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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 - 이순구의 역사 에세이 ㅣ 너머의 역사책 5
이순구 지음 / 너머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오늘날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 한다
고등학생 아들이 어머니를 죽였다. 죽은 어머니를 집안에 방치하고 부패되어가며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창문을 열고 문틈을 막았다고 한다.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수사결과는 의외다. 학교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자신을 억압했다는 것이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요인이라고 한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 참은 잘못된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혼란스럽다. 그 혼란스러움 속에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실종과 가족의 해체가 가져온 사회적 파장을 감당치 못할 만큼 우리 사회의 혼란스러움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해방 후 사구문화의 도입과 더불어 산업화의 진행과 맥을 함께하며 가족의 해체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전통적 가치관의 출발점이었던 가족의 해체가 가져온 사회적 파장은 다양한 현태로 표출되었지만 그것이 전통적 가치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아한 오늘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사회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의존도, 가족 구성, 부부사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밀도 등을 볼 때 가히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전통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삶을 영위했던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사이의 갈등을 넘어 새로운 가치관의 정착에 의해 어느 정도 그 방향성을 찾아가는 듯하다.
그렇다면 수 백 년을 이어왔고 현대인의 의식구조 속에 아직 남아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는 가족에 대해 역사 속의 모습은 어떤가? 가장 가까운 역사 중 하나인 조선시대의 가족의 가치를 살펴 그 연유를 찾아보자. 이순구의 ‘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은 바로 조선시대 가족이 어떤 의미로 조선이라는 사회를 지탱하고 이어왔으며 그 유전자를 이어받은 현대 사람들과 사회 속에 이어지는지를 살피고 있다. 전통적 가치관의 실종과 가족의 해체에 직면한 우리들의 모습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잣대로 조선의 사회를 살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성리학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성리학이 조선을 이끌어온 학문과 사상적 기준이었다면 이 말은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 활동을 규정하는 것이었으리라. 하여, ‘수신’과 ‘제가’는 조선 사회를 조선이게끔 만들었음과 동시에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과 일상을 억매 풀어야할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조선을 지탱해온 한 축인 가족과 그 가족의 구성원의 일상 활동에 주목한다. 저자는 남겨진 기록 중 개인의 일기를 중심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구성하거나 일상의 모습을 살피고 있다. 적처와 적자, 종부, 종손, 양자, 서얼, 첩, 기생 등 가족의 구성과 가족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는 이러한 키워드를 쫒아 조선 시대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21세기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의 근원에 대해 알 수 있다. 결혼을 ‘장가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나, 가족 내에서 조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지금도 남아 있는 그 흔적과 만난다. 조선이 건국되고 그 법률적 체계를 가져왔던 중국의 ‘대명률’ 보다 더 강화된 남성중심의 사회 구성이 구축되게 된 상황도 살필 수 있다.
또한, 저자의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수많은 열녀를 만들었고 가치판단의 기분으로 작용했던 도덕성이 오늘에 와서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는 도덕성의 강조로 인한 사회적 폐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는 수긍이 되나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도덕성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문이 든다. 특히,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비교에서 능력을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야기 한 경우라면 더욱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다.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가치관으로 변해야 한다지만 그래도 지켜가야 할 명제는 있을 것이다.
‘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에서 만나는 조선의 가족은 의외성을 담보하고 있다. 이 의외성은 내가 살아가는 현 사회와 수 백 년 전의 사회를 비교하면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의외성으로 인해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관을 깊이 있게 살피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은 그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에서도 가치 있는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