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를 벗어야 언론이 산다 - 한국 언론의 보도 관행과 저널리즘의 위기
박창섭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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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제 4부라고도 한다. 그만큼 정치와 밀접히 관련이 있는 집단이다. 행정, 입법, 사법에 이어 언론이라는 4부가 제 구실을 해야지만 민주주의가 잘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4부가 잘 이루어질까? 우리나라 행정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입법을 관장하고 있는 국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지, 그리고 사법부는 올해 대법관 임명 청문회로 인해 홍역을 치르지 않았던가. 

 

여기에 언론은 자유로운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자. 과연 언론은 공정하고 진실한 보도를 하고 있는가. 언론인들은 지식인으로서, 또 언론인으로서 자신들의 책임을 인식하고 책임있는 보도를 하려고 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신문을 안 본 지, 뉴스를 멀리한 지 오래되었다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는가?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언론에 "야마"라는 게 있단다. 처음 듣는 말이다. 하긴 이는 언론인들끼리 은어처럼 사용하는 말이라고 하니, 그리고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도 않은 말이니, 언론인과 접촉이 없는 내가 이 말을 들었을 리가 없다. 내가 아는 야마는 기껏해야 일본어로 '산'이거나 우리가 비속어로 쓰는 '야마가 돈다'는 말밖에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야마'란 말이 언론에서는 너무도 광범위하게, 그러나 중요하게 쓰이고 있단다. 이 '야마'가 없으면 기사가 되지 않는단다. 도대체 '야마'가 뭘까? 딱부러지게 사전식으로 정리할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도 기자 생활을 16년 했고, 저널리즘을 공부했으며, "야마"를 가지고 책을 썼음에도 '야마'란 말을 무엇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고 한다.

 

다만, 이 '야마'란 말은 보도의 내용과 관점, 의도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66쪽), 내용 야마, 관점 야마, 의도 야마(67쪽)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즉 기사에 깔려 있는 내용과 그 내용을 선정하게 된 관점, 그리고 그 기사를 내보낸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야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쉽게 '틀'이라는 말로도 할 수 있는데, 이 틀보다는 더 정교하게 기사를 규정하는 존재가 '야마'라고 할 수 있다.

 

'야마'에 대한 이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각 신문사마다 어떻게 이런 야마가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실, 야마에 따라서 관점이 달라지며, 의도가 달라지기에 내용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러므로 같은 사안이라도 기자가 취급하는 취재원부터, 사실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야마의 구현 방식을 살피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두 가지 사안을 예로 들어서 각 신문사의 야마를 파악하고 있다.

 

두 개의 사안 중 하나는 미디어법안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무상급식안이다. 이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중립적인 성향의 한국일보를 대상으로 어떻게 기사화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를 읽다보면 같은 사안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내가 어떤 신문을 보는지에 따라서 내 관점도 알게 모르게 조정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사실 정보화시대라고 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 여러 언론에서 정보를 얻는 사람은 이 책에서도 나와 있지만 13%정도라고 하고(305쪽)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가지 매체에서 정보를 얻는다는 얘기가 된다. 나역시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신문을 보느냐에 따라 즉 그 신문사의 "야마"에 따라 자신의 관점이 고정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점을 깨닫게 해준 점이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언론의 사명을 '진실'과 '공정'이라고 한다는데, 우리가 진실과 공정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읽는 독자인 우리들이 깨어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 독자들이 깨어있어야 언론들이 진실과 공정 보도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역으로 깨달았다고나 할까.

 

이책의 말을 받아 정리하면 이렇다, '야마'를 벗어야 언론이 산다. 마찬가지로 언론이 살아야 정치가 산다. 정치가 살아야 민주주의가 산다. 민주주의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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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디자인 공부 - 불필요한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스테판 비알 지음, 이소영 옮김 / 홍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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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많이 들은 말이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쓰고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 디자인에 대해서 우리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이미지 효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한다. 즉 상품에 딸린 부속 요소로 디자인을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디자인이란 개념을 이렇게 협소하게 유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상품에 딸린 부속 요소로 디자인을 생각한다면 디자인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게 만드는 안 좋은 역할을 하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물건들이 넘쳐나는 세상, 이 책의 부제처럼 '불필요한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필요보다는 무언가를 단순히 소유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역할을 디자인이 한다면 디자인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무엇이 된다.

 

과연 그럴까? 여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디자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한 책이 이 책이다. 디자인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짧막한 글들을 통해 디자인의 역사를 훑고, 디자인의 개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며, 지금 시대에 필요한 디자인은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있는 책이다.

 

상품과 관련된 협소한 개념으로 디자인을 파악하지 않고, 우리네 삶 전반과 관련된 개념으로 디자인을 파악한다. 즉 우리들이 향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디자인과 관련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문화까지도 포함이 된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혁신을 자신의 개념으로 삼아야 하는데... 어떻게 혁신을 이룰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디자이너는 이런 식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디자인적 사고(130쪽)"라고 하는데, 첫 번째 단계는 사람들의 필요를 관찰하는 단계로, 문화와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영감이라고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아이디어를 낳는 수단으로서의 실험 단계(만들면서 배우기)라고 한다. 마지막 단계는 실행 단계라고 한다. 이는 디자인 과정이 끝날 때는 소비만이 아닌 참여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데...(130-131쪽)

 

이는 디자인이 우리의 삶을 혁신하는 능동적인 요소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럴 때만이 디자인이 자기 구실을 할 수 있고,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삶에 디자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도 디자인에 그토록 열중했던 것 아니었던가. 그가 자신의 회사가 만든 제품의 디자인에 열중했다면, 우리는 이런 단계를 넘어서서 우리의 삶을 디자인 하는데 열중해야 한다. 이는 바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외부에서 주어진 조건에 자신을 맞추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 내부에서 오는 욕구를 외부에 투영하여 외부의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디자인의 혁신과도 연결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겠지.

 

이 책에 나와 있는 디자인에 관한 명제 세 가지를 적어 본다. 이를 우리의 삶과 관련지어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디자인에 대한 개념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명제 1 디자인은 형태를 사용하여 경험을 구상하는 창조적인 활동이다.

명제 2 디자인은 물건의 장이 아니라 효과의 장이다.

명제 3 산업 디자인은 단지 디자인의 한 분야일 뿐이다. (138-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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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 - “뉴스 시스템이 흔들리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W. 랜스 베넷 지음, 유나영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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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뉴스를 보는 시간이 줄고 있다. 왜 보나마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이 방송이든, 저 방송이든, 거의 비숫한 내용으로, 그것도 화면도 거의 비슷하게 방송을 하고 있다. 뉴스가 아니라, 헌 소식, 진부한 소식이다.

엊저녁에 보았던 뉴스가 아침에 다시 나오기도 한다. 참.. 그래서 머리는 생각할 기회를 잃고 그냥 화면만을 보고 있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랬구나

 

2

뉴스를 잘 안 보게 된다. 예전에 읽었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의 내용을 마음에 새기고 부터는. 우리 몸의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 좋은 일을 보거나 겪으면 이 몸이 깨지고 만다는 사실... 뉴스의 대부분이 폭력, 살인, 비리, 부정, 갈등이다. 이런 긍정적인 요소는 없나? 세상이 이렇게 안 좋았던가?

 

3

 뉴스를 보아도 보는 게 아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객관성 속에 포장되어 있는 정파성이 교묘하게 감춰져 있다. 분명 저 뉴스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저게 아닐텐데... 그들은 사실을 전달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은연중에 자기들의 관점을 나에게 주입하고 있다. 더 보다가는 생각을 하지 않은채 뉴스에서 전해주는 내용만 따라가고 말겠단 생각이 든다.

 

4

무슨 뉴스가 이래. 메인 뉴스라고 하는 뉴스에서도 온갖 잡탕 소식들이 뒤섞여 있다. 건강 소식에 나와야 될 이야기, 스포츠 소식에 나와야 될 이야기, 연예인 뒷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에 나와야 될 이야기들이 메인 뉴스에 떡하니 나온다. 허, 이런 그냥 이런 내용이나 소비하고 말라고? 이런 내용들이 많아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그것이 시청율에 반영이 되면 광고 수익을 더 얻을 수 있나? 그럼 공영방송은? 공영 방송이 만들어진 이유가 뭐지? 공영성, 그게 뭘까?

 

5

이 책, 참 두껍다. 그런데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굳이 기자를 꿈꾸지 않아도, 언론비평을 하겠다고 마음 먹지 않아도, 우리가 늘 접하는 뉴스에 대해서, 뉴스의 숨겨진 모습에 대해서 이토록 철저하게 파헤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물론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미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읽다보면 우리나라 상황과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겹쳐진다. 바로 지금 우리 언론의 모습이 이 책이 고스란히 나온다.

 

뉴스가 만들어내는 정치권력의 모습과, 그 뉴스로 인해 우리들의 사고가 어떻게 왜곡되고, 우리들의 행동이 제약을 받게 되는지 치밀하게도 밝혀내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소프트 뉴스를 보고 있는 동안에 정작 우리가 공적인간으로서 존재해야 할 의무를 잊게 되지 않았던가.

 

제주 올레길 사고를 뉴스에서는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책이란 것이 감시카메라 설치다. 그 좋은 환경에... 올레길이 너무도 위험하다는 식으로 방송을 한다. 제대로 된 분석은 없다. 그냥 우리의 시각을 자극한다. 반면에 더 위험한 강정마을 소식은 다루지 않는다. 그냥 없는 일이 된다.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뉴스는.

 

우리는 뉴스 속에 숨어 있는 권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권력을 볼 수 있어야 우리가 뉴스를 (이 책에서도 우리나라의 시민 뉴스로 오마이뉴스가 나온다) 만들어내고 통제할 수 있다.

 

6

이 책을 읽으며 그래도 뉴스를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보지 않으면 행위를 할 동기를 마련하지도 못할테니 말이다. 단 뉴스는 거대 언론사들의 뉴스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뉴스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언급한 그러한 행동 지침들... 명심하며 뉴스에 참여할 때 우리는 공적 시민으로서 행위에 나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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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팩토리
안지훈 지음 / 학고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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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헌 책방이 곳곳에 있었다.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던 헌 책들에선 읽은 사람의 모습이 느껴지곤 했다. 옆에다 글을 써 놓은 사람, 좋다고 생각하던 구절에 밑줄을 그어놓던 사람. 그 책을 구입한 날짜와 장소를 기록해 놓은 사람, 다 읽은 다음 느낌을 맨 뒤 백지에 써 놓은 사람, 자신의 이름을 도장으로 만들어 찍어 놓은 사람 등등.

 

좀 낡은 느낌도 나고 이미 남의 손이 갔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헌 책들에서는 나랑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있었구나, 이 사람은 이 책에서 이런 점을 느꼈구나, 이 사람은 책을 이런 식으로 읽는구나 하면서 다른 사람의 향취를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은 대다수의 작은 서점들이 문을 닫았고, 동네에서 흔히 찾을 수 있었던 헌 책방도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지금은 큰 맘 먹고 헌 책방 나들이를 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의 한 부분이던 물건들이 어느새, 시나브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을 신봉이나 하듯이 옛것들은 버려야 할 것, 필요없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많이 버려지고 말았다.

 

아니, 급변하는 이 정보화시대, 세계화시대에 무슨 옛것이냐고, 자고나면 새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판에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옛것들은 쓸모없음을 지나 현재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라는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눈만 뜨면 새로움이 펼쳐지는 이 빠름의 세상.

 

하지만 이럴 때 과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꼭 앞으로만 뛰어야 하냐고, 뒤로 뛸 수도 있다고, 오히려 뒤를 볼 때 더 다채로운 삶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빈티지에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서 미친은 돌았다는 뜻이 아니라, 매니아, 즉 열중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골동품들도 많은데, 이 책을 쓴 사람은 외국에서 생활한 경우가 많기에 우리나라에서 구한 것들보다는 외국에서 구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물건들을 구입할 때 얽힌 사연과 그 물건에 담긴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다. 그래서 '옛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옛것에서 사람의 냄새를 맡으며, 사람의 생활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러한 옛것들로 인해 지금의 삶이 얼마나 윤택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꼭 빈티지 수집가가 되어야지 하면서 읽을 필요도 없고, 그냥 오래된 물건에 담긴 이야기들을 글쓴이가 안내해준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좋다. 그러면 자연스레 오래된 것, 낡은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을 나를 만들어준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임을 깨닫게 된다.

 

유한한 지구, 우리는 유한한 지구를 무한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좀더 크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도 한다. 빈티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단지 고상한 취미, 돈이 많이 드는 취미생활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새것들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정말 내 곁에 있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준다.

 

꼭 골동품 가게를, 오래된 것들이 많이 나오는 벼룩시장을, 예전 우리나라로 치면 청계천 황학시장(요즘은 풍물시장이던가, 다른 곳으로 이전했는데...)을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 주변에도 오래된 것이 널려 있으므로.

 

물품에 대한 이야기지만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된다. 무겁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 가벼움 속에는 우리의 삶이 녹아 있어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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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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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들이 또는 예언자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는 큰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들의 모습이 신비에 가려지지 않았기때문이다. 무릇 선지자란 신비함에 감싸여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일반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던 보통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이를 왕에게 적용하면 왕은 어느 정도 신비에 싸여 있어야 한다. 왕이 신비한 존재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왕의 소소한 일상을 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쉽게 만나면 안된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만난다면 왕의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드러날 테고, 그렇다면 왕도 신비한 존재가 아닌, 우리와 다름없는 보통사람이라는 인식이 들어 왕이 통치하는데 문제가 생기게 되기 쉽다. 지금처럼 지도자가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다른 사람과는 다른 혈통,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그 시대에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궁녀에 대한 기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기록을 남긴다는 사실 자체가 왕의 일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이고, 이는 왕의 신비한 모습을 벗겨내는 일이니, 거의 역모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여 천년을 넘는 궁녀의 역사가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간헐적으로 왕조의 멸망이나, 또는 반역사건과 관련이 있는 궁녀의 기록을 통해서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궁녀란 제목만 보면 무슨 왕조 비사(秘史)나 야사(野史)라는 생각이 들기 쉬우나 이 책은 그러한 비사나 야사가 아니라, 궁중의 문화 중에서 궁녀에 중심을 둔 미시사라고 해야 한다. 역사에서 예전에는 커다란 사건 중심이나 인물 중심의 서술이 중심을 이루었다면 최근의 역사서에서는 작은 일, 소소한 일상생활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있는데, 무려 천 년을 넘게 존재했던 집단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리라. 그만큼 궁녀에 대해서는 연구하기도 힘들었다는 얘기가 되기고 하고.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궁녀에 대한 선행 연구는 조선말기, 더 정확하게는 대한제국 말기에 궁녀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증언이란 어느 정도의 사실과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게 마련이고, 또한 인간의 기억이란 자기 중심적으로 내용을 엮어가기 마련이어서, 증언을 뒷받침할만한 다른 자료들을 보충해야지만 정확한 역사가 재구성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증언도 참조하지만, 다양한 역사 기록들을 찾아 궁녀에 대한 종합적인 역사 서술을 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궁녀도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궁녀에 대한 역사 서술을 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자료는 현재 구하기 힘든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교적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조선시대에 한정해서 궁녀에 대한 종합 서술을 한다. 궁녀에 대한 종합 역사서라 할만한다. 그렇다고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만이 읽을 수 있도록 학술적인 내용으로 꽉 차 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았던 궁녀들의 삶에 대해, 이 책은 "궁궐에 핀 비밀의 꽃"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이들은 꽃은 꽃이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꽃이어서는 안된다. 이들은 오직 한 사람, 아니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사람(왕, 왕비, 대왕대비, 세자, 세자빈, 후궁 등)에게만 보이는 꽃이어야 한다. 보이는이 아니라, 보여야 하는, 그래야만 같은 궁녀라도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로가는 그런 꽃이었다고 한다. 이런 꽃이 남의 눈에 띄고, 남에게 가려 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행동, 역모와 같은 행동으로 취급되어 극형에 처해지는 꽃이었다고 한다. 단지 그들의 신비를 유지하기 위해서.

 

좋게 말하면 궁녀는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규직, 특히 거의 종신직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궁녀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 특히 상궁이 되면 경제적인 면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으리라. 다만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고, 또 소위 말하는 줄을 잘못 서면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만.

 

궁녀의 조직과 하는 일, 그리고 직급, 월급, 또 역사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궁녀, 궁녀들을 선발하는 방법, 궁녀들이 어떤 계층에서 많이 들어왔는지 등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한 시대 상당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던 궁녀라는 집단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마지막에 궁녀의 성과 사랑까지. 우리가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이야기하는 세종이 여자들에게만은, 특히 궁녀들에게만은 얼마나 가혹한 군주였는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반대로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었을지는 모르나 사람으로서의 존엄한 생활은 거의 힘들었으리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사라진 궁녀. 그러나 이러한 집단이 완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분명 존재하지만 공식적으로 언급이 되지 않는 존재, 그들의 삶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함을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신비가 걷힌 왕은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일반 사람보다도 오히려 더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왕의 신비를 도와주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궁녀를 비롯한 궁궐에서 일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그 때는 왕이 신비를 돕기 위해 이들의 기록이 존재하면 안되었겠지만, 이제는 이들도 역사 속에서 당당하게 복원되어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작업을 이 책이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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