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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공중부양 - 이외수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실전적 문장비법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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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도 나은 글과 못한 글이 있다. 어떤 글을 읽을 때는 머릿속에 쏙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을 울리기도 한다. 또 어떤 글은 머릿속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기야 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마음에서는 이런 글은 내가 왜 읽지 하며 순간순간 그 글을 덮어버리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나은 글, 좋은 글이라고 하는 글들은 어떻게 해야 쓸 수 있는지, 오랜 시간 작가로 생활해온 지은이가 그 비법을 알려주고 있다.

 

글쓰기 비법, 우리는 글쓰기 비법을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비급 수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무협지에서는 무공 비급을 손에 넣으면 당대 최고 고수가 되기에 그 비급을 손에 넣으려고 온갖 싸움이 벌어진다. 왜냐하면 당대 고수는 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대결에서 지면 그 무공 비급을 넘어설 수 있는 무공 비급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나거나, 우연히 고수를 만나 무공을 전수받게 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도대체 공존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계, 그것이 무협지의 세계다.

 

반면에 글쓰기의 세계는 이와는 아주 다르다. 각 분야의 고수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같은 분야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어울린다. 또한 절대적인 비급이라는 것은 없다. 다들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잘 쓰는 사람일 뿐, 굳이 남과 비교를 하거나, 남과 대결을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절대 무공비급이 하나이어야 한다면 글쓰기에 관한 비급은 여러 개, 아니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도 있다. 이 말은 누구나 글쓰기의 비급을 얻을 수 있단 말이다. 이 책은 그러한 글쓰기의 비급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 많이 친숙한 이외수라는 작가가 쓴.

 

그래서 이 책에서 지은이는 이렇게 주장한다. "글은 정신의 쌀이다"

 

쌀로 밥을 해먹든, 죽을 해먹든, 떡을 해먹든 그것은 쌀을 가진 사람의 자유다. 그에게 뭐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글도 자신이 어떻게 사용하든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할 것이 못된다. 다만 정신의 쌀이기에 정신을 축내는 글은 비난을 받아야 하고, 그런 글들은 없어지게 해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글들은 칭찬을 받아야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읽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서 글쓰기의 비법은 단순하다. 우리의 정신,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라. 이게 글쓰기의 비법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순차적으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살아있는 말(생어)을 써라로 시작을 한다. 물론 이 전에 단어들을 수집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고 보고, 숨을 쉰 다음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 자신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듯이 그 단어들을 활용할 때 살아 숨쉬는 말을 먼저 쓰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살아 있는 말, 이는 바로 우리가 지닌 다섯 가지 감각을 자극하는 말을 쓰라는 얘기다. 한자어와 같은 관념적인 말보다는 우리의 눈, 코, 귀, 입, 촉감 등을 상기시키는 말을 쓰면 글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어에서 시작하여, 문장으로 나아가고, 문장에서 다시 창작으로,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명상의 장이라고 하여 정리를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좋은 글은 무엇보다도 진실한 마음으로 쓴 글이다. 예전에 이오덕 선생이 살아있는 글쓰기를 주장했듯이, 이건 특별한 어떤 사람만의 주장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도 글쓰기를 잘하려면 가식, 욕심, 허영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결국 글은 머리로 쓰지 말고, 가슴으로 쓰란 얘기다. 무언가를 화려하게 꾸밀 생각을 하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을 쓰라는 얘기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자세를 지녀야 한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는 장님이 외부의 사물을 온몸으로 감지하면서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행위와 흡사하다. (139쪽)"

 

많은 예시들을 제공해주고 있어, 단지 이론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글쓰기를 연습해 볼 수 있는 책이고, 또 글이 읽기에도 편해서 부담없이 읽을 수도 있다. 굳이 전문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글쓰기를 하고 살고 있으니, 이 책은 어느 특정한 집단에게만 유용한 책이 아니다.

 

글쓰기 하면 머리부터 내두르는 사람,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길게 쓸 수 있어 하면서 무언가를 쓰라고 하면 세 줄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 늘 쓰던 말만 쓰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이 책을 반드시읽어야 한다.

 

정보화 시대에는 글을 쓰는 일이 없어져 이런 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보화 시대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로도 표현하지만, 글로도 표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잘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건 어느 시대건 사람에게 유용한 재산이지 않을까.

 

덧말

 

표현법 중에 182-183쪽에 제유법과 대유법이 나왔는데, 보통 학교에서는 대유법이라고 통칭을 하고 이 책에서 이야기한 제유법은 그냥 대유법의 한 종류인 제유법, 그리고 이 책에서 이야기한 대유법을 대유법의 한 종류인 환유법이라고 한다.

즉 학교에서는 대유법이 큰 개념이고, 이 대유법에 제유법(사물의 일부로 전체를 대신)과 환유법(사물의 속성으로 전체를 대신)이 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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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빼앗긴 사람들 -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사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
틸 뢰네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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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사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

 

무시무시하다. 생체리듬을 무시하고 사는 일이 우리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시간의 노예가 되어 사는 모습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시간, 우리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이고, 또 한정되어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한정된 시간을 더 많이 쓰는 길은 잠을 줄이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

 

마치 '모모'에 나오는 회색신사들이 시간 계산을 하여 여유롭게 살고 있던 사람들을 시간에 쫓기게 만드는, 자신의 시간 흐름대로 살던 사람들에게 정해진 시간의 흐름을 따르게 만드는 그런 모습이 연상된다.

 

과연 우리는 시간의 주인일까?

 

자신만의 생체 리듬에 따라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현대 세계에선 극소수에 불과하리라.

 

시간조차도 기술문명에 맞춰 분절되고, 표준화되어 나만의 시간이란 특수한 경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의 생체 시계가 있을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생체 시계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생활이 생체 시계에 맞는 생활일까를 추적한다. 아니, 거꾸로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생활이 생체 시계를 거스르는 생활일까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 사람들을 아침형 인간(종달새)과 저녁형 인간(올빼미)로 나누는 구분이 그리 좋은 구분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사람이란 이렇게 무 자르듯이 딱 잘라 구분할 수 없으니 이 주장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생체 시계가 모두 같다는 얘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기준을 정해놓고 보면 빠른 생체 시계를 지닌 사람도 있고, 느린 생체 시계를 지닌 사람도 있다. 그것이 사실이고, 이들은 그러한 생체 시계의 차이로 인해 활동도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의 시간이 표준화되었다는데 있다. 획일화된 시간으로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하기를 요구한다. 이런 요구에 어떤 사람은 잘 적응하고 활동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적응이 안되어 힘들어하거나 도태되기도 한다.

 

지금 대부분의 표준화된 시간이 빠른 시계를 지닌 사람에게 유리하기에, 느린 시계를 지닌 사람은 힘들어 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사항이 바로 학교 수업시간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잠에서 덜 깨어 있는 상태에서 수업을 받게 되니, 수업의 효율성이 있을 리 없다.

 

즉, 청소년기의 생체 시계는 느린 시계이기 때문에 이들은 자연스레 야행성이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그런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를 고치려고 하는 노력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와 마찬가지로 2교대 근무도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고 한다. 생체 리듬이 흐트러지기 때문인데, 사람의 신체 리듬을 무시하는 작업은 별로 좋지 못하다는 주장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장점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생체 리듬, 신체 시계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가?

 

그건 이걸 알면 우리는 사람을 일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다양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신경질적이야 하는 대신, 저 사람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관계를 잘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또한 청소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사람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게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된다. 인간의 신체 시계에 대해 몰랐을 때와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지고, 좀더 유연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허덕거리며 힘들어 하는 사람,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는 사람, 한 번 읽어 보자. 특히 교육자들은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로 사람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아주 다양한 신체 시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예화와 해설로 구성되어 있기에 전문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많이 어렵지는 않다. 저자가 동료 학자들을 대상으로 쓰지 않고,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도록 썼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례, 마치 나와 같은 사례가 많이 있으므로, 읽는 재미도 쏠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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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뇌
리처드 레스탁 지음, 임종원 옮김 / 휘슬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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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뇌라고 하지만, 이 책도 이미 2003년에 발간된 책이고, 우리나라엔 2004년에 번역이 된 책이니, 새롭다기보다는 오래된 뇌 이야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예전에 읽고 다시 읽어보니, 뇌에 대해서 이렇게 간략하게 쓰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에 뇌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알려주고 있으니, 뇌에 대해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하는, 똑똑한, 산만한, 불안한, 행복한, 현대의, 우울한, 고장난, 새로운이라는 관형어로 뇌를 수식하는 장들이 펼쳐지는데, 뇌는 죽을 때까지 변하기 때문에 어떤 고정된 무엇으로 인간을, 또 뇌를 판단하지 말라는 얘기는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둥,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둥 하는 말들을 하니,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 알 수 있고, 뇌는 정말로 똑똑하다는 사실, 그리고 산만한과 불안한은 우리의 지금 현실과 연결지어, 우리의 환경이 우리를 얼마나 산만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하고, 뇌가 이러한 환경의 영향을 받기에 우리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행복한, 현대의, 우울한, 고장난도 환경과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장점이 바로 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뇌가 결정한다는 식으로 이끌어가고 있지는 않다는 데 있다. 만약 뇌가 전부라면 우리 인간은 무엇이겠는가? 뇌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기계덩어리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새로운 뇌라는 마지막 장에서 윤리와 뇌과학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뇌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윤리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은 마지막 부분에서 제기하고 있으니...

 

한 때 유행했던 게놈프로젝트(유전자지도 발견 및 만들기)와 인간 복제를 생각해 보면, 과학은 윤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예전에 도대체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심장일까, 뇌일까 하는 고민을 한 적도 있고, 그러한 것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 과학자도 있다는데...

 

많은 부분을 우리는 뇌에 의지하지만, 우리의 모든 것이 뇌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뇌과학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고 본다.

 

뇌에 관한 입문서 정도라고 할 수 있는 책이지만, 오히려 뇌와 인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덧말

 

이런 이런, 이 책이 절판이란다. 헌책방에서나 구해야 하나 보다.

혹시 다시 나올 때면 78쪽 중간부분의 "생각하는" 뇌와 "느끼는" 뇌 사이의 균형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데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문장이 있는데, 한 단어가 빠졌는데...불안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또는 작용하는 정도의 말이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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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이미지
조셉 캠벨 지음, 홍윤희 옮김 / 살림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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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없는 민족이 없다. 아니 어쩌면 민족이란 개념은 신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같은 민족임을 확인하는데 신화만큼 좋은 요소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단군신화도 그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대는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고려시대가 아닌가?

 

나와 남이 구분되기 시작할 때, 나는 나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거로 달려간다. 과거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현재의 일부이고, 나의 일부이니, 이 과거로부터 지금의 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신화는 그런 역할을 한다. 먼 옛날 이야기로 그냥 사라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나를 구성하고 있는 바로 내 곁에 있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나를 더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신화를 알아야 한다.

 

아렌트의 말을 빌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현재는 무한한 과거와 미래를 유한한 출발점으로 삼아 무한한 우리를 만들어내는 행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

 

이 발판 중의 하나가 바로 신화이고, 신화는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신화들은 남과 구분되는 나를 만드는 요소로만 파악하지 않고, 이 지구상에 존재하게 된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즉, 여기서 나를 개인의 나, 민족 구성원인 나로만 국한하지 않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 만드는 요소가 바로 신화라는 것이다.

 

캠벨, 그의 신화 연구는 신화를 특정 민족만의 신화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신화는 우리 인간의 원형일 수 있다는 점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전혀 다른 곳에서 비슷한 심상이 나타나는 문제를 그는 추적하고 있다.

 

멧돼지, 뱀, 희생제의, 부활 등 세계 곳곳에 있는 신화들이 비슷한 점들을 지니고 있고, 이런 점이 우리를 공통인간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이 책에는 방대한 그림(사진)들이 나온다. 정말로 다양하고 많은 도상자료들이 읽는 재미를 더햊고 있다. 여기에 읽기 편하게(번역을 잘해서인지) 쓴 글도 어렵지 않게 이 책을 넘길 수 있게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한정되어 있던 우리들에게 오히려 인도신화부터 불교까지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더 친숙할 수도 있다.

 

그림들을 보면서, 글을 읽으면서 우리들이 꿈꾸어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까? 어느 특정한 종교에, 어느 특정한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의 관점에서 신화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첨예화되는 정보화시대, 신화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인식을 하는 수가 있으나,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인류가 과거로부터 지녀왔던 것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바로 지금 우리를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이고, 더 나은 우리를 만들어가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로 첨단화되어도 신화와 같은 아날로그적인 요소들도 우리는 곁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아날로그적 요소가 더욱 첨단화된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를 인간이게끔 할테니 말이다.

 

분량도 많고, 다양한 신화들을 살피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실려 있는 그림들과 우리에게 친숙한 동양적 이야기 때문에 읽기엔 어렵지 않은 책이다. 오히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꿈꾸는 자, 행복한 사람이다. 신화는 우리를 그런 행복한 꿈으로 인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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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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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집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요즘 머리 속에 맴도는 말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철학이 없다면 그들은 건축가가 아니라 그냥 건설업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김진애의 "이 집은 누구인가"라는 책도 있듯이 집은 바로 자신을 알려주기도 한다.

 

정말 그런가? 요즘에도... 아니지, 요즘은 건축이랄 것도 없이 그냥 건설만 있지 않나? 비하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 토건이라는 말로 쓰이고 있지 않나? 어딜 가도 똑같은 아파트, 자신들은 내부가 다르다, 외양이 다르다 하지만 사실 그 나물에 그 밥인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 책에서 작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집들은 다른 점이 없다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특별히 다른 건축양식이 없다고. 외국에서 말하는 바로크니 로코코니 하는 양식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건축들이 이런 우리의 전통을 충실히 따랐다고 할 수 있나?

 

답은 아니다다.

 

우리는 특별히 다른 건축양식이 없지만, 집들은 거의 비슷한 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우리의 건축 특징은 집 건축의 특징을 찾는 데 있지 않고, 이 집이 주변과 어떻게 어울리고 있나 하는 점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게 바로 우리 건축의 특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집을 짓기 위해서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집에는 이러한 자신만의 철학이, 삶의 태도가 나타나야 한다. 지금 우리들의 건축은 이런 면이 사상되어 있다. 그냥 짓는다. 돈이 되는 곳에... 주변의 환경을 고려할 생각도 없이, 밀어붙이고, 깎아내리고, 아니면 메워버리고...

 

그래서 삶도 집을 닮아가서 자신만의 색깔이 없다. 자신만의 색깔이 없기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듯, 남들이 하는 대로 하고 산다.

 

나만의 집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이 책에서는 자신만의 집을 짓고 산 옛사람들이 나온다. 집 얘기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 얘기이기도 한다. 그만큼 그 집에는 그들의 삶이 스며들어 있다는 얘기다.

 

이언적, 조식,이황, 윤선도, 정약용, 김장생, 송시열, 윤증의 집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 한 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학자들이다. 그들의 사상이 집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그들의 삶과 연관지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을 주장한다기보다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하는 공간에서, 사람의 삶의 철학이 어떻게 집에, 그리고 자연에 묻어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함께 나오는 사진들도 경탄을 자아낸다.

 

꾸미되, 꾸미지 않은, 자연을 이용하되, 결국 자연이 되는, 인위적인 삶을 살 자연적인 삶이 되는 그러한 집들이 나와 있다.

 

집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찾는 면에서도 이 책이 의미가 있지만, 당시 유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삶이 집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읽을 만하고, 또 그동안 모르고 지나갔던 집의 구조, 형태들과 삶의 철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알려주고 있어서 좋다.

 

내 사는 공간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만나고,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그 집은 바로 나이기도 하다는 사실. 우리 조상들이 꿈꾸었던 집은 바로 자신의 확장형으로서의 집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았다.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책. 건축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에게도 재미있게 읽힌 책.

 

 

덧말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읽었던 민들레 78호의 학교공간이 생각났다. 결국 학교 공간도 학생들과 학생들이 만나는, 또 학생들과 교사들이 만나는, 또 학생들과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만나는, 그리고 교육에 관계된 사람들과 지역사람들이, 사람들과 자연이 만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린 얼마나 학교 공간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가. 이황이나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공간 하나하나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옥의 티. 가끔 년도가 나오면 숫자가 뒤집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의 252쪽이 그러하다. 송시열의 집 얘기를 하면서 1951년에 파직을 당하고, 1953년에 집을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9자는 6자가 뒤집힌 경우일 터. 1651년에 파직 당하고, 1653년에 집을 지어가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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