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순환을 멈춘 똥


똥을 보면 건강을 안다고 했는데

똥을 본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변기에 앉아 온갖 힘을 다 주어

몸 속에서 밖으로 내보내기만 하고

밖에 나온 똥을 내 눈으로 다시 보며

이별의 말을 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내 몸에 들어온 목숨들이

내 목숨을 살리고

다시 다른 목숨을 살리려

변신해 밖으로 나오는데

이제는 갈 곳이 없어

오로지 버려질 뿐

새 생명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그냥 쓰레기가 되는 똥

순환이 멈춘 시대

이런 시대

아무 거나 막 집어넣어

버리고 마는 시대

순환이 멈춘 시대

윤회를, 천국을 믿지 못하는 시대

현재를 막 살아가는 시대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순환을 믿지 못하기게

그렇게 살아가는 시대

변기에 차 있는 똥을 보며

순환이 멈춘 우리 삶을 생각하는

더 이상 강아지똥˚은 없는 시대

순환이 멈춘 시대

 

 

˚강아지똥 : 권정생 선생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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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세밑 원숭이와 닭의 대화

- 병신(丙申)년이 가고 정유(丁酉)년이 오니


자네도 참 억울하겠어

자네와 발음이 비슷한 ‘닭’이

나라를 뒤흔들어 놓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게 됐으니

그 ‘닭’이 사고는 제가 치고

저는 쏙 빠져나가려 해

내가 분신들과 함께 광장에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여의봉을 들고

하나가 되어 세상을 밝히고 있지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지

하지만 저 ‘닭’은 귀를 막고

차벽으로 우리의 발을 막고 있지

이제 우리 해가 가고 자네의 해가 오는데

자네들은 어둡고 추운 땅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려는가


아닐세, 우리가 비록 독감에 걸려

비명횡사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본디 새벽을 알리는 족속,

알을 낳는 족속

세상이 흉흉할지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네

‘닭’이 암탉 망신을 다 시켰다지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이 흥할 알을 낳는 것이라네

수탉이 울면

새벽이 왔음을,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네

비록 우리 지금 힘들지라도

자네들이 밝힌 촛불이 환한 대낮을 만들도록

우리 목청껏 울으려네

‘닭고집’이 더 이상 고집 피우지 않고

밝고 따뜻한 세상이 오게

그렇게 마음껏, 목청껏 울어보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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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바로 나


경어인(鏡於人)

나를 성찰하려면

다른 사람을 보라.

그 사람이 바로 나이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니

나와 관계 맺는 사람

그들이 곧

나임을 깨달으면

남 잘못이

바로 내 잘못임을


경어인(鏡於人)

이 세 글자는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세상 사람은

일곱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이 되니,

이 세상

망가짐은

바로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


경어인(鏡於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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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피었던 꽃이 겨울에 다시 피다

 

봄에 피었던 꽃이

가을에 겨울에 다시 피었구나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던 꽃이

뜨거운 열기를 전해주러 다시

광장 한복판에 피었구나


발갛게 세상을 밝히던 꽃이

세상이 더위에 헉헉거릴 때

땅 밑에 그 열기를 담아두고

세상이 추위에 덜덜 떨 때

다시 길가에 피어나는구나


4월의 바다 속에서

5월의 함성 속에서

6월의 승리 속에서

다시 우리 곁에 온

밝음과 뜨거움을

우리가 어깨를 걸고

손에 손을 잡고 피우고 있구나


세상이 얼어붙을 때 다시

세상을 녹이려 하는구나


봄에 피었던 꽃이

겨울에 다시 피는구나


꽃은 

겨울을 위해 졌던 거구나


겨울에 우리들 손에서 피어나려고

그 화사했던 봄에

졌던 거구나


이렇게,

겨울 광장에 밝고 따스한

꽃으로 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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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둘기, 인간

 - 도심 공원 산책 3


신의 분노로 세상이 망망대해

인간이 절멸한다는 절망에 빠졌을 때

멀리멀리 날아갔다 와 희망을 심어준

비둘기가, 

인간이 저 잘살자고

숲을 밀고 제 집을 지을 때

날아갔다 돌아올 집을 잃고 헤매던

비둘기가, 

도심 공원에 안주해

인간이 남긴 부스러기들을 주워먹으며

이젠 날기도 귀찮은지

뒤뚱뒤뚱 공원을 거닐며

뭐 떨어진 것 좀 없나

두리번거린다.

이제는 새라고 할 수 없는

날기보다는 걷기를 좋아하는

닭둘기가 되어버린

비둘기가


그런데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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