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큰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늘 남 앞에 나서면서 살 수도 없다. 남 앞에서 큰소리치고, 큰일을 한다고 하고, 앞서가는 사람들만 있는 세상이 과연 행복할까?


  세상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더 잘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마다 제 목소리를 내는 세상에서,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너희들이 뭔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핍박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핍박을 하는 사람들, 저들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면서... 남들, 그것도 꼭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들에게는 내지 말라고 하고 있는 현실.


저마다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사는 세상. 드러내지 않아도 제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세상. 또 티나지 않아도, 별로 세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도 그냥 자신은 해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는데... 이미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들 소리만 더 잘 들리는 세상은 아닌지 그런 의구심이 드는 요즘이다.


비행기... 인류가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준 도구. 세상을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엮이게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기구.


하루면, 적어도 24시간 내외면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가 있게 된 세상에서, 그 비행기로 인해 지구는 얼마나 힘들어졌을까 생각도 하는데...


비행기 타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사람도 있는데... 굳이 비행기만이 아니더라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생각하면서, 그 피할 수 있는 피해는 피하려고 하는 삶을 살아가려 노력할 뿐. 함민복 시집을 읽다가 '하늘길'이라는 시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하늘길


비행기를 타고 날며

마음이 착해지는 것이었다


저 아래

구름도 멈춰 얌전


손을 쓰윽 새 가슴에 들이밀며

이렇게 말해보고 싶었다


놀랄 것 없어 늘 하늘 날아 순할

너의 마음 한번 만져보고 싶어


새들도 먹이를 먹지 않는 하늘길에서

음식을 먹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나라 가는 길이라

차마, 하늘에서, 불경스러워, 소변이나 참아보았다


함민복,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 2013년 초판 7쇄. 98쪽.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착한 일...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으면서... 오월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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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일 민족이라는 말이 옛날 말이 되어가고 있다. 다문화란 말이 자주 들리고, 이제는 어디에서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냥 외국인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이 된 사람들.


  그러니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다. 하긴 단일민족이라는 말도 엄밀하게 따져보면 우리나라 과거에도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음이 역사적 사실이니...


  하지만 아직도 단일민족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물론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핏줄을 의미하지만, 어디 민족의 개념이 핏줄로만 규정되는 개념이던가.


  오래간만에 재미 있는 시집을 만났다. 이동순이 쓴 [신종족]. 그렇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들이 현대에 들어서 수도 없이 생겼다. 한때 이들을 신인류라고 일컫기도 했지만, 신인류라는 말로 뭉떵그릴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신인류를 좀더 세분하면 바로 이 시집에 나오는 '신종족'들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신종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신종족이 있는지, 이 시집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읽으면서 나는 이 시집에 나온 어느 종족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하면, 당신은 또다른 종족이다.


이렇게 많은 종족들이 살아가는 사회, 다문화 사회를 넘어 다민족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다민족이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다종족 사회라고 하면 되겠다. 


이 시집을 읽으며 다양한 종족들을 만나보자.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명심하자. 어떤 종족들이 나오는지, 이 종족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한번 시험해 봐도 좋을 듯하다.


'~족'이라는 제목을 달지 않은 시가 '혼족 스타일 (이 시 제목에는 혼족이 들어가니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압구정 풍경(한때 오렌지족들의 삶터였던), 이불 밖은 위험해, 소확행' 이렇게 4개의 시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혼족, 혼밥족, 혼술족, 포비아족, 솔로족, 박쥐족, 빨대족, 니트족, 코쿤족, 캥거루족, 싱크족, 딩펫족, 골드앤트족, 뷰니멀족, 딩크족, 웰빈족, 거품족, 키덜트족, 홈루덴스족, 히키코모리족, 오팔족, 미스터리족, 프리터족(두 번 나온다), 갓수족, 반디족, 김포족, 베짱이족, 메뚜기족, 유턴족, 노노족, 점오배족, 둥지족, 면창족, 새벽닭족, 눈팅족, 몰카족, 파라치족, 악플족, 철퍼덕족, 된장녀족, 고스족, 폭주족, 좀비족, 오렌지족, 댓글족, 먹튀족, 스킨헤드족, 스몸비족, 쉼포족, 통크족, 에스컬레이터족, 엄지족, 쿼터족, 펌킨족, 귀차니스트족, 줌마렐라족, 한류족


에고, 족들도 만다. 이렇게 많은 종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다양성이 판치는 사회, 이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사회다. 이 많은 종족들이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족들은 함께 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다양성의 사회라 할 수 있다. 각자 따로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


그 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가 이 시집 첫번째에 실린 시다. 바로 '혼족'


  혼족


세상은 점점

고립이고 단절이다

어머니 뱃속에서도 홀로였고

살다가 죽을 때도 혼자다

가족 학교 직장

사회 조직들과 공동체 많고도 많지만

모두가 혼자 아닌 척

잠시 모여 있을 뿐

뿔뿔이 흩어져 혼자가 된다

혼자 살면서도

외로움 타지 않고

씩씩하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혼족을 본다

혼자 노는 혼놀족

혼자 밥 먹는 혼밥족

혼자 술 마시는 혼술족

혼자 설 명절 보내는 혼설족

혼자 캥핑하는 혼캠족

혼자 여행 다니는 혼여족

혼자 공연 보러 가는 혼공족

혼자 카페에서 책 읽는 혼독족

혼자 커피 마시는 혼커족

혼자 호텔에 머무는 혼텔족

혼자 맥주 마시는 혼맥족

혼자 영화 보는 혼영족

만국의 혼족들이여

단결하라


이동순, 신종족. 시와에세이, 2021년. 13-14쪽.  


자, 이 많은 혼족들이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라고 한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을 빌려온 마지막 말이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이 다양한 종족들도 함께 살아가야 함을, 혼족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따로 살아가지만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니 따로 또 같이, 그런 삶을 이 종족들이 실천하는 사회, 그런 우리 사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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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19로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는 날이 확 줄어들었다. 전면등교, 정상등교라는 말이 나왔지만, 코로나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 듯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2년이 지나 3년째, 학교라는 곳에 휴일을 빼고는 매일 등교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휴일이 아닌데도 원격수업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등교하지 않게 되었다.


  그랬더니 학력저하 운운하면서, 원격수업의 질이 나쁘다고, 원격수업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이곳저곳에서 큰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문제는 오로지 학력인 것처럼. 더 다른 문제들이 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성적, 성적이다.


그래, 학생 때는 공부를 해야지. 공부도 때가 있는데, 하는 말들이 있지만, 과연 학교가 아이들 성적만 책임지는 공간이었던가. 학교는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간이기보다는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장소 아니었던가.


자기와는 다른 학생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 또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과 갈등하고 화해하면서 어우러지는 방법, 교사라는 어른들, 그것도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치거나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교사들을 만나면서 사회 적응력을 키우는 장소. 그런 장소가 바로 학교 아니었나.


어떤 사람은 자조적으로 학교는 아이들의 식사(잠) 장소이자, 사교 장소라고 말한다. 밥 먹고 친구 만나러 학교에 온다고...교육기능보다 탁아기능이 더 강하다고... 이게 자조적으로 할 말인가? 오히려 학교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친구와 만나고 놀고, 같이 밥 먹는 장소. 그런 학교...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그런 학교라는 장소를 잃고 오로지 성적, 성적만 하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만을 생각하게 되지 않았는가.


도처에서 들리는 학력저하 운운하는 말들은 학교를 오로지 성적으로만 존재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지 않나. 코로나로 인해 등교하는 날수가 줄어들어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그런 만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함기석 시집 [수능 예언 문제집]을 읽으며 우리나라 학생들이 갇혀 있는 수능이라는 감옥을 다시 생각한다. 수능으로 대변되는 성적, 성적, 그리고 그 성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학교. 아니다. 학교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예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책도 영화도 있지 않았던가.


학교는 학생들이 행복할 수 있는 장소이자,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장소다. 그래야 하는데... 오로지 수능이라니.. 수능에 갇힌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시집을 읽다보면 너무도 잘 알게 된다.


'오전 8시, 마시면 배탈 설사 나는 흰 우유 같고' (모의고사 보는 날-10쪽)라고 표현할 정도로, 수능이 아닌 모의고사 자체도 학생들에겐 견디기 힘든 존재다. 그러니 이런 청소년들은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우리한테 그동안 뻥쳐서 미안했다는 / 사과나무나 한 그루 심으시지'(사과나무-17쪽)라고... 하지만 어떤 어른도, 특히 권력을 쥐고 있는 어른들은 더더욱 학생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니 학생들은 '아, 전국 모의고사 날은 / 전국이 모의해서 고등학생을 사망시키는 날 / 갑자기 내가 정육점 식당 갈고리에 걸린 / 9등급 고깃덩어리 같았다' (우울해서-25쪽)고 표현하게 된다.


더 많은 시들이 있지만, 이 시집 1부만 어른들이 제대로 읽어도 지금처럼 교육제도를 유지하지는 않을테다. 감정이 있는 어른들이라면... 적어도 아이들이 공각기동대라는 영화에서 킬리언 소령이 했다는 말인 '나의 정신은 인간이다 그러나 / 나의 육체는 인공 신체다'(공각 기동대-36쪽)를 비틀어서 '나의 육체는 인간이다 그러나 / 나의 정신은 인공 기계다' (공각 기동대-37쪽)라고 하게 하지는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학교는 오로지 성적을 위해서 학생을 가둬놓는 공간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온갖 실험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 또 많은 실수,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장소다. 그러니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애오라지 성적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잃고 있음을 생각하고, 교육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시집 1부를 읽으면 지금처럼 학교가, 교육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4부에 가면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이 오롯이 전해지는 시들이 많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힘들게...지내고 있으니...  그러니 수능이 끝나면 교과서는 쓰레기가 되고 말지... 이 시처럼.


       책 무덤


수능 끝난 학교 옥상에

책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 있다

알록달록 형광펜으로 칠해진 수많은 책이

수백 마리 가오리처럼 쌓여 있다

책 무덤 속에서 들려온다

글자들 우는 소리, 천둥 치던 여름밤 빗소리

절망에 빠져 흐느끼던 친구들 목소리

하늘은 옥상 난간까지 내려와 잿빛 수의처럼 펄럭이고

수능 마친 책들이 봉분처럼 쌓여 있다


함기석, 수능 예언 문제집, 창비교육. 2020년.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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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안 먹고 살 수는 없으므로, 먹을거리를 담는 밥그릇은 우리 생존에 필요한 물건이다.


  그런데 밥그릇이 빛난다는 말을 시인이 하고 있다. 매일 닦아서 빛난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바깥 부분의 빛남이 아니라 안쪽의 빛남이라면, 이는 밥그릇이 비어 있다는 뜻이다.


  채워지지 않은 밥그릇, 빛을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하기만 하는, 텅텅 빈 밥그릇. 한번도 풍족하게 채워지지 않은 밥그릇.


  그런 밥그릇조차도 지키려고 아등바등댈 수밖에 없는 존재. 최종천 시집을 읽으며 밥그릇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어쩌면 그 풍족하지 않은 밥그릇조차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밥그릇은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한다. 내 밥그릇에 밥을 채워주는 존재에게 묶여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묶임에서 벗어나려면 최소한 내 밥그릇이 비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아주 조금밖에 주어지지 않는 밥그릇을 걷어찰 수도 있어야 하는데, 이 시를 읽으며 기본소득을 생각한다.


       투명

 

혀로 빛나게 핥아놓은 밥그릇에는

허기가 가득 차 있다

허기는 투명하지만 잘 보인다

뼈가 앙상한 것을 보면

이빨은 이제

밥그릇도 씹어먹을 수 있으리라

나는 개들이

씹던 목줄을 뱉어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내 손가락을 철망 안으로 넣어주었을 때

녀석은 절대로 물지 않았다

내가 밥을 준다는 투명한 의식이

녀석을 밥그릇 안에 가두어놓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두 끼나 세 끼를 주고 싶지만

나는 사장의 명령에 따라 한 끼만 주고 있다

나는 회사의 수위

개는 밤에 내가 할 일을 대신한다

사원들이 퇴근할 때, 개집 문을 열어놓아

불투명한 밤을 투명하게 밝혀놓아야

안심하고 잠잘 수가 있다

간밤에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일감들 사이에서 녀석이 잡아놓고

다 먹지 않은 의문 하나가 피를 흘리고 있다

내가 받는 임금은 아주 적다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

그러니까, 개밥 정도인 것이다

개의 그 깊은 낮잠 속에 고여 비치는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최종천,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창비. 2007. 32-33.


노동자들의 소득을 유리지갑이라고 하기도 한다. 소득이 확연히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출 것이 없다. 사실, 얼마를 버는지 다 알려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적은 소득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 시 제목이 '투명'이다. 


없으니 투명할 수밖에... 이제는 누구라도 자신의 밥그릇이 이렇게 빛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밥그릇이 보장된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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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정 하면 개인이 지니는 서정성과 사회의식을 시에 잘 융합시킨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안 되는 시를 읽었을 뿐이지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란 시와 '꽃덤불'이란 시를 읽으면 개인의 서정과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시 속에서 잘 어우러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시들을 읽은 기억이 있기에, 그리고 몇몇 구절들이 머리 속에 남아 있기에 신석정 유고시집이 헌책방에 나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구입할 수 있었다.


  적어도 실망을 안기지는 않을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최근에 부안을 다녀왔는데, 신석정 시인이 부안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가를 들르지 못한 아쉬움도 있기 때문이었다.


유고시집 제목이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이다. 내가 노래하고 싶다는 말은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말인데, 이는 개인 서정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개인적 감정을 단순히 토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신석정 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내 감정에서 우리들 감정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은 나만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잘사는 사회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피 묻은 발자욱이사

새삼 돌아볼 겨를도 없다

아아라한 만첩청산을

만첩청산을 굽이돌아

철 철 철 흘러가는 

저 푸른 강물을 보리로다.


가슴 깊이 간직해 둔

눈물겨웠던 이별 또한

구름과 더불어 왕래하는

구김살 없는 저 학두루미의

학두루미의 노래에 부쳐

하늘 멀리 보내도 좋으리라.


다만 오는 날을 위하여

벅찬 설계를 가다듬어야 하거늘

오염된 문명을 믿을 수는 없다.


그 문명 속에 허덕일 수도 없다.

소슬한 솔바람 소리로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리라.


별들의 참한 이야기

잇따라 들려오고

꽃그늘에 오고 가는

너그러운 햇살이 지키는 속에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우리 부신 꿈과 생시뿐이로다.

                                           -전북일보 1973.1.1.


신석정 유고 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창비. 2007년. 130-131쪽.


벌써 50년 전에 쓰인 시... 지금 우리 상황에서 다시 이 시를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는 지금 무슨 노래를 부르고 싶을까?


우리가 거쳐왔던 안 좋았던 과거들을 뒤로 하고, '벅찬 설계'를 하고 있는지, 또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고 있는지...


'별들의 참한 이야기 / 잇따라 들려오고 / 꽃그늘에 오고 가는 / 너그러운 햇살이 지키는 속에'라고 그렇게 우리에게도 봄은 오고 있는지...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부신 꿈과 생시'를 노래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여전히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들 삶의 환희... 그런 세상. 그래서 이 시에서도 개인의 마음을 넘어서 우리로 나아가게 된다.


나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잘사는 세상. 그렇게 과거를 딛고 미래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세상.


봄... 우리 사회에도 진정 이런 봄이 왔을까... 그래서 우리는 시인이 원하던 것과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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