 만들어가야 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시인들이 쓴 시로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겠지. 그러니 이 말을 빼고도 꿈에 대해서, 우리가 꾸어왔던 숱한 꿈들에 대해서, 그 꿈들이 동사였기에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김승희 시를 소개한다.


               꿈틀거리다


       꿈틀거리다

       꿈이 있으면 꿈틀거린다

       꿈틀거린다, 라는 말 안에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이라는 말이 의젓하게 먼저 와 있지 않은가


       소금 맞은 지렁이같이 꿈틀꿈틀

       매미도 껍질을 찢고 꿈틀꿈틀 생살로 나오는데

       어느 아픈 날 밤중에

       가슴에서 심장이 꿈틀꿈틀할 때도


       괜찮아

       꿈이 있으니까 꿈틀꿈틀하는 거야

       꿈꾸는 것은 아픈 것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틀꿈틀

       바닥을 네발로 기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마음


김승희,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창비. 2021년. 10쪽.


이 시를 보면 꿈은 분명 동사다. 명사로 향해 가는 동사, 꿈. 결국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선다. 그러니 꿈은 우리에게 동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명사가 된 꿈은 더이상 꿈이 아니게 되니까.


빨리 실현할 수 없는, 그래서 네발로 기어갈 수밖에 없는. 또한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희망이라고 하는데, 희망과 꿈을 등치시킬 수도 있으니, 이는 실현되지 못하는 일이 꿈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이 꿈이라는 말도 된다.


시인이 예전에 쓴 시 중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라는 시 역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마찬가지로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서 '같이 죽자는 말'(22-23쪽)이라는 시도 마찬가지다. 결국 '꿈'이다.


이 시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차라리,라는 말을 구원하는 것은 / 오히려,라는 말이라고'(22쪽)


그렇다. 힘들기 때문에, 차라리 포기할까가 아니라, 힘들더라도 오히려 더 힘내서 가 보자가 되는 것, 네발로 기어서라도 가는 일, 그것이 바로 꿈이다. 


그 가는 과정이 '소금 맞은 지렁이 같이 꿈틀꿈틀'거릴지라도, 그렇게 꿈은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꿈꾸는 것은 아픈 것'이니까. 꿈틀거린다는 말, 아프다는 말은 곧 현실이 힘들다는 말, 이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니까. 아프지 않은 사람, 꿈꿀 일이 없는 사람. 그 자리에 멈춰선 사람. 결국 그 사람의 삶은 동사가 아니라 명사다. 움직임이 없는 상태. 


하지만 꿈은 명사가 아니다. 동사다. 움직여야 한다. 상자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상자 밖으로 나와 기든, 뒹굴든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꿈이다. 그래, 그렇게 우리는 꿈을 꿔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서.


덧글


'토마토 어금니'란 말에 대한 의미 파악은 각자가 해야 할 일이지만, 이 시집에 실린 정과리의 해석을 참조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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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4-21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우연히 보았는데 차라리라는 말을 구원하는 것은 오히려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kinye91 2023-04-22 12:09   좋아요 1 | URL
저도 김승희 시인의 그 구절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어요.
 
한 번은 불러보았다 - 짱깨부터 똥남아까지,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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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다. 읽으면서. 의식하지 않고 쓰는 말 중에 혐오 표현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하게 여기던 일이 당연하지 않음도, 또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읽었던 작품들에서도 인종차별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알려고 하지 않음, 의식하지 않음. 우리나라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인종차별을 우리가 한다고? 이런 반문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일을 인종차별로만 인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인종차별을 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인종차별의 역사는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함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인종차별... 피부색만이 아니다. 우선은 피부색에 따라서 차별을 하지만, 경제적 차이가 나는 나라에 따라서 차별을 하고, 또한 종교로 차별을 하는 것도 인종차별이라 할 수 있다.


개화기 때 신문이 처음 우리나라에서 발간될 때, 그 신문 내용에는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많았다고 한다. 백인을 우위에 두고, 흑인을 미개한 종족으로, 인디언 역시 미개한 종족으로 이야기한 내용들.


근대화라고 해서 그런 신문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무장한 개화기 지식인들의 머리에는 은연중에 인종차별이 박혔으리라.


김옥균도 흑인들을 보고 멸시하는 발언을 했다고 하니, 근대화가 곧 백인화를 뜻하는 것이었는지, 식민지 시대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일본이 그렇게 따라가고자 했던 서구화는 곧 백인화였을 테고, 자신들은 백인에 버금가는 종족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을 서열화했던 시기.


유사과학이라고 해야 하나? 혈액형을 가지고 인종계수라는 용어를 사용해 인종차별을 합리화했다고 하니, 참... 


'1919년 독일인 학자 루드비크 히르슈펠트와 한카 히르슈펠트는 혈액형 B형보다 A형이 진화한 형태이므로, 백인일수록 A형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고, 유색인일수록 B형의 출현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들은 A형인 사람의 수를 B형인 사람의 수로 나눈 '인종계수'라는 수치를 개발했는데, 분석 결과 그들이 세운 가설대로 백인이 비백인보다 인종계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경성의과전문학교 외과교실 교수 기리하라 신이치와 그의 연구팀은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1.78인 반면, 한국인은 1.07로 나타났다. ...열등한 한국인은 우월한 일본인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식민사관으로 이어졌다.' (56쪽)


어처구니 없는 연구지만, 인종차별을 합리화 하는 데는 이런 과학 아닌 과학이 유용하게 쓰였으리라. 게다가 이런 연구들이 우생학을 뒷받침하고 있었을 테니...


해방이 되고 나서 미국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더 강화된다. 경제개발이 되면서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우리나라의 인종차별 역사는 오래 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구체적인 인종차별의 사례로 흑인, 화교, 혼혈인, 동남아시아 사람들, 무슬림에 대한 이야기를 2부에서 하고 있다.


이래도 인종차별이 없다고 할테냐라는 듯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을 자행하고 있었는지를...


나는 그런 적 없다고? 과연 그럴까? 이 책 제목을 생각해 보자. '한 번은 불러보았다'는 말. 우리는 인종차별적인 언어를 한번쯤은 해봤을 테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신이 인종차별을 한다는 의식도 없이.


그 점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감추는 게 많은 나라, 우리가 타자화한 집단들의 역사를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나라, 이것이 한국을 인종차별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216쪽)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다. 이 책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대구에서 무슬림 사원을 건축을 반대하는 시위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2년이 넘게... 반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증명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혐오, 인종차별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아예 돼지고기 파티를 하고 있다고 하니...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에서. 그들은 내가 내 집 앞에서 돼지고기를 먹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고 있으니...


무슬림들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 또 결혼한 동남아시아 사람들, 여기에 여전히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있으니.


그래 '한 번은 불러보았'을 그런 차별을 하는 말들을 두 번, 세 번 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인식하고 반성하고, 고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오랜 세월 몸 속에 박힌 인식하지 못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나를 객관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남을 살피듯이 나를 살펴야 한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차별하면 분노하듯이, 우리가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나 성찰해야 한다. 더불어 한국 국적을 갖고 있음에도 한국인으로 대우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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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는 신기하게 편집장의 글이 없다. 잘못됐나 하고 찾아보아도 목차에 없으니, 편집장의 글은 생략했나 보다. 작은 변화라고 해야 하나?


  어지러운 세상에 밝은 내용이 실려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물론 재개발로 인해 쫓겨가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희망이 있음을...


  김연수 소설 제목처럼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있으므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시골살이에 대한 글도 있는데, 이상한 기후로 인해서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


인간이 자연을 얼마나 망쳐놓았는지, 기후의 변화로 체감하게 된다. 3월에는 초여름과 같은 날씨가 되어 꽃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빨리 피고 지더니, 4월이 되니, 쌀쌀해진다. 본래 날씨가 어떤 날씨였는지 잊어버릴 지경.


이럴 때 시골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욕심부리지 않고 흐름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남의 것을 더 독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겠지.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가겠지.


이번 호에 실린 빅판의 이야기를 보면 돈이 잘 벌릴 때 주변에 와서 결국 그 돈을 다 날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남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 그래서 시골살이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여기에 여성 홈리스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글을 보면서, 재개발로 쫓겨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재개발로 그들이 살 집을 마련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첫번째 글에 빅판들이 전철역에서 활발하게 판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렇게 되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 음식점 앞에서 권력자에게 아부하려 주욱 도열해 있는 모습이 아니라, 빅이슈를 사기 위해 빅판 곁에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배민영의 글로 마무리한다.


'나는 [빅이슈]만이 만들 수 있는 지하철역 앞 풍경이 다시 펼쳐지기를 소망한다.'(12쪽) 그래, 권력자의 곁에 어떻게든 서 있으려고 하는 모습 말고, [빅이슈]를 사기 위해, 또는 빅이슈 판매원과 함께 하기 위해 곁에 서 있는 모습.


온라인도 좋지만 오프라인에서 직접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빅이슈]를 주고 받는 모습. 그런 모습이 올해는 펼쳐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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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길을묻다 2023-04-11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빅이슈를 읽는 것 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베푸는 일입니다

kinye91 2023-04-11 10:52   좋아요 0 | URL
빅이슈를 읽는 일이 누군가에게 베푼다고 해주시니 마음에 위안이 됩니다. 받는 삶과 베푸는 삶이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