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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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소설이 최근에 많아졌다. 어떤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가고, 위로를 받는 그런 소설들.


일본 소설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우리나라 소설로는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와 [책들의 부엌], [불편한 편의점] 등이 그렇다.


이 소설 역시 그렇다. 츠바키 문구점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른 소설들이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있다면 이 소설은 문구점 주인인 포포가 자신이 하는 편지를 대필해주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마저도 치유한다는 데서 차이점을 보인다.


그만큼 편지란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편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물론 내용이겠지만, 내용만큼이나 글씨 역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츠바키 문구점에 들러 편지를 대필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을 읽은 포포는 그 사람의 마음을 편지에 오롯이 담으려 한다.


감정이입. 포포는 그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 사람이 되어 편지를 쓴다. 단순히 대필이 아니라 그 사람이 되어 마음을 전달하는 일.


편지는 그런 역할을 한다. 또한 편지는 즉각적이지 않다. 동시성이 아니라 시간의 차이가 편지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다.


자신이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상대에게 가 닿는 시간이 꽤 걸린다. 이메일로 전송하면 거의 즉시 상대에게 도달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시간의 차이만큼 편지는 쓰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시간을 준다. 


그런 편지가 이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데, 빨리빨리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느긋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손으로 편지를 쓰면서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그런 마음이 편지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을 하는데...


이제는 거리에서 우체통도 찾기 어려워졌으니, 편지를 쓰는 일이 더욱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 소설은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잔잔한 물결, 또는 부드러운 바람이 몸을 감싸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포포를 따라가면서 마음을 다독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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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프랑스 -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 / 더블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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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좋다. 미술관을 빌려준다는. 그림을 빌려주는 경우는 있지만, 미술관을 빌려준다? 어떻게? 사실 미술관을 빌려줄 수는 없다. 고정된 건물을 이동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동할 수 없는 미술관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는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구글에서 미술관을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책을 통해서 미술관을 우리 앞으로 가져온다.


자, 이제 미술관을 친절한 안내에 따라 관람하면 된다. 선인들이 책 속에는 모든 것이 있다고 했는데,미술관까지 빌려올 수 있으니, 그야말로 책에는 없는 것이 없다. 


이 책은 프랑스 편이다. 프랑스 미술관이 한둘이 아닐테지만, 그 중에서 우리에게 소개할 만한 미술관을 빌려주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셰 미술관, 지베르니 정원과 오랑주리 미술관, 로댕 미술관. 이렇게 네 곳을 소개해주고 있다. 소개가 아니라 그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친절한 도슨트와 함께 미술관을 걷는 느낌을 준다. 루브르 박물관을 다 돌 수는 없으니, 안내에 따라 구경하면 된다.


광대한 루브르 박룸관을 어떻게 관람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먼저 읽으면 좋겠다. 관람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동선까지도 계획하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리 책을 통해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으니, 책을 통해 만난 작품을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다면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박물관 관람. 설명과 더불어 하는 관람은 눈을 즐겁게도 하지만, 뇌도 즐겁게 한다. 그만큼 미술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살리고 있다.


이제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보았다면 철도역을 고쳐서 만든 오르셰 미술관에 가면 된다. 이 오르셰 미술관은 어떤 미술 작품으로 유명할까? 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인상파 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


인상파의 역사를 이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인상파 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밀레와 바르비종파 화가들도 만날 수 있고, 마네, 모네, 드가 등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모네를 따로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지베르니 정원. 모네가 말년에 살았던 곳.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수련 그림들.


그림을 떠나 조각을 만나고 싶다면 로댕 미술관이다.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 또 그곳의 정원이 아름답다고 한다. 책으로 보아도 좋지만, 실제로 보면 더 좋을 것이라고 하니 프랑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곳들을 여정에 넣어도 좋겠다.


멀리 가기 힘든 사람. 특히 프랑스는 우리나라에서 가려면 힘이 든다. 시간과 비용, 체력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힘든 사람들, 이 책을 통해 미술관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


적어도 나에겐 좋았다. 미술관을 빌려준다는 말답게,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작품들에 대한 설명도 좋았고. 그동안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잡아주고 있어서 지식 면에서도 도움을 받게 된다.


이런저런 것 다 떠나서 그냥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들만 봐도 좋다. 별다른 생각없이 작품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미술관 관람 아닌가.


그러니 그냥 이 책에 나온 그림들을 찬찬히 보아도 좋다. 거대한 미술관을 작은 책 안에 담아서 우리 눈 앞으로 끌고 왔으니 말이다. 이처럼 이 책은 눈이 행복해지고 뇌가 편안해지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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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함께하는 삶 - 사람과 동물이 공유하는 감정, 건강, 운명에 관하여
아이샤 아크타르 지음, 김아림 옮김 / 가지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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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함께 하는 삶.


공감이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 때 동물과 교감을 하기 쉽다는 사실은 '샬롯의 거미줄'이란 동화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관찰해도 알 수 있다.


많은 아이들은 동물과 대화를 한다. 그리고 동물과 함께 있으면서 정서 안정도 얻는다. 그런 모습이 과연 아이들에게만 해당할까?


이 책은 아니라고 한다. 동물과 교감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은 아이고 어른이고 마찬가지다.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동물과 함께 하면서 얻는 경우가 많다.


자, 이 경우를 보자. 태풍이나 허리케인 또는 지진과 같은 재난상황이 닥쳤을 때 함께 지내던 동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구조대원들은 동물을 외면하고 사람만을 구하려 한다. 동물을 구할 여력까지는 없다고 하면서. 그런데 동물과 함께 피난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 또다른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또 가정폭력을 겪는 사람들이 대피소에 가지 않는 이유가 자신과 함께 사는 동물에게 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자신만 대피소에 가면 함께 있던 동물이 학대를 당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그 동물과 함께 남아 있기를 선택한다고...


이 두 경우의 해결책은 힘들지만 단순하다. 사람을 구조할 때 동물도 함께 구조할 방법을 훈련하면 된다. 또한 대피소에 동물도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된다. 비록 쉽지는 않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밖에 군대에서의 폭력으로 겪는 트라우마 문제도 동물과 함께 지냄으로써 심신의 안정을 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 폭력적인 심성을 지니고 그를 행동으로 옮긴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도 교도소에서 동물을 함께 지내게 했을 경우 재소자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온다.


그렇게 동물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이것이 바로 공감의 힘이다. 그 점을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상에 아름다움과 친절함, 웃음을 선사한 이런 사람들이 나를 구한다. 그들이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구할 것이다.' (266쪽)


'공감능력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우리는 서로 공감하면서 신념과 자신감, 용기가 생긴다.' (311쪽)


이 점을 거꾸로 살피면 동물학대는 살인으로까지 가는 경우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폭력에 대해서 둔감해지기 때문인데, 자신이 동물학대를 하지 않더라도 동물을 죽이는 도살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트라우마는 물론 폭력성을 노출하기도 한다고 한다.


동물학대나 도살장에 근무할 경우, 그 동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합리화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동물에게 해를 끼칠 때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고자 자신의 공감능력을 짓밟는다. 우리는 이런 공감이 약점이라 여기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하지만 문제는 공감능력이 실제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죽였다고 여겼지만 아직 살아 있는 잡초처럼, 공감능력은 우리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뿌리를 내린 채 다시 모습을 드러낼 시기와 장소를 기다린다.' (248쪽)


'슬픔과 절망, 트라우마는 전염된다.' (262쪽)


이 책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언젠가는 트라우마로 드러나게 되니, 동물학대를 하지 못하도록 사회가 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지금 동물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 가족을 학대하는 경우는 범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학대를 막는 길이 바로 공감이며, 동물에 대한 공감능력을 높이고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동물학대만이 아니라 사회를 폭력으로부터 막는 방법이 된다.


'모든 학대는 공통점을 지닌다. 학대는 침묵 뒤에 숨는다. 침욱을 깨고 목소리를 내야만 그것은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낸다.' (311쪽)


저자는 동물과 함께 하면서 그 동물로 인해서 자신이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동물과의 공감이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부당한 일에 저항할 수 있게 했으니, 이것이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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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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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검은 혈액이라 부른다고 한다. 피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사실 커피만큼 많이 마시는 음료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커피집을 찾기가 너무도 쉬우니 말이다.


온갖 이름을 달고 있는 커피집들... 외국에서 들어온 커피집부터 자신이 내린 커피를 파는 커피집까지 너무도 다양하다. 그리고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요즘은 청소년들도 자연스레 커피를 마시니 커피 소비량은 더 늘 수밖에 없다.


이런 커피가 어떻게 등장했고, 또 세계사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 책의 저자는 살펴본다. 아랍에서 처음에 정신을 각성시키는 음료도 등장한 커피가 서양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경위를 살펴보고, 세계사에서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도 알려준다.


우선 아랍 무슬림 중에서 수피교도들에 의해 커피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기도를 할 때 졸지 않기 위해서 마시는 검은 액체... 이를 처음에는 검다고 해서 석탄과 비슷하다고 여길 수도 있었으나 (꾸란(코란)을 살펴보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는 꾸란에는 '석탄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규정한다-56쪽'고 나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무슬림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와인(술)도 아니고 석탄도 아닌 다른 종류의 음료여야 했다. 이때 찾아낸 것이 바로 '잠잠성수(매카의 카바신전 옆에 있는 신비한 우물물-32쪽)'라는 말이다.


신비한 물, 커피를 검은 잠잠성수라고 해서 합리화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커피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커피는 아라비아 상인들과 함께 전파되었다.


영국에서는 공론화의 장으로 커피하우스가 기능하였지만, 어느 순간 커피하우스는 사라지고 홍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커피하우스가 여성을 배제했기 때문에 더 확산이 될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주장을 한다.


반면에 같은 공론장의 역할을 커피하우스가 했지만 프랑스에서는 계속 확산된다. 이는 여성을 배제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혁명과정에 커피하우스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데 기인하기도 한다고 한다.


여기에 군대에서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커피를 이용하기도 했고, 뒤늦게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한 독일이 커피를 확보하기 위해서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고 아프리카 주민들을 어떻게 혹사했는지도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1차세계대전 때도 커피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브라질에 독일에 맞서게 되는 것도 커피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커피는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식민지를 겪었던 나라들이 독립을 이룬 뒤에도 서양에 커피를 공급하기 위해서 단작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이런 경제구조가 그들을 계속 힘들게 했음도 다뤄주고 있다.


이렇게 커피는 세계사에 등장한 이래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무엇보다도 공론장의 역할을 커피하우스가 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 커피집들에서는 누군가와 토론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각자 조용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의 대화 역시 그들만이 공유하는 사적인 대화라고 할 수 있지, 사회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다른 사람들의 참여를 이끄는 공론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제 커피집의 역할은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는 많이 소비된다. 우리나라도 커피를 재배하고 있는 지역이 있지만 아직도 많은 양의 커피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 세계 무역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음을 기억해야 하는데...


내가 마시는 한 잔의 검은 혈액, 커피. 그 커피와 관련된 세계 역사를 알면 내가 마시는 커피가 달리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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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나라 지혜의 시대
노회찬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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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다.


이제 우리나라 정치에서 볼 수 없는 사람.


자기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했던 사람.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자신에게는 큰일이라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 


더 우리 곁에 있어야 했는데, 할 일이 아직도 많았는데, 자신이 지닌 엄격한 잣대를 굽힐 수 없었던 사람.


그 사람이 생전에 한 강연과 류시민, 이정미의 추도사, 그리고 안재성의 노회찬 약전이 묶여서 책으로 나왔다. 오래 전에. 그러고보니 그가 세상을 떠난 해가 2018년이다. 


노회찬이 세상을 뜬 그 해에 책이 나왔는데, 그때는 노회찬을 잃었다는 생각에 책이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망설이지 않았다. 집에 노회찬이 한 말을 모아놓은 책이 한 권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 생각에.


'촛불 대, 정치는 우리 손으로'라는 주제로(19쪽) 그가 강연한 내용이다. 이 말을 '우리가 꿈꾸는 나라'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꿈을 꾼다. 단지 꿈만 꾸지 않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움직인다.


직접민주주의를 하기 힘들다고 다들 말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집단 생활을 하는 사람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직접민주주의가 안 된다면  대의민주주의를 통해서라도 꿈을 실현시키려 한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대의'에 있다. 내 의사를 대변해줄 사람. 


내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의사를 대변해서 의회에서 주장할 수 있고, 그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 의회에 있는가? 수많은 비리에도 끄떡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 눈에 있는 티끌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의원들. 그런 의원들이 자꾸 언론에 언급이 되는 이 현실.


그런 의원들을 보면서 과연 이 의회가 우리의 꿈을 대신 실현시켜 주기는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의구심을 갖는다. 


국민 숫자에 비해 의원수가 적다고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들이 왜 의원 숫자를 늘리는데 반대하겠는가? 이들이 지금까지 해온 행태들을 보면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해서 국회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회에서 활동을 한다. 그러니 누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안에 대해서 찬성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노회찬을 다시 떠올린다. 그와 같은 국회의원들이 많았다면, 아마도 국민들은 국민 수에 비해 국회의원이 적다고, 숫자를 늘리자고 먼저 나섰을 것이다.


그가 한 말을 몇 가지 인용해 본다. 지금도 유효한, 아직까지도 우리가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과제들이 아닌가 싶다.


'저는 촛불시대의 과제를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의 정착으로. 이 세가지가 우리에게 떨어진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40쪽)


'촛불이 우리에게 부여한 역사적 과제인 불공정의 해소, 그 첫걸음은 법원과 검찰을 개혁하여 권력층에 대한 봐주기 수사와 처벌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55쪽)


'불평등의 해소란 바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것, 일자리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한 만큼 제대로 받는 것 그래서 모두가 스스로 노동해서 먹고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66쪽)


'전쟁도 불사하자는 주장은 나라를 망가뜨리자는 것일 뿐 보수하는 이름으로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합니다. 평화란 의견이 갈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85쪽)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국민과 지방에 나눠주는 일, 이것은 정치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민의 권한이 커질수록 정치인들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02-103쪽)


이 말들, 지금도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말들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일들이니까. 그가 갔지만, 그가 간 이후로 과연 그의 주장을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아니,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우리가 못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국민의 권한이 커질수록'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국민의 권한이 쪼그라들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인다.


그가 한 강연집, 그리고 그를 추모하는 글들을 읽으니, 우리나라 현실에서 노회찬 같은 정치인이 있어야 함을, 그가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안재성이 쓴 노회찬의 약전에서 그가 죽음을 선택한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노회찬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동안 그가 해왔던 활동들을 생각하며 안재성이 한 이 말에 동의한다.


'나는 그를 이중 잣대를 허용하지 않았던 원칙주의자이자 가장 높은 자존심을 가졌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 ...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일조차도 극도의 수치감을 느끼는, 수치스럽게 사느니 죽음을 택한 자존심 강한 사람으로 말이다.' (166쪽)


덧글


빅이슈 300호를 읽다가, 빅이슈에 실린 글을 보면서 노회찬 그를 만났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을 기념하여 열린 제 1회 프라이드 갈라에서 첫번째 수상자로 그가 선정되었다는 사실. 올해 3회가 열렸다고 하는데,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 자리에 그가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1회 수상자였음에도 그때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던 그. 그가 남긴 발자취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이번 빅이슈를 통해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


관련기사를 링크한다.

서로 달라 행복한 세상, 제1회 프라이드 갈라 개최 - 뉴스프리존 (newsfreezone.co.kr)

(빅이슈 300호. 80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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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6-14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운 죽음이었죠!ㅠㅠ

kinye91 2023-06-14 16:16   좋아요 2 | URL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요즘 정치판을 보니, 그가 더욱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