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으로 살다 - 짧지만 강렬하게 살다 간 위대한 예술가 30인의 삶과 작품 이야기
케이트 브라이언 지음, 김성환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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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활활 타오르다 어느 순간 사그러든다. 그렇지만 불꽃이 일었던 순간은 영원하다. 예술가들을 흔히 불꽃에 비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렬한 색깔, 뜨거움을 불꽃에서 느낄 수 있는데, 길게 가는 불꽃보다는 짧은 시간 타오르다 꺼진 불꽃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들의 삶은 불꽃과 같은데, 오랫동안 타서 사람들에게 빛과 온기를 전해주는 예술가도 있지만, 순간적으로 타올라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지속되지 못한 예술가도 있다.


특히 요절한 예술가들에게는 짧은 기간 동안 강렬한 예술활동과 작품들이 남아 있다. 이들의 강렬함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기도 하는데...


이 책은 요절한, 특히 50대에 이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다. 이들 중에 생전에도 유명하고 사후에도 명성을 유지하는 작가가 있고, 생전에는 유명했지만 사후에는 묻혀 있다가 다시 각광을 받는 예술가도 있다. 고흐처럼 생전에는 인정받았다고 할 수 없지만, 사후에 인정받은 작가도 있으니...


소개된 작가 중에는 처음 듣는 작가들이 많았다. 최근에 활동한 작가들임에도 요절했기에 아직 나에게까지 오지 않는 작가들. 또는 시대의 제약때문에 묻혀 있던 작가들,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폄훼되었던 작가들이 소개되고 있다.


단지 일찍 세상을 떴다는 이유가 아니라 그들 작품이 기억될 이유가 있으므로 소개하고 있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작품 자체도 훌륭한 작가들, 그들에 대한 소개. 그런 불꽃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줌으로써 더 많은 예술세계에 관심을 갖도록 해주고 있다.


이 중에 샤를로테 살로몬 편을 읽다가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살로몬이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작품 활동을 했듯이, 홀로코스트에 희생되었지만 자신의 일기를 남긴 안네 프랑크... 살로몬 역시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고, 그럼에도 자신의 작품이 기적적으로 남았다는 사연... 안네 프랑크의 아버지에게만 먼저 살로몬의 작품을 공개했다고 하니...


슬픈 사연인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작품이 남아 있으니... 이렇게 한 시대를 불꽃처럼 살다간 예술가들 이야기, 그것도 30명이나 되는 예술가들이 이 책에 있다.


덧글


읽다가 눈에 거슬리는 어휘가 있었는데... 고흐의 작품을 보존하고, 고흐를 알리게 한 사람...고흐의 처제 요한나 붕어르라고 (12,74쪽 등)나오는데, 요한나는 고흐의 동생 테오와 결혼한 사람이니, 제수(씨)라고 해야 하지 않나? 처제라는 말은 우리나라 호칭에 맞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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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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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소설과 추리소설, 그리고 사랑소설의 요소가 모두 갖춰진 소설이다. 어느 한쪽으로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전체적으로는 생태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동안 자연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아왔던가.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을 '자연인'이라고 경외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명화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경원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던가. 또한 자연에서 섭리를 배운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연이 관대하지는 않지만, 인위적으로가 아니더라도 자연은 죽고 삶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죽고 삶에 대해서 자연과 같은 관점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 다른 행동을 하는 소위 문명인이 자연에 들어오면 그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자연에서는 사랑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 죽음도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람들 관계에 적용하면, 생태와 추리와 사랑이 함께 어우러질 수밖에 없다.


소설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과거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오는 과거-현재-과거-현재의 구성을 택하고 있다.


이렇듯 소설은 두 시간이 교차하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 진행이 된다. 어린 시절의 카야와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는 카야. 


그 사이에 17년의 시간이 있다. 1952년에 엄마와 누나, 오빠들이 떠나고 아버지와 홀로 남게 되는 카야. 그러다 아버지마저 죽고. 


1969년, 한 사람이 죽는다. 그 사람을 살해한 용의자로 카야가 지목되고, 카야는 재판을 받게 된다. 1970년. 카야는 무죄 선고를 받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어릴 적 홀로 남겨진 소녀. 주민들에게 쓰레기 소녀, 마시(marsh:습지) 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던 소녀. 그런 소녀에게 글을 가르쳐 준 테이트, 또 생활을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흑인 점핑 가족. 그리고 카야는 모르지만 뒤에서 조용이 카야를 응원하던 사람들.


사회에서 격리된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연과 어울리는 일. 주변의 자연을 관찰하는 일. 엄마에게서 받은 그림 솜씨로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정리하고 그려내는 일.


이런 카야를 사람들은 쓰레기라고, 마시 걸이라고 부르면서 무시한다. 무시하면서 그냥 살아가게 하면 되지만, 남성적 욕망에 충실한 소위 문명인들은 카야를 가만두지 못한다. 외로움에 사람이 그리웠던 카야에게 다가와 카야를 이용했던 체이스. 카야가 거부하자 그를 겁탈하려고까지 한다. 겁탈에 실패했을 때 체이스가 생각하는 일은, 카야를 자신의 통제권에 두는 것.


자연에서 우두머리 수컷이 암컷들을 휘하에 거느리듯이 사회에서 인정받는(적어도 겉으로는) 생활을 하는 체이스는 카야가 자신을 거부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지속적인 위협. 카야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에서 카야는 답을 찾는다.


재판과정에서 묘사되는 검사와 변호사의 논증도 재미있게 펼쳐지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던 카야에게 그런 일은 너무도 고통스러웠으리라.


그들은 카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재판을 관람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하지만 카야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도 있다. 테이트, 그는 비록 한번 카야를 떠나기는 했지만, 다시 돌아온다. 돌아와 카야에게 인간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카야가 인간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흑인 점핑 부부에게서이다. 


나중에 점핑의 죽음에 이르러 카야가 점핑은 자신의 아버지였다고 하는 말... 이는 카야도 이제는 자연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카야의 눈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생명들을 만나게 되고, 카야의 운명을 통해서 인간이 자연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고, 그럼에도 테이트와 카야를 통해서 인간의 사랑이, 김남주 시인의 말을 빌면 인간의 사랑만이 줄 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재판 결과를 향해 가는 시간이 서로 교차하면서 흥미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 동안 카야가 살아온 삶들을 통해서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카야가 함께 지내려 하는 자연이 우리에게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다.


여러 특징이 융합된 소설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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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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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된 소설이다. 1950년대에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부터 70여 년 전에 이런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다니...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많은 작가들이 그려냈는데,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화성은 인간이 만약 생명체가 있다면 이 행성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비록 낯선 생명체는 우리와는 다른 형태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을 거라 표현한 경우도 있었고,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지만, 외계 생명체를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 작품들도 있었다.


이 작품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화성에 생명체가 있고, 지구와 교류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몇 번이나 화성에 로켓을 보내 탐사하지만 실패를 한다. 그러다 화성에 인간들이 이주해 살기 시작하고, 그 인간들이 화성에서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연대기란 제목을 달고 있듯이, 1999년에서 시작하여 2026년에 끝난다.


오래 전에 쓰인 소설이라 우리가 지나쳐 온 시기와 아직 도달하지 않은 시기가 소설에 겹쳐 나오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화성에 인간을 보내지 못했다. 화성 이주는 여전히 비현실이다. 비록 화성에 우주인들이 가서 지내다 겪는 모험을 다룬 '마션'이란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화성은 아직도 미래형이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화성에 인간이 이주해서 살고, 화성에 살던 인간들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화성인이 감염병으로 많이 죽어나가는 장면은 지구상에서도 많이 벌어졌던 일이고, 화성인을 적으로 여기던 일도 신대륙(?)에 도착한 서구인들이 했던 행동과도 비슷하지만... 한 가지는 화실히 다르다.


화성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 지구인에 비해 결코 열등하지 않다는 사실... 이 점이 소설 도처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들은 지구인의 마음에 남아 있는 존재로 자유자재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지구인을 화성에서 살지 못하게 하기도 하는데...


소설의 끝부분에선 인간의 가족으로 여겨지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나중에 이들은 화성인으로 바뀌게 된다. 결국 화성에는 지구인은 없게 된다. 지구가 전쟁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지구로 돌아간 인간들도 있지만, 이 화성에서 인간은 결국 사라지게 된다.


이는 화성이란 행성은 화성인들이 살아가는 행성이지, 인간이 또다른 식민지 개념으로 지구인을 정착하게 하고, 화성인을 몰아내서는 안 되는 행성이란 말이기도 하다.


평화롭게 공존하면 좋겠지만, 소설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 편에서 나오고 있다.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대등한 존재로 여기고 대등하게 대우해야 하는데, 화성은 지구인이 이주해서 살아가야 할 행성이라는 관점에서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다.


이는 화성을 지구로 옮겨도 마찬가지다. 국경선을 긋고 이주가 자유롭지 못하며, 서로가 서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아닌가. 이 좁은 지구라는 곳에서도 그런데, 우주로 범위를 넓힌다고 달라지겠는가.


처음부터 화성인이 등장해서, 화성인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이다. 중간중간 인간이 나오지만, 그 인간들이 화성에서 몰락해 가는 과정이 표현되어 있다.


짧은 소설들이 묶여 있는데, 연대기 순으로 짜여 있어 읽어가면서 흐름을 느낄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화성을 배경으로 한, 외계인이 등장하는 소설임에도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화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지금, 과연 우리는 화성에 가게 되면 어떻게 살게 될까? 어떻게 지내는 것이 좋을까를 이 소설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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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 이름앤솔러지 1
오준호 지음 / 생각과느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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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에는 '자유'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오죽하면 대통령 연설에 자유가 몇 번이나 나왔는지를 세어 발표하기도 하겠는가? 


자유는 중요하다.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속박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유가 남을 착취할 자유, 또는 굶어죽을 자유여서는 안 된다. 자유는 평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강자의 논리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평등이 자유와 대립되는 개념이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도 있지만, 평등과 자유는 같은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다. 평등과 자유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가는 개념이다.


자유 없는 평등 없고, 평등 없는 자유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러니 자유란 말이 넘치는 이 사회에서 우리 평등이란 말도 그만큼 넘쳐나도록 하자.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작은 책에서는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1장에서 6장으로 나아가는데 동심원을 그리듯이 점점 더 평등의 개념과 내용을 확장해가고 있다.


1장은 불행 배틀 시대, 평등의 의미를 묻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불행 배틀은 경쟁으로 바꾸어도 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경쟁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기 때문에 남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


다만, 경쟁에서 진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져서는 안 된다. 경쟁은 서로가 발전하기 위해서, 서로가 행복하기 위해서 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경쟁이 서로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런 경쟁사회는 지양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치열한 경쟁, 승자독식주의로 흘러가고 있으니, 경쟁에 대해서 다시 물어야 한다. 경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경쟁을 공정하게 하자고 하는데, 공정에 대한 개념이 또 문제가 된다.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2장으로 넘어가면 평등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 평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평등이냐다. 형식적 평등이냐, 실질적 평등이냐를 묻는다.


우리는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3장, 평등한 시민들, 공정한 분배를 말하다로 넘어간다.


공정한 분배,,, 이것, 산수처럼 딱 1/N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분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공정한 분배다.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과 육상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똑같은 선에서 출발한다고 하면 그것이 공정일까? 아닐 것이다. 신체적 특성에 따른 출발선의 차이. 그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공정한 분배란 환상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공정한 분배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자연스레 4장으로 넘어간다.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여러가지 제도들이 마련이 되고,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져 왔다.


이 장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바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 '평등한 시민들의 공정한 분배는 '차등의 원칙'을 포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차등의 원칙을 단순히 호소하는 정도를 넘어 제도로 만들어야 합니다.'(104쪽) 


이 차등의 원칙을 지킨다면 당연하게 5장에서 이야기하는 능력주의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하게 된다.


능력주의는 결코 평등이 아니다. 능력에 따라서 대우를 받자는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기회가 제공되고, 과정이 공정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말은 형식적으로 누구나 똑같은 기회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면 '지역균형주의'라든가, '소수자 우대'는 불평등하다고, 능력주의에 반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니다. 자신이 발휘하는 능력이 오로지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능력은 다르게 발현된다.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능력주의를 숭상하게 되면, 그 사회는 차별이 공고화되는 사회가 된다. 자, 능력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6장이다. 한 걸음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장에서는 기본 소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적어도 생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기본 소득이 주어지는 사회. 그래서 저자는 '먼저 능력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추가 소득을 준다'(174쪽)는 분배 정의에 관한 통념을 '기본 소득으로 삶을 보장하고 더 일한다면 추가 소득을 올리게 한다'(175쪽)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기본 소득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있는데, 기본 소득이란 말을 기본 배당이라는 말로 바꾸자. 공유 자원은 누군가가 독점하고, 거기서 나오는 소득을 자신만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공유 자원에서 나오는 소득은 모두가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생각.


그러니 이는 소득이 아니라 배당이라고 해야 한다. 공유 자원의 정당한 배당. 우리는 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구에서 나오는 이익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배당받을 권리가 있고, 그런 배당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 좀더 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등은 나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평등은 나와 남을 우리라는 관점에서 함께 생각해야 한다. 결국 다른 존재를 헤아리는 마음이 평등인 것이다.


이렇게 평등이 실현되면 개인의 자유는 더 커진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자유가 더 크게 보장되고,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자유가 제약을 받는다.


'자유, 자유'하는 이 시대,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도 우리는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헤아리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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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이유와 그 연결에 숨어 있는 놀라운 과학
톰 올리버 지음, 권은현 옮김 / 브론스테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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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목이 영어 제목과는 좀 다르다. 영어 제목은 THE SELF DELUSION인데, 이것은 자아라는 환상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자아'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요소 아니던가. 그런 자아를 강조하다 보면, 개인에 매몰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고립되어 있지 않다. 개인은 개인이 아니다. 개인을 홀로 존재하는 자아라고 한다면, 그런 자아들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 점을 내내 강조한다. 자아가 환상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수많은 관계 맺기를 통해서 존재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주에서부터 미생물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글 제목은 영어 제목을 풀이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너무도 거대해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중 어느 연결이 끊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지점에서 연결이 끊긴다면 자신이 지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환경에 들어설 수 있다.


너무도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너무도 길고 방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공간이 모두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연결을 잊고, '자아'라는 환상에 갇혀 살기도 한다. 연결의 끊김이 바로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음도 인식하지 못하고, 연결을 되살리는 쪽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오로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과학기술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는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지낼 것을 이야기한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결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런 연결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삶은 자연과 우주와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사는 삶이기도 하고, 또한 '나'라는 몸으로 국한시키더라도 내 몸에도 수많은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최근 과학이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인 중심주의에서 연결성을 중심에 놓는 사고와 행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느 한 나라만 잘 살아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을 저자는 실과 천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실의 삶에서 벗어나 천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자아정체성의 범위가 넓어지고, 자신이 하나의 실이라던 인식에 머물지 않고 전체 천의 웅장함을 볼 수 있게 관점이 바뀌면서, 우리는 모든 인류의 더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노력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291쪽)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관계가 바로 인간이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을 사회적이라는 말로 한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사회뿐만이 아니라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고, 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 우리가 그런 인간이란 생각을 지닌다면 개인에 매몰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우리는 인간이다. 사람 사이... 아니 모든 존재 사이. 즉 이 사이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의 끈을 만들며, 또 서로 엮여 살아가는 존재.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실들이 모여 이룬 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올이 나가면 천도 망가진다. 다른 실들이 온전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연결된 세상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살아야 하는 세상. 이때 우리는 인간만이 아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 보이지 않는 존재부터 볼 수 없는 존재까지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연결되어 살아감을 이 책의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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