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산이 있었다 - 한국 등산 교육의 산증인 이용대 교장의 산과 인생 이야기
이용대 지음 / 해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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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학교 교장의 등산인들에게 주는 교훈

집 근처 산 이름이 연산이다. 이사하고 나서 늦가을 무작정 산을 올랐다. 산림도로를 따라 올라간 길에서 등산로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각종 산악회의 이름을 단 이정표들이다. 단순히 산악회 이름만을 표기한 것이 있는가 하면 자신만의 독특한 문구로 이 길을 다녀간다는 표시를 한 이정표도 있다. 이런 이정표는 갈림길이나 길을 잘못 들어 등산로를 벗어났을 때 아주 유용한 길잡이가 된다. 내가 사는 곳 인근에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 참으로 흥미롭다.

 

산이 국토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산과 사람의 삶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유독 많은 사람들이 산악회를 기반으로 등산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산을 찾고 있다. 마치 유원지 나들이하듯 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 여파로 올레길, 둘레길과 같은 각종 트레킹 길이 만들어지고 종교인의 성지순례길 처럼 꼭 가봐야 하는 길로 주목받는 일까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고 가고 싶어 하는 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평생을 산과 함께 살아온 사람 이용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과 등산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곳에 산이 있었다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산이 시작된다는 시각으로 산은 인생의 학교다’, ‘산 속의 문화, 세상 속의 산’, ‘산을 사랑하니 산과 닮아 있다’, ‘자연의 대서사시, 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산이 시작된다로 구성된 이야기를 담았다.

 

전문산악인과 등산 애호가들의 이야기가 중심인 이 책에는 등산의 역사와 더불어 산과 등산인의 관계를 규명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봉에 올랐던 지난 등산의 흐름을 바이 페어 민즈(정당한 수단으로 오르기)’로 바꾼 이야기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등산에 대한 시각을 전하고 있다. 또한 역대 한국 산악인의 해외등산원정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과 그 뒷이야기도 담았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등산인들의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한다. 또한 코오롱등산학교교장으로 등산인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등산인들에 대한 무분별한 태도에 대한 질책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산에 오르지 않는다. 머메리에게는 머메리의 산이 있고, 메스너에게는 메스너의 산이 있듯이 당신에겐 당신만의 산이 있다.”

 

한국산악인의 산증인과도 같은 이용대의 사람들은 산에 왜 오를까라는 질문은 등산인들이 꼭 한번쯤 심사숙고해야할 화두와도 같다. “산은 인생의 학교다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는 등산이 주는 교훈은 사람들의 삶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산이 있다는 것은 각자가 스스로 산에 부여한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저자 이용대의 시각은 등산이 단순한 신체적 행위나 스포츠의 하나가 아니라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가는 전인적 활동임을 확인하는 과정이 등산이라는 점, 이는 수 십 만 명에 이르는 등산인들에게 30년간 산과 살아온 이용대의 조언이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말고 오롯이 나만의 길을 가라는 이야기는 현대인들의 삶의 교훈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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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지켜온 나무 이야기 -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로 만나는 우리 문화와 역사
원종태 지음 / 밥북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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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얽힌 사람이야기

굳이 나무가 사람에게 주는 유용함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시멘트가 건물을 만드는 요소로 등장하여 그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오늘날에도 나무는 여전히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해결해 주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곁에 있는 나무에 대해 그리 관심 주지 않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마치 공기가 생명에 필수적인 요소이나 그 존재를 잊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에 중요한 자리를 점하고 있는 것이 나무이다.

 

숲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숲을 이루는 다양한 생명에 대한 주목하고 특히 나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과정에서 만난 나무들의 생명에 대한 욕구는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나무들이 수없는 시간을 살아남아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어쩜 기적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그런 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것은 나무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의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싶다.

 

원종태의 책 한국을 지켜온 나무 이야기에 나무를 사랑하는 따스한 사람의 마음으로 담겼다. 이 책에는 오랜 세월 우리들과 함께 이 땅을 지켜오며 한국을 대표할 만한 나무들을 찾아보고 그 나무와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과 나무의 관계에서 비롯된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게 한다.

 

그가 만난 나무들로는 용문사 은행나무’, ‘청령포 관음송’, ‘준경묘 소나무 숲 ’, ‘당진 삼월리와 창경궁 회화나무’, ‘괴산 용송’, ‘대검찰청 소나무와 같이 어쩌면 우리가 익히 아는 나무들의 현주소를 밝히는 것과 더불어 사랑과 행복을 테마로 연리지’, ‘자귀나무’, ‘버드나무’, ‘뽕나무’, ‘무궁화’, ‘향나무등에서 나무를 통한 사람들의 삶에 투영된 이미지를 찾아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대나무, 매화, 배롱나무, 전나무, 대추나무등을 통해 나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어떻게 부여되었는지를 찾아간다. 또한,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 이름이 잘못된 명칭인지도 모르고 사용하는 사례(아카시아나무는 아까시나무로 부르는 것이 맞다),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오해받는 나무(리기다소나무는 일본과 관계없다)와 같은 오해를 불러온 이유를 밝히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

 

나무를 사랑한 저자의 이야기는 식물학자의 그것과는 다름 접근방식이다. 나무의 식물학적 접근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로 보는 나무 이야기이기에 나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아 누구나 쉽게 이 친근한 나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이 부분이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이 아닐까 한다. 저자 손수 찍은 사진들과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반갑게 읽을 수 있다.

 

자신이 사는 곳 어디를 찾아봐도 사람보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오며 지나간 사람들이 마음까지 담고 있는 나무들이 있다. 그만큼 나무와 사람은 가까운 사이다. 잠시라도 눈을 돌러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살펴보고 그 나무가 간직하고 있을 이야기에 귀기울여본다면 어떨까? 정원 한켠 회화나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어린 묘목이 자리 잡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이곳에서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해 본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서도 그들을 기억하는 나무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이 책을 통해 이런 마음이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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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유산 청동기 비밀을 풀다 - 다뉴세문경, 비파형 동검, 신라 범종 재현기(再現記)
이완규 지음 / 하우넥스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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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물 장인이 팬을 든 사연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보면 그 시대 이런 걸작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의문의 기초엔 현대문명과 비교하여 비문명사회라는 잣대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현대문명으로 도저히 풀지 못하는 제작비결 앞에서 불가사의한 물건으로 치부하고 마는 결과를 낳게 된다. 현대사회의 시각으로 옛 시대를 판가름하는 기본시각에 이제는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오롯이 한 길을 걸어오며 자신의 분야에서 우뚝 선 기술자를 장인으로 부른다. 그들이 가진 기술력뿐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삶의 열정과 집념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인들의 위상은 그에 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모습은 특히 강단의 학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 인정받기보다는 냉대 당하거나 외면당하기까지 하는 오늘날 장인들의 열정과 집념에 대해 장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의 문화유산 청동기 비밀을 풀다의 저자 이완규는 주물분야 장인으로 자신의 일생동안 수많은 작품과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옛 방식으로 재현해낸 사람이다. 그가 전문 학자들이 풀지 못하는 무엇으로 치부했던 다뉴세문경’, ‘비파형 동검’, ‘신라 범종등을 옛 방식으로 재현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출간한 책이다. 선조 장인들이 글을 몰라 그들의 기술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해 후손에게도 기술이 제대로 전승되지 않았다는 역사적 조건에 대한 대안이기도 했다. 장인은 서럽다고 술회하는 이완규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가 재현한 국보 제 141호 다뉴세문경은 지름 21.2에 삼각형과 사각형, 동심원을 활용한 13000개가 넘는 정교하고 섬세한 선이 0.3간격으로 그려져 있다. 그동안 이를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무수히 많았으나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그 결과 만들 수 없는 신비한 거울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저자는 수많은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옛 제작방법을 밝혀내고 이를 재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런 성과를 두고도 전공자와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 재현한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간다. 사진과 함께 수록된 재현과정은 기록으로 남아 후손들에게 전해지길 기원한다. 재현과정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유물에 대한 용도를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각종 청동유물이 의식용일 것이라는 기존시각을 뒤엎고 전투과정에서 분명하게 쓰였을 무기로 본다는 것이다. 이는 학자들이 만들어보지 않고서 생긴 모양이나 재질 등을 보고서 일방적으로 이름을 짓고, 용도를 단정해 버린다그러면서 제작 과정도 추정해 버리면서 역사에 오류가 발생 한다고 주장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옛 방식으로의 재현을 위해 보여던 저자의 열정과 집념에서 알게 된 장인의 혜안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학자와 기술자가 머리를 모아 유물에 대한 올바른 성격규정이 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장인 이완규가 당시 장인은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유물들과 끝임 없이 대화하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엇을 것이다. 그가 꿈꾸는 범종의 재현에 마음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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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 - 전영관.탁기형 공감포토에세이
전영관 지음, 탁기형 사진 / 푸른영토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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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그대, 나를 만나는 시간

이 사내를 양도 합니다로 시작하는 공고를 냈다. 나 이런 사람임을 밝혀 내가 쓴 글이 당신의 마음에 혹 있을지도 모를 불편함에 대한 저항을 차단이라도 하려는 걸까? '공고'라는 머릿말에서 나는 한 페이지도 더 나가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무엇이 날 붙잡고 있는지를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다시 읽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멈춘다면 자신을 양도한다고 공고한 저자의 바람과는 사뭇 어긋난 지점에 서 있는 것일까? 다소 머뭇거리며 책장을 넘긴다.

 

익숙지 않은 문장과 문장 사이를 연결하기엔 긴 호흡이 필요하다. 천천히 아주 심사숙고해서 읽어야 머리로 이해하고 심장에 이르는 더딘 걸음걸이를 감내해야 한다. 하여, 애서 걸어온 문장으로 다시금 되돌아가야 한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어 보인다. 그렇더라도 문장을 놓치지 않고 더딘 걸음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전영관의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은 이렇게 불편한 책이다. 살아오는 동안 가슴 쓰리기에 붙잡아두기 싫어 외면했던 수많은 감정들을 천천히 곱씹도록 만들고 있다. 더디지만 그럴수록 깊이 있는 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공감이다. 공감이 이뤄져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기에 이 공감을 불러오는 과정이 더디다는 것은 소통에 장애로 작용한다. 무엇이든 쉽고 빠른 것만이 능사인 현대사회에서 이런 불편함은 역으로 깊은 공감을 위한 전재조건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곱씹어서 깊은 공감을 일으키고 이를 바탕으로 소통을 이뤘을 때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기에 전영관의 글이 가지는 매력 여기에 있다고 여겨진다.

 

사랑에 대한 부재증명’, ‘세상의 무늬들’, ‘맑은 거울을 찾아서로 구분된 이야기 속에는 누구나 겪는 일상에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불편과 불안한 요소들에 대해 자기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자기성찰의 근본요구는 상처로부터 치유에 있기에 자신의 상처를 직시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힐링이라는 말이 만병통치약처럼 사람들의 허약한 내명으로 파고드는 이 시대에 애써 상처로 돌아가게 만들기에 그의 이야기는 쓴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저자의 힐링프로그램을 찾을 시간이 있다면 고요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라는 저자의 완곡함에 신뢰가 간다. 더불어 또 한명의 저자인 한겨레신문의 탁기형 기자의 사진은 전영관의 글과 어우러져 보다 깊은 자기성찰로 이끌며 때론 전영관의 글과 독자를 이어주는 든든한 다리 역할까지 하고 있다.

 

416일 이후 온 나라가 슬픔과 비탄에 빠진 가을의 초입에서 국민들의 집단적 상처를 치유할 무엇도 찾기 어렵다. 무엇을 어떻게 스스로 찾아야 하는지 반문해 본다. 마음의 상처는 다른 사람에 의해 치유되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이를 이겨낼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냉정히 우리의 현주소를 살펴 국가와 사회가 주는 상철르 치유할 방안을 모색하여 스스로 얻어낼 때 가능한 것이다. 더불어 개인들의 삶 속에서 안고 살아가는 상처를 극복하는 일 역시 스스로의 힘을 믿을 때 시작할 수 있으며 가능한 일이 된다. 이 가을 이 책과 더불어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져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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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기행 -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김봉규 글.사진 / 담앤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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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에 담긴 역사와 문화 만나기

얼마 전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을 방문했다. 필암서원은 사적 제242호로 1590(선조 23) 호남 유림들이 김인후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장성읍 기산리에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24년에 복원하였으며, 1662(현종 3) 지방 유림들의 청액소(請額疏)에 의해 필암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7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786년에는 양자징(梁子澂)을 추가 배향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시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다.

 

이 필암서원에 확연루라는 누각이 있는데 정면 3, 측면 3칸의 중층 팔작기와집이다. 그 현판 글씨 확연루(廓然樓) 편액은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글씨이다. 확연의 확자는 곽자로도 읽히는 글자로 필암서원의 확연루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화원형백과 등에 곽연루로 표기되어 있다. 같은 건물을 두고 표기가 이렇게 다른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혼란스러움이 앞서지만 필암서원을 관리하는 문중도 지방자치단체도 국가기관도 이에 대해 무관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화유적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태도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이런 우리의 현실에서 전국에 산재해 있는 궁궐, 고택, 사원, 사찰, 정자, 누각 등 우리 옛 현판에 관심을 갖고 현판이 가지는 역사, 문화적 의미를 밝히는데 주목한 사람이 있다. ‘조선의 선비들, 인문학을 말하다의 저자로현판기행을 집필한 김봉규가 그다. 현판이라고 하면 그 건물의 얼굴이지만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현판은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큰 글자에다 그것도 나무에 세겨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 온 것이지만 현판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안타까운 우리의 실정에서 반가운 일이다.

 

저자 김봉규가 주목한 현판으로는 정자와 누각, 서원과 강당, 사찰로 구분하여 각기 걸린 현판을 찾아 현판과 글씨 그리고 건물이나 장소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밝히고 있다. 특히, 글씨를 쓴 사람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글씨에 얽힌 에피소드와 함께 현판글씨에 더 친근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이 된다. 현판을 쓴 사람들로는 왕으로부터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에서부터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도 인정했던 김종호의 글씨까지 시 공간을 초월하여 오늘로 불러 온다. 글씨가 그냥 글씨가 아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표상이었으며 학문의 흐름과 서체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문화의 지표이기도 했던 점을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부록에 담긴 서체 대한 정보는 이후 현판을 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있는 현판이지만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는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나마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추사 글씨인 봉은사 판전板殿(서울시유형문화재 제84)’ 현판과 명종 글씨인 영주소수서원紹修書院(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0)’ 현판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유적을 대하는 우리의 현주소의 또 다른 현실임을 알게 한다.

 

현판은 글씨 자체가 가진 가치뿐 아니라 그 문구가 담고 있는 의미가 주는 가르침, 그 현판에 담긴 일화, 글씨를 쓴 서예가의 예술혼 등 유무형의 값진 유산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여행이나 나들이로 흔하게 방문하는 곳에서 만나는 역사적 공간의 얼굴과도 같은 현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 때 유적은 본래의 가치를 획득할 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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