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광고인의 고백
데이비드 오길비 지음 / 서해문집 / 199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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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오길비. 광고를 공부하다 보면 카피라이터로서 성공한 사람으로 나온다. 게다가 광고회사를 차려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광고에 대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책으로 냈는데...

 

오길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어느날 누군가가 "어느 광고인의 고백"을 읽고 싶은데, 책이 품절이 되어서 구할 수가 없다고 했었다.

 

"어? 나 그 책 서점에서 봤는데..."

 

동네서점에서 제목을 본 기억이 있다. 광고나 디자인 분야의 서가를 기웃거리다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때 살까 말까 하다가 나중에 사지 하고 미뤄두었던 책이었는데, 그럼 이 참에 그 책을 구해서 내가 먼저 읽고 빌려줄까 하는 생각에 그 서점에 갔었다.

 

이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서점은 서가를 옮기는 중이었고, 책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헤매다 직원에게 물어보았는데, 팔리고 없다. 이젠 책을 구할 수가 없다.

 

광고에 대해 전문적으로 쓴 책도 아니고, 거의 자서전 식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아쉬운 마음은 별로 없었는데, 우연히 동묘 쪽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주저없이 손에 들고 나왔는데...

 

자서전은 아니고, 광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오길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아마도 광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말로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이 나온 지가 한참되어서 지금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 얘기도 많겠지만, 적어도 광고에 대한 기본은 생각하고 확립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국어 교과서에 광고도 실리고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게 하기도 하는데, 이런 광고인의 글을 그래도 실어서 읽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단 생각이 든다.

 

세세한 광고기법이야 내가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지만, 광고인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는 비단 광고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겠단 생각이 드는데...

 

그는 광고를 할 때는 자신의 아내에게 설명하듯이 해야 한다고 한다. 그가 남자이니 아내라고 했지, 여자라면 남편, 또는 가족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광고하는 대상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자신도 사용하지 못할 대상이라면, 자신이 아내에게 사주거나 권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광고는 거짓이 되고, 이렇게 진실성이 없는 광고는 한 번은 성공할지라도 두 번째부터는 처절하게 실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직업의식이고, 전문성이다.

 

또한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곳곳에서 하고 있는데, 광고인이라고 해서 그냥 광고에만 매달리면 안된다는 얘기, 인문학적, 철학적, 공학적 지식에다 가끔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여행 등도 해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지금도 유용하다고 본다.

 

지금 텔레비전에서는 광고인들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어 방영하고 있다. 이 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들이라면 오길비의 이 책 정도는 읽고보면 드라마 상황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 이 책은 품절되었지...이런...

 

그럼 '광고 천재 이제석', 이나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정도는 읽어둬야 드라마를 더 깊이있게 볼 수 있나? 에이, 드라마는 그냥 재미로 봐도 되는데... 드라마 분석가도 아니고... 하지만 알면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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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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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라는 말만큼이나 도발적이다. 신을 광범위하게 믿고 있던 시대에 니체가 던진 이 말은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을텐데...

 

신의 존재 증명과 더불어 인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느냐 하는 문제도 역시 계속되는 논란거리다. 어떤 이는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일뿐이라고 하고(일원론), 어떤 이는 인간은 물질과 정신으로이루어졌다고 하고(이원론), 이 중에서도 물질(육체)가 더 큰 작용을 한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 정신(영혼)이 더 큰 작용을 한다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옳은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통하게 되는데, 사후세계에 대한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또는 죽음이란 무엇이냐라는 질문과도 통하는 해결하기 어려운, 어쩌면 해결할 수 없는, 또는 해결해서는 안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비슷한 질문이 더해졌다. "자유의지는 없다"는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인간은 물질적 존재일뿐이라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은 당연한 주장에 불과하리라. 인간의 모든 행동은 뇌 활동의 결과이며, 뇌 활동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결합되어 이루어지고,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가 정신이라고 하는 생각하는 활동도 이루어진다고 하니, 우리의 생각, 의지, 행동은 결국 뇌의 활동을 밝히면 되는 일이라고 주장하니 말이다.

 

행동을 고칠 때, "그건 네 의지에 달렸어."라는 말보다는,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활동했느냐를 따져 뇌를 치유하면 된다는 주장, 그것이 인간은 물질적 존재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니, 그런 사람들에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겠다.

 

반면에 인간은 정신적 존재라고 하는 사람들, 아니면 정신이 더욱 큰 작용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자유의지가 없다는 주장은 말도안되는 주장이 된다.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고, 문명을 이루었으며, 자기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능력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질문이다. 그리고 어떤 대답을 해도 반론이 들어올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해리스는 자유의지는 없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의 저변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그리고 또 알 수 없는 어떤 원인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결과는 같지만 제시된 원인이 달라짐에 따라 우리는 판단을 다르게 하게 되는데... 자, 그 결과를 이루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원인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무언가 답답하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은가. 무슨 행동을 해도 그것은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 어떤 원인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일 뿐이라는 얘기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범죄자는? 그는 단지 꼭두각시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그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 이렇게 가다보면 회의주의에 빠지고, 반도덕적, 반사회적으로 가게 될 것 같은데,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것은 자유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하도록 조건지워진 인간의 행동일 뿐이라고 한다.

 

자유의지를 부정하면 사회가 더 도덕적이고 협동적일 수 있다고 한다. 왜냐고? 인간에게 "넌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하기 보다는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란다. 즉, 사람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때 그 자리에 존재하게 된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그 사람들은 그런 환경을 조성하려고 할까? 그들은 우연히 그러한 환경에서 지냈고, 그러한 환경이 자신의 생존, 생활에 더 좋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인가?

 

결국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비슷해지는 결론으로 가는 건가? 이기적 유전자도 한없이 이기적이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이타적일 수밖에 없다는, 그리고 단편화되고 파편화된 작은 유전자에서 통합적인 유전자체로 존재하기도 한다는. 여기에는 어떤 자유의지가 개입할 수가 없다는.

 

책의 논리를 따라가면 책이 논리에 수긍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책의 내부에서 그 길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가끔 책의 바깥에서 그 책을 바라보면 안 보이던 길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판단할 수도 있고.

 

자유의지가 없다는 이 논리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똑같은 물질로 둘러싸여 생활한 사람은 과연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까?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 사이코 패스의 뇌수술, 복제인간 문제, 또는 유전자로 그 사람의 질병, 반사회적 활동을 판단하는 문제 등에 어쩌면 이 책은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말은 이러한 문제를 이 책의 저자도 의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유의지의 주술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정확히 유용함의 정도에 따라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변할 수 있는 지점에서는, 그들에게 변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변화가 불가능하거나, 변화에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점에서는, 다른 길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자신과 사회를 개선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전적으로 자연의 힘과 더불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힘을 쏟을 대상은 다름 아닌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이 책 79쪽)

 

이 말은 책임을 개인에게만 묻지 말아라. 책임은 사회에도 있다. 즉,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병행하면서 개인에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자유의지는 없다는 말을 좋게 해석을 하면 더 좋는 사회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의지에 호소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아니, 그렇게 듣고 싶다. 이건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샘 해리스의 이 책 주장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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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기술
피터 펜윅.엘리자베스 펜윅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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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달 사이에 연달아 세 번의 죽음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죽음을 만날 나이가 되었다는 서글픔도 있지만, 어느새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잘 죽음, 이것은 잘 삶만큼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떤 죽음이 잘 죽는 죽음일까? 도대체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의문은 끝없이 드는데, 답은 없다.

 

최근에 읽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을 해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면, 이 책은 구체적인 죽음 순간의 모습과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역시 죽음에 대한 어떤 기술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아니, 죽음에 대해서 기술을 알려줄 수는 없다. 죽는 순간은 단 하나뿐인 순간이며, 이는 남에게 알릴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죽음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누구나 한 번은(?) 겪을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영혼으로 나타나든, 연기로, 구름으로, 또는 바람으로, 아니면 다른 자연현상으로, 또는 텔레파시로 나타나든, 죽음에는 어떤 영적인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단지 인간은 뇌와 육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뇌에는 우리가 규명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영적인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례들을 언급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순간에, 또는 친족,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는 순간에 겪었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소개하면서 사람은 단지 뇌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아직은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 없는 어떤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영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죽는 사람이든, 남아서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이든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마음이 편안해진다.

 

죽음이 그냥 소멸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죽음을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라고 한다. 그 여행을 떠날 때 미리 알려주기도 하고,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도 하며, 다시 만나지 못할 여행이기에 그동안에 쌓여 있던 감정들을 해소하기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이라는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죽음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요양원)에서 죽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신의 삶을 구성하던 친숙한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생의 첫발을 대딛고, 생의 마지막 발을 내딛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탄생의 순간이든, 죽음의 순간이든, 친숙한 공간에서 친밀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두렵다고 해서 그냥 멀리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죽음의 기술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이렇게 죽음을 받아들이면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떨쳐버릴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허황된 얘기로 치부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 그는 곧 삶에 동반한 그림자이자, 삶의 길에서 잠시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뒤안길이라는 사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이것은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삶을 더욱 충실하게, 즐겁게 영위하라는 뜻이다.

 

"죽음의 기술"이라는 책은 결국 "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잘 죽음"은 곧 "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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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 나보다 타인이 더 신경 쓰이는 사람들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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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라고 하면 우선 어렵다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고, 또 웬지 구름 따먹는 소리를 하는 것 같은, 마치 전문적인 학자나 의사, 상담사 등이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심리학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우선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기에 '사회심리학'이라니... 심리학에 사회학이 더해졌다는 느낌마저 준다. 더욱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리는 선입관을 지니고 심리학이나 사회학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공부가 주로 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생각이 들고, 대학에서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닌 한 교양과목으로 겨우 들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학이나 심리학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의식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회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사회학고 심리학이 기계적으로 합쳐진 그런 분야는 아니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된다.

 

어짜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하니, 사람들은 함께 모여 살고, 또 모여 살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공부를 '사회심리학'이라고 하면 된다.

 

우리를 괴롭히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삶에 도움을 주는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생각을 하면 '사회심리학'에 조금 더 쉽게 접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아마도 그런 의도에서 쓰여지지 않았나 싶다.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이 때, 개인적인 치유도 중요하고, 개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러한 문제가 생겼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해결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하는 학문이 바로 이 '사회심리학'이다.

 

그러므로 결코 어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삶에서 흔히 겪는 사례들을 예로 들어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고,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명제에서 시작하여, 결국 인간은 소속욕구와 인정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충족시켜야지만 행복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며, 우리들의 심리가 기본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심리상태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부터, 그것이 곧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서 함께 지내야 하는 직장에서는 상사는 어떤 심리상태를 지니고 있는지, 왜 그런지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어떤 방법으로 다가가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있으니, '사회심리학'이란 다른 말로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힐링"이 넘치는 시대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시대다. 이 책은 그런 시대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할까에 대한 '사회심리학자'의 답이라고 보면 된다.

 

나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고, 또 내 주변의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기도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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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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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궁금해 하면서도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두 개.

 

죽음이란 무엇인가?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결국 사람들은 탄생과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이 질문들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질문의 최대치이지만 반대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우리들은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탄생이나 세상의 시작에 대해서도 많은 책이 나와 있지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정답은 있지만, 아직 우리 능력으로는 정답에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이 질문이면서도 대답을 할 수 없는, 또는 누구나 대답하려고 도전하고 있는 질문, 여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왔던가.

 

이 책은 죽음이 아니라 탄생에 대한 탐구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우주까지 포함하여-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최근에 나온 과학이론을 총동원하여 알려주고 있다.

 

세상의 시작을 탐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도 많은 수학, 물리학, 천문학 지식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런 과학지식이 없는 사람은 도대체 뭔 얘기를 하는가 하고 읽다가 포기할 수밖에 없고, 또한 약간의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도 이 책은 어렵다.

 

아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리학이나, 수학이나 천문학이나 전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누가 다시 공부하겠는가. 얄팍하게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지식으로 버티든지, 아니면 뭔 소리야 하면서 책을 덮든지 할 수밖에 없다.

 

교양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국민공통과정이라 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서도 문과와 이과를 나누어 편중된 교육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과생들은 과학분야에서는 문맹이 되며, 이과생들은 인문학 분야에서 문맹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런 반성 속에서 책을 끝까지 밀고 간다. 어짜피 딸리는 과학지식으로 이 책을 비판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책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야지 하면서 읽는다.

 

우주로의 여행이 세상의 시작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말에서 이 책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주는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데, 이런 우주 여행이 우리의 근원으로 가는 길이라니...

 

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겠다 싶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빛 때문이다. 빛의 속도가 대략 일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간다고 하니, 빛의 속도로 계산을 하면 100억광년 떨어져 있는 별을 우리가 관측한다는 사실은 100억년 전의 별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우주의 역사를 137억년 정도라고 하는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에서 우리는 우주의 시작을 발견할 수 있고, 또한 그러한 연구가 진척되고 있다는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직접 가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빛보다 빠른 물질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주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말 것을 은연 중에 강조하고 있다고나 할까.

 

엄청나다. 정말로 방대한 스케일이 책 속에 펼쳐지고 있다. 이 자그마한 나라에서, 그것도 서로 아웅다웅하면서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좀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단위 자체도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크거나 작고. 우주의 크기는 무한대에 가깝다고 하고, 어떤 은하들은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우리 은하로부터 멀어져 가, 나중에는 우리 은하밖에는 관측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올 정도니...

 

하늘을 본다는 것, 천문학을 공부한다는 의미가 아니더라도 방대한 우주에서 나란 존재는, 우리란 존재는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리라.

 

우리의 무한한 상상력을 과학지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채워나가려는 노력. 이것이 천문학자, 물리학자, 수학자들이 하고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고, 이러한 과학과 종교가 결코 배타적이 아님을 저자의 생활에서(그는 티벳 스님들에게 천문학을 강의한다고도 하고, 마찬가지로 스님에게 배운다고도 한다) 또 저자가 예를 든 목사이자 천문학자인 사람의 이야기에서도 배우게 된다.

 

과학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에게 이런 책은 좀더 나를 좀더 낮춰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 조금 더 겸손하게 이 세상의 존재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 좀더 커다란 세상을 꿈꿀 수도 있어야 한다는 점, 우리의 눈에는 너무 큰 것도, 너무 작은 것도 보이지 않으니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한가지 이 책이 우주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면, 적어도 일반인들이 읽어야 한다고 한다면 이 책의 부록에 천문학이나 물리학의 전문 용어들을 해설해 주는 친절을 베풀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켈빈 온도라는 말이나, 그밖의 다른 용어들에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참고자료를 뒤적거리는 일은 책에 집중하는 시간을 뺏어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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