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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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작가는 그동안 쓰고 싶은 글을 써왔다고 한다. 이는 즐거운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쓰고 싶은 글이라기보다는 써야만 하는 글이라고 한다. 써야만 한다는 말은 당위다.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일. 그런 일은 해야 한다. 이 책에 쓰인 글도 그런 의미에서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매시절 나는 가장 쓰고 싶은 글을 썼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쓰고 싶은 즐거움으로 쓴 것들이라기보다는, 반드시 써야만 한다는 요구를 느끼면 쓴 것들이다. 내가 원하건 원치 않건 이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 (4-5쪽)


이런 각오로 쓴 글이 실린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러니 이 책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제로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라고 되어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가 과연 밀레니얼 세대만의 문제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다. 젊은이들이 N포세대라고 자조하는 말을 하는 것이 어찌 젊은이들만의 문제겠는가? 그런 문제가 발생한 사회의 문제이고, 이런 문제는 세대를 막론하고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다.


함께 풀지 못하고 세대로 국한지어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세대 갈등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것은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 넘김이다. 


세대 갈등으로 가면 서로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그러한 기득권을 두고 땅따먹기 식으로 정해진 땅을 빼앗는 방식으로 갈등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세대 갈등에 이어 젠더 갈등까지 이러한 땅따먹기식 갈등은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을 뿐이다. 그들을 그렇게 갈등하게 만든 구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함께 그 구조를 바꾸려고 해야지, 거대한 구조를 그대로 놓아둔 채로, 나만 아니면 돼 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나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세대 문제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젠더 갈등도 마찬가지다. 젠더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세대 갈등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마찬가로 젠더 갈등으로도 해결되지 않음을 조리있게 설명하고 있다.


서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그러한 점을 깨닫고, 우리를 여러 집단으로 갈라치지기 전에 먼저 인간임을,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인간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나의 문제 해결이 너의 문제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나와 너가 직면한 공동의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해결하려 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세대로 나뉘기 전에, 성별로 나뉘기 전에, 빈부로 나뉘기 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다. 인간이 겪어야 할 일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읽을 수가 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음을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양한 갈등의 사례가 언급되고 있지만, 결론은 이렇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만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의 말로 결론을 대신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다른 누군가에게서 가치와 필요를 얻고,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서로 의존하며 기대는 힘으로 강해지고 삶의 충만함을 느낀다. 대체로 우리에게는 거대한 것이 필요하지 않다. 사회에서 대단한 역할을 하며 칭송받을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서로의 세계가 되어줄 한 사람이면 우리의 삶은 유지된다.'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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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축약본) - 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여행
찰스 다윈 지음, 장순근 옮김 / 리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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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여행한 항해기를 축약한 책이다. 원문이 너무 방대해, 번역했을 때 읽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내용이나 비슷한 내용을 삭제하고 축약해서 다시 발간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 하면 다윈이라고 하고, 다윈이 진화론의 이론을 정립하는데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관찰한 핀치 새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정작 다윈의 항해기를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진화론을 주장한 '종의 기원'도 읽지 않았다. 그냥 과학시간에 배운 것으만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 다윈이 쓴 책을 직접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종의 기원을 읽기보다는 다윈의 항해기를 먼저 읽는 것이 다윈을 이해하는 좀더 쉬운 길이 아닐까 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항해기라서 일기라고 보면 된다. 물론 다윈은 학자답게 관찰한 화석들, 식물들, 동물들, 지형에 관해서 풍부하게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풍습까지도.


지금에는 쉽게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다른 대륙으로 가는 일은 모험을 동반한 일이었다. 그것도 몇 년씩이나 걸리는 여행이 될 수도 있었다.


다윈 역시 항해를 하는데 몇 년이 걸렸다. 오랜 시간 동안 남아메리카와 호주까지 돌아다니면서 많은 관찰을 했다. 그리고 그런 관찰이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다윈이 자신이 여행하는 곳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료를 모으고, 그것들에 관해서 깊이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이렇게 이 책은 다윈의 위대한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수집하고, 정리하는 모습. 그런 모습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윈은 박물학자라면 모름지기 여행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 박물학자에게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들을 여행하는 것보다스스로를 더 발전시킬 만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된다' (523쪽)고 하고 있으니.


종의 기원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다윈에게 다가가기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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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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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경쾌하다.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을 이렇게 가볍게 할 수가 있다니. 역시 가장 무서운 비판은 웃음을 동반한 비판이다. 정치인 중에 이런 비판을 가장 잘했던 사람이 고 노회찬이었지.


이 소설은 그렇게 고 노회찬의 웃음을 동반한 날카로운 비판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시작이 '태초에 가부장이 있었다'다. 


가부장제.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만, 아직도 가부장제는 공고하다. 소설은 '슬아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은 '할아버지'였다.'(7쪽)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다. 이 첫장을 제외하면 가부장은 나올 수가 없다.


가부장이 아니라 '가녀장'이 나온다. 딸인 이슬아가 집안을 이끌어간다. 출판사를 차리고 직원을 고용하는데, 직원은 달랑 둘이다. 바로 엄마인 복희와 아빠인 웅.


그렇다. 딸이 모부를 먹여살린다. (이 소설의 강점은 부모라고 하지 않고 순서를 바꾸어서 모부라고 한다.) 모부 역시 딸을 사장으로 여기고 자신들이 맡은 일을 한다.


복희는 살림을, 웅이는 청소 및 운전, 배달을 맡아 일을 한다. 살림을 맡은 복희는 정규직원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보수를 받는다. 가부장제에서는 상상도 못할 살림이 공식 노동으로 인정된다. 


이렇게 소설은 가녀장을 통해 소위 집안일이라고 하는 살림 역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족이 가부장이라는 위계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가녀장을 중심으로, 즉 일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가족 관계를 '서로에게 정중한 타인'(307쪽)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누가 누구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라 함께 하지만 존중받아야 할 타인임을 소설은 그들의 관계를 통해서 보여준다. 


'지구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무엇보다 좋은 팀이 되고자 한다. 가족일수록 그래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308쪽)


아마도 소설의 거의 마지막에 있는 이 표현이 새로운 가족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말이리라. 가족이 되기까지의 우연, 그리고 그런 우연을 통해 맺는 관계가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관계가 되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임을, 가부장이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가모장이라는 용어를 쓰는 대신, 가녀장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이기도 하리라.


이런 가족이 만들어가는 일상들이 소설에서 유쾌하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소설은 가족 관계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가족이 확장되면 사회가 되듯이, 가족이 겪는 일들이 사회적 사건들에서 동떨어질 수가 없다.


따라서 소설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모습들을 생각하게 한다. 무겁지 않게, 웃으면서 비판하는 그런 표현으로. 특히 '남의 찌찌에 상관 마'와 '혼란스러운 가부장', '헷갈리는 식탁 예절'은 가정에서 사회로 시야를 확대하게 해준다.


분명 무거운 주제인데 무겁지 않게 낄낄 웃으면서, 그렇지만 무언가 진한 여운을 느끼면서 읽을 수 있는 부분들이다. 


이렇게 소설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편의 '시트콤'을 떠올렸다. 이 소설을 대본으로 바꾸면 그대로 시트콤이 될 수 있음을. 


그냥 웃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웃음 뒤에 바꿔야 할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다. 가부장제에 대한 풍자소설이라고 해도 좋은 소설인데.


무엇보다도 이들 가족이 맺어가는 튼튼한 관계가 다른 인물들에게도 자연스레 녹아들어가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서 좋다. 


시도때도 없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하거나 찾아오는 미란이라는 친구의 모습에서,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지, 또 이것저것 안 해본 일이 없는 웅이가 살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타인의 처지가 되어본 사람만이 지니게 되는 삶의 기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자신의 관념을 저항 없이 수정해가는 복희를 작가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소설은 가족도 정중한 타인이 되어야겠지만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중한 타인이 되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유쾌, 통쾌, 상쾌라는 말이 통할 수 있는 소설.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만에 웃으면서 읽은 소설. 


우울한 마음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소설이었다.


덧글


재미있게도 이 소설에는 출판을 하면서 겪는 파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원고를 정확히 넘겼음에도 인쇄 과정에서 페이지가 뒤섞여 그것을 해결하는 내용. '책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기'


그런데 소설의 이 부분에서 어라, 이게 작가의 의도인가? 아니면 그냥 실수인가 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173쪽. 


'잘 몰랐으니까. 몰라서 무턱대고 씩씩하게 

수 있었다. 지금의 슬아는 그렇지 않다'로 되어 있는데, 씩씩하게와 수 있었다가 줄바꿈이 되어 있는데, 이 사이에 '할'이 들어가야 하지 않나? 


'씩씩하게 수 있었다'가 아니라 '씩씩하게 할 수 있었다'라고 해야 하는데, 이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정말, 이런 유머를 소설에서 구사하다니 하고 더 웃을 수 있을 테고, 작가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출판에 관한 부분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런 우연이 하면서 웃을 수 있으니, 이래저래 웃음을 유발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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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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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개인적인 체험을 보편적인 경험으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소설이 오랫동안 읽힌다. 소설을 읽으면서 작중 인물이 겪는 개인적인 체험이 자신의 삶 어느 부분과 일치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즉 개인적인 체험이 보편적인 경험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일이다. 오에겐자부로의 이 작품도 그렇다.


작가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이 작중 인물인 버드가 겪은 일들이 작가 오에겐자부로가 겪은 일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오에겐자부로는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작중 인물 버드로 하여금 소설 속에서 다시 개인적인 체험을 하게 하지만, 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경험을 안겨준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가 정상이 아니다. 수술에 성공해도 정상적으로(?) 살 수가 있는지 의문이다.


소설은 여기서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 버드는 아이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아이로부터 도피하고 싶다. 아이가 차라리 죽었으면 한다. 아이가 자신에게 준 비극을 받아들을 수가 없다. 그는 대학교 때 친구 히미코에게로 도피한다.


히미코와 함께 지내며 아이를 잊으려고 한다. 아니, 아이를 없애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 그것은 도피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이 도피의 끝은 자신의 망가진 삶뿐이라는 것을.


소설의 끝부분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아기 괴물에게서 도망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는, 속임수 없는 방법은 자기 손으로 직접 목을 조르거나, 아니면 받아들여 기르는 것, 두 가지뿐이야. 애초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거지." (271쪽)


이런 버드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삶에서 도피하고 있는지 또는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소설의 거의 끝까지 계속 도망만 치는 버드의 모습에서 고난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생각하게 된다.


불현듯 버드는 자신이 도망만 치고 있음을 깨닫는 듯이 보이는데, 이것은 그동안 그가 자신이 처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런 과정 속에서 고민하던 그가 그 고민을 떨쳐버리는 것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


그가 술이든 히미코든 관계없이 현실을 잊으려고,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그는 그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는데... 그런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현실과 마주서는 것밖에는 없음을 알게 된다.


그가 술을 토해내는 것과 히미코와 가기로 한 아프리카 여행을 포기하는 것이 바로 그렇다. 그렇지만 그가 받아들인 현실이 결코 녹록치는 않으리라.


소설은 그가 '인내'라는 낱말을 찾아볼 작정이었다(276쪽)고 끝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쉽지 않음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버드. 그는 긴긴 방황과 도피를 끝내고 이제는 현실로 돌아왔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바로 희망과 인내다. 소설은 이렇게 희망과 인내로 끝난다. 가능성으로 끝나는 것.


버드의 며칠이 어두운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아니다. 그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댈 때 만났던 젊은 불량배들을 대하는 모습과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는 불량배들을 대하는 모습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가 불량배들을 알아보지만 불량배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버드는 도피의 늪에서 빠져나왔던 것이다. 늪에서 빠져나왔다고 해도 그 길이 결코 평탄치는 않겠지만, 그 길을 똑바로 걸어가겠다는 버드의 의지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버드라는 [개인적인 체험] 속 인물이 겪는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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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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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아직 명나라에 여인들을 공녀로 바치던 시대. 공간적 배경은 제주도.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도 외딴 곳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곳. 


제주도에서 열세 명의 소녀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실종사건을 수사하던 민 종사관도 실종이 된다.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제주도에 오는 민환이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환이에게는 제주도에는 남겨두었던 동생 민매월이 있다.


도대체 왜 소녀들이 사라진 것일까? 누가 사건의 주범인가? 누가 환이와 매월을 도와줄 수 있는가? 두 자매를 중심으로 유선비라는 술주정뱅이와 문촌장과 죄인 백씨, 그리고 매월을 키워주고 있는 노경 심방. 촌장의 딸과 죄인 백씨의 딸. 환이의 고모, 제주 목사가 등장한다.


처음부터 환이는 난관에 봉착한다. 도대체 누가 범인이란 말인가? 단서는 없다. 그러다 하나하나 단서를 찾고 문제를 풀어가게 된다. 결국 범인을 찾아내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이, 그 전 나라였던 고려가 겪었던 여인을 공녀로 바쳐야만 했던 역사적 비극이 나타난다.


이런 비극을 힘을 모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제주 목사는 실종이 아닌 가출로 판단하고 수사를 하지 않고, 촌장 역시 손을 놓고 있는 상태. 


이것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태도이고, 이런 태도는 오히려 지배층에서 더 잘 나타난다.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딸을 대신 보내려는 사람들. 사건의 중간 쯤 가면 사라진 소녀들은 누군가의 딸을 대신해서 끌려갔음을 짐작하게 된다. 힘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딸을 지키기 위해서 저지른 일.


힘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못한다. 단지 힘있는 자들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륙이 아닌 제주도에서 소녀들을 구한다. 왜냐하면 지배층들이 자신의 딸을 대신하여 공녀로 보내려는 소녀를 내륙에서 구한다면 이는 사건이 공론화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제주도에서 소녀들을 구해 대신 보내려 한다. 


제주도. 내륙에 비해 차별을 받는 곳. 여기에 제주도 여인들은 더한 차별을 받으니, 이중 차별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하층민들의 삶은 더더욱 그렇다. 비밀을 밝히려는 소녀들은 죽음에 이르고, 이를 지배층들은 무마하기만 하고.


돈과 권력과 개인의 이익이 결탁했을 때 피해를 보는 사람은 하층민들이다. 이 하층민들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슬퍼하고 슬퍼하고, 좌절하기만 할 뿐.


그러다 환이가 등장한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문제를 알아가는 환이. 나라가 겪는 비극을, 힘없는 나라에서는 여인들이 더욱 수난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환이를 통해서 작가는 잘 보여주고 있다.


아름답게 태어났다는 사실이 죄가 될 수 있는 나라. 자신의 의지보다는 부모의 의지에 휘둘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인들. 환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살아왔던 환이.


환이의 세상은 아버지의 세상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실종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환이는 자기 세상을 만나기 시작한다. 자신과 비슷한 여인들이 겪는 어려움도 알게 되고. 


약한 자신을 의식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지만 옳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옳음을 포기하지 않는 길이 자신과 동생 매월이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고.


범인은 결국 지배층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제주도에서 지배층이라고 해야 내륙에서는 보잘것없는 직위겠지만, 그럼에도 제주도에서는 나름 돈과 권력을 쥐고 있다. 물론 제주 목사로 내려온 사람처럼 자포자기하는 관료도 있지만, 토착민으로서 촌장의 지위에 오른 자는 강한 권력을 쥐고 있을 수밖에 없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환이는 문제를 해결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사라진 소녀들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수사 일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일지를 써나가는 환이. 그런 환이를 도와주는 매월. 두 자매가 갈등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의지해가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다.


주체적인 여성으로 서게 되는 환이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은데, 그 과정에서 공녀라는 역사적 비극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한 비극 앞에서도 계층에 따라 비극의 강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캐나다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영어로 쓰인 소설을 번역했다고 하지만 번역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작가에 대한 소개가 없이 또 책 표지에 옮긴이를 밝히지 않았다면 그냥 한국에서 한국어로 출판한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매끄럽게 진행된다.


때때로 다른 길로 들어서는 환이의 모습에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단서를 해석하면서 사건의 본질에 다가갈 때는 응원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 같은 여성으로서 알게모르게 도와주는 다른 인물들을 통해, 약자들의 연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까지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사건 해결 후에는 환이가 어떤 삶을 살지, 주체로 서게 되는 환이의 모습이 후일담으로 나와 흐뭇한 마음으로 책을 덮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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