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
박홍규 지음 / 소나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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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야의 그림을 보면 스페인이 보이고, 우리나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재미 있다. 많은 사실을 알게 되고, 그림을 보는 재미도 느끼고, 이런 점에서 학창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미술에 대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데...

 

고야란 이름을 자주 보게 된다. 사실 예전에는 모르고 있던 화가이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화가이니.

 

그런데 그의 그림 중에 언급되는 그림들이 제법 있다. 어디선가 본 그림도 있고. 그렇다면 그는 중요한 화가? 이런 생각이 든다.

 

도서관에서 박홍규(그는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다.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 그에 의해 많이 소개되었다)가 쓴 "고야"에 대한 책을 보았다. 그동안 고야에 대해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넘어간 책들을 읽은 터라 잘됐다 싶어 빌려 읽기 시작.

 

화가에 대한 이야기,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르게 스페인의 역사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단순히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분명 대조가 아니라 비교다. 이렇게 스페인과 우리나라가 비슷한 줄은 몰랐다) 시작한다.

 

도대체 고야와 스페인의 역사, 그리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관련되기에 이렇게 하나 했더니, 화가는 그 시대를 벗어날 수 없으며 고야는 그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작품으로 남긴 작가라고 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누드 그림 말고, 대부분의 그림은 스페인의 현실을, 스페인의 민중을 그린 작품들이니 스페인의 역사를 알아야, 고야가 살던 당시 혁명기의 스페인을 알아야 그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반도국가에서 비슷한 시기에 기나 긴 독재시대를 거쳤다는, 외국의 침략으로 백성들이 살해당했다는 그러한 공통점도 있고, 고야의 작품 두 점이 우리나라에서 전시 불가 판정을 받아 전시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있으니, 작가가 우리나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왜 우리나라에는 고야와 같은 작가가 없는가고 한탄하고 있다. 왜 없겠는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다만, 그와 같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고, 고야 역시 당대에는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으니, 우리나라 화가들도 작품을 제대로 발표하지 못할 뿐이다.

 

2002년에 쓰여진 이 책은 그 전까지 우리나라 화가들의 서구취향, 또는 전통 한국취향으로 위장한 자기만족에 대해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때도 우리나라 화가들 역시 시대를 직시하고, 그 시대 상황을, 민중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음 확실하다.

 

단지 고야처럼 성공적인 화가의 길을 걸은 사람이 아닐 뿐이지.

 

고야는 시골에서 태어나 아카데미에 두 번이나 떨어지는 고난을 겪는다. 그만큼 그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화가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부단한 노력으로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결국 궁정화가가 된다.

 

스페인에서 궁정화가가 된다는 얘기는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고야는 왕실의 화려함을 자랑스레 표현하기 보다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궁정화가로서 지내면서도 민중들의 삶에 대해, 스페인 현실에 대해 풍자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발표를 못하고, 또 금지 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그런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말년에는 보수 반동의 흐름을 견딜 수 없어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 곳에서 삶을 마감한다고 하는데...

 

궁정화가로서 출세의 길을 달리지만 그는 그가 처한 사회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고, 특히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중들의 삶에 눈감을 수 없었다고... 또 가톨릭의 횡포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마녀사냥이 계속되어지는 스페인의 현실에도 눈을 감을 수가 없어 그를 풍자화로 그려냈다고 하니...

 

그의 그림들을 보면 스페인의 근대를 알 수 있고, 전쟁이나 권력이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 고야의 그림들이, 그것도 민중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이 많이 실린 것은 저자인 박홍규가 권력의 비민주성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고야의 민중성, 혁명성을 더 강조하고 있고, 이런 화가가 우리나라에도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고야처럼 궁정화가는 되지 않았더라도 우리에게도 민중화가들은 많이 있다. 언뜻 떠오르는 이름만 하여도 오윤, 홍성담, 임옥상, 강요배 등이 있으니... 우리도 스페인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역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그림들을 만들어내는 화가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그래서 한 화가의 평전이지만 책의 앞뒤로 스페인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점은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한다.

 

스페인이 몇 번의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민주화 이후에 독재로 많이도 돌아갔듯이, 우리 역시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가, 정말 그런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2년에도 이랬는데, 12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런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고야의 그림이 우리나라에 전시 불가 판정을 받았듯이(이 책에 의하면 그 그림은 '벌거벗은 마하'와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프린시페 비오 언덕의 총살'이다) 2014년 우리나라 광주에서, 민주화의 성지라 불리는 광주에서, 광주 정신을 계승하자고 그렇게 말하는 지금 홍성담과 몇몇이 그린 그림들이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되는 것을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보면... 박홍규의 절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의 마지막 구절... 2014년에도 유효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그는 권력과 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인간을 파괴하는 두 개의 악에 저항한다. 18세기 스페인이나 20세기 한국이나 그 두 가지는 인간을 파괴하는 두 개의 괴물을 상징한다. 그 저항으로 그는 두 장의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당대 스페인에서 금지당한 것처럼 20세기 한국에서도 금지 당한다. 한국은 아직도 권력과 성에 있어서는 미개국이다. 274-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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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트킨 자서전 - 인류의 품격있는 진보를 꿈꾸었던 아나키스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유곤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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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트킨.

 

아마도 아나키스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인기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나키스트 하면 대표적으로 그를 떠올리기 때문이고, 그의 저서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상호부조론은 적자생존에 대항하는 이론으로써, 또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 이론으로써, 그래서 사람들은 경쟁보다는 협동할 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알려주는 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많이 읽히고 있다.

 

아나키즘 그러면 테러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도 '아나키스트'라는 영화가 이들을 테러를 하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들은 테러보다는 협동, 자율, 자치를 기반으로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여 아나키즘은 평화의 이론이고, 자유의 이론이며, 협동의 이론이고, 자치의 이론이다.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배제하는 것이지 모든 권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권력을 위에서 내려오는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 하면서 자연스레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이 배제하는 권력은 자유와 자치, 협동을 억압하는 권력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말하는 권력은 권위 정도로 해석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말과 행동에서 자연스레 권위가 나오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자유 자유 하지만 함께 사는 곳에서는 자기의 자유와 남들의 자유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협동하기 위해서 자율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줄일 필요가 있고, 이를 잘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레 권위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무리 권력이나 권위를 부정한다고 해도 모든 권력, 모든 권위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은 함께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나키즘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기적 유전자. 정말로 이기적인 유전자는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음을 과학적으로 밝혀준 책이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아나키즘도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함께 하는 협동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자유라는 말보다는 자율이라는 말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개인의 자유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이루고, 이들이 자치를 하면서 상호협동을 해나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아나키즘이 꿈꾸는 사회고, 크로포트킨이 바라던 사회였을 것이다.

 

크로포트킨 개인의 자서전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인 내용보다는 당시 러시아의 상황과 민중들의 삶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더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급박한 혁명 전야. 전제군주의 독재정치. 그리고 그에 편승하는 귀족, 지식인들의 농간. 여기에 핍박받는 민중들의 삶. 그런 삶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모습. 그럼에도 민중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 모습.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 추진해가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안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있다는 것.

 

크로포트킨은 어려서부터 이를 체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농노들과도 인간적으로 지냈으며, 근위부대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궁정에서만 지낼 수 있음에도 시베리아로 지원해 떠나고, 그곳에서 지리를 탐사해 나중에 훌륭한 지리학자가 되며, 단지 지리학자로 머물지 않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혁명의 자리에 자신을 내던지게 되니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군대시절, 감옥과 혁명운동에 투신해서 지내기까지의 삶 속에서 그가 만나고 보게 되는 러시아 혁명 상황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그리고 곳곳에 들어있는 그의 신념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느껴지고 있으니... 목적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태도라든지, 감옥생활의 경험으로 느낀 감옥제도의 문제점 등은 지금도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아나키즘... 우리나라에서는 다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풀뿌리 민주주의와 더불어 생기고 있는데, 그러한 아나키즘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나키스트적인 자세인지... 아니, 어떻게 살아야 정말 사람답게 살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자서전이다.

 

책의 표지에 세계 5대 자서전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그만큼 한 사람의 생애 뿐만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를 알 수 있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지표를 제시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삐딱한 덧글

 

세계 5대 자서전? 참 사람들 이름 붙이기 좋아한다. 뭐가 5대 자서전이야 하고 찾아보니,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 괴테의 "시와 진실" 안데르센의 "내 생애 이야기" 그리고 이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이란다. 예전에는 "한 혁명가의 초상"이라고 나왔다고 하니, 아마도 이름을 "한 혁명가의 초상"으로 하는 것이 옳겠다.

 

내가 좀 삐딱해서 그런지 이들이 모두 유럽 사람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계에 위인들이 많고, 또 좋은 자서전도 많은데 꼭 이렇게 세계 5대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책을 광고해도 남들이 세계에서 5번째 안에 드는 좋은 자서전이라고 해도 크로포트킨의 생애를 생각하면 이런 이름을 붙여 책 겉표지에 홍보하는 것을 그가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백범일지"와 같은 자서전이 있고, 인도에는 "나의 진리 실험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간디 자서전이 있지 않은가. 또 내가 모르는 훌륭한 사람들의 자서전이 얼마나 많은데...

 

이왕이면 동서양을 아울러서 선정을 하던지 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님 크로포트킨을 생각해서 이런 광고 문구는 빼던지...

 

참, 나도 삐딱하다.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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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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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간송미술관도 가보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하는 간송전도 가보았지만, 그 문화재들이 얼마나 힘들게 우리 품으로 돌아왔는지는 실감하지 못했다.

 

그가 갑부였지만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구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한 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손에 들지 못했던 책인데,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로 했다. 집에 사놓고 소장하면 좋겠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빌려보기로 한 것.

 

책을 펼치자마자 약간의 실망을 했다. 어라, 완전히 사실이 아니었어. 평전이 아니네. 그렇다면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유족들도 줄거리 구성에 허구(상상)가 있음을 밝히는 조건으로 출판해 동의해 주었다(10쪽)는 말이 있으니, 그래도 역사소설처럼 사실에 기반한 책임을 알 수 있어서 계속 읽기로 했다.

 

간송 전형필을 아는데 처음에 소설을 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무엇보다도 간송에 대한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인데...

 

이 책은 평전이라고는 할 수 없고, 팩션(팩트+픽션: 사실에 기반하여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이라고 할 수 있으니, 80%이상은 사실일테니, 구체적인 상황은 상상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

 

몽유도원도에 관한 이야기 말고는 사실, 모두 간송의 손에 들어온 작품들이니 그 작품들의 구입 정황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는 장점이 있다.

 

시종 눈을 떼지 못하게 흥미롭게 전개되는데...

 

우리 문화재를 우리 것으로 하는데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다니, 단지 돈이 아니라 민족의 얼을 보존한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문화재를 수집하고, 그것을 개인박물관을 만들어 보관하여 후손에 전해주는 과정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간송미술관을 다시보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 문화적인 면에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나에게 그래도 간송전을 세 번 봤다고 반가운 작품들이 곳곳에서 나오니 더욱 흥미로웠고, 그 문화재들에 얽힌 사연들을 읽게 되고 책에서는 또 사진을 통해 보여주기도 하니 문화재들이 더더욱 아련하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일본으로 또는 외국으로 아니면 사라질 뻔한 문화재들을 살려 우리 곁으로 되돌려준 간송. 그의 일생은 당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흐르면서 더욱 빛나는 삶이 됨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가 있어서 좋았다.

 

매년 개최하는 간송전, 이 책을 먼저 읽고 가면 더욱 감상하는데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얼마나 좋은가. 내가 보는 그림, 도자기, 불상, 석조물 등에 이러한 사연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보는 재미가.

 

이런 문화재는 한 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간송처럼 보고 또 보아도 언제나 우리 마음을 울리는 맛과 멋이 있으니...

 

멋있는 사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런 그의 멋이 우리의 문화, 우리의 얼을 살려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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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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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이제는 많이 알려진 이름이지만 예전에는 알아서는 안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단지 북한에 남았다고 남한의 문학사에서 지워진 이름이 되었다. 지워진 이름으로만 남았으면 다행이었겠는데, 그의 시집을 지니고 있으면 반공법, 국가보안법에 걸리곤 했으니, 해방 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백석을 알기에는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백석이라는 이름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의 논문에서도 백석 시연구가 유행을 했고, 그의 시전집이 나오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백석은 일제시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존재하기 시작했고,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서도 그의 작품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난 백석 시가 좀 어렵다. 그가 구사하는 평안도 사투리가 머리 속에 잘 들어오지 않고,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으니 마음을 잘 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자야와의 일화까지 덧붙여져 백석의 숨결을 느끼러 길상사에 들르는 사람도 생길 정도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백석은 우리나라 시사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이런 그를 언제 죽었는지, 일제시대가 아닌 남북으로 분단된 다음에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다행이 최근에 와서는 그에 대한 자료를 구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또 직접 시인이 만나고 다녀서 조사한 바를 정리해서 완결된 '백석 평전'이 나왔다.

 

'연어'로 유명한 또는 소위 '연탄재'라고 알려진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로 유명한 안도현이 자신이 존경하는 백석에 대해서 평전을 쓴 것이다.

 

안도현은 자신에게 시인의 길을 알려준 사람이 백석이라고 한다. 또 우리나라 시인들이 뽑은 대표적인 시집에서도 백석의 '사슴'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시집으로 뽑히기도 했으니, 그의 영향을 받은 시인은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한둘이 아니다.

 

그 중 이 책의 뒷부분에 실려 있는 이동순의 글을 보면 안도현이 백석의 영향을 다분히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유명한 시인 한 명을 더 덧붙이자면 '신경림' 시인 역시 백석을 존경하고 그의 시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안도현, 시인으로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시인이기도 한 그가 그에게 영향을 준 시인인 백석에 대해서 연구하고 책을 낸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분단이 된 이후 북한에서의 백석의 활동을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안도현의 표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분단 이후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작가는 살아 있는 표현을 하고 있어서 백석의 전 생애를 연결지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평전이라고 해서 일반 위인전처럼 생애를 간추리고 작가의 평을 간략하게 써넣는 것이 아니라 백석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책의 곳곳에서 그의 삶과 시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평전을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백석 시를 만나게 되고, 백석 시가 왜 좋은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또 시만이 아니라 백석의 수필도 많이 수록하고 있어서 백석 글의 특징을 알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백석의 공과를 떠나서(사실 그에게 공과를 따질 수는 없다. 그는 어떤 이념적 지향을 지니고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고향이 북쪽이었고 가족이 그곳에 있었기에 거기에 남았다고 하면 된다. 공과를 따진다면 그와 관련된 여인들 정도라고 해야 하나) 그는 시인으로 살았고, 시인으로 우리에게 남았다고 보면 된다.

 

천상 시인은 시인이다. 시인에게서 시를 앗아갔을 때 그 때 시인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니, 그가 시를 쓰지 못하게 된 1963년 이후의 백석은 우리에게서 자연스레 잊혀져 갔을 뿐이다.

 

다만 그 이전의 시들은 우리에게 남아 끊임없이 백석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백석의 위대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덧글

 

이 평전을 읽으면서 안도현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일제시대 가부장제가 극심한 그 시대에 백석은 결혼을 두 번(혹은 세 번)이나 하고도 도망치고 만다. 그렇다면 그와 결혼을 했던 여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 책에서는 모른다고 한다. 다만 그들이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을 것만은 분명하다고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예로 들어주고 있다.

 

결벽증에 가까운 태도를 지니고 있던 백석이 이런 여인들에게 준 상처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을까? 그런 궁금증...

 

읽다가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물론 전체적인 글 내용에는 치명적이지 않은 그리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평전인데... 정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

 

우선 110쪽 날짜 계산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정월 대보름이라면 양력으로는 1월 9일이다.'는 구절이 있는데, 통상 음력이 양력보다는 빠르다. 하여 달력변환기로 찾아보았더니 음력으로 1936년 1월 15일은 1936년 2월 7일인데...

그냥 보름이라고 하면 음력으로 1935년 12월 15이 양력으로 1936년 1월 9일이니 이해가 되는데... 정월대보름이라고 해놓고 어떻게 양력 1월 9일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는 백석이 통영을 방문한 기간을 확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백석과 만난 여인들 이야기 중에서 최정희, 노천명, 모윤숙에 관한 부분

95쪽에서는 '백석보다 여섯 살이 많은 최정희는...'이라고 했는데, 159쪽에 가면 '백석하고 최정희는 동갑이었고, 노천명은 이들보다 한 살이 많았으며...'라고 했다.

최정희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어떤 곳은 1906년생이라고 하고, 어떤 곳은 1912년 생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정확한지 이 평전에서 알려줘야 하는데, 두 나이가 함께 나오고 있다. 어느 것이 맞을까?

그리고 노천명도 찾아보니 1912년 생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백석하고 동갑인데, 호적이 잘못된 것인가? 이에 대한 이야기가 보충설명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280쪽. 아주 사소한 것

'암말과 당나귀 수컷 사이에서 태어나는 2세가 노새다. 노새는 당나귀보다도 체구가 작다'고 했는데, 교배하여 노새를 낳게 하는 이유가 당나귀보다도 힘이 센 동물을 만들기 위해서 아니던가. 그러면 상식적으로 노새가 말보다는 작겠지만 당나귀보다는 커야 한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 평균적으로 노새는 당나귀보다도 체구가 크다.

 

내 책만 이런가? 이미 수정이 된 것인가. 혹시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해서(가끔 눈이 나를 배신하는 적이 있으니) 여러 번 보았는데 2014년 6월 30일 초판 3쇄인 내가 본 책은 이렇게 되어 있다.  

 

참 사소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작고 하찮고 쓸쓸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시인이 쓴 평전이니 한 번 살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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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리더십 - 고금에 통하는 혜안으로 세상을 읽다 (국보 76호 난중일기부록 서간첩 수록)
노승석 지음 / 도서출판 여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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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장군으로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그를 장군으로만 기억하면 전쟁 연구에서나 필요한 인물로 국한시키게 된다.

 

전란에 휩싸인 나라, 이 만큼 정치력을 필요로 하는 때가 어디 있는가? 여기에 책임질 자리에 있던 사람은 제 한 몸의 안위를 위해서 외국으로 도망갈 생각이나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진정 위기를 극복할 리더십이 필요했으리라.

 

그리고 그러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전란은, 위기는 극복이 된다.

 

임진왜란이라는 우리나라 최대 비극을 그나마 극복하게 한 사람이 바로 이순신이다. 만약 바다에서까지 일본군에게 제압당했더라면 임진왜란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바닷길을 이순신이 막아주었기에 일본군의 보급이나 이동이 원활해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우리나라 육군이 시간을 벌 수 있었으며,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싸움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리더십이라는 말을 정치력이라는 말로 바꾸면 이순신의 정치력은 지금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배워야 할 기본 요소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그의 "난중일기"를 토대로 하고 있으며, 이순신이 자신의 리더십을 어디에서 따왔는지를 중국의 여러 자료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자, 강태공, 제갈량,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정(당태종 때의 장군이다)과 황석공(초한지라고 알고 있는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유방의 참모였던 장량의 스승이라고 한다)의 글을 인용하고, 이를 이순신이 어떻게 자신의 리더십에 적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아마도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또 어떤 단체를 거느리고자 하는 사람이면 이 책을 꼭 읽을 필요가 있으리라. 적어도 남 앞에 서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자세를 지니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리더십이라고 해서 뭐 특별나게 다른 것은 없다. 성인(聖人)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순신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으로 유교에서 말하는 5가지 원칙을 들고 있다. 이 다섯 가지 원칙은 굳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사랍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기본 자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리더십은 바로 사람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된다. 특별하게 지도자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무엇이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리더십이 따라온다는 얘기다. 물론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여기에 과담한 결단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다섯 가지는 "인의예지신"이다.

 

유교의 기본이념인 "인"에서 시작한다. '인'은 곧 사랑이니, 이 사랑은 부모에 대한 사랑인 '효'에서 시작하여 주변인으로 점점 넓혀져 나아가야 한다. 하여 '효'에서 시작하여 '충'으로 끝나게 되는데, 이 '충'은 임금에 대한 충이 아니라, 백성에 대한 충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바로 백성이기 때문이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의 효와 충이 절절하게 나온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어머님에 대해서 지극한 효심을 지녔는지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효가 임금에게 또 백성에게 나아가니, 그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을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효는 자기 부모만 잘 모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 부모를 모시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성을 다한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자연스레 "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소위 의리라고 하는 것. 옳음을 위해 자신의 전존재를 거는 것. 그렇게 의를 지키기 위해서 '예'가 나올 수밖에 없으며, 이순신이 얼마나 예를 중시했는지를 그의 글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인,의,예'와 더불어 '지'가 있어야 한다. 무식하지만 착하고 부지런한 지도자. 좋을 것 같지만, 아랫사람에게 폐만 끼치는 지도자다.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 '지'는 필수능력이다. 남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지도자는 한시도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서 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글을 계속 쓴다는 얘기는 자신을 성찰한다는 얘기다. 잠시라도 틈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 그것은 계속 공부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바로 '지'다.

 

이러한 지에 더하여 '신'이 있어야 한다. 믿음... 그것이 없으면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 적어도 지도자가 한 말은 반드시 실행이 된다는 믿음을 백성들이 가져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다.

 

지도자가 공수표를 남발해 보라. 아무도 그의 정책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의 정책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하여 진실된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 정책을 이루기 위한 지혜를 발휘하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리더십, 그것이 바로 이순신 리더십이다.

 

도서관에서 이 제목을 보자마자 꼭 읽어야지 하고 빌려온 책인데... 우연히 영화 "명량"과도 겹치게 되어 이순신에 대해서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의 리더십.

 

사람답게 잘 사는 길을 공부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긴 것...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공자든, 강태공이든, 제갈량이든 그들이 원한 삶이고, 그들이 발휘한 리더십이다.

 

우리나라 정치...지금 어지럽다.

 

정치인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리더십이다. 그렇다면 한 번 이순신을 다시 공부해 보라. 그가 왜 성웅으로 추앙받는지... 어째서 그가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록으로 실린 편지글들과 그 원본 사진도 이 책을 가치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더불어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꼼꼼하게 다시 읽어보게 하는 힘도 지니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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